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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1. 도심을 바라보며
나는 아파트의 맨 꼭대기 층에 산다. 마음도 가라앉히고 쉬자 한다면 나는 으레 옥상행이다. 집 테라스가 건물에 옥상도 되는 셈이니 다락을 거쳐 오르면 바로 하늘 아래 바깥이다. 이를 취미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평상에 앉아 하늘도 보고 아래도 쳐다보며 노닥거리는 게 그냥 그렇게 좋다. 평상에서 평온함에 취해 스르르 잠이 들어 소나기를 맞은 적도 꽤 있다.
코끝에 닿는 상쾌함 때문인지 눈앞에 펼쳐지는 확 트인 시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적극적인 감정변화를 나는 매번 실감한다. 답답하거나 우울할 때 특히 화가 치밀 때 이보다 좋은 처방은 없다. 아래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감정이나 생각이 옥상에서는 자연스레 쉽게도 떠오른다.
옥상에서는 산위에서의 얻는 쾌감과는 또 다르다. 향기롭고 개운한 느낌으로 상큼하다 할 것이 산이라 한다면 도심 옥상에서는 속된 감정을 누그려 트리며 얻는 현실감이 치밀하고 짜임새 있게 다가온다. 멀리 떠난 산에서 느낀 행복은 고상도 하여 도심으로 파고들면 이내 시들기 마련이다. 옥상에서는 알게 모르게 작은 심적 충돌이 자유로우며 그로 유쾌한 기분으로도 쉽게 전이되어 운 좋을 때는 고소함과 통쾌함을 거저 얻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식이나 돈 걱정 따위의 아픈 현실을 산 정상에 옮기기는 난처하다. 어쨌거나 늘 위로 쳐다보던 일상의 형태에서 벗어난 위에서 아래를 향한 기형은 색다른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높은데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의 긴 여운처럼 높은 곳에서는 마음에 펼쳐지는 향내 또한 길고 오래간다. 전망이 좋은 데를 사람이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싶다.
전망이 좋은 곳은 모두 위에 있고 위는 늘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다. 사람뿐이 아니라 사물도 지극히 합리적으로 위에 처한 처분에 맞게 적응하고 적용된다. 고개를 숙이고 무릎에 힘을 주고 때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또박또박 올라서는 것도 위이기에 지당한 것이라 여겨진다. 위는 위치한 만큼 많은 가치와 품위를 스스로 갖는다. 아등바등하던 크기와 괘적을 옥상에서 바라보면 왜소하기 짝이 없다. 늘 대하는 당연지사지만 이는 작은 충격이고 빤히 보이는 듯 현실의 아득한 아픔도 된다.
생각의 전환은 현실 답지 않은 현실에서 비롯된다. 이른 새벽 안개 속으로 보는 삶은 늘 새로이 떠오르는 태양같이 생경하기를 바라지만 내 마음이 어질해서인지 그렇지만은 않다. 때로는 바쁜 출근길 모습이 먹잇감 찾아 몰려드는 송사리를 닮게도 보인다.송사리는 늘 분주하지만 그저 살 뿐 실속도 없고 큰 뜻 또한 없지 않은가. 안개가 거칠 쯤이면 송사리들은 어느 틈 괴물 아가리에 모두 삼켜진 꼴이다. 그러다가 공룡의 주둥이에서 붉은 눈빛의 송사리들이 한없이 쏟아져 나올 때는 핏기 없는 땅거미가 다 지고서다.
꼬리를 문 행렬의 속도가 맹렬한 것을 보면 얼마나 혼이 났는지를 알 것도 같다. 필시 이런 느낌은 온전하지 않은 사회 반감에 기인하지 싶다. 도태되어서는 안 된다는 도심의 긴장감은 삶을 너무 힘들게 한다. 아파트는 이제 막 반짝반짝 빛을 낸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하늘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난 그 정경을 무척 좋아한다. 그쯤엔 소음도 간간이 퍼지고 냄새도 짙어 내 눈망울을 지극히 자극한다.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리라 하여도 괜찮다 싶은 고되고 저문 하루다.
