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이와 빨간 운동화
지은희
커다란 어깨를 쫙 펴고 활짝 웃으며 현관문을 들어서는 아들을 호들갑스럽게 맞이하면서 나도 모르게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아들은 22개월의 기간이 무색하리만큼 조그만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있었다. 순간 괜히 혼자서만 잔뜩 부풀어 기대한 내 꼴이 우스워 보였다. 본인 짐도 겨우 들어갈 만큼 옹색한 작은 가방 안에 선물 같은 게 들어 있을 리는 만무했다.
아들이 제대하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자꾸 엉뚱한 쪽으로 귀가 쏠리던 참이었다. 군복무를 시작한 얼마 동안은 아무 탈 없이 몸만 건강하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에서 자기 아들이 이등병 첫 월급으로 내복을 사서 보냈다느니, 생일에 군대 매점에서 종합비타민을 사서 보냈다느니, 택배로꽃다발을 보냈다느니,휴가 나가는 친구 편에 부탁해 카디건을 사서 보냈다느니 등의 말을 들을수록 부러워하는 마음과 함께 나만 아들한테 대접 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하는 마음도 커져갔다. 그럴 때마다 내가 군에 간 아들을 둔 노심초사하는 엄마가 맞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사와 건강을 마음으로 빌어 주지는 못할망정 다른엄마들하고 경쟁이라도 하듯 아들한테 선물을 못 받아서 안달하는 것 같아 한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보상심리라는 것이 있다. 부모의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들 하지만 부모도 사람인데 주기만 하고 하나도 바라는 게 없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주변 어른들이 자식이 뭐라도 해 주면 자랑삼아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다니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어버이날 무슨 대단한 훈장이라도 단 듯 가슴에 새빨간 카네이션을 달고 나서는 걸 보면 유치하기도 하고 촌스럽다는 생각에 속으로 피식 웃으며 지나쳤다. 그런데 요즘은 그 모습이 오히려 부러울 지경이다. 아들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어버이날 유치원을 다녀온 아이 손에는 꽃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꽃잎 몇 장은 이미 꼬깃꼬깃하고 뒤에는 옷핀이 붙어 있는 색종이를 오려 만든 카네이션이 들려 있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그럴싸한 모양을 갖추어 만든 카네이션을 들고 왔다. 문방구에서 파는 플라스틱과 나일론으로 조악하게 만들어진 카네이션도 받아 보았다. 그러던 것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차례로 들어가면서부터는 그나마도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아예 엎드려 절 받기라도 해볼 양으로 '요즘은 카네이션이엄청 비싸더라든지 ‘올해는 카네이션 대신 패랭이꽃이 더 많이 나왔네’하는 식으로 언질을 준 적도 있다. 그렇게 해서 받은 적도 있지만 매번 그러기도 우스운 일이었다. 이제는 언제 받았는지 기억도 희미하다.
제대하는 아들을 기다리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선물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등병 첫 월급 때도 그냥 지나쳤고, 어버이날에다 생일까지 건너뛰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제대 선물 하나가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다. 제대를 며칠 앞두고는 평생 있을 단 한번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을 것 같아 초조한 마음에 미리 은근슬쩍 말을 흘려볼까도 했지만 좀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연하게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빈손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자 맥이 턱 빠진 것이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이상하게 선물에 대한 아쉬움은 가시지 않았다. 결국은 참지 못하고 아들한테 한 마디하고 말았다.
"얘, 너 엄마한테 뭐 제대 선물 같은 거 없니?”
"제대 선물? 어……, 저기 식탁의자에 걸어놨잖아요. 깔깔이."
아들이 살짝 뜸을 들인 다음 가리킨 것은 제대한 날부터 며칠째 계속 식탁 의자에 걸쳐져 있던 누리끼리한 색의 점퍼 비슷한 옷이었다. 며칠 동안 걸려 있어도 신경도 쓰지 않던 옷이다.
"저거? 깔깔이? 저게 엄마선물이야?”
"그거 엄마 주려고 가져 온 건데……. 안 그러면 내가 뭐하러 힘들게 가져와요. 그냥 버리고 오면 되지.”
