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역사관에서 나와 신라 미술관으로 가기 위하여 좌측으로 돌자 다보탑과 석가탑 모조탑이 있어 잠시 머물며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서로 사진을 찍으려 덤비어 여간해서 찍기가 쉽지 않었다. 한가롭게 가족을 세우고 여유롭게 찍어 두었다.
다보탑 뒤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신라 역사관이다.
(석조미룩삼존불상)
신라 미술관에는 신라왕경의 복원 모형, 경주지역 출토 금석문이 전시된 역사자료실을 비롯하여 신라통일시대의 불교조각, 금속공예품 등을 전시한 조각실, 금속공예실, 황룡사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전시된 활룡사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부터 심국통일시대까지의 석조유물을 통해 최고조에 이룬 석조미술을 볼수 있으며
조각1실에서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금동불상을 시기별, 주제별로 전시하여 신라불상의 변화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주혁이는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제28호) 앞에서 오랜시간 보고 있었다. 지금 역질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약사여래상의 의미를 알고 있는 듯이 시간을 지체하고 있었다.
백률사 통일신라시대 약사여래입상은 높이가 179.0cm이다.
菊隱 李養璿先生 소개
국은 이양선 선생은 평양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교를 거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를 졸업한 뒤, 평양의 기독병원과 시립병원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지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경북대학교 의대 교수로 재직, 이비인후과 관련 학회의 중책을 여러 번 맡았으며, 1999년 12월에 83세로 별세하기까지 의사로서 진료에 충실하셨습니다.
이양선 선생은 평생 대학병원과 종교단체의 병원에서 인술을 펴는 한편, 전통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문화재를 수집, 연구하였으며, 문화재를 감상의 대상이 아닌 학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하여 우리나라 고고학과 미술사학 연구에 중요한 많은 문화재를 수집하였습니다. 또한 ‘문화재는 재화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개인의 것이 아니고 민족의 문화유산’이라는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국보 275호로 지정된 ‘기마인물형토기’를 포함하여 평생 애써 수집한 문화재 수 백점을 네 차례에 걸쳐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개인소장자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그 높은 뜻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해 선생의 아호(雅號)를 딴 국은(菊隱)기념실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초불을 끌 때 초 심지를 짜르는 가위다.
박물관을 떠나기 전 에밀레 종에 대하여 주혁이에게 다시 설명을 해주고 사진을 찍어 두었다.
에밀레종이라 불리기도 하는 성덕대왕 신종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큰 종으로 높이 3,33m에 무게 18,908kg에 이르는 최고의 걸작품이다. 종 위에 우리나라 종에서만 볼 수있는 음관과 용 모양의 고리인 용뉴가 있으며 종의 몸체에는 서로를 마주 바라보는 아름다운 비천상 4쌍과 2개의 연꽃 모양 당좌등이 섬세한 솜씨로 조각되어 있다.
오전내내 박물관을 찾아 역사관, 미술관, 안압지관 등을 상세하게 관람하였다. 오후에는 분황사 앞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은 후 분황사를 관람하고 걸어서 황룡사지와, 발굴현장, 황룡사역사 문화관을 이어서 관람한 후 민속촌과 흡사한 교동을 찾아 최부장 집을 관람 후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야경 투어를 월성, 월정교, 계림, 첨성대, 안압지까지 할 계획이다.
분황사 주차장에 차를 주차 후 길 건너 식당으로 왔다. 창가에 앉아 주혁이하고 이야기를 하다 색안경을 씌어준 후 사진을 만들어 보았다. 참 세월이 유수같다 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왔다.
분황사는 선덕여왕 3년 (634년)에 건립된 사찰로 자장과 고승 원효, 신라 명필 해강이 머물렀던 절이다. 사찰 안에는 벽돌로 쌓은 모전석탑이 남아 있다. 모전석탑 1층에는 사면에 감실을 만들고 입구에 화강암으로 늠름한 인왕상을 조각하였다. 1965년 분황사 북쪽 우물에서 출토된 석불들은 국립 경주박물관 야외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단풍나무 아래에 여러가지 석물들이 모여 있었다. 언젠가 다 제자리를 찾아 주어야 할텐데...
작은 석탑을 쌓아 보라 하였더니 심혈을 기울여 쌓는 중이다.
감실 안쪽에는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분황사에서 부터 걸어서 황룡사지는 탐방하기로 하고 걸었다.
우측 건물이 황룡사 문화관이며 상단 푸른색이 바로 발굴현장이다. 황룡사는 무려 93년간 긴 세월에 걸쳐서 완공된 신라 최대의 호국사찰이었으나 고려 고종 25년(1238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버렸다. 위의 사진처럼 절토만 남았으니 발굴당시 4만 여점의 유물이 발견되었고 지금도 계속 발굴 중인 곳이다. 원래는 궁궐을 짓기 위하여 진흥왕 14년(553년) 공사를 하려다 황룡이 출몰하여 계획을 수정하여 절을 짓게 된 것이다. 황룡사 9층탑은 백제의 장인 이바지에 의하여 세워져 645년 완성되었으며 그 높이가 무려 80M에 이르렀다한다.
솔거가 그렸다는 절의 벽화 이야기가 유명한 곳이 바로 황룡사다. 주혁이도 실제로 광활한 절터를 보더니 입을 담을지 못한다.
우선 주혁이에게 발굴현장을 보여 주기 위하여 접근하였다. 아주 작은 손삽을 이용하여 유물에게 피해를 줄까봐 조심조심하며 손을 놀려 표층을 끍어낸 후 양동이에 담아 수레로 옮겼다. 적하장에선 감별하느냐 정신없고.....
주혁이는 갈대밭을 지나 문화관에 접근하고 있었다.
도착하여 3D 안경을 받은 후 영상물 상영관을 찾았다. 약 17분 정도 영상물로 건립에서 화재까지의 황룡사 일대기를 보여 주었다. 몽고군에 의하여 불타는 황룡사를 보면서 색다른 감회가 몰려 왔다. 호국에 필요성에 대하여 주혁이에게 상기 시킨 후
목탑으로 다가 가 살펴 보았다. 그리고 다시 2층으로 자리를 옮긴 후
탑의 상층부를 유심히 관찰 하도록 하고 전시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황룡사터 출토 망새다.무려 높이 182cm, 황룡사의 절 규모가 짐작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