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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취
박 영 준
“자식 두 죽기는…….”
아들의 시체 옆에 앉아 있던 종해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탓이겠지만 아들이 죽은 지 만 하룻동안 찾아온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따라서 자기를 대신해서 일 봐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아들의 사망신고와 장례식까지 자기 혼자의 손으로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 사람 사귀기를 꺼려하는 종해라 할지라도 구슬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식 죽기는…….”
종해는 또 한번 죽은 아들만 탓했다. 고등학교 삼학년―내년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교에 보내 주겠다고 했는데 입학시험도 쳐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 무엇인가?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다. 자식이니 할 것 없이 집안 식구로 단 하나뿐인 아들이다.
오십이 가까운 자기를 도와 주고 편의를 보아 줄 오직 한 사람인 아들이 죽었으니 이제는 잔심부름시킬 사람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도리어 자기가 그 아들의 장례에 팔을 걷고 나서야 하게 되었다.
사실 종해는 아들이 커가는 것을 보고 앞으로는 집안 살림까지도 도맡아 줄 것을 무엇보다도 미덥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누라가 집을 떠난 뒤 약 십오 년 동안 종해는 재취를 않고 내내 혼자 살아왔다. 물론 과수댁인 누님이 와서 살림을 돌봐 주기는 했지만 주변성 없는 누님은 찬거리 하나 마음대로 사오지 못했다. 옷가지는 물론 석탄까지 자기가 사야만 했다.
그런 일을 아들이 도와주기 시작했을 때 그만 그 아들이 죽고 말았다.
이제 그 아들의 장례를 또 자기 손으로 치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니 자기는 평생 남의 도움을 받아 보지 못하고야 말게 되지 않았는가?
한편 구석에 앉아 아들의 수의를 짓고 있던 누님이 힐끗 종해를 쳐다봤다. 아무리 악상이라 해도 그래도 상갓집인데 사람이 죽은 지 만 하루가 지나도록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게시리 누구에게 기별할 생각조차 안 하다가 이제야 겨우 움직거리게 되는 종해를 못마땅하게 보는 눈초리였다.
서울 장안에 친척이라고 한 사람도 없으니 급히 알릴 곳은 없다 해도 이십여 년 동안 학교 선생을 했으니 그래도 몇몇 군데는 알려야 할 것이 아닌가?
종해는 동네 사람들이 알고 찾아올 것이 싫다고 하며 누님에게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게 했다. 누님으로서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생각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밖에 나가는 것으로 보아 늦게나마 아는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것이라 생각한 누님은 무엇보다도 찾아올 사람들의 음식이 걱정 되는지,
“음식을 좀 장만해야 하지 않겠니?”
하고 종해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종해는,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음식은 무슨 음식요?”
하고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도 말라는 듯이 말했다.
“찾아올 사람이 없으면 동네 사람을 청해서라두 장례를 치러야 하지 않겠니? 일 시킬 사람에게 식사두 대접 안 해서야 되니?”
“남한테 신셀 질 게 뭡니까. 몇 푼 더 쓰구 사람을 사지요.”
“그래두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안 올 수가 있니? 하룰 살다 죽어도 남의 손가락질은 받지 않아야지. 무엇보다도 음식 준빌 좀 해라.”
“네, 나가서 사오지요.”
종해는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 않다는 태도로 훌쩍 나가 버렸다. 사실 종해는 자기의 견해와 너무나 다른 누님이 이야기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람이 죽어 슬프기만 할 때 음식 먹을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 생각부터가 종해의 비위에 맞지 않았다. 술픈 사람을 위로하러 오는 사람이라면 슬퍼하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면 그뿐이다. 장례를 하나의 행사처럼 취급하고 음식을 많이 장만해야만 그 행사가 성대한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허례를 존중하는 지나간 형식주의의 잔재다.
죽은 사람을 슬퍼하고 산 사람을 애처롭게 생각한다면 먹을 것이 없어도 찾아와야 할 것이며 마시는 것 없어도 같이 울어 줘야 할 것이다.
종해는 자기의 슬픔을 보여 주고 싶을 만큼 가까운 사람도 없다. 그런만큼 가깝지도 않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음식 때문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누님에게는 대꾸하기가 싫어서 찬거리를 준비한다고 한 뒤 집을 나왔지만 그는 곧바로 학교로 갔다.
우선 교무주임을 찾아가서는,
“자식놈이 위급해서 출근을 못 했습니다. 내일두 못 나올 것 같습니
다.”
하고 출근 못 한 이유를 보고했다.
그리고는 다른 동료들을 될 수 있는 대로 피해 가며 서무실로 가서 회계에게,
“자식애가 위급해서 입원을 시켜야겠습니다. 월급을 선대해 주실 수 없을까요?”
하고 사정을 했다.
회계는 깜짝 놀라는 얼굴로,
“어디가 아픈데요?”
하고 물었다.
“장 카타르에다가 급성 폐렴까지 겹쳤다나요.”
