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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잔티움과 이슬람의 史 원문보기 글쓴이: 카이사르 총독
[[비잔티움 제국 함대에 대하여...]]
비잔티움 역시 해군을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제국 자체는 물론 수도 콘스탄티노플만 봐도 해군의 도움 없이는 완전한 방어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해군의 중요성이 매우 크죠.
비잔티움 해군은 로마 해군보다 더 많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0-
로마 해군과는 완전히 다른 용어에, 다른 장교들과 무기...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어려움을 꿋꿋하게 이겨내고 드디어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군요...ㅋ
그럼 내용을 시작하겠습니다.
로마 말기... 서방 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전체 로마 제국의 해군력은 약해졌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동방 로마제국에서는 여전히 해군력이 필요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이 11세기 동안 존속하면서 비잔티움 제국군 함대 역시 같이 존재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의 상징인 은빛 쌍두 독수리)
<서방 로마 제국의 멸망...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 함대...(제국 초기의 서부 지중해 정세)>
서방 제국은 멸망했지만 함대는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단지 주인이 바뀐 것뿐이었죠. 공화정 이후의 로마 함대는 주로 외국인들이 승무원의 위치를 차지했으므로 게르만족이 들어온다고 해서 별로 다를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여러 항구도 게르만족에게 점령당합니다. 오스티아(Ostia)항은 서고트족(Visigoth)이 점령해 자신들의 해군을 정박시켰고, 동고트족(Ostrogoth)은 제국 중앙 함대의 기지인 라벤나(Ravenna)를 점령합니다. 그러는 동안 서부 지중해에서는 반달족(Vandal)이 빠른 속도로 스페인 해안의 항구를 점령해 가면서 해군력을 확대시킵니다.
서기 460년에 반달족은 로마 제국 함대의 최후의 잔존 기지였던 카르타헤나(Cartagena)를 점령했고, 후에는 카르타고(Carthage)까지 점령합니다.
결국 비잔티움 제국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고, 서기 468년에 제국 함대를 출동시킵니다. 당시 출전한 함대는 모두 1113척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한 함대였습니다. 그러나 제국 함대는 자신들의 힘을 자만했고, 카르타고에서 약 40마일 떨어진 만에서 닻을 내리고 주둔했습니다. 그러나 밤에 숫자적으로 더 많던 반달족의 함대는 자신들의 갤리선에 가연성 물질(건초나 건목)을 가득 싣고 비잔티움 제국 함대가 주둔하는 만 앞까지 끌고온 다음 불을 붙였습니다.
바람에 의해 그 갤리선들은 제국군 함선들로 밀려왔고, 약 600여 척의 함대가 침몰 혹은 불타거나 적에게 노획당했습니다.
반달족 중 누군가는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Classis gravis est, exstingemur in bello terrestri'
(우리의 해군은 매우 인상깊다. 그러나 우리는 지상전에서 곧 파괴될 것이다.)
위의 말처럼 서기 468년에 있던 해전에 승리에도 불구하고 반달족과 동고트족의 왕국들은 압도적인 숫자의 비잔티움 제국군에게 패배했습니다. 결국 서부 지중해도 비잔티움이 장악하게 됩니다.
<주력함대 : 드로몬(dromon)>
비잔티움 해군의 주력 함대는 다음과 같이 변합니다.
트라이림(Trireme) → 드로몬(dromon)
초기 비잔티움 함대는 고대 로마 함대와 같이 트라이림이 주력 함대로서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서기 5세기에 카르타고에서 반달족의 함대에게 괴멸당합니다. 제국에서는 계속 해군력이 필요함에 따라 새로운 군함인 드로몬(그리스 어로 에드라몬(edramon)이라는 말에서 왔다. ≪뜻은 '나는 달린다'(I ran)≫, 이 함선의 속도가 매우 빠르므로...)을 급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드로몬 급조로 인해 533년 120척의 반달 해군을 무찌르고 551년에는 47척의 동고트 함대를 무찌르는 기록을 세움.)
