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진짜 여행을 시작하며
1) 에너지와 쓰레기에 대하여: 뮌헨
비행기를 타면서는 늘 내가 쓰는 에너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건 다 <노임팩트맨>을 때문이다. 나의 여가를 위해 석유와 이것저것을 소비하는 일은 정당한가. 그 답은 여행 동안 찾아보기로 하고 우선은 비행기가 나를 위해 뜨는 것은 아니라고 괜히 둘러댄다.
유럽행 비행기 치고는 좀 싼 가격인 70만원 정도에 중국항공 비행기 티켓을 샀다. 그래도 70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기에 나에게는 많은 것이 제공된다. 일회용 컵에 음료를 받고, 일회용 식기들로 된 식사를 받는다. 거리가 멀어서 경유지인 베이징에 도착할 때까지 음료 두 번 식사 한번, 베이징에서 뮌헨으로 가는 동안 음료 네 번 식사 두 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은 컵을 받아서 계속 거기다 달라고 하는 정도, 일회용 포크와 수저와 나이프가 들어있는 커트러리 세트 중 한 개만 쓰고 휴지와 나머지는 챙겨놨다가 나중에 쓰는 정도? 비행기에서도 텀블러에 음료를 달라고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뭐달라고 하는지도 겨우 들리는 시끄러운 비행기 안에서 왜 그건 도저히 못할 것 같지? 여행을 하는 도중 금자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회용품을 어떻게 쓰는지, 대체품은 무엇인지를 보며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금자는 비행기에서 어떻게 얘기할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쨌든, 나는 기름도 많이 쓰고, 사람의 에너지에 빚을 지며 여행을 시작한다. 왠지 뭐라도 얻어오지 못하면 크게 미안할 것 같은 약간의 무거움을 안고...
그러고 보면 일등석에서는 일회용품이 아닌 식기와 포크로 음식을 서빙해준다. 일회용품과 아닌 것은 결국 비행기에서는 차등의 상징이었나. 나중에 포르투갈 한 항공사에서 음식을 서빙할 때 일회용품을 쓰지 않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구나. 한번도 보지못한 것은 으레 그러려니, 할 수 없으려니 하는 고정을 만들어버린다.
뮌헨에 도착해서 지은이를 만났다. 도착하자마자 지은이가 일하는 빵집으로 갔다. 아침에 도착해서 지은이 일이 끝날 때까지는 시간이 떠서 우선 지은의 집 키를 받아 집에 먼저 가있기로 했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오픈형 빵공장이 있는 빵집이었다. 커피 한잔과 샌드위치 한 개를 얻어먹으며(원래는 사먹는 거였는데 본의 아니게 돈내는 걸 깜빡하고 나와서 얻어먹은 걸로ㅜㅜ) 덩치 큰 남자들 틈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작은 지은이를 보며 내가 알 수 없는 지은이의 몇 년간의 독일 생활이 참 대견해보였다. 빵의 나라 독일에서 빵만드는 일은 힘든 일이어서 독일인들은 잘 안하려고 한단다. 그러고 보니 다들 문닫는 날도 그나마 열려있는 곳은 빵집들이고, 빵값이 비싸지도 않았다. 그 나라 주식이어서 가격도 비싸게 받을 수 없으니 돈을 버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그런 농부같은 일인 것 같았다. 그래서 독일에서도 점차 외국인이나 부모 중 한명이 외국인이거나 한 소수자들이 그 일을 대체해나가고 있고, 외국에서 생지를 수입해서 만드는 일도 많다고 한다는 지은이의 짧은 설명.
그리고는 다시 일하러 가야하는 지은이와 헤어지고 지은이네 집을 찾아갔다. 조용한 동네에 방 하나, 화장실 하나, 주방 하나 이렇게 있는 집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월세가 800유로쯤 한다고 하니 우리 돈으로 100만원 정도 하는 셈인데, 우리나라가 비싸다고 하지만 유럽은 정말 비교도 안되게 비싸구나. 뮌헨도 대부분의 집은 다 나이든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고, 젊은 사람들은 월세 내느라 수입의 많은 부분을 쓰고 있다는 설명을 나중에 들었다. 그나마 외국인은 더더욱 구하기 어려워서 줄서서 면접도 보고, 월급 명세서도 보여주고 그래야 된다나. 그렇게 힘들게 얻은 지은이네 집에 잠시 누워 있다가 오바니와 상봉했다.