종해는 아들이 죽던 때의 병명을 그대로 말했다.
“안됐군요, 빨리 손을 쓰셔야지. 그렇지만 폐렴에는 좋은 약들이 있으니까 걱정은 없겠지요. 잠깐만…….”
회계는 당황한 태도로 무엇을 써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결재를 맡으러 가는 모양이었다. 한참 뒤에 돌아온 회계는 아무 말도 없이 도장 찍을 종이를 내놓고 돈뭉치를 꺼내 세기를 시작했다. 돈을 다 세고 나서야,
“더 필요하시거든 아무 때라도 말씀하십시오.”
하고 돈을 내밀어 주었다.
“고맙습니다.”
종해는 훔친 물건을 싸가지고 나오기나 하듯 돈뭉치를 주체하지 못해 이 주머니에 넣었다가 저 주머니에 넣었다 하며 학교를 나왔다. 몇십 년을 교원으로 지내 오고 있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선불 받아본 일이 없기 때문에 혹시 누가 보고 공돈이나 받아 가지고 가는 것이라 해석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아들이 죽었다는 말을 끝까지 안 할 수 있었다는 데 대해서 종해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 말을 입 밖에 꺼낸다면 친하건 친하지 않건 간에 저마다 인사를 할 것이 아닌가? 그냥 인사가 아니라 가장 근엄한 얼굴로 정말 슬프다는 언사를 꾸며 해야 하는 인사다. 인사를 하고 돌아선 즉시로,
‘자식, 이젠 자식 하나두 없구나.’
하고 빈정댈 사람도 억지로 한 번만은 해야 하는 인사다. 그 반신반인(半神半人)의 표정을 참고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인가?
그리고 자기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슬퍼하지 않으면서도 슬퍼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고 해서 일부러나마 슬퍼하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
종해는 인간이 신과 조화하려는 그 가장 부자연스런 장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일종의 희열까지 느꼈다.
종해는 앞으로라도 아들의 죽음을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남들에게 있어서 자기 아들의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아들이 죽어서 안됐군 하고 한마디로 인사를 하면 그뿐인 존재다. 그 뒤에는 지나가던 길가에서 한번 본 돌멩이처럼 단정히 잊어버리고 말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을 인사나 시켜 무엇 하겠느냐 말이다.
종해는 우선 아들의 약을 지어 오던 병원으로 가서 진단서를 받아 가지고는 구청으로 가서 사망신고와 화장 허가를 얻었다. 그리고는 홍제원 화장터로 가서 화장 예약을 하고 장의사에 들러 상여차 계약을 했다.
무척 바쁜 걸음으로 하루 종일을 돌아다니다가 거의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왔을 때 종해는 시체 앞에서 혼자 울고 있는 누님을 보았다. 아들의 손발을 주무르며 울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슬퍼서 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죽은 그 아들이 슬퍼서 우는 것인지 육십이 다 된 자기도 머지않아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죽음 자체를 슬퍼하며 우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시체을 만지며 우는 것이 죽은 사람이 그리워서라기보다는 죽음 그 자체를 저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혼자 앉아 울고 있는 누님을 보자 종해는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죽음이 슬프면 슬펐지 남의 시체를 만지며 울 것이 무엇인가?
종해는 아들의 시체가 자기의 소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자기의 소유물이 침해당했을 때와 같은 불쾌감을 느끼었던 것이다.
언젠가 학교에서 라이터를 잃은 일이 있다. 비싼 것은 아니지만 한시도 없앨 수 없는 물건이었다. 오전중에까지 썼는데 간 데가 없어졌다. 이리저리 찾고 있을 때 어떤 선생이 빙긋이 웃으며 누가 가지고 갔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자 종해는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왜 남의 물건을 말도 없이 가져간단 말인가? 자기는 이때까지 남의 물건을 훔친 일이 없다. 남의 물건을 탐내고 달래 본 적도 없다.
종해는 시간이 끝나기가 바쁘게 라이터를 가져갔다는 선생의 집으로 찾아갔다. 장난으로 가져갔던 선생은 종해가 일부러 집에까지 찾아온 것을 보자,
“대단하시군! 변변치두 않은 것 가지구…….”
하고 냉소를 했다. 그때 종해는,
“변변하구 안 하구 간에 내 것이니까요.”
하고 정색을 한 뒤 라이터를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아들의 시체는 내일 안으로 없어질 존재다. 그래도 없어지는 순간까지는 자기의 소유다. 자기가 낳아 자기가 길렀다.
그런데 소유주는 시체를 처리하기 위하여 종일토록 돌아다녔다. 개미 한 마리 찾아와서 도와 주지를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 구청에도 가야 했고 화장터에도 가야 했고 또 장의사에도 가야 했다.
“저녁이나 줘요.”
종해는 역정을 올리고 누님을 내보내고야 말았다. 누님도 남의 소유물을 점유해서 미안하다는 듯이 눈물을 씻고는 울던 사람 같지도 않게 성큼 부엌으로 나갔다.
