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5가해8-2-1.zip
傅大士:法身은 本非食이요 應化도 亦如然이나 爲長人天益하여 慈悲作福田이로다 收衣는 息勞慮요 洗足은 離塵緣이니 欲說三空理하여서 跏趺示入禪이로다
부대사:法身은 본래 먹지 아니하며
응신, 화신도 또한 그러하나
길이 人天의 이익을 위해서
자비로써 복전을 지어 자비를 베푸셨도다.
가사를 거두심은 번거로운 생각을 쉼이며
洗足은 번뇌의 인연을 여읜 것이니
三空의 이치를 설하시고자
가부좌하시고 禪에 드심을 보이셨도다.
冶父:惺惺著라
說誼:惺之一字를 或以爲了慧이며 或以爲寂靜이라하니 則惺惺者는 定慧圓明하여 寂照不二之謂也니라 只如定慧圓明하여 寂照不二를 作?生道인가 眼掛長空하고 手握靈鋒이로다
야부:성성이라
설의:惺이란 한자는 了慧(밝게 깨달음)라 하며 혹은 寂靜이라 하니 곧 惺惺이란 定과 慧가 뚜렷하게 밝아 寂(체)과 照(용)가 둘 아닌 것이니라. 다만 定慧가 뚜렷이 밝아서 적과 조가 둘이 아님을 어떻게 이를 것인가?
눈은 끝없는 허공에 걸어두고(定) 손에는 신령스런 칼을 잡았음(慧)이로다.
청봉착어:법신불은 먹지 않으며 응신, 화신도 근본으로 쫓아 살피면 먹어도 먹음이 없다. 세존이 고루 밥을 빌으심은 부한 자는 부를 잃지 않고 가난한 자는 가난을 면하게 복 밭이 되어 주신 것이다.
발우를 씻음은 번뇌를 제거함이고, 가사를 거두심은 일체를 쉬는 뜻이고 발을 씻으신 것은 망상의 때를 닦으신 것이고, 자리를 폄은 모든 것을 정(定)함으로 수습하고, 일체가 공함을 보이시고자 양구하시어 정에 드셨도다. 아상이 있다면 밥을 빌지 않으셨을 것이다.
冶父:飯食訖兮洗足已하시고 敷座坐來誰共委인가 向下文長을 知不知인가 看看平地波濤起니라
說誼:入城乞食과 收衣洗足과 敷座宴坐는 一一皆是徹困爲人底時節이니라 入城乞食과 收衣洗足은 且置하고 只如敷座宴坐를 作?生道인가 高提祖令發光寒하니 直得毘耶에서 口掛壁이로다 這裏에서 除却上上根은 未免一場???羅니 根機莫等으로 要以多方으로 接得이니라 獲鳥者는 羅之一目이나 不可以一目으로 爲羅요 治國者가 功在一人이나 不可以一人으로 爲國이니라 所以로 黃面老子가 曲爲中下하시어 乃下一步하며 向言說海하시어 橫身而入하여 東說西說하시고 橫說竪說하시니라 所以로 道하되 高提祖令當機用하니 利物應知語帶悲라하니라 向下文長이 正以此也니라 然이나 慈尊의 伊?施說이 要之利害가 不細하니 還知得利害也未인가 入城乞食收衣宴坐로 以至東說西說橫說竪說에 善權方便은 卽不無이나 據實而觀하면 人人分上이 如靑天白日相似하여 本來無爲無事하여 盡大地가 都盧是淸平世界거늘 黃面老子가 向淸平世界上하여 施設戈甲하시니 可謂無事中起事니라 所以로 道하되 看看平地波濤起라하니라 又古人이 道하되 澄澄性海하여 湛湛智源이여 文字言詞가 從玆流出이라하니 則黃面老子가 向大寂滅海하여 繁興言說波?하시니 要之言說波?이 初非外來라 終不離於大寂滅海니 敷座處에서 如未薦得하면 向言說海하여 薦取하여야 始得이니라 所以로 道하되 看看平地波濤起라하니라
야부:공양하시고 발을 씻으시고
자리 펴고 앉으시어 누구와 함께 하시려나.
아래의 긴 문장을 아는가? 모르는가?
보고 보아라. 평지에서 파도를 일으켰음이니라.
설의:入城乞食과 收衣洗足과 敷座宴坐 하심은 낱낱 모든[증득하지 못한(가난한)] 사람을 위한 소식이니라. 입성걸식과 수의세족은 그만두고 저 부좌연좌를 어떻게 이를 것인가. 시조(석가세존)의 가르침(법령)을 높이 들어 차거운 빛을 들어내니 바로 비야리 성에서 입을 벽에 건 것과 같도다.[유마 거사가 비야리성에서 ?言으로써 불이 법문을 설함과 같은 뜻]
이 안에서 상상근기를 제외하고는 한바탕 부끄러움을 면치 못할 것이니, 근기가 같지 않으므로 반드시 여러 가지 방편으로써 제접한 것이니라.
