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대 수변길
정정희
멀리 미세먼지가 뿌옇게 덥혀 있다. 가득이나 힐링이라며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세먼지 때문에 집밖으로 나오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드러는 있다. 건강하기 위해 산을 가는데 같이 가기로 한 일행이 꺼려한다. 하루쯤은 집에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에 내 발걸음마저도 무겁게 느껴진다.
친구의 부재가 참 크게 느껴진다. 두 달 전부터 편찮으신 고문님께서 아직 산행은 무리이신 것 같고 회장님께서도 걷기가 불편하셔서 몇 달 전부터 산행을 못 오신다. 빠른 쾌유를 빌면서 그러면서 내 마음이 숙연해진다. 임기 몇 달 남지 않았는데 벌써 여기 저기 구멍이 송송 뚫려 찬바람이 이는 느낌이다.
회동동 종점에 도착하니 낯익은 선생님을 향해 간사한 마음이 벌써 해맑은 미소로 다가가고 있다. 매달 참석 하시는 선생님도 계시지만 얼굴 잊을라치면 첫사랑의 문산이 그리워서 가슴앓이를 하다가 결국 귀소본능으로 찾아온다. 그럼 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나 금세 스며드는 곳이 바로 정든 문산이 아닐까.
인원점검, 아홉 명의 선생님이 참석 하셨다. 신도로가 생겨서 구도로(옛길)는 한산했다. 아스발트 길을 점령을 해서 짝지어 소설과 아동이 마주하고, 시와 수필이 비벼진다. 삼삼하고 달콤한 맛은 어느 음식점의 맛보다 감칠맛이 난다. 여기 저기 기웃거려 보지만 간이 딱 맞은 곳이 문산이다.
임도로 접어들었다. 휭하니 겨울 산이 추위에 맞장을 뜨고 있다. 지난가을에 떨어진 나뭇잎이 아직 제 자리를 못 찾고 발길에 부서지고 있다. 뚜벅거렸던 발걸음이 딱 멈춘 곳은 회동수원지가 그림같이 펼쳐진 곳이다. 아홉 산 반 쯤 올라왔으니 눈 아래 호수가 훤히 보인다.
길을 잘 정비해 놓았다. 갈맷길의 선풍적인 인기몰이가 지방자치제에 아름답게 재탄생되고 있다. 오륜 대 수변산책길이 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몇 년 전부터 48년 만에 개방한 길을 이어 누구나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여름에 이곳을 다녀갔다. 가득 담긴 물이 찰방찰방 소리를 내곤했었는데 꽉 찼던 물이 빠져나간 흔적이 황토 빛 살점을 그대로 드려내 놓고 있다. 심한 갈수기다. 나무뿌리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려내 놓았다. 가장자리에는 바람을 인다. 얇은 곳은 물은 얼었다. 호수가 조용하다. 가끔 백로가 노닐 는데 텅 비어 있다. 백로 서식지가 상류에 있는데 오늘은 뜸하다.
길은 완만하고 경사면도 서쪽보다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 금정산 가시거리가 짧아 실루엣 속에 비췬다. 부엉 산과 땅뫼 산을 앞에 두고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억새밭에 앉고 보니 황금양탄자 위에 앉은 것 같다. 이시간이 참 즐겁다. 우리가 차리는 식당은 추가 요청도 없을 뿐 차린 음식이 모자라지도 않는다. 늘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먹는다.
음주가무가 몸에 베인 우리의 민족성은 어디를 가나 즉흥적으로 어우러진다. 김 선생님의 그 날 밤 역전 카바레 노래는 후식으로 등장한다. 얌전한 정 선생님도 분위기에 박수를 치며 잠시 함께 동심으로 돌아갔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일 내게 무슨 일이 생길지 다 잊고 순간 동화되었다.
이곳 풍경은 부산8대중 하나인 오륜대가 있다. 주변경관에 넋을 잃은 선생님의 발걸음이 주저거린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는 모래백사장처럼 은빛으로 깔끔하다. 출입금지라는 묵시적인 줄을 넘어 들어가서 오륜 대를 배경으로 족적을 남기고 그 줄을 다시 넘어왔다. 생과사가 줄 하나로 연결 되어 있으면 가끔씩 힘들 때 줄 저편에 가서 하루쯤 쉬었다가 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편길이 가물거린다. 황토 길의 붉은빛이 내 눈과 맞닿았다. 편백나무 숲 벤치도 텅 비어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걸 봐서 겨울 산이 추워 웅크리고 있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맑은 공기를 돈으로 사서 먹는다면 사먹을 돈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도 푸지기 수 일 것이다. 이렇게 좋은데 함께 하지 못한 선생님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적 손실도 크다. 치유 오늘이 길은 치유의 숲길이다.
아름답던 산길은 자근자근 밟으며 날머리, 장전2교를 나왔다. 편리한 교통을 이용하고 싶지만 짧은 거리에 좀 더 걷자고 하셨다. 상현마을까지 공지 개요대로 걸어 나왔다. 전망대에 잠시 쉬었다. 넓은 상류가 샛강이 되어 있다. 태양이 90도쯤 기울어졌다. 호수에 내려앉은 윤슬은 피아노 건반위에 손동작처럼 일렁인다.
선동은 조선시대 때부터 선동이라 불러져 왔다. 선돌(입석)이 있어 선동이라고도 했고 또한 신선3분이 상현. 하현, 신현 살았다고 한다. 상현신선과. 신현신선이 바둑을 뜨면서 노닐었고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선동이라 하였다.
하정, 상현, 하현. 신천, 신현 5개의 자연마을로 구성, 하현 마을은 1960년대 중반에 회동수원지 확장 공사로 없어져 4개 자연마을만 남아 있다. 선동은 그린벨트지역이고 상수도 보호 구역으로 지역발전도 미약한편이지만 시골 같은 전원 풍경과 맑은 공기도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평안함을 선사한다.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는 개발재한 구역이며 화훼와 당근을 주업으로 생활하고 있다.
신천천은 회동수원지로 흘러드는 수영 강 상류에 있는 하천이다. 선동 북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 신천마을 앞을 흐르는데서 이 일대를 수영 강 상류를 신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오륜동은 다섯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놀았다는데서 유례 하여 지금의 오륜 대라 부른다.
풍광이 수려하고 자연이 그대로 숨 쉬는 도심 속에 전원. 오늘 수변 길을 걸어오시면서 자연이 살아 있음을 느끼며 참 많은 치유의 선물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듯이 문산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견인차라고 생각하시고 매달 정기산행에 함께 어우러지면 좋겠다.
2차 회장님께서 오셨다. 책임감 때문에 가시방석에 앉았다가 나오신 듯했다. 따끈한 국밥으로 포근함을 보너스로 채우고 하루 숙제를 끝낸 기분으로 장윤정의 초혼을 흥얼거리며 노랫말에 푹 빠져 다음 산행지를 물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