아들의 화장을 치르고 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종해는 여러 가지 생각 끝에 교장선생을 찾았다. 욱 몰려와서 인사를 할 것이 싫어 그때까지 아들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지만 뒤늦게라도 알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미리 말해 두려는 것이었다. 사실 남의 자식이 죽은 것쯤 발길에 차인 돌멩이만큼도 생각지 않을 것이지만 죽은 뒤에도 알리지 않는다면 슬픔을 나눠 보지 못했다는 섭섭한 감정을 가장하기 위하여,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지고 우정과 성의가 의심된다고 큰소리를 한다.
종해는 미리 알았더라면 눈물이라도 흘렸을 것처럼 말할 그들의 인사가 받기 싫었다. 이미 늦기는 했으나 성의가 없다고 크게 공격받기 전에 알려야 할 것 같다.
그뿐만도 아니었다. 가정에 대사가 있을 때마다 서로 돕기 위해 매달 월급의 얼마씩을 떼어 기금을 세우는 공제회가 있다. 교직원이면 누구나 탈 권리와 의무가 있다. 아들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다면 공연한 손해를 보게 된다. 자기만이 손해 볼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종해는 교장실로 가서,
“나중에라도 아실까 해서 말씀드리지만 사실은 자식놈이 죽었습니다. 다들 바쁘신데 번거롭게 해드릴 것 같아 알리지 않고 장사를 지냈습니다.”
하고 말했다.
“뭐요?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알리지를 않았단 말입니까?”
역시 교장은 나무라는 투였다. 알려야 할 것을 알리지 않은 종해가 나쁜 사람이라는 표정이 뚜렷이 나타났다.
“구태여 알려서는 뭣 하겠습니까? 피차 모르고 지나는 것이 마음 편하지요.”
“나는 강선생의 성격을 모르겠소. 슬플 때는 같이 슬퍼하는 것이 인간이 아닙니까? 강선생은 너무나 고립주의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성격을 좀 고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네.”
종해는 고개를 숙이었다. 마치 좋은 말씀이라는 듯이. 그러나 속으로는 오십이나 된 사람의 성격을 고쳐서는 무엇 하느냐고 코웃음을 쳤다.
고립주의라면 고립주의겠지만 일평생을 그렇게 살아나온 종해다. 그럼으로 해서 손해도 적지 않게 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성격을 고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교장은 몇 마디 더 나무라는 말을 했다. 종해는 끝까지 죄송하다는 태도만을 보였다. 죄송할 것도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야만 이야기를 빨리 끝내고 교장에게서 해방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선생님들두 섭섭히 생각할 겁니다. 빨리 이야기해 주시우.”
교장은 자기가 표시할 수 있는 성의가 그만 진해 버렸는지 나가도 좋다는 뜻을 표시했다. 그 말에 종해는,
“네.”
하고 교장실을 나와 직원실에 들어갔지만 교장의 말대로 아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다른 선생들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장례가 끝나기 전이라면 가죽 껍질에만 붙은 동정의 표정을 꾸미기에 쩔쩔맬 사람들이, 장례를 끝냈다는 말에 속으로는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마치 동정을 표시할 기회를 주지 않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법석칠 그 사람들에게 어찌 입을 열 수가 있을 것인가?
종해는 교장의 입을 통하여 교직원실에 알려지고야 말 것까지 싫어졌다. 그래서 수업도 채 끝나기 전에 학교를 나왔다. 학교를 나왔으나 집으로 바로 가기는 싫었다. 공기 대신에 고독만이 가득 찬 감방처럼 생각되어 집이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종해는 M백화점으로 걸었다. 아들이 살았을 때 시계를 사달라던 말이 문득 생각났던 것이다. 못 사줄 것도 없었지만 대학에 입학한 뒤 사준다고 고집을 세운 자기가 갑자기 미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인색하였던가 하는 후회도 들었다.
백화점에 들어가 시계들을 구경할 때 만 환짜리도 적지 않은 것을 보자,
‘누가 죽을 줄 알았나?’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만약 죽을 줄 알았다면 만 환짜리 시계쯤 안 사주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음에 든다고 생각되는 시계의 가격까지 물어 보았다.
그는 시계를 이리저리 골라 보았다.
“좋습니다. 삼 년 동안은 보증합니다.”
시계포 주인은 종해가 고른 시계를 꺼내 들고 선전을 시작했다. 그때 종해는,
‘줄 사람이 없는걸…….’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다음에 온다는 말만 남기고 백화점을 나섰다.
백화점을 나서자 집에 가야 시계 사달라던 아들은 이미 없는 걸 하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거리를 헤매었다. 정처없는 걸음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허탈한 상태로 어떤 골목길을 걷고 있을 때 문득 빈대떡집 앞에 서 있는 자기를 발견했다. 막걸리라도 한잔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이었다.