그렇다. 나는 버리지 않고 아들이 작은 가방에 힘껏 쑤셔 넣어온 일명 깔깔이를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것도 집에 오자마자 '엄마 선물이에요’하고 내놓은 것도 아니고, 며칠이 지나서 얼떨결에 받은 옷이다. 깔깔이는 군인들이 야전상의 안에 입는 겨울용 내피로 입은 것만으로도 사람이 초라해 보이는 옷이다. 드라마나 개그 프로그램에서 가끔 덜 떨어지거나 우스운 캐릭터가 입고 나오는데 그런 배역에 딱 맞아 떨어지는 옷이다. 그걸 아들이 제대 선물이라고 가져온 것이다. 엄마가 겨울에 하도 추워해서 집에서 입으라고 가져 왔다나. 그런 말을 들으니 고마워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지만 고맙다는 말은 선뜻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선물이라는 말에 나는 깔깔이를 걸쳐 보았다. 나를 위해 힘들게 가져왔다 하고, 이들이 입었던 거라 그런지 어설픈 모양새와는 달리 의외로 포근하고 편했다.그런데 거울 앞에 서서 보니 비쳐진 모습은 가관이었다. 옷이 커서 몸이 푹 묻힌 건 둘째로 친다 해도 내피다보니 깃도 없고 천도 안에 대어진 허연 솜이 비칠 정도
로 얇은 나일론 소재로 되어 있는 것이 영 엉성했다. 게다가 커다란 마름모꼴로 누벼진 것 하며, 빛바랜 국방색이라고도 누렇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색깔 탓인지 얼굴도 칙칙해 보이는 게 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퇴근한 남편한테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입어보았다. 남편은 내가 입은 것을 보고는 집에서 입으면 좋겠다는 말만 하고는 별다른 반응을 안보여 나도 시큰둥하며 벗어 놓았다. 남편은 내가 벗어 놓은 깔깔이를 한참 바라보더니 입어보라는 말도 안했는데 얼른 걸치고 거울 앞에 섰다.
“이거 뭐 이래. 허리가 쏙 들어가 있는 게. 어깨도 끼고 영 불편하네. 당신한테 더 잘 어울려.”
"그러게. 내가 그나마 더 낫네."
남편은 배가 나와서인지 허리 부분은 복대를 찬 것처럼 꽉 끼고 팔 부분은 오히려 긴 것이 입은 모양새가 나보다도 더 우스꽝스러웠다. 깔깔이가 은근히 탐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입어보더니 아예 생각을 접은 듯했다. 남편은 깔깔이를 벗어서는 나에게 주며 자신이 군대 시절에 입었던 것에 비하면 지퍼로 여미게도 되어있고, 주머니도 있는 것이 아주 훌륭하다고 했다. 한술 더 떠서는 예전에는 시골에 가면 동네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이 하나씩 입고 있었는데 그게 아무나 입을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아들, 그것도 군에 갔다 온 아들이나 손자가 있어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따지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옷이다. 어쨌든 아들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선물 운운에 깔깔이는 내 것으로 낙찰되었다.
아들이 선물이라 했으니 아쉽지만 깔깔이나마 제대 선물을 받은 걸로 치자고 스스로 위로도 해 보고 의미도 부여해 보았지만 왠지 아쉬움은 가시지 않았다. 마음속에 뭔가 뭉쳐 있는 것이 풀리지 않는 것 같아 혼자서만 끙끙거리며 지냈다. 그렇게 일주일쯤 더 지났을까 아들 앞으로 택배가 왔다. 아들은 제대하고 나서 신발이며 시계까지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인터넷을 통해 사들인 터라 그런 것 중 하나라 여기고 아들 방에 상자채 가져다놓았다. 그런데 외출해서 들어온 아들이 방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신발 상자 하나를 나한테 내밀었다. 엄마 선물이란다. 내가 뭐라도 받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얘가 알아챘나? 아님 나도 모르게 아들한테 선물을 강요했던가? 안달하는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조금은 민망해하며 상자를 열어보니 어머나! 빨간 운동화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온통 빨간색에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가 흰색으로 깔끔하게 붙어 있는 운동화였다. 운동화를 보는 순간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어머, 어머, 이거 엄마거니?”
"응, 엄마가 운동화 필요하다고, 하나 사야겠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산 거예요."
"넘 예쁘다. 고마워. 빨간색이 어울릴까 모르겠다.”
"엄마한테 잘 어울리지. 그리고 이거 연예인들도 많이 신어서 이 브랜드 중에서 제일 인기 좋은 모델인데."
아들 말에 의하면 이 운동화는 일명 ‘효리 운동화로 이효리가 텔레비전에 신고 나와서 계속 품절 되었던 모델인데 어렵게 산 것이란다. 그 말을 들으니 운동화가 훨씬 더 좋아 보였다. 나는 너무 흥분해서인지 운동화 줄을 끼는데도 허둥댔다. 줄을 다 끼고 신어 보니 발바닥이 푹신한 게 편하고 빨간색도 의외로 잘 어울렸다. 아들도 좋다고 했다. 치수도 딱 맞았다. 어쩐지 얼마 전에 자꾸 신발 크기를 묻는다 했더니 딴에는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연신 아들한테 고맙다하고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하며 운동화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도 보고 거울에도 비춰보았다. 나름 거액을 주고 샀을 운동화였다. 게다가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들 눈에는 자기 또래 친구들이나 신어서 어울릴 만한 이 빨간 운동화가 엄마한테도 잘 어울릴 거라 생각되었다는 것에 더 기분이 좋았다.
나도 이제 아들한테 평생에 딱 한 번뿐인 제대 선물을 받았다는 자랑거리가 생겼다. 그것도 굳이 꺼내 보일 필요도 없는 것으로 아주 확실하게 말이다. 이제 깔깔이쯤은 남편이 입든 아들이 도로 가져가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나는 아들이 사준 빨간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날이면 빨간 카네이션을 단듯 다리를 쭉쭉 펴면서 자랑스럽게 걸어 다닌다.
-등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