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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주일 3부 예배(정진모 담임목사님)
말씀 : 마태복음 27:45~50
주제 : 누가 왜 예수님을 죽였는가?
<서론>
우리인생의 환란에 때를 만나면 환란의 때에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큰 은혜를 주신다. 시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시와 때를 감당을 못한다. 세상은 결코 만만치않다. 그렇다고 우리가 세상을 겁먹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관점에서 주님처럼 세상을 이기고 또 이겨야 될것이다. 종려주일을 맞이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리 교회에 주시려고 은혜를 예비해 놓았으니 이은혜를 마음껏 받으셔서 이 절기를 통해서 치유와 회복, 갱신과 변화, 새 출발 새 역사가 일어날 줄 믿는다. 예크선교원이 설립되었다. 그런데 평촌신도시 지역은 교회에서 법적으로 유치원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어린이집 허가를 받지 못했다. 2005년부터는 어린이집은 초등학교처럼 무상교육과 많은 지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린이들을 말씀으로 잘 키울 수 있는 제도적인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하려고 했지만, 선교원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게 단순히 선교원이 아니다. 우리가 말씀운동을 본격적으로 10년이 넘는데, 줄기차가 한가지를 기도해왔다.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소원이 무엇인가? 나의 자녀를 직계제자 삼는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보다, 유대인들보다 더한 원색적인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에 복음의 학교를 세우기를 갈망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우리의 자녀를 제자삼고, 이복음이 내후손에 천대에 이르기까지, 주님 오실 때까지 그래도 전수되어 수평전도,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 되는 것이다. 예크 선교원은 단순히 선교원이 아니고 어린이 학교다.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어린이 학교의 첫 출발이다. 이 첫학교의 시작으로 말미암아 보이지 않게, 또 보이게 여러분의 사업의 큰 증거를 주고 계신다. 이제 우리가 앞으로 원하던 초중고, 대학까지 세우기를 바란다. 다음주 바기오 렘넌트 월드 미션 하이스쿨에 가게 된다. 카파에도 인터내셔날 월드 미션 하이스쿨이 있다. 정회권선교사님이 3년전에 세우셔서 4월 15일날 첫 졸업식을 갖는데, 강력한 간청으로 후원회 이사장님이신데, 메시지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곳에는 나라에 굉장히 높으신 분들이 많이 오신다. 그곳은 영적인 시스템이 너무 잘 되어 있다. 교육의 3가지 삼위일체가 있다. 하나는 가정교육이 전부다. 가정에서 교육을 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다음에 교회에서 아이를 영적으로 교육해줘야 한다. 그다음에 학교다. 이 3가지가 영적으로 시스템으로 잘 돌아갈 때 아이들이 변화의 주인공이 된다. 진정한 복음에 의해서 건학이념에 의해서 학생을 배출하는 학교가 없다. 기독건학이념을 살리지 못하고 다 넘어가고 있다. 우린 이런 실패의 전처를 밟는 그런 학교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소수정예, 복음의 영적인 엘리트를 키우는 학교를 세우려고 한다. 그 첫단추로 예크선교원이 세워졌다. 필리핀 카파 학교같은 경우는 미션홈에서 완전히 붙잡히고, 교회서 붙잡히고, 채플시간에 붙잡히고, 중고 전도학교, 전도신학교, 강사들의 특강, 말씀으로 붙잡히고 있다. 그래서 신학교인지 분간이 안간다고 가르키는데 어느정도 변화가 일어나나? 