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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 11/15 토요일 [한국→체코] 종근이는 양산에서 출발하여 김해공항에서 우리와 합류했다... 김해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김포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이번팀은 우리4명, 의사분11명, 부부2쌍, 부자, 부녀, 솔로1명 총24명 이었다. 시계바늘은 한바퀴를 돌아야 도착한다니 기다림의 미덕을 발휘해야했다. 빨리 지나갔다. 공항엔 기사와 대형버스가 우리일행을 기다리며 환영해주었다. 2일 : 11/16 일요일 [체코→폴란드]
호텔도착후 우리들은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는 기쁨의 만찬을 가지고온 쇠주와 육포로 즐겼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우리가 기대한 만큼 즐거운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팀중에 전국 병원 연합회에서 오신 의사 분들은 새벽3시에 잠에서 깨어 소주를5병 마시고 고스톱을 하였다고한다??? 폴란드 크라카우로 출발했다. 수채화 같았다. 머리와 가슴이 충만해졌다. 수용소로 들어갔다. 수감동과 4개 가스실과 화장터가 있음. 대상이 ①소련 ②폴란드 ③유태인 ④집시 ⑤정치범 ⑥여호와증인 ⑦동성연애자 범죄자 등의 순서 로 인종탄압을 넘어 인종말살정책을 펼쳤다 한다. 등을 대상으 로 했다는 것이다. ① 냉전시대로. 전쟁은 끝났지만 격동기로, 미국과 유태인중심의 민주주의진영과 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던 것. 있다가 나치에 끌려와 죽임을 당했던 것. 때문이다. 대대적인 학살을 가한다. ‘종교와 거주에 대한 관용정책’을 실시해 안전한 곳으로 이주해 살았다고 함. 짜서 팔고, 싸이클론이란 화학가스로 수백만명을 죽이고 그들을 소각했다는 화장터. 모든 곳에서 잔인함의 극치를 엿볼수 있었다. 파괴에 들어가 제2수용소는 완파했으나 우리가 보는 제1수용소는 16동건물만 완파되고 대부분은 그대로 있었다. 저녁 식사후 우리는 택시로 시티 센터로 이동하여 한 맥주집에 들렸다. 보드카 한병을 주문하였더니 아가씨가 한병은 팔지를 않는다고한다. 결국 우리는 소주잔 보다 적은 잔에 보드카 한잔씩 마시고.. 다시 맥주를 주문하였다.. 여기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되었다.. 우리는 어떤 맥주가 조은지를 몰라 이것 저것 아무거나?? 주문 하였는데 아가씨가 맥주에 빨대를 ?? 뜨거운 맥주.. 추운 지방이라 뜨거운 맥주도 있고 ㅋㅋㅋ 이동 중 버스에서 본 폴란드는 역시 끝없는 대평원이었다. 소금을 채굴했다한다. 광산이었다. 소금광산 역사와 소금파내는 방법을 보여주는 전시실, 1368년 광부의 생계보장 및 지위를 보장해주었던 카지미에슈 대왕, 알려주었던 요정들의 방, 1830년 빈으로 연주여행 갔다가 바르샤바봉기로 돌아오지 못한 쇼팽의 방, 요한바오로 2세의 방, (유언 “나는 행복했습니다. 당신들도 행복하세요...”) 지하 100m에 있는 킹가 대성당, 벽과 바닥, 최후의 만찬 조각, 샹들리에, 등등 모든 것이 암염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규철이 카메라만 사진촬영권을 구입해서 사진을 찍었다.. 종근이는 가금씩 몰카??. 엘리베이터로 1분 만에 올라왔다. 차츰 빠져들어갔다. 최고봉이 2,655m이다.
