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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평요 고성에서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 이라고
수염이석자라도 무야지요 잠시 밤 좀 묵고 평요 고성으로 갑시다.
높이 12m, 둘레 6km에 달하는 성벽 안에 약 4천여 세대의 고택이 있고,
성벽에는 4개의 탑이 있으며 망루 72개가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며 서있는 곳,
지금까지 역사의 잔 때가 흠뻑 밴 고성 안에서 대대손손 이어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평요고성의 북문
무슨 영화 시나리오에서나 나올 듯 한 글이지만 내 글재주가 요만큼인걸 어쩌랴!
지금 우리는 왕가대원을 떠나 중도에 점심을 먹고 평요고성으로 향하고 있다.
거의 모두 점심 후의 나른한 몸을 꼭 병든 닭이 졸 듯 꾸벅꾸벅 고개를 끄덕이며 앉아있다.
장벽고보를 소개한 브르슈어
오는 도중에 장벽고보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이지만 우리가 탄 차는 그대로 직진.
아마도 특별히 투어를 진행하는 일행들은 장벽고보를 들어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잘 먹고 잘 보고 오래 오래 살아라."
은근히 질투 섞인 부아가 치민다.
장벽고보의 지하2층이라 한다.
아직도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수련이 부족한 모양이다.
그러나 장벽고보는 답사하고 올려놓은 글을
그 읽은 내용으로 대신하련다.
베트남의 구찌터널 입구
"뭐 베트남의 구찌터널과 비슷하겠지"
베트남의 구찌터널 역시 3층 구조로 되어 있으며 지하에 학교까지 세워져 있었다.
구찌터널 계단
배가 아파서(?) 베트남의 구찌터널까지 들먹이는 내 꼴을 보면
저런 심술쟁이 영감탱이를 다시는 이런 여행팀에 끼워주나 보자고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순수한 로맨스를 추구하는 신사(?)다.
하긴 세상에 있는 신사가 다 죽으면 신사 소리 들으려나. 원……. 주제파악도 못하고…….
산시 성(山西省)의 2,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중국의 옛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성이 평요고성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예부터 대대손손 내려오는 2500년 역사가 깃든
핑야오 시민들이 살고 있다.
평요고성의 성곽
평요고성은 서주(西周) 시대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
성벽과 건축물은 대부분 명나라 때 지어져
명ㆍ청 시대의 건축과 문화, 경제, 사회모습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평요고성을 ‘중원문화의 보물창고’라 칭하며
중국의 4대 고성 중 하나로 뽑고 있다.
여의도의 약 5배에 달하는 면적 속의 핑야오시, 시민 50만 명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
고성의 실제크기는 성벽 둘레 6,163m, 면적은 여의도의 4/5 크기다.
고성 속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약 1만여 명으로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다.
이곳에 장사라면 남들한테 뒤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진상(晉商)들이 살고 있다.
지금도 그들은 선조들의 후광을 이어받아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평요고성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관리를 받고 있다.
성(城)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갖춘 도시인만큼 성문을 걸어 잠그면
사방의 모든 것과 단절되는 도시이다.
우리 매전40 친구가 탄 차는 평요고성 북문에 도착했다.
평요고성은 일반적인 자동차 운행을 금지하고 있고 전동차만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북문 밖에서 전동차로 갈아탄 후 이동하게 된다.
평요고성의 북문 주차장
내가 중국 여행에서 제일 큰 감명을 받은 것은 어느 관광지를 가도
일반 차는 절대 출입금지라는 것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전기 차나 개스차만이 출입을 할 수 있어 공기가 깨끗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도 이 차를 운행시키는 기사와 회사의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 모든 전동차를 기다릴 때 우리의 안테나(?)께서는
매우 바삐 움직이신다.
전동차를 흥정하기 위해서다.
전동차 운전기사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호객 행위를 하기 때문에 난리법석이다.
가격 흥정으로 몇 번을 망설이던 가이드가 마침내 결정을 한다.
우리 매전초등 40회 친구들은 12명씩 전동차 5대에 타고 출발한다.
평요고성의 북문 주차장의 전동차
차가 성 안으로 들어오자 도로에서 먼지가 몹시 날린다.
기사는 정신없이 속력을 내며 차를 모는데 이건 완전히 곡예수준이다.
좁다란 골목길을 요리조리 빵빵거리며 달린다.
평요고성의 성곽 안 토성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눈에 띈다.
성 밖에서 볼 땐 성곽이 전돌로 쌓여졌는데 안에서 보니 토성이다.
중간 중간에 빗물 내리는 통로에만 전돌로 쌓아 놓았다.
