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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부터 4주간 목사님 부흥회 설교가 올라갑니다.-
2018. 5. 10. 부흥회 첫날 설교
본문▶ 사사기 7장16절~19절
제목▶ 항아리, 횃불, 나팔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은
사사기 말씀을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실거예요.
미디안이라는 나라가
당시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굉장히 많이 괴롭혔습니다.
성경을 보면 미디안의 군대가
13만 5천명이라고 말을 합니다.
지금 인구로 보면 13만 5천명이
별거 아니지만 당시 그 숫자는 엄청납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주변에 8개 국가가 있었는데
10만대군 이상을 가진 나라가
그렇게 흔치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13만 5천명이
조그만 땅 덩어리 이스라엘을
점령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많은 숫자의 군사가
그들의 땅을 밟아 버렸고
그들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그들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이르렀다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이 파종할 때가 되면,
미디안 군사가 짓밟아 버리고 뺏어갔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에게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내용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것에서
시작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6장 6절을 보면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인해
궁핍함이 심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심했다”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갖느냐면요.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감내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처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부르짖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저는 이번에 4일간의 부흥회를 통하여
“다시 부르짖는 영성”이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인해
7년간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사람이 힘들다고 부르짖는게 아닙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은혜인 것입니다.
“부르짖는다”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자나요.
한군데만을 바라보면서 내는 소리
즉 방향의 문제가 있고,
또 하나는 소리의 사이즈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향해 소리도 내야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목청을 높여서
주님께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탈무드를 보면 물에 빠졌다고
구해주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내야 구해준다는 것입니다.
근데 물에 빠진 사람은 많은 것 같은데
소리를 내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7년 동안 부르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부르짖는다”라는 단어가 관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지 않았던 일을 했을 때 쓰는 문법이예요.
이것만 보더라도 그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부르짖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렵다고 부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7년 동안 부르짖지 않다가
궁핍함이 심해지니까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있는데
그 선택을 너무나 잘한 것입니다.
무엇을 선택했어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그때부터 기드온이라는 사람을
등장 시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짖을 때 일하시는 거 알죠?
여러분이 가만히 계시면 하나님도 가만히 계셔요
여러분들이 마라의 쓴 물을 만났을 때
마라의 쓴 물을 생각하시면 안돼요.
마라의 쓴 물을 만났을 때
마라의 쓴 물을 생각하시면 안돼요.
마라의 쓴 물을 만나면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거예요.
마라의 쓴 물을 만나고 난 후에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세요?
“내 율례와 법도를 세우고 지키면
애굽에 내린 질병을 하나도 내리지 않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자나요.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 거예요.
너희가 마라의 쓴 물을 만나면
마라의 쓴물 때문에 불평과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겠구나.”
이것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자나요.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미디안을 만나게 되었을 때
미디안 때문에 힘들다 말하지 말고
미디안을 만나게 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힘든 것 보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하실 말씀이 있나보구나
이러한 영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6장을 보면
그들이 토굴 속에 숨어서 지냈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부르짖지 않습니다.
여러분 야곱을 보세요.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샀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것이
한 장면도 나오질 않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기도를 합니까?
품삯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까?
기도를 하지 않으니까
된 밥을 먹자나요.
14년 동안 품삯도 받지 못하자나요.
아무리 자기가 보기에 좋아도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처럼 우리 인생 고난 가운데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모습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한번 따라 해보세요.
“야곱아 이제 그만해”
세상적으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의 이름으로 넣어서 해봅시다.
“00야 이제 그만해.” 여러분 제발 그만 하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 말하며
군사를 모집합니다. 그랬더니 3만 2천명이 모입니다.
여러분 미디안은 13만 5천명이예요.
하지만 역사를 보면 적은 숫자가 이겼다라는 기록이 있자나요.
사실은 3만 2천명이 적은 숫자지만
그래도 한번은 해볼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하십니까?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테스트를 하시더니
몇 명만 남게 됩니까?
300명밖에 남지 않자나요.
여러분 300명을 남긴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사기 7장 2절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만 2천명도 그렇게 많은 것이 아닌데
하나님이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이냐?
이 전쟁은 이미 이긴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사사기 7장을 보면 똑같은 단어가 4번이나 등장하는데
“넘겨주리니” “넘겨주었으니” “넘겨주리니” “넘겨주었으니”
이게 4번이나 등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이 전쟁은 이긴 전쟁인데,
하나님이 보실 때
3만 2천명을 가지고 이기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 라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이겼다고 말할
그런 조짐이 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자나요.
나를 이야기 하고 싶은 영적 갈등이
얼마나 심하게 올라오는지 아세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다 말하면서
자기를 꺼내고 싶은 마음이 자꾸 올라옵니다.