이미 별을 받은 아이들, 통제 불능의 아이들이 이 영적인 시스템에 들어가니까 공부할 이유, 살아가야 할 이유, 왜 왔는지 이유를 아니까 공부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무섭게 하는지, 그래서 복음의 엘리트, 인격의 엘리트, 기능과 삶의 엘리트로 한 시대를 위해서 준비되어 진다. 이제 우리는 어린이 학교가 시작됨으로 말미암아 이것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축복의 첫 발판이다. 여기에 근거해서 주님의 원과 한이 후대 살리는 일에 중심을 가지고, 주님의 비전을 나의 비전으로, 주님의 비전을 교회의 비전으로 일심전심지속하여 아버지께서 아무리 주신다고 해도 변질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주님의 뜻대로 물질의 교통정리를 잘하여 쓰임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분을 주님의 비전, 교회의 비전 때문에 한시대의 증거를 주심을 확신한다. 우리가 학교 인수 받으려고 애를썼고, 지으려고 애를썼고, 땅을 사려고 애를썼는데,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로 까다롭기 때문에, 이제 2005년은 완전자유개방이다. 이제 시간표가 가까이 왔고, 이제 우리 교인들의 경제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 교회의 시간표 맞추어 가시는데, 이제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시는대로, 국내외든지 응답해주시는데로 시대적인 학교를 세울것이다. 스탠포드가 외아들을 잃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죽은 아들만이 너의 아들이냐, 얼마나 불쌍한 많은 아들들이 있는가, 그 음성을 듣고 학교를 세워서 많은 아이들이 세워졌는지 모른다. 채플이 얼마나 좋은지, 학생들이 늘 기도한다. 이슬람권 많은 왕자들이 와서 공부하고 은혜받고 돌아가는 것이다. 원한의 소원을 가진다면 한시대의 증거를 주실 줄 믿는다. 이제 하나님께서 필리핀에 열어주시던 어디에 열어주시던지,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대로 우린 학교를 세우길 원하며,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원색적인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이 가있는 곳곳마다 여러분의 기도응답으로 학원설립을 통한 시대적인 응답을 주실 줄 믿는다. 우리는 가고없지만 주님 오실 때까지 그 학교를 통해서 시대적인 인재들이 매년 들어와 말씀으로 훈련되어 그리스도의 능력있는 인재들이 된다면, 이것만이 진정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복음의 가장 빠른 길이다. 이런 응답을 우리에게 많이 주고 계신다. 큰 기대감이 있다. 지난번에 전에 우리가 늘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이 은혜주시면 학교하나 세우겠다 했는데, 평촌고 같은 학교 하나 지으려면 300억 정도든다. 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300억도 주실 수 있고, 3000억도 주실 수 있다. 믿음좀 가지시기를 축복한다. 이단들도 학교를 세우는데 어떻게 여러분이 믿음이 없어서 300억하면서 나자빠지나. 탄자니아 갔다오니까 1만 2천평 부지가 1000만원밖에 안한다. 5천만원 1억이면 학교하나 세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 고난절을 통하여 주님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고, 내 믿음이 회복되고, 경제가 회복되게 하시고, 사명이 회복되게 하시고, 전도 선교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고, 진정한 우리 자녀들의 교육이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난주 목포에 아주 유명하신 대학 이사장님이 23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나는 그런분들이 행복한 줄 알았다. 얼마나 고민이 많았으면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취했을까. 지난주 보니까 어떤 소녀가장은 차라리 내가 고아로 태어났으면 좋았을뻔 했는데, 병든 어머니와 밑에 동생들을 부양하기 어려우니까 일기장에 아픔들을 기록해놓고 자살해 죽었다. 