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휘님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점
1. 삼국지에서 고구려는 산악지대의 척박한 환경이라 먹고 살기 힘들어서
전쟁과 약탈을 통해서 물자를 획득했다고 나온다.
그래서, 현대 한국인들은 고구려가 전쟁을 통한 약탈경제를 가졌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여휘님은 만주에서 가장 비옥한 부여와 요동, 황해도를 차지한 고구려의
생산량과 인구가 많았을 거라고 추정한다.
2. 개인적으로 고구려가 부여와 황해도, 요동 일대를 차지해서 풍부한 생산력을
가졌다는 가설에는 동의하지만, 고구려가 언제 저 영토들을 차지했고 제대로 된
행정과 통치 제도를 정비해서 풍부한 생산력을 창조했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본다.
사실 부여는 모용황의 침략으로 멸망한 뒤에 고구려에게 흡수되었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고구려도 모용황의 침공으로 멸망의 위기에 쳐했다는 사실을 보면
고구려가 부여를 병합할 만한 국력을 당시에 가졌을지 의문이 든다.
모용황의 침공 이후 고구려는 전연에게 신속했고, 이후 백제와 전쟁에서
고국원왕이 패사하면서 몰락한다.
고국원왕이 백제와 전투에서 전사한 이후 고구려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기록에 없다.
단지 중국사에서 전연이 전진에게 멸망한 이후 소수림왕은 전진과 우호관계를
맺은 뒤에 내부 정비를 하면서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진 국력을 회복한다.
우리는 광개토왕의 업적만 기억하지만...사실 소수림왕이 전진과 외교를 통해서
국력을 신장시키지 않았다면 광개토왕의 전성기는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3. 나는 광개토왕의 전성기가 과장, 미화되었다고 본다.
한국의 교과서, 사전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후연의 공격으로 광개토왕은 무려
700리나 되는 영토를 빼앗기면서 수세에 몰렸고, 그 틈에 백제는 공세를 가해 왔다.
양면 전선의 침공에 봉착한 고구려는 수세에 몰렸으나, 모용희가 암살된 이후에
후연과 화의를 맺음으로써 위기에 벗어난 고구려는 전력을 남방으로 돌려서
백제와 신라, 가야를 복속시킨다.
그래서, 나는 흔히 교과서에 실린 고구려의 영토가 과장되었다고 본다.
실질적으로 보유한 영토와 영향력을 미치는 영토가 구분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나는 그래서, 모용황의 침략 이후 고구려의 세력과 영토가 변화하는 과정을 알고 싶다.
막연히 고구려의 영토가 이렇게 거대했고, 강대한 세력을 가졌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데
여휘님의 주장처럼 고구려의 영토는 외적들의 침략으로 인해서 확대, 축소의 무수한
변화를 겪었던 것은 분명하다.
근초고왕이 고구려를 격파하고 황해도를 빼앗은 시기도 존재하는데...
이러한 역사적 기록들을 보면 고구려의 세력과 영토는 과장되었을 것이다.
모용황의 침략 이후 무수한 전쟁과 내전, 혼란을 겪은 고구려가 나약해지자
백제가 고구려의 종주권을 거부하면서 전쟁이 발발한 것이 아닐까?
고구려 영토의 확장과 축소에 대해 알수 있다면 고구려의 인구와 생산력에
대한 보다 개연성 있는 추정이 가능할 것이다!
첫댓글 고구려의 영역 변화에 대해서는 기존에 여러 논고들과 연구서적들이 있으니 이를 참고하면 될듯 합니다. 제가 지금 일일히 그걸 다 짚어가며 설명해드리는 건 비효율적이라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그런 영역변화를 국력변화와 어떻게 직결시켜 이해할지는 찰리브라운님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영역변화를 국력변화와 어떻게 직결시켜 이해할지는 찰리브라운님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영역의 변화를 국력의 척도로 삼는 역사학적 관점이 많더군요. 로마사에서도 동서 로마의 분단과 축소를 놓고 로마제국의 쇠망이라고 결론내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