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정말 감격입니다. 작가의 선량하고 성실하고 영롱한 전 인생의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저 높푸른 가을 하늘이 축하 화환으로 드리워진 듯 느껴집니다.
한민족, 한글의 나라, 언어의 나라, 서사의 나라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우리역사에는 문장의 유구한 전통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글 아는 이들의 소명의식 의연히 흐르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영광은 그러한 선배 문인들 그리고 동시대 작가들의 공동의 영예입니다. 노벨상은 그러한 우리 역사의 전통을 비추어 준 조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들, 자라나는 학생들 그리고 문화계에 종사하는 분들이 우리 글과 우리의 문장들을 더 많이 배우고 접하고, 교과과정에서도 더 많이 반영되고, K-드라마의 대사, K-팝의 가사에서도 더욱 뜻있는 성취가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노벨상 위원회는 작가 한강의 약력과 작품 개요들을 소개해 놓고 있습니다. 분량이 많아서 전문 번역은 생략하고,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 부분만 옮겨 봅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2014; Human Acts, 2016)에서는 광주 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작가의 정치적 토대가 됩니다. 작가 자신이 자란 곳이 바로 광주입니다. 1980년 광주 항쟁 당시 남한의 군부는 수 백명의 학생들과 비무장의 시민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소설은 이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찾아 주고, 이 사건의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증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합니다. 한강의 문체는 일목요연하며 눈앞에 펼쳐지듯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강의 작품은 증언 문학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넘어섭니다. 작가의 방법은 특별합니다. 죽은 자의 영혼이 그 육체와 분리되도록 허용하여 그들이 자신의 소멸을 목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누구인지도 밝혀지지도 않은 매장도 할 수 없었던 시체들을 보는 장면들에서 작가의 서술은 순간순간 고대 희랍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기본 모티브를 깨우쳐줍니다."
참고로 노벨상 위원회가 언급한 고대 희랍 <안티고네(Antigone)>에 대하여 부연 설명해 봅니다.
<안티고네>는 서양 비극 문학의 원류와 같은 작품이지만, 법철학의 학문에서도 불가결하게 고찰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고대 희랍 테베라는 도시국가 오이디푸스 왕이 사망한 후 두 아들은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내란에 돌입하고 마침내 서로 찔러 죽이게 됩니다. 그 결과 새로 왕위에 오른 외삼촌 크레온은 사망한 왕자들 가운데 에테오클레스에게는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러주었으나, 내란 당시 외적을 동원한 폴리네이케스는 반역자로 정죄하여 개와 새들의 밥이 되도록 명합니다. 그를 위반하는 사람은 누구든 처벌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폴리네이케스의 여동생 안티고네는 오빠를 묻어 주며 명복을 빌고자 합니다. 안티고네는 경비병에게 체포되어 크레온 앞에 나가 신문당합니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어찌 감히 국왕의 포고령을 어겼는가 묻습니다. 안티고네는 대답합니다.
"나는 사람의 오만한 명령을 두려워하며 신의 원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언젠가 죽을 것입니다. 왕의 포고가 아니더라도 나는 언젠가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제 명을 다 살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혜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처럼 온갖 불행을 겪으며 산 사람이라면 죽음이 오히려 더 나은 삶일 것입니다. 지금 체포되어 이런 운명을 맞이한 것은 그저 하찮은 슬픔일 뿐입니다. 어머니의 아들을 묻지도 못하고 땅 위에 방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에게는 고통입니다. 그리고 왕께서 보시기에는 이번의 내 행동이 어리석겠지만 어리석은 재판관만이 저의 어리석음을 심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소포클레스, 안티고네, 460-470행, 편역 정태욱)
한강 작가는 안티고네와 같이 신의 영원한 원리, 그리고 또 신들의 조화 속에서 고통받는 인간들의 운명을 겸허하고 진지하게 공감하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소명을 다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얼마나 많은 내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 공동체의 선조들이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비통한 삶을 마감하였는지 깨닫는 순간부터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