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렇게 고귀한 상제님의 개벽의
도를 함께 들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준 이 지역 일꾼들과, 이 자리에 참여한 춘천 시민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말씀에
앞서 지난 증산도 개척의 역사를 잠깐 돌아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32년 전, 이 우주의 주인이자 통치자이신 증산 상제님께서 동방의
조선 땅에 강세하셨죠. 상제님은 서른한 살 되시던 해, 곧 20세기의 첫 새벽을 울린 1901(신축)년에 이르러 만고에 없는 중통인의中通人義의
대도통문을 여셨습니다. 그 해로부터 9년 동안, 상제님은 천지인을 다스리시는 삼계 대권으로 병든 천지를 뜯어고치는, 이른 바 천지공사를
행하십니다. 그리하여 태초 이래로 인류가 꿈꿔 온 희망의 세계, 지상 선경 낙원을 이 땅에 열어 놓고 천상 보좌로 어천하십니다.
그 후
2년 만에 종통 계승자를 전한 수부도수에 의해, 상제님의 아내이신 고 수부님이 상제님으로부터 천지 대권을 전수받으십니다. 수부님은 상제님과 거반
같은 도통을 하시고 똑같이 천지 대권을 쓰셨죠. 우리는 그 여인을 태모님이라고 부르는데, 모든 인간과 신명의 어머니입니다. 그 해로부터
상제님 도의 개척의 역사가 시작됐어요.
태모님께서 상제님의 세 도장 살림을 맡아 처음으로 도문을 여신 게 초기 제1 부흥 시대입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 증산도의 뿌리 되시는 안운산安雲山 종도사님이 개척하신 게 제2의 부흥 시대, 그게 남북 전쟁에 의해 도세가 기울어지고,
70년대 중반부터 종도사님과 내가 개척한 것이 제3 부흥기로서, 이제 증산도는 성숙의 도운을 맞이하였습니다. 제1 부흥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언 한 세기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내가 상제님 도업 개척에 뛰어든 게 대학에 들어갈 무렵입니다. 그런데 그 때만 해도
개척의 초기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죠. 상제님 진리를 알릴 수 있는 체계적인 책자도 없었고, 쉽게 써놓은 종이 한 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증산도를 공부하며 열심히 상제님 개벽의 도를 전하는 일꾼들이 전국 각 대학가에 자리를 잡고 있고,
뿐만 아니라 국내 각 도시는 물론 일본의 고베와 동경, 오사카 그리고 미국, 캐나다, 영국 등지에서 상제님 일꾼들이 도업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상제님이 개벽 세상을 열기 위해 천지공사 보신 지 백주년 되는 역사적인 해입니다. 근 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전무후무한 상제님 개벽 세계의 말씀을 듣는 세상 사람들의 귀가 열려 가고 있습니다. 우리 상제님 일꾼들에게는 대단히 기쁜 일이죠.
먼저 서두에서 짚어 주고 싶은 게 있습니다. 상제님 진리는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내가 진리를 여덟 갈래로 나누어 팔관법八觀法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 팔관법으로 공부하면, 앞으로
오는 개벽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팔관법을 크게 보면 제1법이 상제관上帝觀입니다. 상제, 상제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근원은 상제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불교의 근본도 상제님, 기독교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우주를 통치한 아버지를 예로부터 동방의 한자 문화권에서는 상제님이라고 했죠. 그 상제님이 누구실까요?
제2법이 상제님이
다스리시는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이법에 의해 돌아가는가 하는 우주관宇宙觀입니다. 이 우주관이 정리되면 진리의 대의가 다
끝나 버립니다. 모든 종교 문화의 한계는 이 우주론의 빈곤에서 야기되는 거죠. 증산도 진리의 매력은 바로 이 제2법 우주론에
있습니다. 여기서 이 우주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선후천 개벽 문제가 풀립니다.