드로몬은 제국의 새로운 주력함대가 됩니다. 이 드로몬은 앞서 말한 리부르니안(2단 갤리선 중 하나)에 속하는 종류의 선박입니다. 구조는 바이렘이 한층 발전한 구조라고 합니다. 한척에 승무원이 약 100명에서 200명 가량 되었으며, 전체 길이는 약 33m∼80m 가량 되었습니다.(나중에는 같은 드로몬이라도 규모가 천차만별로 나뉘어집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함대의 선두에 있는 드로몬들의 돛을 빨간색으로 칠해 나머지 함선들이 선두 함선들을 잘 따라오게 했습니다.(후에 베네치아(Venetia)인들도 비슷한 목적을 위해 종종 그들의 선체를 주홍색으로 도색했습니다.)
※일반적인 드로몬의 크기(조금 작은 종류)
길이는 약 33m이고 폭은 4m 정도였습니다. 흘수(물에 잠기는 깊이)는 1m 가량 되었고, 2단 노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승무원은 100명 정도 되었습니다.(43m짜리에는 300명)
또한 길이 55m에 폭 6m 짜리 드로몬도 존재했습니다.
드로몬 함대는 오랜 비잔티움 존속 기간 동안 의장과 병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전함들...>
①[켈란디온(chelandion)]
서기 9세기에 켈란디온이라는 함선이 등장합니다. 이 함선은 바실레이오스 파라코이모메노스(Basileios Parakoimomenos,)의 함대가 겪었던 해전에서 (유능한 전함임이) 증명되었습니다.(서기 10세기의 두 번째 반세기 동안...) 이 함선의 이름은 함선의 긴 모양과 관련된 이름으로 '케티스(chetys)'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이 단어는 그리스에서 '뱀장어'(eel)를 뜻했다.≫
②[드로몬-켈란디아(dromons-chelandia)]
확실히 각각의 유능한 12마리의 말을 수송할 수 있는 말 수송선으로 사용되었던 경우였습니다.
③[팜피로이(pamphyloi)]
좀 더 작은 드로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 6세(Leo VI) 황제에 의하면 제국 함대의 기함(flagship)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함선은 매우 빨랐고 장비를 잘 갖추고 있었으며 선택된 승무원들과 경험 많은 해병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지방함대>
서기 7세기에 있던 함대의 조직체계는 부분적으로 해군 관리의 점차적인 재구성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테마 제도(themata)의 한 부분으로서 지방 해군을 관리했습니다.
키비라이오타이(Kibyrrhaiotai) 테마는 8세기경에 생겼고,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에게 해(Aegean Sea)와 사모스(Samos, 에게 해 동부의 섬.), 그리고 유럽의 카팔로니아(Kephalonia) 지방이 테마로 존속했습니다.(서기 9세기 무렵) 이렇게 지방 함대는 창설되었고 지방 함대는 '스트라테고스(strategos(general))'와 '드로웅가리오(droungarioi, Drungaire(드룽가이레))'가 지휘했습니다.
<중앙 함대와 지휘체계>
중앙함대는 지방함대와 분리되어 존재했고 정식 명칭은 중앙함대(Ploimon, 플로이몬)입니다. 육군 소속의 중앙군(Tagmata, 타그마타)와 한쌍을 이루어 제국의 주력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에서는 각 군에 대한 지휘 체계가 마련되어있었습니다. 그 중 중앙 함대에 지휘권을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대(大) 도메스티크(great Domestci, 제국군 총사령관(육해군에 상관없이 모두 지휘))
(명령하달 방향)↓
②'드로웅가리오스 토우 플로이모우(droungarios tou ploimou, 고위 아드미랄(high admiral), great Drungaire(대(大) 드룽가이레, 해군 총사령관))
↓
③여러 장교들...
※아드미랄(admiral)은 지금도 영어단어에 있기는 하지만 원래 비잔티움 해군 제독의 명칭으로 쓰였다.
※드로웅가리오스 토우 플로이모우 - 이 관직은 '스트라타르코스(stratarchos)'의 순위를 가지고 있었고 비잔티움 함대 전체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11세기에는 비잔티움 함대의 구성원 대부분이 거의 용병으로 채워지게 되고, 소아시아 지방이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s)에 의해 침략당하는 동안, 테마의 해군들은 연속적으로 조금씩 퇴각했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와해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잔존한 테마의 함대들과 수도의 중앙 함대는 합병했고 함대의 드로웅가리오스 토우 플로이모우를 대신해 도욱스(doux)나 아드미랄(admiral)가 지휘했습니다. 후자는 지금 대(大) 드로웅가리오(great droungarios)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고, 전 제국의 드로몬 함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또한 도우케스-카테파노(doukes-katepano)는 지방에 주둔하고 있던 함대를 지휘했습니다.
