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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목월>, 2018년 겨울호.
케이티엑스(KTX) 시대의 시
맹문재
1.
2004년 4월 개통한 케이티엑스(Korea Train Express)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전국은 일일 생활권을 넘어 반나절 생활권에 접어들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상황이기에 그동안 거리 문제로 힘들었던 각종 약속이며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마다 특색을 살린 축제며 여행 상품을 다양하게 개발해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그리하여 이름난 여행지나 역사적인 장소나 먹거리가 풍성한 시장 등은 인파로 붐비고 있다.
반나절 생활권에서 제외된 지역민들은 고속철도망의 유치를 내걸고 있는데, 두말할 필요도 없이 경제 활동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먼 거리를 빠르게 오간다는 것은 시간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일이어서 이익 창출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더욱 빠른 철도까지 요구하고 있다. 고속철도이면서 소요 시간이 2시간 30분이나 걸리는 것은 너무 느리지 않느냐며 초고속철도의 개통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경부선은 대한민국 전체 철도 여객의 60% 이상을 수송하는 노선으로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철도 용량의 포화가 예측되어 왔다. 그리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속도로 확장 및 신설, 철도 노선 확충 등 몇 가지 제안이 나왔는데, 고속철도 건설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하여 정부는 경부고속철도 건설 방침을 수립 결정한 뒤 1992년 6월 30일 천안아산역 예정지에서 기공식을 거행했다. 유치 계획이 확정된 2002년 FIFA 월드컵을 대비하는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열차 방식 결정, 열차 도입 국가 선정, 문화재 훼손 논란, 잦은 설계 변경, 부실 공사 의혹, 외환 위기 등 많은 문제에 봉착해 공사 기간을 훨씬 넘긴 2004년 4월 1일 개통했다. 기존의 경부선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10분이 걸렸던 것에 비해 고속철도의 운행으로 2시간이나 단축된 것이다.
제한 최고속도 305km/h로 운행하는 고속철도는 자본주의 체제의 요구에 의해 개통되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신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자동차와 비행기는 물론 고속철도라는 교통수단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반나절 생활권에 든 사람들은 2016년 1월 1일 기준으로 특실 83,700원, 일반실 59,800원의 운임을 기꺼이 투자하고 케이티엑스에 오른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이익 창출을 이루려고 인적 교류는 물론 기술과 정보 획득에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2.
기차가 온다
어느새 발치에 기차가 와 있다
천막을 걷고 생선 대야를 치우고
야채 바구니를 들어낸다
도로 위로
기차가 지나간다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다
닭과 염소들은
기차가 온다
가방 하나 메고 기차에 올랐다
구로역 가는 전철을 타고,
구로역에 내렸을 때 기차가 지나갔다
겨울 내내 기차만 바라보며 지냈다
창 너머로 기차가 지나갔다
다시 철로 위로 천막이 쳐지고
닭들과 염소와 강아지들이 점령했다
비린 냄새가 진동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낯선 사람들이 낯익게 보였다
과일과 빵을 샀다
또 기차가 왔다
봄이 되어 구로역을 떠났다
함께 일했던 해남 아저씨
실습 나온 기철이
아직 그 공장에 있을까
그 역엔 아직 기차가 다니고 있을까
― 정연홍,「기차가 온다」(『동리목월』 가을호)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가 살아가는 터전에 “기차가” 들어온 뒤로 동네 사람들은 “천막을 걷고 생선 대야를 치우고/야채 바구니를 들어”내었다. 그리하여 “도로 위로/기차가 지나간” 뒤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말았다. “닭과 염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자 역시 “기차가” 들어오자 “가방 하나 메고 기차에 올랐다”. 그리고 “구로역 가는 전철을 타고” 새로운 삶의 거처지에 도착했다. 화자가 닿은 곳은 “구로역”이 있는 도시, 곧 구로공단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구로공단은 1960년대부터 조성이 시작되어 이루어진 서울특별시 수출산업공단 제1단지였다. 그리하여 1970년 후반에 이르러서는 11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했고, 1980년대부터는 재벌들이 주도하는 중공업 산업단지가 들어섰다. 그렇지만 1985년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난 데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은 열악하기만 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임금이 매우 적었고 작업 환경은 열악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재 정권은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거나 작업 환경을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자들을 탄압했다.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결성하고 동맹파업까지 감행한 것이다.