전 속력으로 달리는 전동차
차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전 속력으로 달린다.
중간의 교차로에서도 교통질서는 엉망이다.
먼저 몸통을 딜여미는 쪽이 우선권인 모양이다.
움찔움찔 몸과 마음이 떨린다.
교차로에서도 들이밀면 우선권?
누런 황토의 성곽, 군데군데 흙이 무너져 내리고
죽은 듯이 있는 을씨년스런 회색의 높은 담장,
흙먼지와 함께 들리는 빵빵거리는 경적소리
여기에 대륙에서 몰아오는 듯 한 역사의 쾨쾨한 냄새가 어우러져
평요고성 특유의 냄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요고성은 주민이 연탄을 연료로 쓰고 있다.
아니! 연탄가스 냄새도 같이 난다.
차가 지나가는 골목길의 민가에선 연탄불을 이용하여
바깥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다.
연탄가스의 특이한 냄새와 그 위에서 조리되고 있는 음식 냄새가
마치 외국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방인의 시선을 붙들고 있었다.
평평요객잔의 정문
차가 객잔 안으로 들어와 정차 한다.
‘평요객잔(平遙客棧)’이다
잠시 마당을 둘러보니 객잔의 규모가 호텔수준이다.
평요객잔의 내부
‘객잔’이란 중국의 여관으로 주로 상품을 거래하거나 상담을 하는 지방 상인의 숙소였다고 한다.
물론 입구에도 분명히 평요호텔이라고 영문으로 적혀있기 때문에 호텔인 것은 분명하다.
청나라 시절 주막과 같은 이곳에 짐을 풀고 이곳저곳을 돌아봐야 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 한 신비감을 느끼며 관광을 시작해야 한다.
이곳의 객잔은 명·청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형태가 많다.
대부분의 객잔이 사면을 방으로 두르고
가운데에 정원을 꾸민 사합원(四合院, 쓰허위안)이다.
도삭면가게의 간판
우선 객잔 정문으로 나와 옆을 보자 바로 도삭면을 만들어 파는 음식점이 있다.
그런데 역시 음식 만드는 연료가 연탄이다.
하긴 연탄으로 물을 끓여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곳에 도삭면이 유명하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있어
어깨에 판을 대고 얇은 칼로 국수를 잘라 물에 넣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도삭면을 만드는 장면
역시 우리나라에 와서 저렇게 하면 '달인' 소리를 들을 만 했다.
하긴 세계의 국수가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중국의 국수 역사는 바로 산시 성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산시 성(山西省)의 연평균 강수량은 600mm 이하로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쌀농사보다는 밀, 수수 농사를 많이 지었고
이런 밀과 수수를 이용한 국수 문화가 빨리 발달했다.
길거리서 도삭면을 먹고있다.
또한, 산시 성은 중국의 최대 석탄 매장지역으로 풍부한 석탄을 이용한 뜨거운 불로
재빠르게 끓여낸 국수가 이 지방 사람들의 입맛에 맞았다고 한다.
국수의 종류는, 면발을 잘라내는 도구의 종류와 소스와 소스 만드는 법에 따라
국수의 종류가 400여 가지에 달한다고 한다.
어깨나 손에 반죽을 올리고 재빠르게 면발을 잘라내는 도삭면(刀削面, 따오샤오미엔)이나
면발을 길게 한 가닥으로 뽑아내는 일근면(一根面, 이꺼미엔) 등
산서성을 대표하는 면 요리는 면을 뽑아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다.
도삭면은 손이나 어깨에 밀가루 통반죽을 올리고
구부린 철판 같은 날카로운 물체로 재빠르게 면을 깎아 끓여낸 국수를 말한다.
도삭면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이 바로 면발을 깎아내는 도구인데
산시 성에서는 절대 일반적인 부엌칼은 이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길거리의 음시점
부엌칼 대용으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것은 얇은 철판이다.
그런데 왜 도삭면은 얇은 철판으로 면발을 깎아내는가?
그 이야기는 칭기즈칸이 중원을 통일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칭기즈칸이 중국을 지배할 때 자기에게 저항했던 한인(漢人)들의 정변이 무서워
모든 백성의 금속도구를 몰수하도록 했단다.
요리에 사용하는 부엌칼은 10세대 정도의 가구에 하나씩만 사용할 수 있도록 통제했다.
사람들은 부엌칼을 사용하려면 종일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엌칼을 사용하려고 순번을 기다리면서 지쳤던 한 사람이
우연히 길에 버려진 얇고 작은 철판을 발견했다.