종해는 눈앞에 보이는 빈대떡집으로 서슴없이 들어가 찹쌀 막걸리를 청했다. 빈대떡 굽던 주모가 빈대떡 한 접시와 막걸리 한 잔을 가져왔다. 종해는 아들이 죽은 뒤 왜 술을 한 번도 먹지 않았던가 하고 술까지 잊었던 자기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반잔쯤 마시고는 술대접을 다시 탁자 위에 놓고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을 쉬고 있을 때다. 빈대떡 접시를 들고 저편 손님에게 갖다 놓고 돌아온 그 집주인인지 사환인지 분간할 수 없는 사람이 종해 앞에 와서,
“종해 아닌가?”
하고 멈칫 섰다.
옷도 허름하게 입고 있었다. 머리도 텁수룩한 것이 하릴없이 술집 심부름이나 해주고 밥을 얻어먹는 사람 같았다. 알아볼 수가 없었다. 눈을 뻔히 뜨고 바라보고 있을 때 그 사람이, ―
“날 몰라보겠나? 명울세.”
하고 몰라본다는 것이 기이한 일이란 듯 어깨를 탁 쳤다.
“아, 명우냐?” .
그때야 종해는 옛날 중학 동창생의 김명우임을 알았다. 그러나 종해는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생각났고 또 몸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만나 본 지가 한 이십 년 됐나? 그렇다구 얼굴을 몰라보다니 사람두!”
무척 반가운 모양이었다. 손을 내밀고 악수까지 청했다.
“미안하이, 몰라봐서.”
종해는 사과를 안 할 수 없었다.
“그래 어떻게 지내나? 학교에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저 그럭저럭 살지…….”
“아니, 상처를 했다지. 아직 재혼을 안 했단 말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
“응, 그래…….”
종해는 이십 년 만에 만나는 동창이었지만 만나서 안 될 사람이라는 생각에 명우가 묻는 말에 대답만 겨우 했다.
“나는 이 꼴일세. 부끄럽기는 하지만 할 수 있나! 그 동안 별별 장사를 다 해왔지만 실패만 하구 작년부터 이걸 시작했어…….”
명우는 묻지도 않은 말을 혼자서 지껄였다. 내버려두면 자기의 과거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낼 것만 같았다.
종해는 그것이 싫었다. 그래서,
“자…… 한 잔 들게, 오래간만이야…….”
하고 술잔을 비운 뒤 그것을 명우에게 내밀었다.
“자네가 주는 술이야 먹어야지. 이거 찹 이런 데서 자네 술을 얻어 먹을 줄이야 누가 꿈이나 꾸었겠나…….”
명우는 수다스레 이야기를 하며 빈대떡 굽는 여자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여자가 술을 가져오자,
“여보, 종해를 몰라, 동창생이야. 이십 년 만에 만나는 친구야. 이 자가 나를 걸어 고소했었지 왜. 다 지나간 이야기니까 할 필요두 없는 거지만 고소를 했다면 또 어떤가. 빨리 인사를 해…….”
여자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바람에 종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인사를 하고 나자 명우의 따귀를 갈겨 주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누르며 자리에 도로 앉아,
“술이나 주게…….”
했다.
“그래 잔을 돌려야지.”
명우는 자기가 한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충격을 주었나 하는 것을 염두에도 생각지 않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는 말이라는 것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이 종해에게는 싫었던 것이다. 종해는 명우가 주는 술을 한 잔 더 마신 뒤,
“바쁜 일이 있어 좀 가야겠네…….”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옛날에 고소당했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개의하지 않는 것 같은 명우라 할지라도 종해는 명우와 같이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법률의 힘까지 빌려서 싸운 사람이다. 그것도 돈 오십 원을 가지고 일으킨 문제였다.
돈 오십 원 때문에 종해는 인간 전체에게 배반을 당했다 생각했고 또 그만큼 타격이 컸음으로 말미암아 그는 인간에 대한 복수를 한다고까지 해서 고소까지 했었다. 그 고소에 이기기는 했지만 그 사건 때문에 종해가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켰는지 모른다. 성실을 베풀면 그만큼 손해를 보는 것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들기 시작했다.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하여 남에게 진실을 베풀지 않는 동시에 남의 진실을 요구하지도 않으려는 태도가 생활신조로 되기도 했다.
그런 태도로 말미암아 그는 일평생을 고독 속에 살아온 것이지만 오십 원 때문에 고소를 하고 차압까지 하려던 당시의 자기 행동이 후회를 해도 씻어지지 않을 만큼 그의 가슴에 큰 자리를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런만큼 종해는 명우를 죽을 때까지 우연하게나마 만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만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연히 만났다고 할지라도 속히 헤어지는 것만이 상책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서기는 했지만 술값을 치르는 것이 문제였다. 돈을 줘야 할 것만은 사실이지만 술값이 얼마냐고 물을 수만은 없었다. 하는 행동으로 보아 술값을 안 받으려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공술은 절대로 먹고 싶지 않다. 종해는 혼자서 술값을 따져 봤다.