뮌헨에서는 거의 관광을 하지 않았다. 독일 슈퍼와 크리스마스마켓, 빵집 구경이 한 일의 거의 전부랄까. 뮌헨 둘째날 우리는 슈퍼마켓 쇼핑을 했다. 오바니는 친구에게 부탁받은 독일 차를 많이 샀고(감기차가 효능이 좋단다), 나는 렌즈 보존액을 사야했다. 중국에서 비행기를 환승하는 동안 렌즈 보존액을 뺐겼다. 아 큰 배낭속에 넣고 부쳐졌을 것으로 기억했던 보존액이 왜 내가 들고 있던 가방에 들어있던건지(그리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들고가던 책 하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ㅜㅜ)... 슈퍼의 이름은 아마도 dm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그 보존액의 비쥬얼이 엄청 충격적이었다. 보존액은 딸랑 보존액만, 그러니까 종이 케이스랑 설명서 이런거 없이 병만 있었다. 한번도 그런 보존액을 본적이 없어서 이정도로도 충격을 받을 수가 있다. 우리나라는 종이 케이스에 더해 플라스틱 상자에 한겹 더해 원플러스 원이라거나 렌즈 케이스 같은걸 서비스처럼 넣어주기도 한다. 늘 그 플라스틱이 싫어서 선택하지 않았는데, 아 이런 선택권도 있었으면 좋겠다.
뮌헨 여행의 마무리는 슈바빙으로 했다. 일찍이 1900년대 초반 유럽의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던 핫플레이스였고 전혜린이 유학시적 거닐었다던 길. 대학가여서 뭔가 다를 것으로 기대했지만, 주말이었고, 비가 왔고 어두워지던 즈음이어서인지 문닫은 곳도 많고 하여튼 젊음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조금 어려웠다. 에너지와 쓰레기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그곳에서 만난 가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Ohne(독일어로 -이없는, without이라는 뜻)’라는 이름을 가진, 요즘 우리나라에도 몇군데 생기기 시작한 포장이 없는 가게(Zero Waste Shop)였다. 유기농 식자재- 곡식부터 커피, 빵, 씨리얼, 쥬스에서부터 세제나 디자인이 예쁜 에코백이나 텀블러 같은 물품 등을 팔고 있는 가게였다. 모든 상품들이 용기를 가져오면 필요한 만큼만 덜어갈 수 있게 되어있었는데, 거기 살고 있었다면 엄청 좋아했을 곳이었지만 여행자인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어서 구경만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뮌헨에서도 처음생긴 곳이라고 한다. 종류도 다양하고 물건들도 예쁘고, 이런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델하우스로서는 참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든 걱정스런 마음들은 어쩔 수 없나보다. 식품들, 특히 보존제가 포함되지 않은 식품을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 되어야 할테고 그렇다면 저변이 넓어져야 할텐데, 슈바빙 말고 다른 곳으로 얼마나 확장, 유지될 수 있을까. 그 확장이 내 옆까지 올 수 있을까.
어쨌든 이렇게 한발 앞서나가는 유럽이 부러운 한편, 오바니가 지금 유럽에서는 네스프레소에서 나오는 캡슐 쓰레기가 골칫거리가 되어 재사용이 가능한 캡슐이 나오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지난 가을 원없이 먹었던 네스프레소 커피가 생각났다. 그러고보면 안좋은 것들도 다 퍼뜨려놓고서 자기네들은 저만치 앞서가서 고민하고 해결해내고 있는 것은 또 뭐란말인가.
돌아오는 시점쯤 한국에서 슈퍼마켓에서 더 이상 비닐봉지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유상에서 아예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는 건데, 슈퍼의 모든 포장이 과대포장 되어있는 환경에서 겨우 비닐봉지 하나 쓰지 않는다고 그것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제는 필리핀에 팔았다가 다시 돌아온 컨테이너를 가득채운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보았다. 어쨌든 이제 우리에게도 쓰레기는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화두가 될 것이다.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보기로 한다.
첫댓글 나를 위한 소비의 가장 큰 부분이 '여행' 인 사람인지라.. 그런 죄책감은 일단 접어두고 살기로..
안 좋은 거 다 퍼뜨려놓고서 자기네들만 저만치 앞서가는 유럽사람들에 대해 아니꼬운 마음 십분 동의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내 친구들이라.. 나 역시도 별 수 없이 그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