<비잔티움 해군 조직과 장교들>
토포테레타이(Topoteretai, 해군 제독 대리(vice-admirals)): '드로웅가리오스 토우 플로이모우'를 위해 그들은 존재했습니다. 때때로 대신 해군을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드로웅가리오이(Droungarioi, Drungaire(드룽가이레)): 이 장교들은 구체적인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 장교는 '드로웅가리오(droungarios)'의 지위를 넘지 못했습니다.
함대의 '토우르마르츠'(Tourmarchs of the fleet): 이 장교들은 지방 테마 함대의 일부인 '토우르마이(tourmai, 해군 부대단위)'를 지휘했습니다.
코운츠(Counts, 백작?): 파견함대의 지휘관입니다.(한개의 파견함대에는 3척에서 5척의 함선이 배치되었다.) 제국의 함대에서 그 장교들은 '포로토스파타리오스(protospatharios)'나 '스파타로칸디다토스(spatharokandidatos)'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헤타이레이아의 코운츠(Counts of the Hetaireia): 외국인 용병 부대의 지휘관입니다.
사켈라리오스(Sakellarios): 함대의 재정과 물자 담당자.
카르토울라리오스(Chartoularios): 함대의 관리인이자 수석 비서관.
프로토만다토르(Protomandator): 연락 및 심부름 부서의 담당자.
만다토레스(Mandatores): 배달의 명령과 정보 위임을 맡은 장교
프로토카라보스(Protokaravos): 노 운반 부대의 지휘자.
켄타르코스(Kentarchos): 뱃머리에서부터 지휘하는 전함의 선장, 그의 병영들(크랍바토스(the krabbatos))를 맡았습니다.
<함선에 탑승한 승무원들과 해병의 무장>
비잔티움에서는 베네치아와 아말피(Amalfi)와의 통상이 제국 함대의 선원양성소 역할을 했습니다. 또는 함대의 테프로레우스(theproreus)들은 병사를 훈련시켜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보통 작은 드로몬에는 100여명 정도가 탑승하였고, 보통 크기의 드로몬(길이 43m 짜리)에는 230여명 가량의 수부들과 70여명 가량의 해병들이 탑승했습니다. 큰 드로몬에는 300여명의 해병을 운송, 지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맨 위쪽, 즉 상단의 노잡이 들은 항상 무장을 했고, 로마시대의 해병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후에는 수부들도 무장을 해서 병졸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해병의 무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 . .┏근접용━쌍날창을 사용했다. 주로 하(下)갑판에서 사용. 현창에서 사용됨.
해병┫
. . . .┗원거리용━활과 화살을 사용했다. 대부분 상(上)갑판에서 사용.
(※현창 : 뱃전에 낸 창문.)
또한 해병들은 액체형 불(그리스의 불)을 발사할 수 있고, 한사람에 의해서 사용가능하게 만들어진 조그만 자동 발사기(dispenser)들을 사용했다. 이것 '케이로시포네스(cheirosiphones)'입니다.(한마디로 말하자면 개인용 화염방사기...)
<비잔티움 해군의 재정>
11세기말에 비잔티움 함대는 전성기에서 점점 세력이 쇠퇴했습니다. 하지만 함대는 12세기가 시작될 즈음에 불필요하다고 여겨졌던 특별한 세금('해군 병역세(the naval service)')을 부과함에 따라 확실한 영역에서 재정을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세금은 배를 건조하고, 장비를 설치하고, 해군들에게 지급될 급여에 사용되었습니다.
주로 함대의 '세크레톤 토우 플로이모우(Secreton tou ploimou)'나 혹은 '파라탈라스시테스(parathalassites)' 또는 대게 상업용 함대에 관한 일들을 관리하는 '바다의 세크레톤(Secreton of the Sea)'함대의 재정을 관리했습니다.
<비잔티움 해군의 전술>
비잔티움 함대는 출전하기 전에 의식을 치루었습니다.
함대가 출전하기 전에 병사들과 전함들은 성직자들에게 축복을 받았고, 장교들은 그날 여러 가지 명령들을 내렸습니다.