그 다음
제3법이 이 우주의 결론인 인간의 문제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왜 태어나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의 궁극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뭔가?’ 하는 것이죠. 증산도의 인간론을 공부해 보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전의 불교 기독교 등 동서양 어떤 종교나 철학에서 들어보지 못한, 참으로 충격적인 새로운 진리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증산도
인간관을 다른 말로 증산도 근본 사상이라고 하죠. ‘원시반본原始返本, 곧 앞으로 전 인류가 우주의 가을개벽과
더불어 근본으로 돌아가는데, 이 때 인간이 어떻게 해야 생명의 길을 가게 되는가? ’ 그 구체적인 생활 원리가
보은報恩, 해원解寃, 상생相生, 그리고 시종 정성을 다하는 마음 일심법一心法입니다. 여기서 일심법이란 과거 수행
세계에서 체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입니다. 상제님이 결론을 내려주신 거죠. 석가나 예수 성자의 말씀에서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마음세계에 대한
정의! 이건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 다음 제4법이 인간이 죽음의 질서를 넘어서 가는 속우주 세계인 신도세계와 수행관입니다.
곧 신관神觀과 수행관修行觀.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가? 증산도에서는 앞으로 오는 대개벽을 말하는데, 그 개벽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태을주 수행입니다. ‘태을주 수행을 통해서만 천지의 대개벽을 극복한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전하고 있죠. 이에 대해 좀더 강력한 표현을 쓰자면, “태을주를 읽지 않는 사람은 앞으로 오는 가을개벽을 건널 수
없다.”는 겁니다.
그 다음 제5법이 증산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곧 개벽세계를 열어놓으신 9년
천지공사입니다. 이 천지공사에 상제님 진리의 노른자가 다 들어있죠. “증산도란 무엇인가?” 할 때, 한 마디로 “증산도는
천지공사天地公事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천지공사를 모르면 증산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제6법이
실제 개벽상황입니다. ‘앞으로 개벽이 될 때 어떤 사건들이 전개되는가? 그 때 인류는 어떻게 구원받는가?’ 하는 것이죠. 곧
‘앞으로 지구촌 인류가 씨만 남고 다 없어진다는 것이 그 동안 동서양에서 개벽을 경고한 모든 이들의 공통되는 주장이다. 그러면 증산도의 구원관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앞으로 가을개벽에 살아남는가? 그 개벽의 실체는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제7법이 증산도의
종통관宗統觀입니다. ‘진정 증산 상제님 도의 계승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죠. 상제님이 어천하신 이후,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종통을 받았다고 하며, 자기들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름대로 거짓말을 덧붙여 조작했습니다. 그런데 상제님은 남자에게 종통을
전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상제님은 인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에게 당신의 도통을 계승하셨습니다. 그걸 수부도수首婦度數라고
하죠. 수부, 그분을 우리는 태모님이라고 부릅니다. 천지 안에 있는 만백성과 신神들의 어머니! 여성의 인권 문제, 남녀의 갈등 문제를
이 증산도의 수부론首婦論에서 다 풀어주고 있습니다.
끝으로 제8법이 증산도 일꾼관입니다. ‘상제님의 도를 받은 그
순간부터 내 삶은 선천의 삶과 어떻게 구분지어지는가? 또 상제님 일꾼이 받은 사명은 뭔가? 증산도의 사명은 무엇인가?’ 등 에 대한 내용이죠.
앞으로 이 세계가 크게 뒤집어지는 개벽을
합니다. 이 개벽이 동양 문화의 근본이요 결론이죠. 개벽을 알지 못하고 동양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면
개벽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이것을 기본으로 해서 증산 상제님 진리 몇 가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 앞서 춘천
신도들이 네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첫째는 개벽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는 증산 상제님은 누구신가? 곧 상제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 듣고 싶다는 거죠. 세 번째는 앞으로 오는 개벽 상황에 대해, 특히 남북 대결 구조가 마무리되는 상씨름의 상황과 그와 연결된
개벽의 실제 상황에 대해, 또한 개벽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해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끝으로 네 번째, 인간의 삶의 목적에 대한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이 네 가지만 제대로 정리해도 상제님 말씀을 그런 대로 들었다, 증산도가 무엇인지 개괄 정도는 들어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벽開闢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물을 때 또다시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죠. “인간이란 무엇인가? 또 인간이
개척해서 만들어 놓은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의 구성 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바탕이 뭘까요? 그것은 뭐니뭐니 해도
자연自然입니다. 인간의 자연 체험, 그것이 결국 깨달음의 열매인 우주론으로 나타나죠. 동서양의 공통된 우주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문화를 보면, 이 우주는 큰 봄과 큰 여름 그리고 큰 가을과 큰 겨울, 큰 사계절로
둥글어 간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동의 사막 문화에서 싹튼 기독교 문화가 서양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순환론의 맥이
끊어집니다. 그리하여 “태초에 한 번 창조된 인간이 타락해서 죄악이 들어오고, 이것이 지속되다가 크게 한 번 심판을 받은 뒤에 구원받은 자들은
영원히 산다.” 이렇게 일직선적인 사고 구조를 갖게 되죠.