따라서 “구로역” 산업단지에 정착해 노동자 생활을 시작한 화자는 그곳이 자신이 꿈꾸었던 이상향의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물론 재미있고 친밀감이 있는 낙원을 기대했지만 그 반대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생선 대야와 바구니와 닭들과 염소들과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자신의 고향 마을 같은 공동체 모습은 볼 수 없고 인간이 인간을 사고파는 시장만이 펼쳐져 있어 슬프고 두려웠다.
그리하여 화자는 자신이 타고 온 기차를 다시 타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겨울 내내 기차만 바라보며 지냈다”.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바라보자 “창 너머로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다시 철로 위로 천막이 쳐지고/닭들과 염소와 강아지들이 점령”하는 모습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비린 냄새가 진동했”고, “사람들이 모여들”들기도 해, “낯선 사람들이 낯익게 보였”다. 화자는 그곳의 “과일과 빵을” 사서 담기도 했다.
마침내 화자는 “기차가” 들어왔을 때 “구로역을 떠났다”. 그 계절은 “봄”이었다. 화자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함께 일했던 해남 아저씨”와 “실습 나온 기철이”는 기차를 타지 않았다. 그리하여 화자는 그들이 “아직 그 공장에 있을까”라고 궁금해 한다. 또한 “그 역엔 아직 기차가 다니고 있을까”라고 묻기도 한다. 자신과 같이 이상향을 품고 기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이다. 화자가 “구로역” 산업공단에서 노동자로서 살아야 했던 상황은 다음과 같다.
봄이 왔을 땐 내가 봄인 줄 몰랐지
꽃이 피었을 땐 내가 꽃인 줄 몰랐지
어쩌자고 유월도 다 지나 올해 처음 나비를 보는가
나비를 아니 보았을 리 없는데
나비가 접었다 펴는 하늘을 아니 보았을 리 없는데
그래도, 너무 늦은 건 없지
눈맞춤한 저 나비가 내겐 봄이니까 꽃이니까
봄 가고 꽃 다 져도 오는 오늘이여
공원 벤치에 앉아 처음처럼 맞는 빛이여
― 손택수, 「공원」(『동리목월』 가을호) 전문
자본주의 체제에 종속된 노동자 신분으로 살아가다 보면 “봄이 왔”지만 “봄인 줄”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이다. “꽃이 피었”지만 “꽃인 줄” 모르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어쩌자고 유월도 다 지나 올해 처음 나비를 보는가”라고 스스로 놀라게 된다. “나비를 아니 보았을 리 없는데/나비가 접었다 펴는 하늘을 아니 보았을 리 없는데” 보지 못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급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성장을 이끈 노동자들의 삶은 피폐했다. 전태일 열사가 여실하게 알려주었듯이 어린 노동자들조차 하루 14시간 이상의 작업 시간에 시달려야 했고, 그러면서도 임금이 매우 적어 생활이 어려웠다. 또한 많은 노동자들이 안전사고로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릴 정도로 작업 환경이 열악했다. 노동 권익을 보장받거나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도 못했다. 그리하여 상대적 박탈감은 물론 소외감이 컸고 정신적인 여유를 가지기도 어려웠다. 그리하여 봄이 돌아와도 느끼지 못했고, 꽃이 피어도 구경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면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케이티엑스가 운행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3.
2004년 4월 1일 고속철도의 개통을 앞두고 한국철도공사는 여승무원들을 채용했다. 3백여 명의 선발에 4천여 명의 지원자가 몰려들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그리하여 여승무원들은 2년 내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회사의 약속을 믿고 열악한 근무 조건과 낮은 수당을 감내하면서 근무했다. 그렇지만 2년이 다가왔을 때 한국철도공사는 여승무원들이 본사가 아니라 자회사인 한국철도유통에 고용된 점을 들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승무원들의 투쟁은 시작되었다.