그 뒤 출전해서 적함대를 만나게 되면 비잔티움 함대는 적과의 얼마간의 거리를 두었을 때,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함선에 있던 투석기(catapult)를 이용해 전투를 했습니다. 점토항아리에 가연성의 물질이나 뱀, 혹은 전갈을 넣고 적함에 투척해서 원거리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 뒤엔 적의 함선에 다가가면서 활을 쏘고 창을 던져 적선을 공격했습니다.
비잔티움 함대가 전투에서 사용했던 전함들의 표준 대형은 반원형(semicircle)이었습니다. 기함은 가장 강력한 드로몬들이 끝부분들에 위치해 있는 동안 그 중앙에서 항해했다. 이런 유형의 해전 대형은 '아스펠라골리멘(aspelagolimen)'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공격의 다른 형태는 복잡한 함선들의 대형을 길게 세로로 정돈해서 그들의 뱃머리들로 적의 함선을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해군 부대의 사단은 3개의 부분으로 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중앙의 공격 부분이고 다른 각각의 양쪽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종종 책략을 그들의 적을 패배시키는데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비잔티움 해병들은 때때로 있었던 모의 해전으로 잘 훈련되었습니다.
①충각전
이 드로몬 함대의 전술은 고대 시대와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일단 초승달 모양의 진형을 갖춘 뒤, 적에게 전진해 갑니다. 그 다음 적함대의 취약점을 찾아 충각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②백병전
때로는 적선으로 직접 병력을 이동시키기도 했는데, 고대 로마 제국 함대에서 쓰이던 '까마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기중기가 사용되었습니다. 기중기에는 몇 명의 병사들이 탈 수 있도록 커다란 바구니 같은게 달려있었고, 이것을 타고 제국의 병사들이 적의 함선에 내려 공격했습니다.
③신호체계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로마 제국함대보다 더 발달된 신호가 존재했습니다.
맨 앞에 선두로 가는 전함에서 낮에는 여러 가지 사령깃발을 이용하고, 밤에는 불빛을 이용해 추적, 공격, 정선(정지), 후퇴, 이탈, 정렬 등과 같은 신호를 전 함대에 보냈다고 합니다.
<비잔티움 해군 병기>
①투사물 발사기(투석기, 노포)

투석기로 그리스의 불을 투척하는 장면.
비잔티움 시대에는 투석기의 크기가 굉장히 커집니다. 심지어 무게가 450kg에 이르는 투사물을 685m 거리까지 발사하는 투석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②그리스의 불(Greek Fire)☆
워낙 유명한 무기죠.-_-;; 이 무기는 액체형 불로서 '그리스의 불(Greek fire)', '바다의 불(Sea fire)', '페르시아의 불(Persian fire)'이라고 불립니다.
이 무기는 7세기나 그 이전에 그리스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불은 콘스탄티누스 4세 포고나투스시대에 아랍인을 피해 이주해왔던 시리아(Syria)의 헬리오폴리스(Helioupolis) 출신 기술자(시리아 태생의 유대인 칼리니쿠스(Callinicus, Kallinikos(칼리니코스))이 발명했다고 합니다. 이 무기는 항아리에 담아 투사물 발사기로 날릴 수도 있었고, 관(管)를 이용해 발사하기도 했습니다.(펌프를 사용해서...)

그리스의 불을 사용하는 그림
그리스의 불은 붙을 경우 물로는 끌 수 없으며, 불은 자동적으로 붙었습니다. 들어간 성분으로는 황, 주석(酒石), 수지(樹脂), 암염(岩鹽), 경유(輕油), 정제유(精製油)를 섞은 반 액체 상태의 물질이라고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유황(sulphur), 질소(nitrogen), 그리고 나프타(naphtha (petrol, 석유))는 들어갔고 또다른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다른 주장들 : 어떤 이들은 석유가 원료라고도 하고 다른 이들은 나프타라는 액체역청과 유황 및 나무기름 등의 혼합물이라고 주장, 또 휘발유와 역청, 송진, 유황, 기름, 생석회 등을 혼합한 것이었을 것이라고도 추측한다.)