하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주는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개벽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개벽’이란 말의 어원은 ‘천개지벽天開地闢’,
‘개천벽지開天闢地’입니다.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린 것, 즉 이 우주의 탄생 사건을 개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개벽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증산도에서 말하는 개벽은, 태초에 우주가 창조된 게 아니라 개벽이 됐다는 것뿐 아니라 이
우주는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가 하는 걸 포괄합니다.
‘우주는 어떻게 생성, 변화하고 있는가?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
진화해 왔는가? 또 생물의 출현과 성장 과정 속에서 인간이 열어 놓은 문명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그것은 앞으로 개벽을
통해 어떤 모양새를 갖게 되는가?’ 곧 인간의 탄생과 삶의 전 과정, 인류 역사와 문명의 진화 과정, 그리고 지금 맞이하고 있는
대변혁의 실체, 앞으로 오는 새로운 문명 세계 등을 총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증산도의 개벽관입니다.
개벽은 상제님이 오신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그 길을 열어놓은 분이 두 분 있죠. 동학의 최수운崔水雲 대성사大聖師와, 주역 세상이
끝나고 앞으로 정역正易 세상이 온다는 것을 알린 김일부金 一夫 대성사大聖師입니다.
최수운 대성사는 1860년 4월 5일날 만고에 없는
대도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스스로 정력통으로 정신을 닦아서 도통을 성취한 게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상제님으로부터 도통을 받은
것이죠. 수운이 처음 도통을 받을 때, 상제님이 성령으로 임어하시어 수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왈曰
물구물공勿懼勿恐하라. 세인世人이 위아상제謂我上帝어늘 여부지상제야汝不知上帝耶아.”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상제거늘 수운아, 너는 어찌 상제를 모르느냐.” 일찍이 우리 민족이 상제문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는 상제님이 누구신지 상제님의
실상을 몰랐습니다. 상제님이 천지 기운을 열고 도통을 주시고 천명을 내려 주시는데도, 미처 못 알아 본 것입니다.
어쨌든 최수운
대성사는 상제님한테 직접 천명과 신교를 받고 이 민족과 역사에 개벽이 올 것을 선언합니다.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곧 앞으로 괴질병이 들어와 개벽이 된다는 거죠. 그리고 “만고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 너는 또한 연천해서 억조창생 많은 사람
태평곡 격양가를 불구에 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개벽은 그냥 극복이 되는 게 아니라,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무극대운을 열어
주심으로써 극복된다는 것입니다.
상제님의 도법, 그것을 무극대도無極大道라고 합니다. 상제님 도법은 단순한 종교가 아닙니다.
철학도 아닙니다. 동서고금의 인류 문화를 수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문명세계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문명을 비약적으로 진보시키고 성숙케
하는 새 진리입니다. 수운은 그런 ‘상제님의 도법이 무극대도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개벽이 어떻게
오는가 하는 개벽의 기본 틀을 이치적으로 선언한 분이 있습니다. 충청도 연산의 일부 김항 대성사죠. 그분은 “앞으로 천지의
시간 질서가 바뀐다. 그 때는 정역正易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를 정 자, 바뀔 역 자, 천지와 일월과 만물이 조화를
찾는다는 겁니다. 일 년이 360일이 됩니다. 그런데 그는 ‘그 정역의 큰 변화는 단지 자연 질서가 바뀌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상제님이 그것을 그렇게 되도록 만드신다. 그 상제님이 성령을 드러내고 인간 세상에 오신다.’고 하여
“상제조림上帝照臨이라.” 곧 “상제님이 오시는구나.” 하고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선천 문화를 보면,
동양의 불교의 결론도 개벽이요 서양의 기독교의 결론도 개벽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동양의 불교
문화의 결론이 왜 개벽일까요? 석가모니에 의하면 “앞으로 3천 년쯤 지나면 말법 세상이 되는데 나의 가르침으로는 창생들을 교화할 수
없다. 그 때 이 우주의 별자리가 바뀌는 큰 변화가 온다. 즉,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 그 때는 저 도솔천의 천주님으로 계신 미륵님이 오신다.
