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이름표에 집착할까?
'거대한 학교'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식별방법을 고안한 탓일까?
아니면, 제대로된 교육적 관리를 위함일까?
그것도 아니면, 학교(교사)의 편리성 때문일까?
팝놉티콘(원형감옥)의 관리상의 편리성을 차용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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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름표를 교문앞에서 달아야 하나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모든 학생들은 등교할 때마다 교문 앞에서 이름표 검사를 받는다. 명찰을 달지 않으면 '점수'를 깎이거나 벌을 받아야 한다. 나도 등교생들이 보는 앞에서 '앉아 일어서기'도 해봤고, 중학생 때는 점수도 깎이고 벌도 받는 '이중고'를 당하기도 했다. 무서운 선생님이 서 계시는 날이면 오리걸음도 했다. 그렇게 벌 서고, 점수 깎일 정도로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걸까 교문 앞에서 이름표는 왜 달라고 하는 것일까
개인의 정보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공개와 비공개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권리이자 자유다. 사람의 이름은 가장 기초적인 개인정보로서, 공개를 강요받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학교는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 전원에게 이름표를 구입하도록 한다. 3년 동안 공개하라는 요구다.
도대체 그 용도가 무엇인가 과목 선생님들이 일일이 다 외우기에는 너무 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수업 중에 불러주기 위한 용도로밖에는 생각해낼 수가 없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 이름표는 교실 안에서 전혀 그 쓰임새대로 쓰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명찰 다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명찰을 굳이 꺼내 놓으라고 권하는 선생님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가끔 몇몇 선생님들이 권유 아닌 '강요'를 하면, 그냥 귀찮아하면서 꺼내놓을 뿐이다. 그리고 꼭 그렇게 '강요'하는 선생님들은 명찰을 떠드는 아이들의 이름을 알아내는 데 쓰시는, 좀 치사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교실 안에서 쓰임새를 잃어버린 명찰이 정작 아무 상관도 없는 교문 앞에서 그 기세를 드높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다른 근거도 없이 '복장상태' 하나만으로 '모범학생'과 '불량학생'을 구분하는 선도위원들과 선생님들. 그들은 정말로 이름표를 달지 않으면 불량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안 가지고 오면 모범학생이 하루아침에 불량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언제 시작했는지, 왜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의 잘못된 관행일 뿐이다. 개인정보를 공개하라고 강요하고, 공개하지 않으면 무조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벌을 세우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관행이다. 그런데 왜일까 아무도 이 잘못된 관행을 고칠 생각이 없다.
도대체 누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학교인가, 학생인가 많은 학생들 앞에서 벌을 받고 있는 아이의 자존심은 무엇이 되는가 왜 검사하는지 이유조차 찾을 수 없는 제도를 어긴 것이 그렇게 잘못인가 나는 중학교와 지금의 고등학교에서 비교적 진보적인 선생님들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선생님들의 교육관은 진보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다들 외치고 있었다. 우리나라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우리나라 학교에서 너무도 많은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다들 외치기만 할 뿐이었다. 실행에 옮기고, '나부터라도' 하는 생각을 가진 선생님들은 없었다. 그 선생님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바뀌어야 한다던 '우리나라 교육'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뿐이었다.
좀 누그러지는가 싶던 머리 자율화도 언제부턴가 다시 슬쩍 고개를 들고 있다. 교문 앞에서 명찰을 다는 것도, 머리 길이를 검사 받는 것도, 교문 앞에 선도나 선생님이 서 있는 것도, 그 옆에서 찌푸린 얼굴의 아이가 '앉아 일어서기'를 하는 광경도 이제 그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