어제 뉴스를 보니까 이 근처에 고등학생이 아파트에 올라가서 자살을 했다. 누가 우리 자녀들을 이렇게 죽이나? 여러분 혹시 자녀들 가운데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는 자녀들이 없나? 청소년들 60%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 있는 아이들은 잠시 순간이고 부활의 생명이신 주님이 있으니까 승리하고 고비를 넘길 수 있다. 그래서 부활의 생명에 절정에 이르고, 우리 자녀들에게 부활의 영광에 비밀을 가르쳐야한다 자꾸 여러분 속에 염세적인 철학으로 사로잡히고 자꾸 죽고싶다 하는 생각에 잡히는 것은 사단에게 잡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얼마나 연약한가. 얼마전에 부산에서 자살하신 시장은 서울대 나오시고, 공무원계에서는 알아주는 분이다. 살다보면 어려움이 온다. 그런데 우리 복음의 근성있는 사람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하나님은 내 편이고 나는 결국 승리한다. 이 확신 가운데 부활의 근성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는데 불신자들 마음속에는 주님이 안 계시기에 굉장히 강하고 잘 나가는 것 같은데 문제가 오면 그대로 처박힌다. 그래서 사단에 속아 극단적으로 자살해서 죽는다. 자살해서 죽는다고 끝이나나? 자살 이후에 영원한 지옥 형벌이 진행이 된다. 오늘 인간에게 이 고통이 끊임없이 찾아오는가? 언제 끝이나는가? 성경이 말하기를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죄가운데 잡혀 죄로 말미암아 사망의 저주 아래 빠져 이땅 살 동안에 사단에 잡혀 사단에 종노릇 하면서 영적인 저주의 고난과, 정신적으로 시달린다. 우리나라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마음이 병들어 가는이들이 많은지..병중에 가장 큰병이 마음의 병이다. 여러분의 생각에 마음의 기쁨과 평안이 샘솟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주님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주는 것이 제일 큰 응답이다. 보이지 않는 내 영과 혼과 정신이 병들었으니 당연히 육체도 병이 든다, 삶이 병든다, 가정이 병든다, 그럼 결국 자녀들이 망한다, 그럼 멸망의 시간표데로 간다. 입력된 멸망의 길로 내려가고 있다. 연령대로, 상태별로..그래서 죽으면 끝장이 아니고 죽으면 지옥의 형벌이 영원토록 지속된다. 이것이 하나님 떠난 자의 가는 길이다. 오늘 이중에 처음 교회에 오셨거나 오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다면, 이 땅의 삶도 지긋지긋한데, 자살하면 끝이 아니고, 죽으면 끝이 아니고, 자살과 죽음의 순간부터 영원한 지옥의 불못에서 영원토록 끝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죄의 저주의 실존이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왜 고난이 계속되는가? 이 고난이 언제까지 가야 하나? 그럼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했는데, 내가 받는 고난과 어떤 관계가 있나? 고난은 왜 오나? 첫째는 죄때문에 온다. 둘째는 하나님의 자녀를 연단하여 큰그릇 만들기 위해서 훈련으로 고난이 온다. 그래서 이것은 죄의 값도 아니고, 죄는 주님께서 해결해 주셨으니까 이것은 성도의 연단으로오는 고난이면 기뻐하고 감사하며 갱신해서 속히 협력해서 갱신의 큰변화의 큰그릇 되기를 축복한다. 금그릇, 은그릇 만들려고 환경으로 훈련시키는 그연단은 감사한 것이다. 저희교회에 육군사관학교 졸업하신 분하고, 저도 짝대기 출신인데 죄송하다. 짝대기 출신하고 생각이 다르다. 태도가 다르다. 제가지나가면 몸에뵈어서 너무나 상사에게 대하듯이, 예절과 중심이 깍듯하다. 그러지 않은분들은 마음은 깍듯한데 표현이 안된다. 훈련이 저렇게 사람을 존귀하게 만드는구나. 오늘 여러분들이 영적훈련, 그리스도의 영광된 별을 따는 사람들이 되기를바란다. 훈련으로 오는연단은 감사한 것이다. 자꾸 협력해서 통과하고 갱신하고 영광의 자리에 올라가야 할줄믿는다. 그런데 이것은 훈련도 아니고 죄값도 아니고 하는것이 있다 할경우에 그것은 우리가 판단할것이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신비한 손길이다. 지나가보면안다. 결국 합력하여 우리에게 너무나 유익이 될줄믿는다.