술이 석 잔이니 백오십 환, 거기에 빈대떡이 한 접시니까 도합 이백 환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러나 빈대떡이 꼭 오십 환인지 아닌지가 확실치 않았다. 치사스럽게 돈을 적게 냈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빈대떡값을 좀 비싸게 친다 해도 이백오십 환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십 환짜리가 한 장도 없었다. 종해는 오십 환쯤 더 주면 어떠랴 하고 삼백 환을 꺼내어 명우 아내 앞에 내던지듯 주고는 명우와 또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올 때 종해는 명우가 그 돈을 도로 가지고 나오며 자기를 나무랄 것 같은 생각이 들
었다.
사실은 돈을 치러야 시원하게 생각하는 소량한 자기보다 명우가 훨씬 도량이 큰 사람 같았던 것이다. 과연 명우가 뒤에서 불렀다. 자기의 예상이 맞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돈을 받자고 돌아설 수는 없었다.
고소까지 했던 사람의 술을 공으로 먹을 수가 있느냐 하는 생각에서 그는 명우의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체 그냥 걷고 있었다. 몇 걸음도 걷지 못하였을 때 명우가 뛰어와 종해의 어깨를 치며,
“거스름돈일세, 오십 환이야.”
하고 오십 환을 내밀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종해는 모든 계산은 깨끗하게 끝났다는 생각을 하였다.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았으니 뒤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술값이 싸군…… 또 와야겠는데…….”
하고는 그 돈을 받아 주머니에다 넣고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얼마 안 가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영원히 거래를 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거스름돈 오십 환으로 다시 거래를 시작했다는 생각이 가슴을 시원케 해주어 그 오십 환을 마저 쓰고 싶었던 것이다.
명우의 빈대떡집으로 다시 들어간 종해는 오십 환을 마저 지불하고 술 한 잔을 달랬다. 명우가 빙그레 웃으며 술 한 잔과 김치 종지를 가져다주었으나 종해는 선 채 술만을 들이켜고는,
“자네넨 술맛도 좋은데.”
하고 다시 돌아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슐 몇 잔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죽은 아들 생각이 유별나게 났다.
“하나밖에 없는 애비를 두고 죽다니…….”
그는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사실은 눈물을 막을 필요가 없었었다. 얼마든지 마음대로 울 수가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에 만났던 명우 생각이 또한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어쩐지 울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죽은 아내와 결혼한 지 일년도 못 되었을 때 종해는 명우의 딱한 사정을 듣고 아내가 결혼할 때 비상금으로 가져다 꽁꽁 싸두었던 돈 오십 원을 빌려 주었다. 체면 없는 돈이었다. 그러나 장가를 가겠다고 사정하는 바람에 아내를 꾀고야 말았던 것이다. 하기야 장가만 들면은 무엇무엇을 해서 두 달 안에는 꼭 갚겠노라 하는 그 말을 믿고 한일이었다. 그리고 종해는 다른 돈과도 달리 장가가는 돈이니 무엇을 못 해도 갚아 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난 뒤에도 명우는 그 돈을 갚지 않았다. 갚지 않을 뿐 아니라 몇 달 뒤에는 아무 소식도 없이 고향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알고 보니 자기 돈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빌려 쓴 돈이 적지 않았다.
종해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가 미안했다. 결혼할 때 반지 하나 사주지 못한 종해니만큼 아내가 감춰 뒀던 돈을 꾀어서 잃어버리게 했으니 얼마나 미안한 노릇일 것인가?
그래서 종해는 명우를 걸어 고소를 했다. 그때 아내가 고소까지 할 거야 무어냐고 고소를 만류했으나, 종해는 분한 생각에 고소를 하고야 말았다. 고소뿐 아니라 명우네 집에다 차압 딱지를 붙여야만 한다고 서둘렀다. 성의를 배반한 놈에게는 최악의 모욕을 끼얹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압까지는 안 하고 돈을 받았을 때 아내가,
“이 돈 없다구 굶어 죽겠어요? 오십 원 때문에 당신이 세상하구 등지게 되면 손해가 더 클 것 같은데요.”
하며 돈 받는 것을 도리어 걱정했었다. 이십 년 전 아내가 걱정하던 말이 어제처럼 머리에 떠오르는 동시에,
‘등졌던 사람을 도루 찾았어…….’
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아들은 죽었다 해도 잃었던 사람을 도로 찾은 듯한 마음에 그는 억지로라도 울지를 말아야 했다.
명우를 만남으로 해서 그 동안 잊어버렸던 아내를 생각하게 된 종해는 지금 아내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것을 오래간만에 생각해 보았다.