건물도 숨을 쉬고 느낌을 갖는다는 생각을 그쯤 해보는 터다. 어느 때 불빛이 화사하지 않으면 괜스레 걱정도 앞선다. 모아진 불빛엔 정감과 사랑이 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먼 산 너머에 불빛은 늘 흐릿하다. 멀어서가 아니라 찾을 일이 없어 적적한 것이겠지만 호젓하여 좋다싶기도 하다. 이에 반해 시야 한복판의 불빛은 내 눈빛이 지치도록 휘황찬란하다. 한적과 광란은 도심을 구성한 큰 윤곽의 형평에선 걸맞다.흡사 도시의 빈부처럼.
인과응보가 그러하듯 도심에서는 빛과 그림자가 늘 동참한다.이윽고 불빛은 약속이라도 한 양 하나둘 꺼진다. 하루가 이슥한 밤을 껴안고 잠을 보챈다. 잠은 누구에게나 평온하다. 잠이 없다면 아마 내일도 찾아오지 않으리라. 이 세상에 일이 없다면 내일 또한 없다. 잠과 일은 이 세상의 꿈과 휏불로 또한 공존한다.
그러하듯 옥상에서 보는 도심은 뭉크의 절규가 실감나도록 처절하고 안타깝지만 평온함에 이르러서는 이미 생에 반쯤 미쳐버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란 작품이 생각나도록 간절하고 생생하다. 빈틈없는 현실과 빽빽한 순간들 사이 치밀한 음모와 계략은 어느 명목으로든 도심에서는 늘 상존한다.
그러기에 무계획할 수 없고 포기할 수도 없으며 돌아설 수도 없는 현실이지만 고통과 희망을 일련의 포용과 체념으로 관용한다면 어떨까. 한참을 내려보자면 높다는 것과 밝다는 것이 우선이라는 도심의 정형은 맞기도 하지만 또 틀린 잣대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나는 나로서 담대해질 필요가 있음을 이유도 없이 강조하게 된다.
어느 한 시절엔 낮고 어두워서 인생이 가혹하다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높으니 좋다란 당연과 높은 데 서서야 비로소 낮아질 수 있다는 사실의 유추가 같이 있다는 게 꽤 마음에 들고 그 연유로 세상은 공평하다 싶고 다시 평안해지기도 한다.옥상에서는 이런 구상과 번민이 늘 현실로 구체적으로 차분하게 빚어지고 그로 사유하고 허망이 부질없고 또 이유 없음을 부지런히 실어 나른다.
옥상에 올라 오늘도 나는 사유한다. 요즈음 말 못할 어느 고통이 온통 내 차지이다. 그런 나는 오늘 도심에 틀어박혀 사는 한 이유로서 '고통으로 그린 희망의 얼굴' 이란 화가 프리다 칼로를 마음속 깊이 새겨두려 한다. 어느새 찬 밤바람이 시간을 타고 다가왔다. 빈 하늘을 바라보는 처지로 생은 너무 좁아졌고 절실해졌기 때문 쓸쓸한 고독이라도 그냥 곁에 두고 싶다싶으니 만신창이의 그녀가 그렇게 도심의 스승처럼 다가선다...... ( 2012 9 15 아침)
2, 밤 하늘 별을 헤며
이사 올 때 아내는 가구를 바꾼다 냉장고를 새로 들인다 하며 유세를 떨었지만 그러든 말든 나는 평상이 꼭 필요했다. 평상은 정겨웠던 과거를 거리낌없이 연결시켜준다. 풋풋한 시절 대문도 없는 우리 집에 마당을 길게 차지한 것은 평상이었다. 비닐 장판을 깔고 못을 쳐 때론 옷도 걸리고 볼품은 없었지만 한 여름철 메르데카배니 킹스컵이니 하는 라디오 축구 중계를 온 식구가 모여 앉아 수박을 갈라 먹으며 아나운서의 열띤 목소리로 들었던 한 추억은 바로 평상 덕분이었다.