<본론>
오늘 우리는 주님의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고 주의 만찬을 떼야겠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누가 왜 예수를 죽였나“이다. 요즘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영화가 나와서 굉장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데 복음의 관점으로 봐라.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학문과 책들을 심판할 수 있다. 우리는 보혈의 칼로 세상의 지식을 난도질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능력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 주님이 왜 고난을 당하셨나? 누구에 의해서 왜 죽임을 당했나? 예수님을 죽인 사람이 성경에 보면 27절에 여러명 나온다. 장로들이다. 서기관들이다. 바리새인들이다. 이들은 하나님덕분에 그 높은 자리에서 밥벌어 먹고 사는그 중요한 위치인데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뜻을 위하지 않고,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잡으러 간다. 또 누가 죽이나? 백성들이 흥분을 해서 죽이라, 예수를 죽이라, 바라바를 놓아라 한다. 이유도 모르고 죽이라고 한다. 제사장들이 돈을 쥐어 주니까 흥분해가지고 예수를 죽이라고 한다. 오늘 여러분이 절대로 객관성과 합리성을 가지고 여러분의 주관성이 있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는 사람은 사업 성공할 수 없다. 분위기에 흔들리지 말아라. 그 다음에 너무 안타까운 것은 가롯유다이다. 왜 예수를 팔았나? 바로 돈때문이었다. 오늘 여러분이 돈이 주님이 되시고 돈이 여러분의 삶을 다스린다면 돈이 여러분의 주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돈을 잔인하게 부려먹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돈 따라가기 때문에 예배실패, 영적실패, 사명실패 다 실패한다. 가롯유다는 돈 때문에 예수를 팔았다. 전혀 복음과 상관이 없다. 전혀 구원의 은혜와 상관이 없다. 빌라도. 불의한 재판으로 재판하여 죽음으로 내몰지 말라고 아내가 간청하였건만 빌라도는 대세에 의해서 타협했다.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불법재판으로 사형을 내린다. 무리의 만족을 주고자 복음을 이용하고, 대항하고 예수님을 죽인다면 그 보다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예수를 누가 죽였나? 우리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했다. 이사야53장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나의 죄,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며, 그가 채찍에 맞음은 우리의 육체의 저주 질병을 인함이요, 그가 마음의 고통과 징계를 맞으심은 우리의 마음의 모든 저주를 담당하기 인함이요, 부유하신 하나님이 이땅의 사람에 몸으로 오셔서 가난하게 사심은 우리의 환경의 저주, 가난을 짊어 지셔서 우리에게 부유를 주시기 위함이니, 우리 영적인 저주, 육신의 저주, 정신의 저주, 환경의 저주, 이 모든 저주를 담당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셨다. 결론적으로 나의 죄를 주님이 다 담당하시려고 죽으셨다. 그런데 살아났다. 죽었는데 살아났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다양한 존재인지..누가 왜 예수를 죽였나? 2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사단이 창3장에 그랬다. 여인의 후손이 오실 때 뱀의 후손들이 연합하여 로마의 전국과 교권과 백성들과 빌라도와 유다와 총연합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는데 성공한다. 사단은 성공한 줄 알았다. 사단의 권세는 죽음이다. 예수를 죽음으로 완전히 끝나버린줄 알았다. 사단은 마지막 실탄하나, 죽음이라는 실탄을 예수에게 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으시고 살아나셨다. 무슨 의미인가? 사단의 권세가 무효화되었다. 사단의 권세가 완전히 몰수당했다. 주의 부활로 말미암아 사단의 머리는 박살나버렸다. 깨져버렸다. 십자가 높이 올려서 희롱하고 피흘리게 했으나, 그 피가 하나님 만나는 참 선지자의 피요, 죄사함 받는 참 제사장의 피요, 사단을 영원히 박멸하고 운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참 왕의 피, 그리스도의 삼직의 피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흘러 내렸다. 그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한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니 세상들의 지혜, 관원들의 지혜로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사단은 완전히 당했다. 사단이 예수를 죽였으나 주님은 부활하셔서 오히려 사단을 죽이셨다. 이것이 십자가의 보혈의 피요, 부활의 권세인줄을 믿는다. 요10:17~18절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사단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죽을 권세도 있고, 안죽을 권세도 있고, 나는 완전한 자유자, 하나님인데 내가 사단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 인류를 위해서 내 자신을 죽음에 내놓는다”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믿는다. 주님이 힘이 없어서 사단에게 당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약점이 있어서 율법에 정죄받고 율법에 죽은 것이 아니다. 