4일 : 11/18 화요일 [슬로바키아→헝가리]
오후1시경 부다페스트에 있는 한식당으로 가 오랜만에 김치를 먹었다. 울산에서 오신 아저씨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게되었다. 아저씨는 보드카를 생수병에 넣어서 다니면서 식당에서 반주로 사용하신다. 인사도 나누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보드카 한병을 둘이서... 아무튼 기분은 알딸딸 .... 헝가리 부다페스트 관광을 시작했다. 영웅광장, 박물관, 미술관을 지나서 부다쪽의 겔레르트 언덕에 올라갔다.겔레르트 언덕은 11C초 헝가리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를 전도한 수도사 겔레르트가 1046년 폭도들에 의해 산채로 와인 통에 갇혀 도나우 강에 던져졌던 역사를 안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선 도나우강 양옆 부다쪽과 페스트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언덕이다. 나무들이 많은 숲속의 집들과 새들이 공존하는 부다 지역은 공기가 좋고 아름다워서인지 높은 산동네인데도 집값이 무척 비싸다고 한다. 지저귀는 새와 함께 내려오며 왕궁의 언덕에 있는 어부의 요새에 도착했다. 이곳은 19C 헝가리가 외적의 침입을 받았을때, 다뉴브강에 살던 어부들이 강을 건너오는 적들을 방어하기 이해 자발적으로 경계를 선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1896년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어 1902년 완성되었다. 꼬깔모양의 뾰족한 7개의 탑은 수천년전 헝가리를 건국한 7명의 마자르족을 상징하며,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이 혼재된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챠시교회는 마챠시 왕을 비롯, 역대 국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된 곳이고, 삼위일체광장앞 삼위일체상은 18C에 나쁜병 돌지말라는 뜻에서 만든것이다. 부다왕궁은 13C중반 최초로 성이 지어졌으나 몽골,오스만-,1,2차대전등으로 파괴 1950년 복원됨. 현재는 역사박물관, 루드비그 박물관 &서체니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왕궁극장 옆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고 이렇게 부다쪽을 보고 19C중반 도나우강에 최초로 건설된 서체니다리를 건너 페스트 구역으로 이동했다. 페스트구역앞 다뉴브(영어)강에서 푸른 도나우(체코어)강의 왈츠곡을 감상하며 유람선에 올라 부다페스트의 시가지를 여유롭게 바라보았다. 오후5시경 중세 르네상스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한 전통 식사를 했다. 대형빵속의 스프와 큰 나무쟁반에 찐감자, 바비큐요리, 소시지, 옥수수, 샐러드, 애플파이...등
5일 : 11/19 수요일 [헝가리→오스트리아]
아침7시 호텔에서 맛있는 빵과 커피... 등 식사를 하고 9시에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향했다. 어제까지는 유럽의 전원마을을 가로질러 국도로 달렸었는데 이날은 3시간가량을 고속도로로 질주했다. 12시에 도착한 비엔나대학앞 도로 위는 역시 전차로 인한 전선이 주렁주렁했다. 점심을 먹고, 1시에 합스부르크왕가의 여름궁전인 ‘쉔부른 궁전.으로 갔다. 이곳은 1619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도중 아름다운 샘을 발견한데서 유래되었고, 프랑스 베르사유궁전을 모티브로 하여 지어진 바로크양식 건물로, 마리아 테레지아가 벨베데레 궁전 인수에 실패하면서 전면적으로 개조한 매우 화려한 궁전이다. 이후 이곳은 200년간 합스부르크가의 왕궁이었으며, 1805-1809년 나폴레옹 점령시 군사령부로도 사용되었었다. 그래서 외부건물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좋아하던 짙은 황금색으로 칠해져있고, 내부는 그녀가 수집한 동양자기나 칠기, 페르시아의 세밀화 등의 우아하고 호화로운 로코코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들어가면 바로 궁전이 있고, 뒤편에 정원, 넵툰분수, 그 끝 언덕위에 그리스 신전 같은 건물 글로리에테(작은영광이란뜻. 18C 프러시아를 이긴 기념으로 건립함. 요제프2세가 매일아침 예쁜 정원과 분수와 궁을 보며 아침식사 했던 곳이며,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 점령시 사령부로 썼던 곳), 궁전의 1,441개의 방중 45실만 공개되고 있었다. 