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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청안하신가요? |
지난 주말 화성 용주사에 다녀왔습니다. 조선 정조가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에 |
대한 설법을 듣고 부친인 사도세자를 위해 중창한 절로, 부모에 대한 효행을 생각하게 |
하는 효찰대본산이라고도 하지요. 넓은 터에 들어선 전각, 가람을 둘러싼 소나무 숲, |
그리고 그곳에 자리 잡은 선방과 허허로운 바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
오늘은 나태주 시인의 시 '내가 사랑하는 계절'입니다. |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어린 형제들이랑 |
11월이다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가져오는 봉송(封送)꾸러미를 기다리던 |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해 저물 녘 한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
숨쉬고 있다 |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
황토 흙의 알몸을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
좋아하는 것이다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
황토 흙 속에는 |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
콧노래와 함께 돌아오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
※굴품한: 배고픈 듯한 |
겨울은 침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빈 들녘처럼 우리의 |
의식도 텅 비울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요. |
외부의 소리에 찌든 우리들의 의식을 이제 내부로 돌려 마음 속 오솔길을 거닐게 |
하면서 세월과 침묵의 채로 거르면 그 속에서 정작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
무엇인지 드러나겠지요. 그 가운데 어린 시절 풋풋한 그리움도 되살아오지 않을까요? |
십이월 십칠일 서울고검청사에 위 재 천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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