그러니 3만 2천명을 가지고 승리하면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자기들의 자격, 자기들의 공로를 말한 가능성일
너무나 많아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 돌려보내고
300명만 남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다보니까 450대 1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3만 2천명이라면 작전도 세우고
여러 가지 병법도 세우고
여러 가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450대 1이 되어버리면
하나님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
여기에 무슨 전략과 병법이 통하겠습니까?
아무것도 사람이 할 수 있는게 없어요.
여러분 호주머니에 300원 가지고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됩니까?
맛있는 과자 한 봉지도 사먹지 못해요.
그러니까 300명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게 300명이예요.
하나님은 때론 우리 인생을
300명만 남겨주시는 거예요.
이 300명은 가지고
우리 인생에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여러분 돌아간 사람을 보세요.
두 종류의 사람이 돌아갔어요.
하나는 두려워서 떨며 돌아간 사람
하나는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사람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여러분 300명의 용사는
용사 같지만 약간 바보스러운 사람들이예요.
여러분 제가 쉽지 않은 일을 시켰어요.
그런데 두려운 사람은 이것을 순종할 수 있어요? 없어요?
두려워 떠는 사람은 절대
순종하며 행함으로 옮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물을 마실 때 무릎을 꿇고 마셔요.
세상에다가 무릎을 꿇어 버리고
자기의 환경 앞에 무릎을 꿇어 버린 사람은
절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빈 항아리를 들고
그 안에는 횃불을 집어넣고,
한 손에는 나팔을 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을 순종 한다는게 얼마나 바보스럽습니까?
남은 300명이 이걸 순종한다는 것은
두렵지 않은 사람이예요.
세상에 굴복하지 않는 것예요.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두려워서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보스러운 사람이 순종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절대 순종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똑똑한 사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바보 같으니까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 가라고 하셔서 가는 거야!” “어디로?”
“몰러 하나님이 가라고 하니까 가는거야.”
이처럼 바보가 아니면 어떻게 순종하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은 똑똑한 사람 다 돌려보내고
바보 300명만 남겨 놓으신 거예요.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도 바보들만 앉아 있는 거예요.
“돈 벌어야 한다.” “몸이 피곤하다.” 온갖 계산을 다해요.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절대 순종을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절대 일하시지 않아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원지 않으시는 응답을 주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이 어떠한 응답을 그들에게 주십니까?
많은 병사를 보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항아리를 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은
그래도 이 땅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부르짖는 영성까지 왔지만
하나님이 항아리를 들라고 할 때
그 항아리를 들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적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00명의 용사들은 이 항아리를 들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기까지 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에
토시하나 달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길 원하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은 300명에게 항아리를 깨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항아리를 깨면 무엇이 나옵니까? 불이 나와요.
여러분이 그 항아리를 깨지 못하니까 불이 안나오는거예요.
흙으로 빚은 우리 항아리 깨뜨리지 않으면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깨지 못하니까 부흥회 나오는 것도 힘들고
이것을 깨지 못하니까 순종하기도 힘든 것입니다.
밖에서 상담을 하다보면요.
어떤 사람은 20년 30년 상처를 끌어안고 있어요.
여러분 이것을 깨지 않으면요.
하나님의 불이 절대 없습니다.
본 교회 부흥회가 왜 힘든지 아십니까?
우리 교회는 하고 싶은 말을 절제하게 돼요.
혹이나 어두운 세력이 틈이 탈까봐요.
“하나님 나 들으라고 하는구나”
맞아요. 들으라고 하는거 맞아요.
그래도 마귀가 시험에 들게 할 수 있으니까
본교회 부흥회가 더 조심스럽고 힘든 것입니다.
여러분 깨어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제발 여러분 스스로 자신을 깨세요.
여러분 부흥회를 왜 하는 것입니까?
첫 번째는. 열매 맺으려고 하고,
두 번째는, 영적인 잠에서 깰려고 하고
세 번째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것을
거둬 낼려고 하는 것이 바로 부흥회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안에 있는 것들을 깨어 버리세요. /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해 하고
교회 오래 다녔다고 믿음 좋은거 아니라고 말씀드렸죠?
그 사람의 믿음은 지금의 은혜로 결정된다고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렸자나요.
그래서 이번 첫 부흥회 말씀을
이것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 싶은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깨세요.
여러분 아브라함이 먹을 것 없고
정말 살기가 힘들 때 떠나라고 하면
정말 할렐루야예요.
그런데 갈대아 우르는요.
먹을 것이 많은 식량이 풍성한 땅이예요
그러니 여기를 떠나는게 얼마나 힘들어요.
여러분 계산하면 떠날 수 있겠습니까?
300명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함께 모여서 으쌰으쌰 해보자 했는데
2만 명이 돌아갔자나요.
여러분 돌아간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이야 내가 안걸려서 정말 다행이다.”
“나는 살았구나” 이러고 돌아가지 않겠어요?
