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임시정부청사>
임시정부 청사로 사용했던 건물들 대부분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임시정부청사로 알고 찾아가는 곳은 마당로에 있는 3층짜리 벽돌집으로, 임시정부는 1926년부터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 직후까지 이곳을 청사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을 발굴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복원한데에는 삼성물산의 공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 1층에는 임시정부 요인들이 단체로 촬영한 사진이 걸려 있고, 2층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사진과 휘호가 있는 것 말고는 별 다른 볼거리는 없지만 그래도 꼭 들려야 하는 곳이다.
현재 이 건물의 관리는 중국정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백범
김구선생의 휘호

< 예원(豫園 >
예원이라는 이름은 '유열노친(愉悅老親:부모를 기쁘게 한다.)'의 '愉'자와'豫'자의 뜻이 같은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예원은 외탄과
나란히 되는 샹하이 2대관광명소중의 하나이고, 상해에 방문하는 관광객들 중 대부분이 반드시 방문하는 장소이다. 면적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봐도 30분이면 충분하다.



<홍구공원(노신공원)>
홍구공원의
이름은 노신공원으로 바꿔 있다.공원 안에는 노신의 묘와 기념관이 있다.
우리에게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의거 현장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현재는 윤봉길 의사의 뜻을 기념하기 위하여 정자와 의거 현장비가 세워져 있고, 정자안에는 윤봉길 의사의 사진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 샹하이 푸동지역의 야경 >

몇 년 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의 샹하이를 방문하여 천지개벽이 일어났다는 극찬을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홍콩이 영국과
청나라의 아편전쟁 후 1842년 난징조약에 따라 영국에 넘겨져서 초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양자강 어구의 조그만 어촌인 샹하이도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이 치외법권을 누리는 조차지로 국제적인 도시로 변하였지만 사회주의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샹하이는 홍콩의 그늘 속으로 빠져들어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도시로서의 샹하이의 위상은 중국의 최대 무역항으로 중국경제발전의 한 축으로 남게 되었고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상해와 중국경제의 모습은 여행객에게 두려움마저 불러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하다.

< 샹하이의 관문공항으로 새로 개장한 푸동국제공항 - 건물 옆모습이 새가 날개를 펼친 모습이다. >

< 샹하이의 역사의 중심지인 외탄에는 유서깊은 Peace Hotel 등 식민지풍의 건물이
들어섰다. >
황포강변의 외탄 지역은 샹하이의 개항역사와 함께 하는 샹하이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유서 깊은 화평반점(Peace
Hotel), 샹하이 도서관, 각국의 영사관저 등 황포강을 따라 들어선 유럽식 건물들은 잊혀진 국제도시로서의 면모를 간직하고 있지만 KFC 등
패스트푸드 상점이 거리의 분위기를 깨뜨리고 있다.

< 높이 468미터의 동방명주 TV방송탑 >
아래 사진은 황포강 유람선에서 찍은 푸동(浦東)지구의 야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