그 미륵님의 새 진리에 의해 완전히 다른 새 세상이 온다. 어느 정도로 다른 세상이냐? 지구촌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의 마음이 다 열린다.
만백성이 다 도통해서 부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참, 이건 꿈도 못 꾸는 얘기 아닙니까?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말입니다. 『미륵경』을 보면 석가모니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그 때가 되면, 저 도솔천 천주님이 내려오신다.”고 한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 라훌라와 수석 제자 가섭, 군도발탄, 빈두타에게 “너희들은 내 법을 받아 열반에 들지 말고, 앞으로 오시는 도솔천 천주님의
도법을 받아 열반에 들라.”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얘기 아닙니까. 아, 석가모니가 자기 아들에게 자기 교법을 믿지 말라는 겁니다.
이 우주가 뒤집어지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게 석가모니의 고백입니다. 헌데 선천 불자들의 입장에서는 미륵님의 세상이 온다는 게 머리
속에 그려지지도 않고 그런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습니다. 불교 3천 년 역사상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깊이 생각해 본 자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하여 궁리해 낸 것이 미륵의 실상을 조작하는 것이죠.
어떻게 왜곡을 했는지 아십니까? “미륵은 3천 년 전, 석가모니가
인도에 있을 때의 제자였다. 그런데 요절해서 천상에 올라가 도솔천에서 도를 닦는 보살이다. 앞으로 말법이 되면 인간으로 태어나 집을 떠나 곧장
도통해서 부처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미륵이 석가모니의 제자였다는 겁니다.
(그림
설명: '도솔래의상' 도솔천의 보살로 있다가 마야부인의 태중에 잉태하기 위해 내려오는
석가.
『본생경(本生經)』에 의하면, 석존께서 인도 카필라라는 나라에 탄생하시기 전에 도솔천에 계셨는데 이름을 호명 보살(護明菩薩)이라고 하였다.
오랜 선정 끝에 호명 보살은 자기가 태어날 시간, 땅,
가계(가문). 심지어 자기를 회임할 어머니까지 결정한다. 호명 보살은 석가족(釋迦族)이 살고 있는 카필라국의 정반왕(淨飯王)과 마야(Maya)
왕비를 부모로 정하고 이제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겪을 모든 시련을 극복할 마음의 준비를 끝낸다. 그리하여 중생들이 기다리는 ‘법(法)’을
가르치는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제 역사적 석존의 전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석가모니가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본래
도솔천 천주님인 미륵불 밑에서 호명보살護明菩薩로 있었다. 그리고 미륵의 명을 받아 이 세상에 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석가모니의 본래 가르침입니다.
지금은 일부 불교 학자들이 “미륵이 석가모니의 인간 제자였다는 건 조작된 것이다. 역사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 56억7천만 년 후에나 미륵이 온다고 하니, 그런 망발이 어디 있습니까. (클릭=>
불기 3천년과 미륵불의 지상강세)
그러면 기독교의 결론은 왜 개벽일까요?
본래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날이 온다는 것이죠. 아버지의 날이 온다! 예수는 “하나님이
실재한다. 그 분이 아버지다! 아버지가 천상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자기를 내려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관 해석이 제대로 안 돼 있습니다. 체體와 용用으로 해석을 못하고, 예수가 하나님의 영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론이 예수가
하나님이 돼 버립니다. 하지만 예수가 피 흘리면서 절규한 게 무엇입니까? 예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하고
부르짖으며 그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 준 것 아닙니까.
그러면 기독교에서는 개벽이 어떻게 온다고 했습니까?
