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댄스스포츠의 페러다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는 길은 아무리 길고 멀어도 결코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그 누군가가 늘 내 옆에서 날 밀어주고 당겨주고 도와준다면 어떤 난관이라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누군가가 늘 내 옆에 있다는 것이 댄스스포츠의 가장 차별화된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 5월, 세계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블랙풀 댄스스포츠 선수권대회의 프로라틴 경기는 예년보다 훨씬 큰 관심속에서 개최되었다.
댄스스포츠는 순위가 한 번 정해지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올 해 프로 라틴부분은 그 순위를 예상할 수 없을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마추어 랭킹 1,2위 커플이 프로로 전향하고 10위권 안에 선수들 중 몇몇은 은퇴, 몇몇은 파트너를 바꿔 출전하였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세계의 댄스인들이 관심속에서 경기가 개최되었다. 그 중 가장 관심을 끈 선수는 새롭게 호흡을 맞춰 출전한 러시아의 커플이었다. 2005년세계 랭킹 2위의 카리나와 3위의 드미트리 선수가 새로이 커플이 되어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는 대회였기에 새인의 관심을 그들에게 쏠려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불과 1년 전만 해도 자신들에게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선수들에게 2위,3위 자리를 뺏겼고 아마추어에서 갓 올라온 커플을 간신히 제친 쓸쓸한 세계랭킹 4위였다. 영국 윈터가든에서 직접 경기를 관람한 필자는 그들의 춤을 보고 많이 실망하였다. 예전에 보여주었던 화려하고 환상적인 춤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짦은 시간에 호흡을 맞추느라 파트너십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야구 농구 축구와 같은 팀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팀플레이다. 댄스스포츠는 팀플레이보다 더욱 긴밀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만 진정한 아름다움을 표현해 낼 수 있고 이것이 바로 파트너십인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으로 훌륭한 기술을 소화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파트너와의 긴밀한 호흡이 없다면 댄스스포츠 선수라고 부를 수 없다. 댄스스포츠는 나 혼자 추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와 함께 춰야 하는 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댄스스포츠에서 파트너십이란 그 어느 요소보다도 중요하다. 좋은 파트너를 만난다는 것은 댄스스포츠계에서 가장 큰 행복이자 행운이며 파트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댄스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하고 동시에 가장 하기 힘든 덕목 중 하나이다.
좋은 파트너는 결코 기술적으로 뛰어난 선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춤을 출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그로 인해 나의 춤을 한단계 더 성장시켜줄 수 있는 선수가 바로 가장 훌륭한 파트너이다. 또한 평상시 연습하고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베려해주고 이해해주는 파트너야 말로 나의 가슴속에서 나오는 춤을 출 수 있게 만들어주는 좋은 파트너인 것이다.
신사의 나라 영국의 귀족문화에서 출발한 춤이기에 상대방에 대한 베려와 매너, 예의등을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여기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파트너십은 특히 국내의 어린 선수들에게 교육적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서로의 의견만 내세워 다투고 사이가 좋지 않은 선수들을 필자는 대회장에서 바로 알아챌 수 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그러한 감정은 눈에 띄게 드러난다. 이러한 커플은 결코 자신들의 실력을 100% 발휘하지 못한다. 또한 긴밀한 조화로움이 없기 때문에 아름답고 매끄러운 춤은 결코 기대할 수 없게된다.
독일의 유명한 라틴댄서가 필자의 스튜디오에서 특별한 레슨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레슨을 받는 커플의 룸바를 보고 의아해하며 필자에게 말은 한 적이 있다.
룸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지만 내 눈에는 룸바처럼 보이지 않는다. 룸바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느낌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있지만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따로 자신들의 춤만을 추고 있는 것 같다.
당시 두 선수는 국내에서 이름을 날리던터라 모두 그 장면을 보고 의아해했다.
이것이 바로 댄스스포츠에서 파트너십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일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처럼 파트너십은 다른 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댄스스포츠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하기 때문에 더 힘들기도 하고 또 더 행복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파트너십의 의미보다 더 중요한 한가지 사실은, 댄스스포츠에서 결코 나는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든 싫은 일이든 언제나 나와 함께 헤쳐나가는 파트너가 있기 때문에...
**KBS SKYSPORTS 해설위원 이만호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