궁전의 위층건물은 일반인들의 아파트로 임대되어 사용되고 있었고, 아래층에는 그 시대를 대변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모습을 그린 왕궁 내부의 벽화들과, 세례나 생일축하시 사용한 ‘세레모니얼 홀’, 마리아 테레지아가 남편 죽은 후 인도와 페르시아의 책에 실린 삽화를 본떠 만든 260개의 패널화가 있는 화려한 ‘만인의방’ 모차르트가 6살 때 여제 앞에서 연주를 끝내고 어린 마리앙트와네트에게 구혼했다는 ‘거울의 방’ 아이들의 방’, 프란츠1세와 가족들의 초상화 등등 정감있고 화려했던 그 시대를 볼 수 있었다. 유럽의 정치를 흔들었던 찬란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를 뒤로하고 비엔나의 링 거리인 중심가로 갔다. 환상도로인 ‘링’거리에는 빈 역사중심지의 명소가 주변에 몰려 있다. 이도로는 1857년 건설된 것으로 길이는 4km, 폭은 56m로, 링을 따라 공원, 국립 오페라 하우스, 미술관, 국회의사당, 시청사, 부르크 극장 등이 차례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극장이다. 성 슈테판 성당은 그리스도교 최초의 순교자 스테파노 이름을 딴 12C에 세워진 오스트리아의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로,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137m의 첨탑이 있는 가장 섬세한 외관의 성당이 다. 구시가지 중심 링 거리 한가운데 있으며, 지붕이 금색과 청색 벽돌로 만든 모자이크 지붕 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독수리가 있고, 빈의 얼굴이라 한다. 카타콤베가 있다. 성당 내부도 화려하고 웅장함 자체였다. 게른트너 거리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성 슈테판 성당까지 연결되는 최대의 번화가로 600m 남짓한 길이의 보행자 천국이다. 어우러진 활기가 넘친 곳이다. 중세시대로의 여 행을 했고, 오후 호이리게 정식을 먹기위해 포도주의마을 그린칭 지역에 도착했다. 없게되자, 당시 황제 요제프 2세에게 포도주 판매권을 요청했고, 바로 허가해 주었다고 한다, 레스토랑, 호이리게 레스토랑으로 관광객은 물론 비엔나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기타, 아코디언으로 연주되는 슈라멜’이라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했다. 팁주면 민요풍의 곡, 왈츠... 한국인이라니까 아리랑, 바위섬... 연주해주었다. 이들이 우리 테이블로 왔는데 하필이면 나앞에서만 계속 연주를한다.팁이 나올때까징.. 종근이 종안이 규빵 ㅋㅋ 거리며 자기들이 자리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고한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에 나는 할수없이 지갑에서 독사 눈물 같은 달러가 ㅠㅠㅠ 저녁 식사 후 우리는 주변의 술집을 찾아 해매다 어느 현지인의 도움으로 아주 크고 (300~500명 정 도 수용 가능해보임) 근사한 맥주집을 찾았다.. 맥주를 한잔씩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사진도 찍고.. 사진은 꼭 보내준다며 명함도 주고 받고... 아래에 있는 두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이상한것같아?? 직업이 음식점에 요리사라고 하는데 두사람 앤 같아...ㅋㅋㅋ동성애 머시라 ㅋㅋㅋ
짤즈부르크(salz소금,burg성)는 부근에 암염산지가 있어 경제적으로 번영했던 도시로,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미라벨 궁전은 17C초 디트리히 대주교가 연인 살로메 알트를 위해 지은 것으로 처음엔 알트나우 궁전이라 불렀다. 18C초 건축가 힐데브란트에 의해 대규모 궁전으로 개축해 미라벨 궁전으로 바뀌었다. 그 후 19C 화재 후 복원해 1950년엔 시청사가 되었다. 바로 게트라이데 거리가 나왔다. 카페, 레스토랑, 상점이 늘어선 구시가지의 번화가이다. 열쇠모양의 철제간판을 걸어 멋스럽게 표시했는데 지금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천장이 파괴되고, 1959년 대주교 안드레아스 로이이히에 의해 복구해 지금의 성당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세례를 받았던 곳이며, 레지던츠 광장서 조금 걸어 케이블카를 타고 호엔짤즈부르크성으로 갔다. 이곳은 1077년 게브하르트 대주교가 남독일 제후의 공격에 대비해 짓기 시작해 17C에 완성됐다. 우유나 치즈의 품질이 양호하고 사람들도 가이드를 비롯해 친절하고 소박했다. &이곳은 해 마다 7월중순-8월 말까지 짤즈부르크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한다. 수준높은 연극을 볼수 있다고한다.