찌지직 끌리는 잡음 그득한 방송이지만 조국의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중계는 어찌나 실감나던지 지금도 이광재 아나운서의 그 목소리는 생생하다. 아마 나의 애국은 거기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평상에 모기장까지 치고 잠을 자곤 했는데 겁이 많은 나였지만 총총한 별 덕분에 무섭지가 않았다. 때 마침 자연시간에 배운 별자리 공부를 한답시고 남북으로 하얗게 펼쳐진 은하수를 따라 이리저리 밤하늘을 누볐다. 별똥별을 보기라도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나는 남북통일을 중얼중얼 거렸었다.
오늘도 나는 옥상에 오른다. 마음에 바람이 일렁이면 오르는 옥상이다. 묘하게 바람을 쐬면 마음은 이내 수더분해지고 가라앉는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본다. 나뭇가지에 걸린 잔바람 소리가 살뜰하다. 바람이 없었다면 나무는 세상소식을 정녕 모르고 살았겠구나 싶어진다. 그쯤이면 바람같이 왔다가 가면 그만이라는 말은 헛말이다. 진정 마음이 헛헛할 때는 고시조 끝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려하네.’ 곱게 빚어 마음에 깊게도 닿는다. 지은이가 나옹선사라고 하였던가. 그도 신륵사에서 갈길을 접은 것을 보면 바람처럼 많이도 돌아다녔나보다.
옥상에서는 아래를 내려다보는 맛이 제법이지만 그래도 위를 향한 만은 못하다. 흡사 아래는 일상이고 하늘은 일탈인 양 갖는 생각부터서가 달라진다. 구름이 하늘을 유영하듯 내 상상도 하늘을 유영한다. 바람과 구름은 언제고 한 묶음이다. 하늘에 구름이 없다면 바람의 실체를 제대로 알 리 없다. 우리는 비도 뿌리고 눈도 내리게 하는 바람과 구름에 의존하며 사는 셈이다. 하늘에서는 변덕을 부리는 구름이 여자이고 머물지 않는 바람이 남자이지 싶다.
낮과 밤이 바뀌는 것, 늘 하는 아무 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그 안엔 어릴 적 그대로 소중한 만남이 고스란히 있다. 난 청명한 날이 질 무렵 서쪽하늘에 외로이 뜬 별부터서 은은히 펼쳐지는 밤하늘을 좋아한다. 초저녁 서쪽에 떠오르는 밝은 별을 동네사람들은 개밥 줄 때 나타나는 별이라 해서 ‘개밥바라기별(금성)’이라고 했었다. 나는 그 이름 보다는 그 별이 새벽에 보일 때는 샛별이라 부른다는 칭호가 애틋하여 더욱 끌린다.
한 여름 철 북쪽하늘에 백조자리가 뚜렷하던 때 남북으로 하얗게 펼쳐진 은하수 중간쯤에 자리한 견우와 직녀를 잘 알고 있다. 실제 그 위치가 맞는지는 지금도 애매하지만 음력 칠월 칠석에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위해 까치가 다리를 놓고 안타까움에 하늘도 감동하여 비가 내리며 그 비를 ‘칠석물을 한다’ 하면서 비를 기다리던 외할머니 말을 전적으로 믿었었다. 그 시절엔 말씀대로 늘 비를 뿌렸었고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음력 7월 7일에는 늘 비가 내린다.
생각해보니 어릴 적 별에 대해서는 누구든 해박하였다. 형들에게 배웠던 ‘똥바가지’라는 북두칠성과 바가지 끝 부분 두 별의 거리만큼 5번 가면 나타나는 ‘북극성’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아마도 배운 기억으로 반대편에는 W자 별자리 ‘카시오페아’가 자리 할게다. 피난 올 때 산속에서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다시 잡았지 하던 어느 무용담처럼 그것이 단지 예로부터 길을 잃을 때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꼭 알아두어야 할 것으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는 얕은 생각이었다.