새를 잡는 것은 그물의 한 눈금으로 족하나 그물의 한 눈금으로는 그물이 되지 못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그 功은 한 사람에게 있으나 한 사람만으로는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黃面老子(석가모니불)가 간절히 중하근기를 위해서, 한 걸음 내려(차원 낮추어) 언설의 바다에 몸을 던지시어 동설서설하시고 횡설수설하시니라. 그런 까닭으로 말씀하기를 시조의 바른 법을 높이 들어 근기에 따라 쓰심은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 그 말씀이 자비임을 마땅히 알라 하니라. 아래의 문장이 바로 이것이니라.
그러나 자비로운 부처님의 이러한 설하심이 요컨대 이득과 해가 적지 않으니 도리어 利가 되고 害가 됨을 알겠는가?
성에 들어가 걸식하고 옷을 거두고 자리에 앉으심(좌선:定)으로부터 동설 서설과 횡설수설에 이르기까지 좋은 방편은 곧 없지 않으나 그 실상을 살펴 보건대, 사람사람이 그대로 靑天白日과 같아서 본래 함이 없고 일도 없어서 바탕이 모두 그대로 맑고 평등한 세계(佛國土)거늘 황면노자가 청평세계를 向하여 괜히 창과 갑옷을 만들어 놨으니 가히 일없는 가운데 일을 만들었다 할 만 하니라. 그런 까닭으로 말하기를 ‘보고 보아라. 평지에서 파도를 일으켰음이라’하니라. 또 古人이 말하되 ‘맑고 맑은 성품의 바다는 깊고 깊은 지혜의 근원이여! 문자와 언사가 다 여기로부터 흘러 나왔다’하나니 곧 황면노자가 大寂滅의 바다를 향해서 언설의 작고 큰 파도를 일으켰으니 要는 언설의 파도가 처음부터 밖에서 온 것이 아니라 마침내 대적멸의 바다를 여의지 않았으니 자리를 펴고 앉은 그곳에서 만약 깨달아 얻지 못하면, 언설의 바다를 향하여서 건져 올려야 비로소 모든 것을 깨쳐 얻을 것이니라.
그런 까닭으로 말씀하시기를 ‘평지에서 파도가 일어났음을 보고 보아라’한 것이니라.
청봉착어:공양하고, 발우를 닦고, 발을 씻고, 자리 펴고 앉음은 번뇌망상의 때를 씻고 일체 경계를 떠나 성성한 경계에 드셨음이니, 앉음과 움직임이 서로 여의지 않았음도 밝게 알아야 한다.
宗鏡:調御師가 親臨舍衛하시니 威動乾坤이고 阿羅漢이 雲集祇園하니 輝騰日月이로다 入城持鉢은 良由悲愍貧窮이요 洗足收衣는 正是宴安時節이니라 若向世尊의 未擧已前을 薦得이라도 由且不堪이니 開口已後에 承當하면 自救도 不了하리라 宗鏡이 急爲提?하여도 早遲八刻이니라 何故하면 良馬는 已隨鞭影去거늘 阿難이 依舊世尊前이로다 乞食歸來會給孤하여 收衣敷座正安居는 眞慈弘範으로 超三界하여 調御人天得自如하니라.
종경:조어사(부처님 10대 명호 가운데 하나)께서 친히 사위국에 나시니 그 위의가 하늘과 땅을 움직이고, 아라한들이 기원정사에 구름처럼 모이니 그 빛이 해와 달처럼 빛나도다. 발우를 가지시고 성에 들어가심은 진실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비를 베푸시기 위함이요, 발씻고 옷을 거두심은 바로 편안함(定) 때문이니다. 만약 세존의 꽃을 들기(拈華微笑) 이전을 향해서 알아들었다 해도 또한 감당하지 못할진대 입을 연 뒤에 알아차린다면 자기도 구해 마치지 못할 것이다. 종경이 급하게 들어 일깨워준다 해도 벌써 八刻(二시간)이 늦을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말은 이미 채찍 그림자를 봐도 달리거니와 아난이 옛날 세존 앞에 있음(양구하신 도리를 몰랐을 때)이다. 걸식하고 돌아와 급고독원에 모여서 옷을 거두고 자리를 펴고 편안히 앉으신 것은 참다운 자비와 큰 모범으로 삼계를 뛰어넘어 人天을 길들여 스스로 如如함을 성취하게 하심인 것이다.
청봉착어:임제의 할도 2구요 덕산방도 2구라
양구라면 또한 2구가 아니련가?
외도가 세존의 양구 하심을 보고 깨우쳤어도
다문 제일 아난은 채찍을 맞고도 뛰어나지 못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