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4일
능소화가 피는 계절 매년 이맘때는 동래문화회관 테라스 기둥에 능소화가
허벌나게 핀다.
올해도 많이 피었지만 작년에 비해서 꽃들이 신통찮다.
얼마전에 가지 정리 작업을 하던데 그래서 인지 모르겠다.
가지 정리 작업은 새순이 돋기전에 하는게 좋은데 꽃봉오리가 매칠때 하니 나무가 싫어 할 밖에...
어쨋든 이맘때 사진 애호가들은 잊지않고 들러서 사진을 찍어 가니 문화회관 홍보에도 좋은일 이다.
어느 병사의 귀향
민항기 조종사이기 때문에 ,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한 일들을 보게됩니다 .
비행준비를 하고있는데 게이트 담당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
“기장님 , 이번 비행에 시신 운송이 있습니다 .”
“군인이냐 .” 고 물었습니다 .
“맞다 .” 고 했습니다 .
“에스코트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 고 물었습니다 .
사무장이 에스코트가 있으며 ,이미 좌석 번호를 배정했다고 말하더군요 .
저는 에스코트의 탑승 수속을 먼저하고 , 조종석으로 모시고 오라했습니다 .
얼마뒤 젊은 육군하사가 조종석으로 들어왔습니다 . 단정하게 정복차림을 하고있었습니다 .
자신을 소개하는 그에게 에스코트하는 시신에 대해 물었습니다 .
전사한 군인을 모시는 에스코트는 전사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
”그분은 지금 고향 버지니아로 귀향중이십니다 .“라고 하사가 말했다 .
저는 몇 가지 더 물어봤고 ,간단명료한 답을 듣고 무언가 도와줄 것이 있냐고하니 그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
그에게 군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를 하는 것 같으며 전사한 장병과 그들의 가족을 돌보는 일을 하는것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
그리고 저와 부기장은 일어서서 그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
그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 조종실을 나섰습니다 .
우리는 비행전 점검을 끝내고 아무 이상없이 출발했습니다 .
비행한지 30 분쯤 지나자 객실 사무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
”전사한 장병의 가족도 지금 기내에 함께 타고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전사한 장병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그리고 2 살난 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
가족은 이륙 전 아들의 관이 항공기에 탑재되는 것을 보지못해 속상해 한다고 하더군요 .
다음 기착지는 굉장히 크고 부산한 환승 공항이었습니다 .
그 가족은 거기서 4 시간 기다린 후 버지니아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탈 예정이었습니다 .
장병의 아버지는 승무원에게 자신의 아들이 화물칸에 있음에도 한번도 보지못한 것이 너무 가슴 아프고 견디기 힘들다 했습니다 .
공항에 도착할 때 아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습니다 .
가족들은 화물칸에서 아들의 관을 꺼낼 때 옆에서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
사무장이 뭔가 방법이 없겠냐고 절박하게 물었습니다 .
저는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
비행중 회사와의 통신은 주로 e-mail 비슷한 메시지로 이루어집니다 .
이것 대신에 보조 음성 통신망 ACARS 를 써서 운항관제사에게 연락했습니다 .
운항관제사에게 상황과 가족의 요청사항을 설명했습니다 .
그는 알겠다면서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 2 시간 뒤에도 답변이 없었습니다 .
조금있으면 바빠질 시간이 되기 때문에 그전에 가족들에게 뭐라고 전해야할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
나는 문자 메시지로 요청사항에 대한 진행현황을 요청했습니다 .
운항 관제사는 다음과 같이 답변해 왔습니다 .
“기장님 !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
“이런 상황에 대한 지침이 있어서 몇 가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
항공기가 도착하면 별도의 에스코트 팀이 대기하다가 마중나갈 것입니다 .
이 팀이 가족분들을 램프를 통해 항공기 옆으로 모실 것입니다 .
미니밴 한 대가 시신을 운반하고 한 대는 가족들을 태울 것입니다 "
“가족들은 램프에 있는 시신을 지켜볼 수 있는 터미널 안의 가족만을 위한 공간으로 에스코트될 것입니다 .”
“연결 항공편이 도착하면 , 가족들은 다시 램프로 에스코트되어 마지막 항공기에 시신이 실리는 것을 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
“기장님 , 여기 관제실 요원 대부분은 참전용사들입니다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
저는 관제실에 수고했고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 또 이 메시지를 프린트하여 사무장을 시켜 전사한 장병의 아버지에게 전해주도록 했습니다 .
사무장은 자기 일처럼 고마워하며 가족들이 매우 기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
착륙을 위한 강하를 시작하며 바빠졌습니다 .
착륙 후에는 바로 활주로를 벗어나 램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
램프는 15 개의 게이트가 양쪽으로 줄지어 있는 바쁘고 복잡한 곳입니다 .
램프를 들어서며 램프 관제사와 교신했습니다 .
그는 모든 항공기가 우리를 위해 멈춰져있다고 알려 줬습니다 .
가족들을 에스코트할 팀도 대기중이라고 했습니다 . 모든 것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저는 안전벨트 표시를 끄는 순간 모든 승객들이 일어서서 자기 물건을 챙길 것이기 때문에 전사한 장병의 가족들이 빨리 내리지 못하게 될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내려야할 게이트에 다다르자 부기장을 시켜 램프 관제사에게 승객들에게 방송을 하기 위해 게이트 전에 잠시 정지한다고 전달하게 했습니다 .
램프관제사에게 천천히 해도 좋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
저는 항공기를 정지시키고 파킹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 곧바로 기내 방송을 틀었습니다 .
“ 승객 여러분 ! 저는 이 항공기의 기장입니다 . 저는 특별한 전달 사항이 있어 게이트 전에 항공기를 잠시 정지시켰습니다 . 이 항공기에는 우리의 존경과 존중을 받아야 마땅한 승객이 있습니다 .그는 얼마전 목숨을 잃은 이병이며 지금 여러분 발밑 화물칸에 잠들어 있습니다 .
에스코트는 육군 하사가 맡고 있습니다 .”
“ 또한 이병의 아버지 ,어머니 ,아내 ,그리고 딸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
“이 가족분들이 먼저 내릴 수 있도록 항공기가 멈추더라도 잠시 자리에 앉아 계셔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우리는 계속해서 게이트로 향했고 완전히 멈춘후 , 시동을 끄기위한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
나는 몇 분 후 조종실의 문을 열었습니다 . 2 명의 전방 객실 승무원이 울고 있었습니다 .
항공기가 멈춘 후 모든 승객들이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가족들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고 말했습니다 .
가족들이 일어서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을 때 한 승객이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 한 두 사람이 따르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
“신의 가호가 있기를 ”
“안타깝습니다 .“
”자랑스러워 하세요 .“
위로의 말들이 내리는 가족들을 향해 터져 나왔습니다 .
가족들은 에스코트를 받아 램프를 내려가 전사자의 시신 곁으로 갔습니다 .
저는 그 가족을 보진 못했습니다 .
한 병사가 죽었고 , 한 가족이 비탄에 빠졌겠지요 .언제나 있어왔던 일입니다 .
그날 기내에는 184 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습니다 .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
비행기에서 내리는 많은 승객들이 방송이 고마웠다고 했습니다 .
말들은 반복될 수 있겠지만 병사를 되살릴 방법은 없겠지요 .
우리 삶을 위해 희생한 수백만 명을 기리는 마음을 가져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
<유투브 감동실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