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신 그리스도 축일 2023년 11월 26일
마태 25:31-46
희망으로 함께 만드는 하느님 나라
교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이고 모든 것이 시들고 움츠러드는 이 시기에 우리는 심판과 멸망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 자체가 최후의 심판입니다.
오늘 복음은 종말과 심판의 판단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새로운 지표를 설명합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이 알고 있던 기준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전혀 새로운 진리였습니다. 오늘 열거된 굶주리고 목마른 이, 나그네, 헐벗고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사람들의 상징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대접하고, 보살피면서 살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라도 심지어 가장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외면당한 세상의 모든 이들을 보살피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구원이다.’라고 결론 맺습니다. 마태오 25장 전체를 통해 구원은 인간의 지극한 행함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끊임없는 실천을 통해 완성되어 가는 존재입니다.
예수님 당시 구원과 의로움의 기준은 율법이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기준으로 의인과 죄인을 갈랐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하느님께 죄를 지어 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가르쳤고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깊은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하고 같이 섞이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이런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부하시며, 어떤 불행도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기득권자인 율법학자와 사제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들을 율법에 얽매이게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눈에 가시였습니다. 하느님은 모두에게 자비로우시고 자녀로 삼으시어 어렵고 힘든 이들도 모두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종말과 심판의 이야기를 들은 오늘 우리는 오히려 ‘희망’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이를 ‘종말론적 신앙’이라고 말씀드리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교의 기득권층에 대해 비판하신 말씀을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 안으로 들여와 봅니다.
자기가 최고요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에게만 시선을 빼앗겨 하느님을 보지 못합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람들도 앞에 놓인 문제에 집중하느라 하느님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형제 중에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당신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잘것없는 이들은 스스로 우월감을 가질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도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이들이 측은히 여기고 돌보아 주어야 그들은 비로소 동료 인간으로 행세할 수 있습니다. 불쌍히 여김과 보살핌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신앙의 질서였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이렇게 사셨고 그렇게 가르쳤기에 그로인해 결국 죽임까지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찬례 시 예수님의 죽음을 “많은 사람을 위한”(마르 14,24)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특정한 이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하느님의 뜻이었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단 한번 희생으로 우리 인간의 희망이 되신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결국 우리 모두가 다름이 아님을 인정할 때 희망이라는 좌표가 생길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이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종말론적 신앙이란 그럴수록 깨어 기도해야 하고, 그 날이 언제 일지 모르니 항상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자는 말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은 시작한다. 고 했습니다. (루쉰)
깨어 있으면 아주 작은 행복이 내 인생을 견디게 했다고 겸손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나의 삶이 항상 하느님의 사랑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소소한 일상 가운데서도 작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 안에도 하느님의 자비가 있기에 그 사람 또한 행복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면서 내가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생을 살며 언젠가는 이런 날이 내게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그렇게 내게 기쁨으로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마지막 날이라 함은 내가 무서운 저울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공포의 날이 아니라, 나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날, 내가 완성되는 날,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종말과 심판은 절망적인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의 시작입니다.
성서에는 마지막 때 주님의 대천사가 부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때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고,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 전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처럼 자기 몸을 희생물로 바치며 산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는 나의 이기심과 두려움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큰 소리이고,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날은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날이며, 새 생명을 사는 기쁨의 기적이 내게 일어나는 날입니다.
그때 우리는 두려움이 없이 당당하게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종말은 사라짐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새로운 시작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갈라놓고 판단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서 어울려 살며 완덕을 향해 가는 존재입니다.
그 길에 믿지 않는 이, 교만한 이, 무능력한 이 등 숱하게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갑니다.
그들에 섞여 내가 탁해져야 하나요? 아니면 맑은 내 영혼들로 그들을 정화시켜야 하나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 함께 어울려 살며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도록 늘 노력하는 것,
바로 세상을 사는 이치이며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희망을 놓치지 않고 살기에 가능합니다.
이곳에 서 있는 하느님 나라는 우리 모두가 희망으로 함께 만들어 가는 여정입니다.
희망이 있으면 이 모든 말씀이 거창하고 추상적인 미사여구가 아니라 진실함을 담은 삶 그 자체의 고백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기억하며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