2006년 2월 28일 한국철도공사의 노사는 마지막 협상을 하였으나 해고자 복직, 인력 충원, 철도상업화 철회 및 공공성 강화, KTX 여승무원 등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 핵심 쟁점을 놓고 이견 폭을 좁히지 못해 끝내 파업에 들어갔다. 그렇지만 3월 1일에 개시된 철도공사 노조의 총파업은 경찰의 강경 진압과 철도공사의 대량 직위 해제 조치로 말미암아 참가자 수가 줄어들어 4일 만에 끝났다. 그러나 KTX 여승무원들은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고 계속해서 농성을 벌였다. 조합원의 83%가 파업에 찬성한 것이다. 그렇게 하자 5월 11일 한국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에 공권력이 투입되어 농성중인 여승무원 80명을 강제로 연행했고, 5월 31일까지 현장으로 복귀할 것을 통보했다. 그렇지만 상당수의 여승무원들은 복귀를 거부했다. 그에 따라 여승무원들은 계약이 해지되었다. 9월부터 여승무원들은 민주노동당사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하였다. 2007년 1월부터는 전직 새마을호 여승무원과 함께 서울역, 용산역 대합실을 중심으로 단식 농성을 시작했고, 3월부터는 전국 철도공사 본부가 있는 서울, 부산, 대전, 순천 등을 순회하며 집회를 열였다.
2010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케이티엑스 여승무원들의 해고는 무효이므로 해고된 여승무원들에게 미지급한 임금 30개월 분과 복직할 때까지의 월급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채용, 작업 시간, 임금 수준, 인사 관리 등 여러 정황상 한국철도유통은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에 불과할 뿐이어서 케이티엑스 승무원들은 코레일에 대한 근로계약상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이다. 코레일 측은 항소했지만, 2011년 서울고등법원은 항소를 기각했다. 그렇지만 2015년 대법원은 1심과 2심을 뒤집고 코레일과 승무원 사이에 직접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와 같은 모순된 판결로 인해 여승무원들은 12년 동안 해고자로서 살아야 했다. 케이티엑스의 운행으로 반나절 생활권을 이루고 있는 시대이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힘든 것이다. 노동자에 대한 대우가 외면적으로는 합법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용자는 자본주의 체제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불평등한 처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물을 마시려고 음수대를 찾아본다.
작업장에는 없는가? 문에,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라고 씌어 있다.
물이 그 안에 있을 것 같다.
노크를 하는 둥 마는 둥 들어갔다.
누가 날 빤히 쳐다보더니
문에 씌어 있는 것 못 보셨습니까?
봤는데요, 기술부입니까?
물 마시는 기술 좀 가르쳐주쇼.
물은 저기 있습니다.
나는 물 좀 달라고 하려다,
물 마시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한 것이다.
관계자가 되고 싶어서.
그들은 나에게 물 마시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대신,
음수대를 가리켰을 뿐이다.
물을 마시는 것은 기본적인 관계인 것이다.
물을 마시는 기술은 누구나 다 안다.
물을 마시는 데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니다.
물을 마시는 데 물이 필요하다.
물은 수평을 유지한다.
― 최종천, 「물」(『동리목월』 가을호)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물을 마시려고 음수대를 찾아”보지만 작업장 근처에서는 볼 수 없다. 그리하여 “작업장에는 없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문에,/관계자 외 출입 금지, 라고 씌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화자는 그 순간 “물이 그 안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물은 작업하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므로 작업장 안에 음수대가 우선적으로 설치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의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곧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가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의 공간에 “노크를 하는 둥 마는 둥 들어”간 행동은 주목된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돌아서고 마는데, 화자는 그와 같은 인습을 깨트린 것이다. 목마름의 상태가 심각해 그 어떤 체면도 차릴 수 없을 만큼 절박해 실행한 자연적인 행동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계급의식을 갖고 대항한 자세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화자의 뜻밖의 행동에 “관계자 외 출입 금지”에 있는 인물들은 “문에 씌어 있는 것 못 보셨습니까?”라고 묻는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것에 대한 경고이자 비난인 것이다.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려고 당황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화자는 그와 같은 상황에 주눅 들지 않는다. “봤는데요, 기술부입니까?/물 마시는 기술 좀 가르쳐주쇼”라고 눙친 것이다. 경계하는 그들에게 물을 빼앗으려고 들어온 인상을 주면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화자는 “기술”을 배우러 왔다고 엉뚱하면서도 주도면밀하게 대답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더 이상 경계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물은 저기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한 대답이야말로 화자가 원하는 것이었다. “나는 물 좀 달라고 하려다,/물 마시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한” 것은 정말로 기술을 배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물을 마시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물 마시는 기술은 필요 없다. “물을 마시는 것은 기본적인 관계인 것이”고 “물을 마시는 기술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다. 따라서 “물을 마시는 데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니”라 단지 “물을 마시는 데 물이 필요”할 뿐이다. “물은 수평을 유지”하는 진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의 진리와는 다르게 자본주의 체제는 전문가 계급과 비전문가 계급을 만들어 차별과 분열을 조장한다. 전문가 계급은 “나에게 물 마시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대신,/음수대를 가리켰을 뿐이다”라는 데서 확인되듯이 “기술”을 함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 대신 자격 조건을 내걸고 자신의 계급을 공고히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속도에 휘둘리지 않는 주체적인 속도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4.