어디서 어떻게 살든 오늘 명우를 만났다는 일을 알기만 한다면 잘 됐다고 좋아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마누라가 좋아하기로서니 어떻게 할 작정 이란 말인가? 종해는 혼자서 좌우로 고개를 흔들었다. 어엿한 남편과 아들을 두고도 딴 남자와 정을 통하다가 쫓겨 나간 여자다. 그 아내를 내쫓을 때 종해는 얼마나 원통한 눈물을 흘리었던가. 어린 자식을 혼자서 기를 때 그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말라 보지를 못했다. 삼십 전후의 젊은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혼자를 지키고 재취를 못 하도록 마음의 타격을 준 그 여자에 대하여 미련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미련을 가졌다면 자기가 미물만도 못한 인간이다. 사실은 이날 이때까지 그 아내를 원망하고 저주해 왔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하여 마치 그 아내를 위하여 좋은 일이나 한 것처럼 생각하였을까?
순간적이나마 아내를 생각했다는 것이 불쾌했다. 그런데 그런 불쾌한 생각이 들자 도로 찾았다고 생각되었던 명우조차 비할 데 없이 불쾌한 존재처럼 느껴지고 말았다. 무슨 일인지 모른다.
“거스름돈일 세…….”
하고 오십 환을 돌려 주던 명우의 얼굴이 눈앞에 되살아오는 동시에 그 얼굴에 침을 탁 뱉어 주고 싶어졌다. 이십 년 전 오십 원의 사건의 복수로 일부러 뛰어와서 오십 환을 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자기가 명우에게 복수를 한 것이 아니라 명우에게 복수를 당하고 말았다. 최후의 복수였다. 최후의 복수를 당한 사람이 자기라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때 종해는 그 동안 외롭게 살아온 것이 모두가 수포로 돌아갔다는 서글픔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외롭게 살았던가?
이런 것을 생각하니 죽은 아들이 새삼스럽게 그리워졌다. 그놈만 살아 있다면 과거의 생활이 영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렇게까지 허술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했던 것이다.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종해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안 했다. 아들의 죽음이 결국은 자기의 일생을 수포로 만들 것 같은 설움에 잠겨 있을 때 학교 직원 몇 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슬펴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며 가지고 온 술병을 내놓았다. 같이 술이나 마시며 잊어버리자는 태도였다. 고마웠다. 술을 마시고라도 슬픔을 잊어버리자는 마음씨가 뼈에 사무치도록 고마웠다. 남에게 대하여 고마움을 느껴 본 것이 참으로 오래간만이었다. 그는 곧 술상을 마련해 달라고 누님에게 말하려 했다. 그러나 교직원들이 교장과 똑같이 그런 일을 왜 미리 알리지 않았느냐고 하며 나무라기 시작했다. 역시 공치사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맙다던 마음이 쑥 들어갔다. 그런데다가 그들은 공제회 명의로 보낸 조위금 봉투를 내밀었다. 말하자면 규칙에 의하여 지불하는 조위금을 전달하기 위하여 교직원 대표로 찾아왔다는 그들의 목적을 명시한 것이다.
종해는 받을 권리가 있는 돈이니까 돈만 받았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술 마시고 싶은 생각은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한 사람이 술병을 바라보며 왜 술상을 차려 오지 않느냐는 듯한 눈짓을 했다. 그때 종해는,
“오늘은 좀 일찍 자야겠는데 용서하십시오. 며칠 밤 통 잠을 못 잤더니…….”
하고 구들을 그냥 돌려보내고야 말았다. 조금 야비하기는 했지만 자기의 슬픔을 생각해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의무적으로 찾하온 사람들과 오래 이야기할 필요가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러나 손님들을 쫓아보내듯 보내고 나니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때와 달리 새로운 공허감이 가슴속에 부풀어오름을 느꼈다. 그것은 빈틈없이 따지고 계산함으로써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자기의 생활태도가 지나치게 융통성 없음을 슬퍼하는 마음의 부르짖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마음의 부르짖음이라고 깨닫지를 못하며 그저 허전함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나 다음날에는 학교에도 나가지 않았다. 출근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기록을 가진 종해다. 남에게 손해를 받지 않으려는 반면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활신조의 반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만은 이렇다할 이유도 없이 몇십 년 지켜 오던 생활신조를 지키지 않았다. 공허한 마음과 더불어 육체도 껍질만이 남았는지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만 같아 종해는 아침부터 자리 속에 누워 있었다.
학교에도 안 나가고 자리에 눕는 것을 보자 누님이,
“어디가 편찮으면 병원옐 가봐야지 않나?”
하고 걱정했다. 조카가 며칠 전에 죽는 것을 목도했으니 동생에 대해서도 겁을 집어먹을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종해는,
“죽지 않을 테니 걱정 말아요.”
하고 시비를 걸듯 먈했다.
“죽으면 남는 게 있어? 제 몸 제가 걱정해야지…….”
누님은 시비조로 나오는 종해가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누가 죽어서 무얼 남기려고 그래요?”