철판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 수 없을까 생각을 굴리다가
좋은 수가 생각나 음식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는 비교적 쉽게 썰어지는 밀가루를 반죽해 얇게 쳐내 끓는 물에 데쳐냈다.
이렇게 만든 밀가루 음식은 맛도 좋고 시간을 들이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어 삽시간에 널리 알려졌다.
이렇게 생겨난 면이 바로 지금의 도삭면이란다.
물론 아니면 말고, 믿거나 말거나 이다.
길거리의 꼬치구이 장수
우선 눈치로 평요고성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길을 찾는다.
관광객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버린다는 평요고성.
이곳을 찾은 중국의 관광객들이 많아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 때문에 밀려다닐 지경이다.
오이를 물에 담궈 팔고 있다. 아이가 만지는 것.
그러나 북적대던 평요고성은 의외로 호객꾼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골목길이 좁지 않고 다니기가 편리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도시에 비해 조금은 깨끗한 편이다.
왁자지껄한 소리는 물론이고 시장처럼 호객하는 소란스런 분위기도 아니다.
이것은 아마 중국에서 가장 장사를 잘 한다고 소문이 난 진상(晉商)이
평요고성에 그 명성을 이어가기위한 자구책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들의 선조는 이곳에서 전국을 상대로 한 포목이나 소금 등을 팔며,
더구나 신용이 있는 은행업무로 살았기에 그 영향이 컷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평요고성의 카페
양쪽 길로는 각종 먹거리를 파는 영세노점, 작은 카페와 중국고유의 식당,
그리고 그 식당과 함께 있는 객잔들이 즐비하게 있다.
작은 카페에 앉아 이곳의 명물이라는 쇠고기 육포에
얼음에 차게 얼린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나지만,
지금 나에게는 그것은 꿈같은 일이다.
아! 옛날이여! 언제 술 좀 마시려나…….
우리나라 서울에 있는 인사동거리를 가면 고서점과 화랑, 골동품상 등이 많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노점에는 옛날 물건뿐만 아니라
중고품 등 마치 벼룩시장과 같은 여러 가지 잡동산 물건들이 많다.
평요고성의 시루
얼마동안 걸었을까? 길 앞에 커다란 문이 보인다.
여기가 바로 평요고성의 중심이 되는 시루(市樓)다.
시루에 오르면 평요고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평요고성의 시루 위에서 본 모습
새벽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본다면 매우 장관일 것 같은데
관광객들에게는 새벽에는 공개를 하지 않는단다.
시루에 올라가 고성 전체를 보려면 입장료를 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루로 올라가려고 줄을 서 있다.
입장료가 5위안이다.
관광객이 많다.
누가 평요고성 시루에 와서 돈 받고 입장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난 돈 받고 올라갔다 내려 온 사람이라고…….ㅋㅋㅋㅋㅋㅋ
내가 이렇게 유명하다우…….ㅋㅋㅋㅋㅋㅋ
평요고성의 시루 위의 관우상
시루로 올라가는 계단은 무척 가파르다.
어둡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 다시 문으로 기다시피 꺾어 올라가니
관우상을 모신 공간이 나온다.
그러자 시루 아래 남대가 길에 있던 관광객들의 함성이 들린다.
총각을 구합니다.(?)
"이 아가씨가 신랑을 구한다."는 이야기라고 귀띔한다.
여기서 우리 일행은 높이있어 인증 샷을 찍고 싶었는데 넘 아쉬움을남기며....
총각도 아닌데 거기서서 뭐하슈?~~~
평요고성의 야경
운남리강에 있는 카페 벚꽃마을 분점이란다.
밤의 시루
꼬치구이가 무척 짜다
자 이제평요를 뒤로하고 임주로 이동하여
저녘 식후 하하하하 이뿐아줌마는 파릇 파릇한 총각으로 부터
멋진 아저씨는 어여뿐 숫처녀로부터 전신마사지 제험
생각만해도 춤 넘가너만 ㅎㅎㅎㅎㅎㅎ
자 그리고 잠이올까 몰라
자 그렇이만 꿈나라로 가는 것이다. 내일을 위해…….
"에이~~ 오늘 밤은 슬픈 사랑 추억이나 생각하며 자야지"
첫댓글 참 대단하십니다. 나는 걸어가며 눈요기 하기도 바쁘든데
가이드가 자기 밥줄끊어질까 걱정하겠네. 그때는 대충보고.듣고했는데 이렇게 자상하게
설명해주니 복습효과가 팍팍 나는데요. 이렇게 수고해주는 친구가있어서 많은친구들이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