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하바드(투르크메니스탄)=김시영기자】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을 이륙한 지 2시간여 비행 끝에 창문 밑으로 중앙아시아의 ‘마지막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투르크메니스탄이 어렴풋이 신비한 자태를 드러냈다.
인구 680만명, 한반도의 2배인 48만8100㎢의 투르크메니스탄은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독립국가연합(CIS) 국가 가운데 손꼽히는 자원부국이다.
CIS 국가중 제2위의 가스수출국이자 원유매장량 세계 50위. 전국토의 80%에 걸쳐 석유가스 자원이 부존돼 있는 자원부국 투르크메니스탄은 지난해 2월 베르디 무하메도프 대통령 취임 이후 대외개방정책 노선에 따라 자원수출 대상국 다변화와 국내산업 다변화를 추진 중이어서 우리에게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지금 개발중
지난 15일 한승수 국무총리 일행을 태운 아시아나 전세기가 착륙한 넓디넓은 아시하바드 공항은 썰렁했다. 국제공항치고는 어딘지 모를 황량함이 느껴졌다. 서방 세계와 교류가 전혀 없는 듯 외국 민항기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미지의 땅 자원부국 투르크메니스탄의 현주소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아시하바드 공항을 빠져나와 대통령궁이 있는 시내로 가는 길은 공항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아시하바드로 연결된 도로주변은 한마디로 ‘개발 중’이었다.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건설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사막의 모래 바람과도 같은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 와중에 마천루들이 키높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물은 올라가고 있었지만 무엇인가 허전했다. 녹지·산림을 찾아보기 힘듯 탓에 대규모 산림녹화작업이 한창이었지만 그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어린 수령의 나무들이 오와 열을 맞춰 심어져 있는 풍경이 끝없이 펼쳐지는가 하면 그 너머에는 아직 손이 닿지 않은 사막과도 같은 황무지가 펼쳐졌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사회기반시설이 부족하다. 단시간 내 압축 경제발전을 일궜던 우리의 개발경험 전수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곳 정부와 우리 정부, 기업인들은 한승수 국무총리 방문 기간 중에 전력·제조업·사회간접자본(SOC)·건설협력·항만과 철도 등 교통협력 등의 분야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장막을 걷고 대외 개방정책 시동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북한에 비견된다. 자원이 풍부하다 보니 세계와 소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폐쇄정책을 고수했던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은 CIS 국가 중 유일하게 체제전환 시 국제통화기금(IMF) 프로그램을 수용하지 않고 독자노선을 걸어왔다. 1999년 소비에트식 계획경제 발전전략인 ‘2000-2010년 사회경제 전환전략’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베르디 무하메도프 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 방향을 바꿨다. 기존 중립정책을 고수하되 안정적인 가스 수출 여건 확보와 외국투자 유치, 교역 활성화를 위해 점진적으로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나선 것. 이 두가지가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룬다. 자원을 팔아 벌어들인 외화로 건설, 정유, 농업등 핵심사업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수입대체 부문을 확대해 자급자족 경제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풍부한 천연자원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투자환경으로 외국인의 투자는 여타 중앙아시아 국가보다 미미하다. 세제, 노동, 보건 등에 관한 법률 미비와 소유권 및 계약권 보호체제 결여 등도 외국인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중영합정책으로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국제신인도 역시 매우 낮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서방의 정치적 간섭을 거부하고 외국 비정부기구(NGO)의 입국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 대서방관계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아시아권 국가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바로 이점이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앙아나 한국이나 약소국가로 정치적 고려를 개의치 않고 얼마든지 경제협력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자원확보·경협 다양한 활동 시작
중앙아시아 국가 가운데 투르크메니스탄 만큼 우리의 개발경험 전수가 절실한 국가도 없다. 이제 막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여 경제개발을 도모하는 이곳이야 말로 우리 기업들에는 기회의 땅이 되기에 충분하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총 32개의 카스피해 해상광구 중 30개에 대한 입찰을 진행 중이다. 우리는 한국컨소시엄이 석유관리청에 공동참여 제안서를 제출했다. 이곳에서 첫 번째 유전개발 사업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LG상사는 석유가스부와 함께 투르크메니스탄 북동지역에 소재한 세이디 정유공장 현대화 사업의 타당성 조사와 기본설계입찰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최초로 정유공장 건설사업의 타당성 조사 및 기본설계 용역 진출이라는 점에서 수주시 우리 기업의 본공사 수주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평가된다.
투르크멘바시 신항만 건설사업 참여 지원도 추진 중이다. 11억달러 규모의 이번 사업 참여를 위해 정부는 국토해양부와 해운수로처 간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현대종합상사 대표단은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식의 사업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
대우인터내셔널과 석유가스부는 투르크메니스탄 가스공사 파이프 제조설비 공급을 위해 7200만달러 규모의 공급사업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천연가스 및 원유 수송 중심지인 투르크메니스탄 내 성장 유망사업인 파이프 제조사업 지원을 통해 신규협력사업 창출이 기대되고 있다.
자원·에너지와 경제협력 등의 분야에서 우리 기업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지만 아직은 조심스럽다. 투르크메니스탄의 개방의지와 노력 등을 좀더 지켜보면서 신뢰관계를 쌓은 후 구체적인 성과를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
한 총리가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과 면담 등을 통해 인적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이나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이 신규사업 추진에 앞서 인적네트워크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투르크멘바시 석유화학단지를 가다
아시하바드로부터 한시간여 떨어진 투르크멘바시. 투르크메니스탄과 세계를 이어 온 오랜 물류의 중심지다. 생산된 가스와 원유는 이곳을 거쳐 유럽과 중동 각지로 팔려 나간다.
투르크메니스탄 최대 석유화학단지는 주요 시설 대부분이 노화됐다. 페인트가 벗겨진 것은 기본이고 가스가 새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한눈에 봐도 이곳에 오랜 역사의 때가 묻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1943년 세워진 이후 이렇다 할 개보수가 없었다.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이곳에 대한 현대화를 추진 중으로 한국기업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더구나 이곳은 카스피해와 인접해 있다.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는 이곳 인근 아와자 지역에 관광특구 건립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지금 투르크메니스탄은 개방·개혁을 통해 ‘제2의 두바이’를 꿈꾸고 있다.
/sykim@fnnews.com
■사진설명=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트에서 한 시간여 거리에 있는 투르크멘바슈 석유화학단지 전경. 대부분의 주요 시설이 노후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