종해는 그냥 시비조였다. 말하자면 공연한 트집이었다. 누님이 대꾸도 없이 울기를 시작했다. 남의 마음올 곱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종해에게 나무람이 간 모양이었다.
“울기는 누가 죽었다구 우십니까?”
그때 누님이,
“내가 그렇게 보기 싫으니? 빨리 죽지 않아 성환가 보구나…….”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슬프게 우는 것이었다.
“누가 누님더러 죽으랬어요? 누굴 장사나 치르는 사람으로 아는가부지…….”
아무런 죄도 없는 누님이었다. 들볶을 건더기가 못 됨을 뻔히 알면서도 종해는 끝내 누님을 괴롭히기만 했다.
“너무 그러지 마라. 인생이 불쌍하지 않니…… 밥 얻어먹는 것밖에 무슨 죄가 있다구…….”
그 말에야 종해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밥 얻어먹는 것을 하나의 죄처럼 생각하는 누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피차 인생이 불쌍한 처지 같기도 했다.
얼마 동안 말이 없이 있을 때 대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누님이 밖으로 나가려고 일어섰다. 그때 종해는 조금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파 누워 있다구 그러세요, 아무도 만나지 않을 테니까…….”
하고 비로소 청원을 하는 태도로 말했다. 누님은 무언중에 그러마 하는 표정으로 밖우로 나갔다. 한참 동안 무슨 말을 주고받던 누님이 방 안을 향해,
“춘규 학교 선생님이 이런 걸 가지고 오셨다.”
하고 봉투 하나를 쳐들었다.
“그게 뭔데요?”
“글쎄, 그애가 쓴 작문이래누나.”
그 말에 종해는 벌떡 일어나 마루로 나가 봉투를 받아 들고 아들의 선생이라는 사람을 불러들였다.
아들의 선생은 종해에게 인사를 하자 울먹울먹한 얼굴로 춘규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리고 춘규가 마지막으로 학교에 등교한 날 지은 작문이 있었는데, 그것을 자기가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서 가지고 왔노라고 말했다.
종해는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돈으로 마음을 표시하려는 그런 사람들과 다른 것이 좋았다. 그야말로 자기의 마음을 알고 또 자기의 아들을 아껴 주는 마음씨 같았다. 그래서 누님께,
“술상을 좀 채려다 주십시오.”
하고는 술까지 나누려 했다. 그러나 선생은 학교에 가서 할 일이 있다고 하며 들어오지도 않고 그냥 돌아갔다.
종해는 할 수 없이 선생을 보낸 뒤 봉투 속에 들어 있는 아들의 작문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어머니가 없다. 아니,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없다고 말씀하시나 백모님의 눈치로는 어딘가 살아 있는 것 같기만 하다. 살아 있는 어머니를 가지고 아버지가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어머니는 반드시 만나서 안 될 어머니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립다. 만나서는 안 될 어머니라고 해도 한 번만 부고 싶다. 훌륭한 영웅이나 성인들보다도 만나서는 안 될 어머니가 보고 싶다. 젖먹이 어린애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비슷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젖을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젖도 필요 없다. 젖만이 아니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 다만 어머니의 냄새를 맡고 싶을 뿐이다. 향기로운 냄새가 아니라도 좋다. 흉악한 냄새라고 해도 어머니의 냄새를 한 번만 맡아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종해는 그만 작문 쓴 원고 용지를 덮어 버렸다. 더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섭고 무서운 말이 그 앞에 적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원고 용지를 집어 방바닥에 놓고는 자리 속에 들어가,
“아버지의 냄새만으론 역시 부족했던가 부지…….”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음식만으론 배가 부르지 못해 냄새를 그리다가 죽은 아들을 생각하니 냄새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쐬어 주지 않는 아내가 새삼스럽게 원망스러웠다.
아들은 육체의 병 때문만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어머니의 체취를 그리워하다 죽었다.
종해는 종일토록 공허했던 가슴이 무엇인가로 조금 채워진 듯함을 느꼈다. 그것은 아들의 죽음이 무엇이었다는 것을 조금 안 듯한 생각에서였다. 막연하게 죽음만을 슬퍼하던 자기가 아들에게 일깨워짐을 받았다는 조그마한 즐거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갑자기 술이 먹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술이 먹고 싶은 것이 아니다. 아들처럼 사람의 냄새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그가 찾아간 술집은 다른 곳이 아닌 명우의 빈대떡집이었다. 그는 생각해 보았다. 명우가 거스름돈을 준 것이 과연 자기에 대한 복수였을까 하고.
그러나 그는 그것을 부정하고야 말았다. 명우는 그저 그렇게 사는 사람이다. 궁할 때는 남을 속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본시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나쁜 사람이라면 빈대떡 장사 같은 것을 할 까닭이 있겠는가? 공술을 먹이지 못하는 대신 정직하게 살아 보겠다는 의욕이 거스름돈을 돌려주게 한 것이리라.