그 시절 북두칠성을 가리켜보고는 이후 한 번도 찾은 적은 없지만 긴 세월 덕분으로 얻은 지식은 조금 된다. 일컬어 천문이라 했던가. 뜻 그대로 하늘의 글월이다. 별무리의 생성과 조화가 곧 하늘의 글월이고 천체가 우리의 길흉화복을 지배한다고도 믿었다. 특히 조상들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 고대로부터 북두칠성에서 왔다고 믿었고 칠성신앙을 가졌었다.
'자식하나만 달라고'빌던 대상이 북두칠성에 있는 생명의 주재자 칠성님이었다. 북두칠성이 앵돌아 졌네.’ ‘마음 한번 잘 먹으면 북두칠성이 굽어본다.’ 하는 옛말을 보면 북두칠성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믿은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칠성별에 소원을 빌었고 죽어서는 칠성판에 누워야 하늘 문을 통과한다고도 믿었다. 상여가 나갈 때 좌우(음양)로 7명씩 갈라선 것도 다 그 이유에서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왠지 여운을 남긴다. 하늘에서 와서 하늘로 돌아간다고 믿는 지구상의 유일한 민족이 우리다. 말 그대로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는 민족. 참으로 현명하고 뜻 넓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달은 내가 걸으면 마치 같이 따라오는 양 하여 내가 달을 보는 것이라 하여도 정겹고 표현이 맞다 싶지만 아무래도 별은 별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지 싶다.
오손도손한 별과 달이 있어 밤하늘은 적막하지만 외롭지 않다. 하지만 별은 달에 비해 차가운 느낌도 들고 멀게만 느껴진다. 그로 가까이 하지 못하리란 슬픔으로 아스라이 멀어진 친구가 떠오르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그리고 내 읊조리는 시까지도 어느새 하나의 별이 된다. 별은 꿈이라하더니 어느덧 그럴 시간은 다 지난 것인지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처럼 마음에는 가을이 가득 차 우수의 회한과 그리움만이 무성해지는 노릇이다.
달은 창가에 기대어 보는 것이 그만인데 별은 대자로 평상에 누워 정면으로 찬찬히 지켜보는 것이 제 맛이다. 몇 억 광년이라니 참으로 영묘한 우주의 신비이다. 쏟아지는 별속에서 모처럼 북두칠성을 찾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수원서 퇴근하여 돌아오는 길, 마중나간 형제를 놓고 북두칠성을 가리켜주었었다. 후미진 솔밭 지나 달이 삐죽 드러났던 어느 시절, 부자간의 단지 한 컷인데 아직도 희미하게 그려지는 것은 왜일까 모르겠다. 정말 그곳에 계신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일곱 별을 어찌나 신성시 했는지 이름에 결코 북자나 두자를 쓰지 않는다. 그러기에 북두칠성을 보면 우리나라가 따로 정한 별이지 싶고 왠지 마음도 편안해진다. 어느새 개집바라기는 자취를 감췄다. 가을엔 어느 별이 제격일까. 달이 구름 속에서 잠잠하면 별은 더 잘 보인다. 나는 밤하늘을 그 시절처럼 또 누빈다. 꿈도 아닌 터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밀린 숙제라도 마저 푸는 양 그렇게 유심히 밤하늘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실제 북극성은 지구와 같이 23,5도 기울어 그 자리인 채 북두칠성이 주변을 빙빙 주기적으로 돈다. 북극성을 보면 위치를 찾을 수 있고 북두칠성을 보면 어느 때 어느 시각쯤인지도 파악이 가능하다.
* 덕흥리(大安德興里 :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 고구려고분벽화에 은하수를 가운데 두고 앞에는 견우, 뒤에는 개를 데리고 있는 직녀가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
*절에 가보면 대웅전 뒤편에 칠성각이라는 전각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불교 사찰 내에만 존재한다. 고조선 시대에 만든 고인돌의 뚜껑돌 위에 이미 북두칠성이 그려져 있고 고구려 왕릉의 천장 벽화에서는 북두칠성의 형상이 선명하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