성서에 보면 그것을 말한 사람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기독교 박해 역사상 가장 참혹한 형벌을 받은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끓는 기름가마에 들어가는 형벌을 받지만 안 죽죠. 그는 밧모라 섬에 귀양 가서 거기서 백 살이 넘도록 기도만 합니다.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했는지, 그들이 말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앞으로 오는 우주개벽을 직접 보여 주십니다. 그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쓰기해서 기록해 놓은 게
바로 「계시록」입니다. 거기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새 하늘 새 땅을 보았습니다. 예전의 하늘과 땅은 모두 사라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았습니다.(중략) 그 때 옥좌에 앉으신 분이 ‘보아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셨습니다.”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여기에 나오는 백보좌 하나님이 누굽니까? 그분은
바로 예수가 말한 아버지요, 우주원리로 말하면 앞으로 들어오는 서신西神입니다. 서신이 들어온다! 이것이
가을개벽의 문제에서 결론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입니다. 상제님은 또 “앞으로 서신이 들어올 때, 그 전조로
시두時痘가 크게 터진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터지는 곳이 이 한국 땅이라고 하셨죠. 성서에서 개벽을 말한 또 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도 아버지의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때가 온다는 것이죠. 천지의 질서가 바뀜으로써 인류가 총체적으로
구원되는, 인류 문명의 새 날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결론도 천지 질서가 바뀌는 개벽입니다.
유교의 결론은 간도수艮度數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동북 간방艮方에서 개벽을 실현하는 새 진리가
나온다, 동북 간방에서 매듭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교에서는 예로부터 상제님을 말하고 있죠. 그러니 동서문화의
결론이 개벽 아닙니까.
그러면 개벽의 결론이 무엇일까요?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다는 겁니다.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 오시어 인류의 새 세상을 여신다는 겁니다. 어떻게 여시는 걸까요? 새 진리로써 여십니다! 새 세상을 여는 상제님의 새 진리! 이것이 증산도입니다. 따라서 증산도를 통해서만 인류 미래의 비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증산도를 통해서만 앞으로 오는 새 세상의 한소식을 깨칠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내가 전하는 도는
금불문고불문今不聞古不聞이다.”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이제도 너희들이 들은 바가 없고 예전에도 들은 바가 없는 도’라는
말씀이죠. 인간 역사상 동서고금에 들은 바가 없는 새 진리! 이것이 증산도입니다. 그러니 증산도는 그 언어부터가
새롭습니다. 진리를 접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처음 듣는다.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상제님의 도를 접하려면
반드시 책을 봐야 합니다. 증산도에 관련된 것은 종이 하나라도 소중하게 수집을 해서 끼워 놓고, ‘후천개벽, 원시반본, 해원, 상생 등
증산도에서는 왜 이런 용어를 쓰는가? 개벽이란 무엇인가? 후천선경 세계란 무엇인가?’ 그 뜻부터 알아야 합니다. 책을 보지 않고
증산도의 개벽 문화를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냥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드시 책을 봐야 합니다.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럼 증산도의 우주관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증산도 진리의 눈, 결론이 우주론이죠.
개벽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그 대의를 알려면 우주론을 깨야 합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132년 전에 오시어,
서른한 살 되시던 해(1901년)부터 9년 동안 천지 대권으로 새 세상을 여는 개벽공사를 행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열어주신 이 우주의 실상 즉,
‘우주는 어떻게 열려 돌아가는가? 우주변화의 원리는 무엇인가? 그 변화는 지금 어떤 과정에 와 있는가, 곧 인류는 지금 어떤 때에 살고
있는가?’ 이것만 깨쳐도 해답을 반은 찾은 겁니다. 상제님 말씀 한 구절을 함께 읽으면서 간단히 정리해 볼까요.
*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를 쓰나니 이것을 일러 무위이화라 하느니라. (道典 4:41:4)
내가
우주론을 말할 때는 반드시 이 성구를 정리해주고 넘어갑니다. 앞으로 이 세상이 한 번 크게 정리되어 뒤집어지는데,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걸까요? 앞으로 개벽이 오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여기서 그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죠.
첫째 단락은 ‘내가 천지를 주재하여 다스리되’입니다. 곧 상제님은 이 우주를
통치하는 분이란 말씀입니다. 서양 기독교의 하나님관에서 내세우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주를 일방적으로 빚어내는 게 아닙니다. 상제님은 이
우주에 내재되어 있는, 우주 스스로 갖고 있는 변화 원리를 주장하여 그렇게 되도록 만드는 통치자이십니다.