짤즈감머구트[Salz(소금)Kammer(왕이거처하는방)Gut(영지)]는 모차르트 외가가 있고, 애메랄드 물빛인 볼프강 호수와 호수건너 눈덮인 샤크베르크 알프산이 보 이는 작고 예쁜 마을이었다. 떠나고, 예쁜 집들, 테라스에 놓인 화분들... 오스트리아 국경근처에 있는 체고의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했다. 보헤미 아 마을로, 크룸로프성과 구시가의 역사적인 건축물, 여러 예술작품 등이 있는 유명한 곳이었다.(1992년 세 계문화유산에 등재) 잠시 시간을 멈추고 관문인 망토다리를 거쳐 중세시대로 들어갔다. 망토다리(플라슈티교)는 성의 위아래를 연결하는 커다란 돌기둥으로 된 3층짜리 아치모양의 다리로, 성을 보호하기 위해 요새화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비 테크 가 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고딕양식의성을 짓기 시작해 이후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건물들이 일부 추가 되어 18C이전에 지어진 건물임. 중세마을의 특징이 가장 살아있는 곳 이라함. 성안에는 영주가 살던 궁전과 예배당, 조폐소, 바로크식 극장과 정원이 있고, 성탑은 7층까지인데 5층에는 4개의 종이 있고, 6층에는 원으로 전망대가 되어있어 구 시가지를 돌아가며 바라볼수있었다. 너무예뻤다. 구시가의 중심지는 중세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중앙광장이 있고, 가슴으로 느끼고 싶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공산주의 시절 간부들이 사용했다는 특급호텔인 이곳은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종근이도 몸이 회복이 된것같다. 우리는 각자 가방에 남은 쇠주를 오늘 저녁 다 비우기로?? 유럽에서의 마지막밤을 시원 쇠주로 건배이~~~
9시에 마지막 일정인 프라하성으로 출발했다. 로 완공, 16C말 합스부르크가의 전성기를 거쳐, 18C에 화려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되었다. 공저로 사용된 다고 한다. & 중앙에 있는 빨간색의 어린이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데 파란색은 과거를, 금색은 신화적 인 것을, 빨간색은 미래를 나타낸다고 한다. 눈을 감고 있는 나이든 여인의 형상은 과거 와 기억을 나타내고, 무엇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젊은 소년은 나라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며, 맨 위의 인물은 성인 키릴과 성인 메토디우스 형제를 표현해놓은 너무 화려한 작품이었다. 보헤미아의 성인 얀 네포무츠키의 일화가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얀은 바츨라프4세의 왕비 소피아의 고해성사를 받고 왕비의 참회내용을 왕에게 말하지 않아, 왕의 명으로 혀가 뽑혀진후 돌에 매달려 블타강에 던져짐. 며칠후 별5개가 시신이 있는곳을 비춰주어 시신을 찾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고, 후에 성인으로 모셔짐. 그림을 보고 바로 옆으로 갔는데 모두 은으로 만든 그의 관과 역시 유구한 유럽의 역사는 그리스도와 함께였다. 한다. 등을 한다고 한다. 모여 살면서 황금소로란 이름이 붙었다. 느껴졌다 한다. 광장이름은 성 바츨라프에서 유래되었고, 길 가운데 국립박물관이 있으며, 있었던 곳이다. 그 후 1989년 하벨의 주도로 무혈시민혁명이 일어나 자유주의를 선언한 장소이기도 함. 이곳을 지나 구시가지로 갔다. 구시가광장은 11C경 교회와 상인들의 주거지를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구시청사가 세워진 13C 이후 시가지의 중심이 되었고, 광장 중심에 체코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기념동상이 있다. 