그런데 300명은 꿋꿋히 남아서
멍청하게 항아리를 들고 그걸 깨자나요.
바로 300명처럼 내가 들고 있는 항아리를 깨어야
우리도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집회를 하다가 얼마나 웃긴 이야기를 들었냐면요.
어떤 장로님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장로님들 자식에 대해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남매를 키운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 남매들 부흥회 나왔습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오늘 부흥회를 못 나왔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여러분 저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지만
그 자식 내 맘대로 됩니까? 안되자나요.
그런데 그 장로님이 어떻게 말씀을 하시느냐?
제 자식이 좀 잘나사 너무 바빠서 못나왔습니다.
이러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만약에 그 장로님이 제 자식의 믿음이 부족해서
부흥회를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까
제발 제 자식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세요.
이렇게 그 장로님이 말했다면 측은하고 안타까웠을 거예요.
그런데 그 자식이 하나님과 멀어져
세상과 가까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얼마나 속이 터졌는지 그거 아세요!
그 장로님은 뭐가 중요한지를 모르는 거예요.
그것을 변명으로 하고 있어요.
그런 의식이 많은 현대인들에게 잡혀있어요.
그러면서 “주여~”부르짖다가 집에 가는 거예요.
그러니 무슨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이 항아리를 끼고 살고 있는 거예요.
이 항아리를 깨야 적군을 이기는 거예요.
여러분 별거 아니라도 잘 들으셔야 해요.
내 영적인 상태로 인해서
미디안과의 전쟁 승패가 결정 되어지는 거예요.
3만 2천명이냐? 300명이냐?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엘리야는 850대1로 싸웠죠?
어떻게 싸웁니까? 자기 영적 상태부터 정검하자나요.
지금 내 영적 상태에 따서
이 갈멜산의 전쟁이 결정된다고 생각을 한거예요.
저들이 850명이냐? 8500명이냐? 85000명이냐?
이런 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미디안과의 전투 앞에서 해야 할 것이
영적상태를 돌아보아야 하는 거예요.
이거에 따라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결정되어지는 것이지
숫자에 따라서 결정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내 영적 상태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왜 지는 것입니까?
내 영적인 상태를 모르니까 지는거예요.
항아리를 안깨니까 횃불이 못나오니까
그래서 지는 거예요.
내가 무엇을 깨야 하는지
무엇을 잘 못 가고 있는지
그걸 모르니까 지고 있는 거예요.
이러면서 우리가 영적으로 얼마나
허약해지는지 아십니까?
겨우 겨우 부르짖는데까지 왔어요.
3만 2천명이 모였어요.
그런데 남은 것은 300명 밖에 없어요.
3만2천명이나 기도하고 부르짖었는데
실제로 말씀대로 옮긴 사람은
300명 밖에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계산하면 못깨요.
따져보면 절대 항아리를 못깨요.
여러분 이번 부흥회 때 승리하고 싶자나요.
그러면 여러분의 항아리를 깨야 해요.
그리고 하나님의 횃불이 등장하게 만들어 줘야해요.
하나님은 전쟁도 치르기 전에
승리 후에 염려를 말하셨자나요.
이미 승리는 준비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승리의 주인공은 이 300명인거예요.
제가 300명이라는 숫자에
마음이 굉장히 뜨거운 목회자입니다.
현수막에 적혀있는 숫자는 500명이지만
실제로 제 안에 담고 있는 숫자는 300명이예요.
나는 우리 교인들이 300명만 되면 좋겠어요.
우리 교인 300명되면요.
이제는 정원이 다 찼다고 들어오지 말라고 하세요.
제가 목표하는 것이 있어요.
내가 하루에 1분이라도 하루도 빼지 말고
우리 교회 전 성도를 위해 기도하자
그런데 그것도 버거워요.
이제 300명 얼마 안남았어요.
조금 있으면 우리 교회 문이 잠깁니다.
제가요 뷔페가서 깨달은게 있어요.
우리교회 어떤 분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이 먹지도 않으면서
음식을 계속 가져 오는 거예요.
지금 누군지 알거예요.
설마 나겠어? 라고 하는 사람
바라 그 사람입니다.
여러분 다 먹지도 못해요.
제가 그릇이 작은가봐요.
키를 보세요. 작잖아요.
그래서 300명이 좋은거 같아요.
여러분 항아리를 깨서
횃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항아리를 깨야지만 횃불이 나오는 것이고
횃불이 보여야지만 나팔을 불 수 있는 거예요.
항아리 안깨지면 절대 승리할 수 없는 거예요.
여러분 이 항아리 누가 들 수 있는 거예요?
바보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들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의 항아리 깨시고 횃불을 보시고
승리의 나팔을 부는 승리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인생의 미디안이라는 문제를
싹 몰아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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