종해는 이런 생각을 하고 명우를 찾아갔다는 것은 결국 자기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나마 명우에게서 어떤 냄새를 맡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잘 왔네. 그런데 왜 친구들을 좀 데리구 오지 않구 혼자만 왔나?”
종해를 보자 명우가 반가이 맞이해 주었지만 혼자만 와서야 술을 얼마나 괄아 주겠는가 하는 말투였다. 종해는 그 말이 솔직해서 좋았다. 역시 진짜 명우는 그런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응…… 다음부터는 학교 친구들을 전부 끌어음세.”
“그럼, 같은 값이면야 친구네 술을 팔아 줘야 하지 않겠나? 안 그래?”
“그렇구말구…….”
종해는 타의가 없이 맞장구를 쳤다. 그뿐만 아니라 술을 한잔 마시고 나서는,
“자네 자녀가 몇 이나 있나?”
하고 물은 뒤 자기는 하나밖에 없던 아들을 며칠 전에 잃었다는, 묻지도 않는 말까지 이야기했다.
“뭐? 하나밖에 없던 아들이?”
명우는 정말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껍질에만 붙은 동정이 아니라 내장으로부터 놀라는 표정이었디.
“열여덟 살이었지. 내년엔 대학에 입학하려구 한참 준비를 하다가 죽었어…….”
“언제 죽었다구?”
“한 사오 일 되네.”
“뭐? 사오 일? 그럼 어제는 왜 그런 말을 안 했나.”
명우도 교장이나 교직원들과 똑같이, 만나는 즉시로 그런 말 안 한 것을 탓했다. 그러나 어쩐지 그것은 탓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공치사하기 위한 꾸밈수 같지도 않았다.
“그건 알려서 무엇 하나?”
“이 사람아, 사람이란 어디 그런가? 뭣을 해야만 꼭 말을 한다면 일평생 몇 마디나 하다가 죽겠느냐 말이야. 부조는 못 한다 해두 알기는 알아아 하지 않이…….”
“그럼 미안하게 됐네.”
부조는 못 해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좋았던 ,것이다. 종해는 고개까지 수그렸다. 왜 고개가 수그러지는지는 자기도 몰랐다. 그저 명우가 자기보다 훨씬 높은 자리에서 인생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던 것이다. 몇 잔 술을 마시고는,
“내 다음에는 친구들을 데리고 오께…….”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좀 많이 팔아 줘…… 친구 좋다는 게 뭔가, 서루서루 돕는 게 친구지…….”
“응 알았다, 알았어. 이놈아, 알았다니까.”
종해는 일부러 취한 체하고 옛날 학창시대에 쓰던 용어를 그대로 쓰면서 명우의 어깨를 쳤다.
“자아식, 알기는 뭘 알아? 개똥두 모르는 자식이…….”
“이 자식, 함부로 까불면 못써. 누가 어른보구 까부는 거야…… 허허허…….”
“이 자식이 형님보구 까분다는 말이 뭐야? 아직 철들 날이 멀었군, 허허허.”
그들은 소리를 높여 웃었다. 종해에게 있어서는 이십 년 만에 처음 웃는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식아, 술값이 얼마냐?”
“어제하고 똑같다. 삼백 환 내라. 오십 환 거슬러 주께…….”
“옜다, 삼백 환이다. 거스름은 필요 없어. 자네 마누라한테 팁으로 줬다, 알았어? 제수님한테 팁 준다는 건 우습지만 제수님도 장사하는 여자니까 할 수 없지, 하하하.”
“자식, 형수님보구 말조심 해라.”
그들은 또 한바탕 웃었다.
삼백 환을 주고 거스름도 받지 않은 채 빈대떡집을 나오려 할 때 명우가 뒤따라오며,
“너무 상심 말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하고는 말을 끊었다가,
“다음엔 내가 한잔 낼 테니 한번 오게…… 그땐 찌개를 먹세. 우리 마누라 솜씨가 괜찮거든. 맛이 좋지…….”
했다. 한잔 내겠다는 말에도 정이 들어 있는 것 같았지만 마누라 솜씨가 괜찮다는 말에 정이 가득 들어 있었다.
“자식, 마누라 칭찬하는 천치가 어디 있어!”
종해는 농담을 하면서도 얼굴에는 빙그레 웃음을 웃었다.
“마누라 하나 얻지 못하는 놈이 바보지 누가 바보야!”
명우는 응수를 하며 손으로 종해의 몸을 밀었다. 너야말로 틀림없는 천치라는 태도였다.
종해는 움칠 하고 한걸음 물러서서는,
“자식, 냄새 난다. 손대지 마라.”
하고 명우의 손이 닿쐈던 자리를 툭툭 털었다. 그러면서도 내심으로는 그 냄새라는 것을 코로 맡아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몸을 돌이켜 걷기를 시작할 때,
“자식, 다음에 올 테니 찌개를 안 냈담 봐라, 국물도 없다.”
하고는 혼자서 픽 웃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 삼중당,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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