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눈으로 볼 때
본 문 = 열왕기하 6:15~23
찬 송 = 543장 어려운 일당할 때
Focus =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볼 때 모든 두려움과 염려는 사라집니다.
배경 이해하기
아합과 이세벨은 이방 신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함으로써 북이스라엘을 타락하게 했습니다. 번영과 물질의 복을 바라며 시작한 우상 숭배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분의 백성 삼으시고 그들에게 복 주기를 원하셨지만(신 28:1〜2), 패역한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됩니다. 북이스라엘 왕의 우상 숭배는 백성의 영적 타락과 굶주림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영적 암흑기에 하나님은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십니다. 엘리사의 행적은 어두운 시대를 밝히고자 하나님이 비추시는 빛과 같습니다.
본문 해설
엘리사를 두른 불 말과 불 병거 6:15~19
성도에게는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영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엘리사를 잡기 위해 아람 군대가 도단성을 에워쌉니다. 두려움에 빠진 사환이 ‘아아’(15절, 히브리어로 ‘아하흐’)라는 감탄사로 절망스러운 상황을 표현합니다. 엘리사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사환의 눈을 여셔서 산에 가득한 불 말과 불 병거가 엘리사를 보호하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수많은 군대가 둘러싸도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하는 하늘 군대에는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를 잡기 위해 공격하자 엘리사는 하나님께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시자, 엘리사는 그들을 사마리아로 인도합니다. 수천수만의 군사도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작은 무리일 뿐입니다.
아람 군대를 돌려보냄 6:20~23
엘리사는 계속해서 기도로 하나님 능력을 나타냅니다. 그는 사마리아로 들어간 아람 군대의 눈을 열어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요람)은 엘리사에게 그들을 죽일지 묻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존경의 표시로, 왕에게서 ‘아버지’ 호칭을 들은 선지자는 엘리사가 유일합니다.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21절)라고 반복하는 것에서 아람 군대를 멸하고 싶은 여호람의 간절한 바람이 드러납니다. 엘리사는 그들을 전쟁으로 사로잡은 것이 아니니 떡과 물을 먹여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죽음이 아닌 관용으로 대접을 받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권능에 두려움을 느낀 아람은 한동안 북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못합니다.
말씀 요약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는 사환의 눈을 열어 하늘 군대를 보게 하시고,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람 군대를 왕이 있는 사마리아로 데려간 엘리사는 그들을 죽이는 대신 떡과 물을 먹인 후 돌려보내게 합니다. 이후 아람 군대는 이스라엘에 다시 들어오지 못합니다.
말씀 나누기
관찰과 묵상
1. 성읍을 포위한 아람 군대를 보고 두려움에 빠진 사환을 위해 엘리사는 무엇을 했나요? (15~17절)
2. 북이스라엘 왕과 엘리사는 사마리아성 안으로 들어온 아람 군대를 각각 어떻게 하려고 했나요? (21〜22절)
적용과 나눔
1. 영적 시각,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볼 때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할 때 나는 어떻게 할지 나누어 보세요.
2.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용서와 관용을 베푼 후 내가 경험한 은혜 또는 선한 결과가 있다면 나누어 보세요.
말씀 다지기
보이는 것을 전부로 여기지 않고 믿음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합니다. 믿음의 눈을 뜰 때 마음의 두려움과 염려가 사라지고, 영원한 기쁨과 만족이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며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을 뜨면 원수 같은 사람이 사랑의 대상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일상에서 크고 작은 가해와 피해의 굴레에서 벗어나서로 품어 주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도는 눈앞의 현실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믿음의 눈을 들어 제 인생을 호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밝히 보길 원합니다. 상황과 환경은 저를 자꾸 주저앉혀도, 크고 강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다른 이들을 관대하게 대하고 사랑으로 품어 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묵상 에세이
남을 살리는 것이 내가 사는 길
예수님은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신다. 원수를 미워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에게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라고 말씀하신다. 납득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이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 말씀을 삭제해 버릴 수는 없다.
손안에 든 원수를 평안히 돌려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하나님은 ‘상대방을 살리는 것이 자신이 사는 길’임을 알려 주신다. 다른 이들을 잠재적인 적으로 여기는 한 평화는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반감을 지닌 사람,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과도 함께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나누지 않으셨다. 도리어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시고 이 둘을 그분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셔서 평화를 이루셨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하나님과 화해시키셨다.
우리 속에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올 때라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해 하나가 될 수 있다. 지금 이곳에서,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예수님의 손으로 세상을 어루만지며, 예수님의 심정으로 이웃을 대하는 것이 믿음이다.
한절 묵상
열왕기하 6장 17절
믿음이 약해지면 마음에 의심과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의심과 두려움에 지배당하면 영적 눈이 어두워져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하나님 뜻을 발견하지 못하는 영적 무지에 빠집니다. 예수님은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1:34). 성도는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통해 믿음의 눈을 밝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넘어 그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주님의 은혜와 도움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면 우리는 절대 한순간도 주님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삶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