후스는 카를대학 총장이기도 했고, 당시 부패하고 타락한 로마교회를 비판하다 이단으로 몰려 독일에서 화형 당했으 나 후에 그의 지지자들이 카톨릭 교회와 싸워 순교자로 추앙됐다. 지금은 신교뿐만 아니라 체코인이 자랑하는 가장 위대한 인물중 한사람이라 한다. 틴 교회는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교회로, 1365년 건립되어 17C까지 다양한 양식이 더해져 완성된 건축물이다. 외관은 고딕양식으로 정교하며 화려하고, 15C전반에는 후스파의 본거지로 사용되기도 함. 성당 안에는 루돌프 2세를 위해 일했던 천문학자 브라헤가 묻혀있고, 클래식 연주회가 열리기도 하며, 교회 옆에는 카프카의 생가, 맞은편에는 구시청사가 있다. 천문시계는 1437년 천동설에 기초해 만들어짐. 위쪽의 천문시계는 연월일, 시간, 일출, 일몰, 월몰을 표시한다. 해골은 죽음의 신, 악기를 가진 남자는 번뇌, 거울의 청년은 허영, 금자루를 쥔 남자는 욕심을 상징한다. 아래의 둥근판은 구시가의 문장 주위를 별자리로 둘러쌌으며, 그 둘레는 12달을 보헤미아의 농민 생활로 표현한 그림이 에워싸고 있다. 원형에 거의 가까운 형태로 600여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지켜오고 있으며, 9시부터 21시까지 매일 정시마다 단 20초간 장치가 움직인다. 유럽의 3대쇼 중에 하나라나 ??? 끝이난다. 기대로 가득 차 기다렸던 우리는 일순간에 끝나버린 20초간의 쇼가 코믹했지만 모두들 자유시간으로~~ 흩어졌다. 모든 일상으로부터 탈피가 머리를 살찌우고 있었다. 잇는 최초의 보행자 전용다리로, 보헤미아의 왕 카를 4세때 만들어져 카를교’라 한다. 다리의 초석을 놓는 시간은 정확하게 1357년9월7일 5시31분(135797531의 홀수조합으로 다리가 영원히 튼튼하길 기원하며 점지된 시간이라 함). 이후 1402년 완성되어 1850년까지 유일한 다리였었다고 한다. 카를교 양편으로 예수수난십자가상을 비롯해 각각 15개씩 30기의 성인상이 있는데 그중에서 유명한 성인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은, 왕비가 호위병아이 임신한 사실을 고해성사 한 것을 얀이 왕에게 발설하지 않아 바츨라프 4세 왕이 열받아 블타바강에 던져 순교. 카를에서 가장 오래된 동상이며, 성 루이트가르트 성상은, 그리스도의 상처에 입을 맞추려는 성녀를 위해 몸을 굽히는 그리스도. 브로코프의 작품으로 300년도 넘은 성상 등이 있다. 체코 카를교의 조각상이 그렇듯, 유럽의 대부분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보존계승하며 곳곳에 동상을 세워 혼을 실어주는 것 같다. 낭만을 즐기며 이곳을 지날 수 있도록 다행히 비도 그쳐 프라하성과 블타바강변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거닐 수가 있었다. 프라하에서 마지막유럽여행을 마치고 그동안 정들었던 버스를 타고 프라하 루친 공항에 30분 만에 도착했다 안내해준 기사분(빡빡머리) 에게도 감사했다. 이번여행에서 항상 배려하고 이해하며 함께한 종안이랑 종근이, 규철이 감사...! 후 아쉬 운 유럽과 작별을 고했다. 바이바이 프라하~~~~~~~
해운 대로 에서각자 집으로~~~!
ts kim올림 |
첫댓글 아니, 이거 언제 다 기록했습니까. 도통 전 보고나서 명칭이 길어서 외워지질 않는데... 암튼 고생하셨습니다. 저역시 즐거운 여행이였구요. 귀국 다음날 케이블 방송에서 오스트리아와 부다페스트 나오더군요. 아는척 했다가 집사람 눈총좀 받았습니다. 내년에 얼릉 델구 가야지 원!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거 회사 사보에 올려야 되겠는데요?^^
행님 명칭을 다기억했소 아님 컨닝했소...ㅋㅋㅋ
이것 저것 메모한것과 인터넷 공부 마니했지~~컨닝은 아니고....참고는 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