누가복음 15:1~7 / 잃은 양의 비유를 가르치신 예수님
(눅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눅 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눅 15: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눅 15: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 15: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눅 15: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어려서 ‘엄마 찾아 삼만 리’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머니 안나는 가정 형편이 어렵자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돈을 벌러 갑니다.
어머니는 돈과 편지를 딸 마르코에게 규칙적으로 보내오는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끊어집니다. 딸 마르코는 어머니 안나를 찾아서 멀고 먼 여행을 떠납니다.
천신만고 끝에 결국 마르코는 아르헨티나에서 어머니를 만납니다.
병들어 삶을 포기하고 있던 어머니는 딸 안나를 보고 희망을 찾습니다.
안나는 수술하고 다시 살아납니다. 이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딸이 많은 고생을 하며 어머니를 찾았고 엄마를 찾았을 때 죽어가던 어머니가 살아났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강권적인 크신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을 찾을 때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찾았을 때 그들은 살아납니다. 이 찾기까지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도 한 사람을 찾기까지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2절 예수님은 세리들과 창녀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마태는 많은 세리와 죄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변화된 마태를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왔습니다. 자신들도 세리 마태처럼 변화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영접하고 이들과 함께 식사하였습니다.
유대인에게 식사를 한다는 것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만찬도 이런 문화적인 관습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하나가 되고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친구로 영접하여 주셨습니다.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리나 창녀하고는 교제하지 않고 식사도 같이하지 않았습니다. 세리나 죄인을 이방인과 같이 대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들을 이방인처럼 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회개시키고자 하는 마음은 없어지고 한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으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때부터 어떤 사람은 죄인으로 평생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의인으로 평생 태어나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 식사하지 않는 금기를 깨고 이들을 영접하고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죄인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사랑이 그들을 회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온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는 미워하였지만, 죄인들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고통하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며 회개를 도우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에서도 회개라는 말이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죄인을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사람을 회개시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회개한 자들이 가는 나라입니다.
스데반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핍박자 사울을 위해서 용서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크신 사랑으로 사울을 용서하고 그를 빛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사울은 이런 사랑을 통하여 회개하고 사도로 쓰임 받았습니다.
성경에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회개하고 순종하고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도 과거로 말하면 나보다 더 큰 죄인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신 은혜로 나를 영접해 주시고 목자로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제가 그 사랑으로 회개하고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죄악을 깨우치기 위해서 죄인들을 영접하는 것이 왜 합당한지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십니다.
3~7절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두 비유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먼저는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한 마리를 잃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홉 마리를 우리에 두고 한 마리를 찾도록 찾습니다.
한 마리를 찾으면 사랑스럽게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우리에 있는 아흔아홉 마리를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한 마리를 인하여 더욱 기뻐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합니다.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그 사람의 기쁨이 흘러넘칩니다.
양은 생명을 가진 동물입니다. 양은 인간의 생명을 비유합니다.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양 백마리 중에 한 마리는 백분의 일이 아닙니다. 한 생명은 전부입니다. 열 명의 자식이 있는 한 명의 자식은 부모에게 없어도 되는 자식이 아닙니다.
한 자녀가 아프면 부모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꿀 정도로 고통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한 생명을 찾기까지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잃어버린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잃어버린 양을 찾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 양을 찾기 위해 기도하고 나서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