그러나 후에 이슬람에 이 비밀이 유출되어 십자군을 방어하는데 쓰였다고 합니다.-_-;;
참고로 비슷한 무기가 BC 424년 델리움의 포위공격때에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불의 발사 기구와 병사--
제국의 함대에 소속된 '관을 설치한 드로몬들(tube-bearing dromons)'이 그리스의 불을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이 드로몬들에는 시포나리오스(siphonarios)라는 병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관과 펌프를 사용해 물위에서도 불이 붙을 수 있는 가연성 액체인 '그리스의 불'을 발사시키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 물질을 발사하기 위해 배에 장착한 장치들은 안나 콤네나(Anna Komnena, 알렉시우스 l세의 딸.)가 쓴 알렉시아스(Alexiad, 안나 콤네나가 쓴 역사서로 15권으로 이루어져 있음.(미완성))에 잘 묘사되어있습니다.
'황제는 피사인들이(Pisans, 당시 최강의 이탈리아 4대 해운국중 하나인 피사를 뜻함.)가 바다에서 교전을 벌이면서 바다에 익숙한 것을 알았고, 그들과 충돌하기를 무서워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배들을 청동(bronze)으로 건조하도록 명령했고 뱃머리에 철(iron)로 된 사자머리를 만들었으며, 또는 다른 야생의 동물들의 모습으로도 만들도록 했다. 그것들은 입을 벌릴 수 있었고 금박을 입혔다. 그래서 그것들의 외모가 혼자서도 충분히 적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적을 공격하는 액체 형태의 불(그리스의 불)이 물체의 머리와 입을 통과하였고 그것들은 실제로 살아있는 것처럼 앞으로 불을 내뿜었다......'
③크실로카스트론(xylokastron, '나무로 만든 성')
드로몬은 각각 크실로카스트론을 장비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탑으로 주 돛대 주위에 있었습니다. 그 탑에서 해병들은 그들의 창을 던지거나 활을 쏘기도 했고 혹은 돌이나 금속 덩어리를 적에게 던지기도 했습니다.
④톡소볼리스트레스(toxobolistres)
일종의 기계장치로 뱃머리와 선미(船尾)에 설치되었습니다. 작은 불붙은 화살을 날리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비잔티움 함대의 공성무기>
비잔티움 함대가 항구나 적의 성을 포위 공격하기 위해 두 개의 특별한 중요한 구조물들을 만듭니다.
두 개 중 하나의 구조물은 두 척 혹은 더 많은 전함을 접합시켜서 건설되었습니다. 접합시킨 전함 위에 나무로 만든 사격용 탑을 설치해 꼭대기에서 사격용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이 탑 위에서는 투석기와 무장한 해병들이 올라가 적들의 성벽과 항구를 점령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구조물은 항구의 성벽이나 목재 성문을 박살내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공성용 충차(ram, 혹은 전함의 충각)'를 2척을 결합한장착했다. 승무원들은 2명 혹은 그 이상의 병사들로 이루어져 그 장치를 움직였습니다.
<비잔티움 함대의 지중해 제해권 공방>
서기 7세기까지 비잔티움 함대는 지중해 제해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7세기 중반부터 이슬람 세계로부터 공격을 받게 됩니다. 7세기에는 알렉산드리아가 잠시 이슬람의 손에 들어가지만 곧 비잔티움 함대의 활약으로 되찾게 됩니다.
이후 아랍권 국가들은 해군력을 빠르게 증강시켰고, 곧 2000여척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함대를 창설합니다. 결국 서기 655년에 1000여척의 비잔티움 함대는 패했고, 지중해 제해권은 이슬람 세계로 넘어갑니다.
(※물론 이슬람 함대는 비잔티움 함대를 본따서 자신들의 함대를 만들었고, 함선 역시 비잔티움과 매우 흡사합니다.)
그 후 우마이야 조의 칼리프 무아위야(재위 661-680)는 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을 674년에서 5년 동안 포위, 공격합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앞에서 말한 '그리스의 불'을 사용해 이슬람군을 격파합니다.
조사기간은 3주였고, 배경음악은 반지의 제왕 ost -The King Of The Golden Hall 입니다.
오타나 이상한 점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첫댓글 아주 희귀한 자료입네다
훌륭한 자료 잘 읽었습니다.^^
잘읽고 갑니다 제국해군체계에 대해 알게되어서 기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