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요 16:13) >>>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지난 주간의 뉴스는 튀르키예 강진으로 약 2만 명의 공식적 사망자와 아직 구조하지 못한 약 20만 명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갇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을 집중하여 보도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북한은 열병식을 통해 사상 최대의 미사일을 공개하며 축제의 분위기를 가졌고 우리나라는 여전히 정치적 싸움으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의 사회는 물질의 풍요로 많은 혜택을 가지나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뜻하지 않는 문제와 사건의 위기와 어려움으로 실족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도 실족지 않기를 원하신다. 이를 위해 성령을 보내셨고, 성령은 우리와 함께하여 우리 영혼과 삶을 보호하고 인도하신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믿음 생활에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평범하고 아무 능력과 기쁨이 없다. 찬송과 기도로 예배하여도 별 감동이 없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면 진리를 알게 되어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영혼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진리를 알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오시(면)’ e[rcomai (2064 엘코마이 VSAA3S e[lqh/) 들어가다. 임재하다.
‘오시면’은 일방적으로 무조건 오심을 말하지 않는다. 오실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어와 함께하기를 원하신다. 십자가로 죄를 사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지 않고 게을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한다. 성령이 없는 믿음 생활은 공기 없이 숨을 쉬는 것과 같다. 믿음은 도덕적이며 윤리적 행위를 좇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임재로 영혼의 강건함을 회복하여 삶에 활력을 갖는 것이다.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근심에서 벗어나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구원의 확신으로 영원한 심판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광된 삶을 살게 한다.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하면 세상의 영을 받게 된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이 없다. 빛이 아니면 어둠이다. 세상의 영은 사탄의 영으로 사망을 뜻한다. 성령은 ‘나’를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을 베풀어 하나님의 영, 성령으로 충만하게 한다. 그리고 모든 일에 동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한다. 성령이 오심을 사모하고 기쁨으로 영접하는 믿음이 되어야 하겠다.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일은 결단코 쉽지 않다. 자신의 자아(의식, 관념)가 자신을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집과 주장을 내세우며 칭찬받고 사랑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높이는 행동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는 생각과 행동이 습관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은 성령으로 진리 가운데로 인도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아가 자신을 속여 자신을 높이려고 몸부림치게 하는 것이다.
요 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인도하시리니’ oJdhgevw (3594 호데게오 VIFA3S oJdhghvsei)
안내하다. 가르치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한다. 그러나 우리의 잠재된 성품은 이 사실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여러 핑계와 이유로 장애물을 만들어 ‘그것 때문에’이란 변명과 합리화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게 한다. 성령은 장애물을 뛰어넘도록 돕는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세상 지식과 이해로 무장한 감정과 고집의 믿음 생활을 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아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항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가르침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안내를 받는 것이 믿음이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 성령으로 함께하여 우리의 영혼과 삶을 가르치며 안내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하겠다.
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가 진리의 영이라고 소개한다. 하지만 진리의 영은 아무나 받지 못한다. 하나님께 택하여 구원받은 사람만이 받을 수 있다. 진리의 영은 받는 것으로만 끝나면 안 된다. 진리의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볼 수 있어야 하며 그 은혜를 체험하여야 한다. 이로써 우리의 영혼이 강건으로 회복하고 생명의 길로 인도받아 복된 삶을 누려야 하겠다.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주변에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의 말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본다.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다 옳다고 주장하기에 확신 되지 않은 일도 ‘그럴 것이야, 그렇게 될 것이야’라고 자기 의도대로 말한다. 이 사회는 일방적으로 말하기를 즐겨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마치 친구가 하나밖에 없듯이 호감과 애정을 가지고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의도대로 말을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복음을 선포하셨다. 그리고 소경 바디매오의 외침같이 힘들고 어려움 현실에 처한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다.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거 알고 있어’라고 말하며 상대의 말을 가로채며 자신의 수준을 자랑하려 한다.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 말씀을 충분히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요 16:13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듣는’ ajkouvw (191 아쿠오 VIFA3S ajkouvsei) 경청하다. 들어서 깨닫다.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다. 소돔의 멸망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하나님의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롯의 간청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소돔은 풍요와 태평으로 교만하여 가난한 자를 돕지 않았다. 가난한 자들의 인격을 무시하여 그들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을 존중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해야 한다. 말씀을 들어서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성령의 사람은 자기를 높이며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여 깨닫는 것을 좋아한다. 성령의 오심은 우리가 명예를 높이는 자가 아닌 믿음의 인격자가 되게 하신다.
요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지금도 성령은 우리 속에 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다.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게 하심을 깨닫게 한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 자신을 높이며 말하는 자는 구원받아도 상급이 없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말과 행동을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을 누리는 믿음이 되기를 축원한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