산책길에 데리고 나갈 하얀 코끼리와
죽을 때까지 읽을 만큼 두꺼운 책 한 권과
거꾸로 매달린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느리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날이 있었으면
손가락 사이에 기보를 끼고
나무그늘에 앉아 혼자 바둑 두는 노인
팽팽한 햇살 아래 흰 돌과 검은 돌
당신의 전쟁은 평화로운데
목매고 있는 것들
목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 오늘은
침묵하고 있는 동안 폭우가 지나갔네
100년 전에도 내렸던 비라는데
햇빛에 물 마르는 소리
나무 의자는 당신의 엉덩이를 닮아가고
내내 뿌리가 깊어지겠네
― 강호정, 「피정」(『푸른사상』 가을호) 전문
위의 작품의 화자는 “산책길에 데리고 나갈 하얀 코끼리와/죽을 때까지 읽을 만큼 두꺼운 책 한 권과/거꾸로 매달린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느리게/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날이 있”기를 희망한다. 케이티엑스를 이용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세는 느리게 살지 못하는 화자의 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의 속도에 휩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와 같은 면은 “손가락 사이에 기보를 끼고/나무그늘에 앉아 혼자 바둑 두는 노인”을 깊게 바라보는 데서 유추할 수 있다. 그 노인은 “팽팽한 햇살 아래 흰 돌과 검은 돌”을 두는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당신의 전쟁은 평화로”울 뿐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목매고 있는 것들/목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떠올리며 “오늘은/침묵하고 있는 동안 폭우가 지나갔네”라고 인식한다. 또한 “100년 전에도 내렸던 비라”고 생각한다. 목맬 정도로 경쟁하고 긴장하고 불안감을 갖는 삶도 폭우 앞에서는 무너지고 마는데, 그와 같은 것은 100년 전에도 그랬고 100년 후에도 그러리라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화자는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속도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일이, 곧 주체성을 회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화자가 “햇빛에 물 마르는 소리”를 듣는 것이 그 모습이다. “나무 의자는 당신의 엉덩이를 닮아가고/내내 뿌리가 깊어”진다고 인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이후 자본주의 체제는 속도를 지속적으로 높여 어느덧 케이티엑스 시대에까지 이르렀다. 증기기관의 등장으로 산업 자본가는 토지나 동물이나 하인을 대체하는 공장을 소유했다면, 케이티엑스 시대의 자본가는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기술과 정보와 문화와 오락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온몸으로 속도를 내고 있다. 자본주의가 자기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요구하는 속도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소유가 증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철도공사의 여승무원들처럼 노동권을 위협받고 심지어 해고까지 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케이티엑스 시대의 시인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내어준 노동 시장에서 인간을 사고파는 일에 속도를 낼 것인가, 피정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모순된 구조를 극복하는 운동을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케이티엑스 시대에 요구되는 역사의식과 연대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맹문재(孟文在)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론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현대시의 성숙과 지향』『시학의 변주』『만인보의 시학』『여성시의 대문자』『여성성의 시론』,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물고기에게 배우다』『책이 무거운 이유』『사과를 내밀다』『기룬 어린 양들』 등. 현재 안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