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士 최윤수
최윤수 변호사가 갓 입대했을 때 내무반에서 고참이 쫄다구들을 앉혀놓고 "올해가 무슨 해냐?" 하고 물었는데
한 놈도 대답하는 놈 없었다고 한다. 전부 눈만 멀뚱거리고 앉아있었다. 한명 있는 대졸출신 삼육대학 나온 놈에게
“야 임마 올해가 뭔 해냐” 하자 “근하신년요” 하고 대답해서 열 받은 고참이 “이새끼 지금 농담 따먹기 하냐?”
하고 성질을 내니 “달력 앞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던데요...”하다가 주어 터졌다고 했다.
하기야 1학년 때 오형석 교수의 보건시험에서 ‘왜 여자가 택일(擇日)을 해야 하느냐’는 시험문제에
대강당에서 서로 ‘생리일, 생리일’하며 속닥거리는 소리를 듣고‘생년월일’이라고 답을 쓴 4학년 천풍조선배가 생각이 난다.
性이야기가 거의 터부시 되었던 시절, ‘생리일’이라는 말은 천풍조 선배에게는 참으로 생소한 말일 것이어서
‘생년월일’로 알아들었다는 것은 그렇게 큰 죄는 아니다. (그 선배는 재수강했던 과목임)
그러나 ‘올해가 무슨 해냐’ 라는 물음에 ‘근하신년’이라고 답하는 놈과 같이 동무해서 생활한 최변호사를 보니
한심한 생각이 들어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날 최변호사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옛날 어느 산골에 처가살이를 하던 소금장수가 있었는데 단칸방이었던 관계로 장인, 장모, 처제와 날마다 한방을 써야만 했다.
소금장수는 소금을 팔고 밤늦게 돌아와서 눈치껏 마누라를 챙겼는데 불 꺼진 깜깜한 방에서 소란 피우지 않고 마누라를
제대로 찾는 것만도 큰 일이었다.
어느 날은 아침에 소금가마를 챙기면서 마누라를 불러 오늘 저녁은 문간에 누워 잠을 자라고 은밀히 일러주었다.
그런데 과년한 처제가 그것을 엿듣고는 언니가 잠든 사이에 안으로 밀치고 자신이 문간에 누워 기다렸다.
밤늦게 들어온 소금장수는 다짜고짜 문간을 덮쳐 일을 끝내놓고 보니 마누라가 아니라 처제였다.
소금장수는 다음에 누워있는 마누라와 다시 일을 치루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보고 있던 장인이 아내를 찔러 깨워서는
“임자! 저쪽에서 줄빵 들어오고 있으니 치마끈 뽀끈매소”하더란다.
그날 오후, 모임으로 만났던 인사동 식당은 완전히 디비져 버렸다.
광교산에 갔을 때 내가 최변호사의 소금장수 이야기를 했더니 석교수가 “그시끼...”하면서 우스워 죽겠단다.
그리고는 “어이! 까페에 들어갔더니 그시벌놈이 ‘束帶發狂欲大叫하소서’ 라고 멘트를 해 놓았는데
그거 대단한 말인데 그 시키가 거기 글을 써 놓았더라” 하기에 나도 장단을 맞추어
"갸가 법은 전문가지만 다른 분야는 무식해서 뜻이나 제대로 알고 썼겠어?” 했더니
“아니야 그시키는 많이 알어. 분명 책을 봤을거야”해서 둘은 한동안 정신없이 웃었다.
우리는 평소에 최변호사를 잘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나와 석교수가 만나면 최변호사 이야기를 많이 한다.
“주변에 많은 변호사들을 만나봤지만 그 시끼처럼 아는 것이 많은 변호사는 잘 없더라”며 최변호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우리 둘이 만나면 호칭은 ‘최변호사 그시끼’로 통한다.
정겨운 애칭인데 이제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어떤 때는 좀 미안할 때도 있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 있을 때는 우리는 정중하고 좋은 말만 한다.
친구들이 산행에서 만나 요즈음 作號에 열심들인데 최변호사의 號는 훨씬 전에 이미 석교수가 雜士라고 지어주었다.
雜士는 博士보다 한 단계 상위개념이라며 윤수도 아끼는 호칭이다.
雜士는 친구의 애정이 듬뿍 담겨있는,호중에 최고로 기발한 걸작이다.
‘그시키’라고 아무리 많이 해도 ‘雜士’ 하나면 덮고도 남는다.
우정이 듬뿍 담긴 정겨운 이름 ‘雜士 최윤수!’
첫댓글 ㅎㅎㅎㅎㅎ......... 너무 웃긴다........... 배꼽 빠지겠네.........
오래 못봐 궁금했는데 건강히 잘 계시는 것 같네요. 사업 더욱 번창하시길 바라며 가끔 한번 봐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