주님은 완전하신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원하셔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세상 죄를 짊어가는 어린양으로 스스로 죽으셨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다. 이것이 주님의 능력이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다. 이것이 주님의 권세다. 누가 이 영광된 복음의 길, 죽음을 스스로 찾겠는가. 높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인류의 모든 수치를 감당하고 우리의 구세주가 된다. 예수님은 반드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상에서 죽어야 한다. 모세에 의하여 놋뱀이 높이 들렸을 때, 모든 불뱀에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듯이 예수님은 반드시 십자가상에서 죽어야만 한다. 아까 몇몇 사람들이 자살하고 죽는 것을 들었지만, 복음을 위해서 갈2:20이 체질이 되어진 사람은 매일매일 영광된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잘 죽어야 한다. 죽음에 성공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 예수님은 죽기를 작정하여 자원하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자기 죽음에 대해서 얼마나 성공하려고 몸부림쳤는지 모른다. 누가 죽으려고 태어났나? 이 땅에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 죄값을 대신하여 죽으려고 이땅에 오셨다. 그래서 십자가상에서 승리의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한 줄 믿는다. 또 누가 예수님을 죽였나? 바로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을 이미 만세전에 예비해 놓으셨다. 인류에게 처음주신 메시지가 무엇인가? 창세기 2:17절에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선악과를 만드시고 너와 나와 계약을 맺자. 임의로 모든 것을 다스리고 중앙에 있는 선악과. 이 나무가 너와나의 계약이다. 저것을 볼때마다 나를 생각하고, 내 은혜를 생각하고, 내 중심을 생각해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따먹고만다. 그 순간 이미 독생자 예수를 보내기를 예배하셨다. 그래서 창3:15절에 즉시 여인의 후손이 올것이라고 하셨다. 먹으면 죽으리라는 순간에 예수를 준비해놓으셨다. 그래서 창세기 3:21에 아담, 하와의 창피스러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종교의 나뭇잎옷을 벗기고 어린양을 잡아서 피가 떨어지는 가죽옷을 지어 입힌다. 최초의 희생에 제물이다. 바로 어린양으로 오셔서 인류를 위해 피흘리심으로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사하실 것이요, 그 죄사함의 공로로 의의 영광된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실것을 이미 창세기 3:15~21에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서 보여주셨는데 그건 바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하나님이 아담 하와가 범죄할 것을 미리 아시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만세전에 작정해놓으시고 보내심을 믿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무어라 하셨나. 46절을 보자.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가운데 이 만큼 고통의 절정을 이루는, 이만큼 고통의 깊이를 가진 표현이 없다. 우리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번도 불리된 적이 없다. 늘 함께하는 생명의 완전한 영원한 관계이다. 단절, 분리가 죽음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아니라,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죄인의 대표다. 그러면 하나님은 공의심판을 사정없이 형벌하신다. 아들을 버리심으로 저와 여러분을 택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그리스도께 쏟아 붓는다. 우리 주님의 가장 큰 고통은 육체의 고통이 아니다. 버림받는 아픔이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아픔, 한번도 분리된 적이 없고, 한번도 나눠진적이 없었던 생명체인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아들을 버려야 하는 아픔이 하나님 아버지에게서는 가장 큰 아픔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어 버림받아야 하는 아픔이 십자가상의 가장 큰 아픔이었기 때문에 엘리엘리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잠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깨어졌다. 공의의 심판을 하는 자리에 그순간 아버지의 고통은 가장 컸다. 라마 사막다니, 탄식과 대드는 말이아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인류구원의 완성이요, 사단을 진멸하는 성령의 대완성이기 때문에 얼마나 영광의 절정이던지 태양이 캄캄했다.
<결론>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의 완전한 고난의 순종. 그만큼 우리는 너무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다. 우리를 학대하고 눌릴 필요가 없다. 신분의 자부심을 가져라. 자긍심을 가져라. 환경이 조금 어렵다고 눌리지 마라. 주님이 이토록 나를 사랑하신다. 이복음의 깊이를 만찬을 통해서 체험하셔서 한없는 은혜가 감격이 샘솟기를 축복한다. 그사랑을 증거하는 부활의 증인, 고난의 증인되기를 축복한다.
첫댓글 나는 믿네~ 거저받은 귀한 사랑~ 그 누가 대신하리~요. 나의 생명 다 할 때까지, 그 사랑을 저언하아리~ 요한아, 고마우어~ ^^*
헉,글씨가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