그러면 우주 변화의
섭리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이 두 번째 구절 ‘생장염장’ 네 글자입니다. 아, 우주가 처음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우주가 태어나는 과정이 무엇인가요? 그게 생장염장입니다. 인간도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이라는 시간을 거쳐 몸을 받고
태어나지 않습니까? 우주가 태어나 진화 성장하는 과정이나 인간과 만물이 태어나 살아가는 생명 원리, 그것은 오직 생장염장뿐입니다.
그런데 우주는 생장, 낳아서 길러 놓으면 반드시 세 번째에 가서는 거둡니다. 하늘에서 낳아 길러놓은 인간과 만물의 생명을
일시에 거둡니다. 이 ‘거둔다.’는 데에 문제가 있죠. 그 ‘세 번째 시간대에서 거두는 대자연의 변화’가 바로 앞으로 오는
가을개벽입니다. 철학적 종교적 언어로 말하면 후천개벽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천지가 낳아서 기르고 성숙하고 거두는 과정이
지나면, 폐장해서 문을 딱 닫습니다. 생물을 낳아 기르는 변화가 전혀 없이, 휴식기로 들어가 쉬는 겁니다. 이 생장염장이 시간의
원리로는 춘하추동, 일 년 사계절의 변화 원리죠.
그럼 자연 변화의 가장 근본 되는 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루의 낮과 밤,
음양 동정의 변화입니다. 이 낮과 밤의 변화처럼 신비스러운 게 없습니다. 날마다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는 밤이 지나면 자연과 더불어
스스로 눈을 뜹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다시 돌아가 잠이 듭니다. 우리 몸의 생리가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낮과 밤, 음양
동정 운동은 360도를 기준으로 하죠. 모든 변화의 한 주기, 순환의 틀이 360도입니다. 가장 완전한 조화 운동이죠. 그리고 지구가
태양을 안고 한 바퀴 돌면, 360일을 기준으로 볼 때 12만9천6백 도입니다. 그것이 지구에서 인간이 녹을 먹기 위해 초목농사 짓는 일 년
사계절이죠.
봄이 되면 죽은 듯한 나무에 수기가 올라오면서 싹이 터집니다. 그리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이 지나면, 나뭇잎이 온 하늘을
덮고 육칠팔월이 되면 분열이 극에 달합니다. 그러다 그 극기에 가면 생장이 정지되어 버립니다. 봄여름철에 뿌리에서 기운이 쭉 올라오는
건 근원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죠. 때문에 역도수逆度數라고 합니다. 역의 운동으로 근원에서 멀어져 가면서 생장 분열하는 겁니다.
그런데 분열의 극에 달하면, 뿌리로 돌아가 열매 맺는 가을 운동에 의해 자연 질서가 완전히 뒤집어집니다. 뿌리에서 줄기로 올라오던
수액이 거꾸로 뒤집어져 뿌리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숙살 기운을 받으면 이파리가 떨어지고, 봄여름에 길러 온 뿌리, 줄기, 이파리의 진액을
수렴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이렇듯 지구의 일 년 사계절은 초목이 열매 맺는 초목개벽입니다.
그러면 우주 일년은 어떻게 될까요?
우주에도 봄여름과 가을겨울이 있습니다. 우주의 봄철 개벽으로부터 여름을 거쳐 여름철 말로 들어가면, 초목이 무성해지듯 인간 종자가
번성하면서 인간이 자기를 잃어버리고 근본을 못 봅니다. 이 우주 일 년의 문제가 인류 문명 속에 쌓여 온, 그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숱한 난제들을 풀어 주는 열쇠죠. 그럼 이 우주 일년의 시간 단위는 어떻게 해서 형성되는 걸까요? 하루의 변화 질서가 확대된
게 지구 일 년이죠.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녹을 취하는 초목농사 사계절로서, 지구 일 년은 12만9천6백 도입니다. 그런데 이
지구의 하루 시간 단위가 360도이듯이, 360년을 우주의 하루로 정하여 360회 지속하면 우주에서 인간농사 짓는 큰 주기인 우주 일년
12만9천6백 년이 형성됩니다. 곧 대우주에서 지구를 중심으로 인간농사 짓는 한 주기가 12만9천6백 년이란 말입니다. 인간은 약 13만 년을
주기로 새로 태어나는 거죠.
첫댓글 열매맺는 가을에 그 열매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