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무반주첼로-53회
그것이 남자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기울어 이다음에 결혼도 하지 않겠다고까지 했단다. 그
런데 이번에 그런 일일지도 모를 업둥이가 우리 집에 들어온 것이었다.
현지는 마음이 무거웠다. 대단한 경사가 난 것처럼 들뜬 집안분위기에
초를 칠 마음은 없었지만 가만히 엄마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말수가 적은 엄마는 아무런 내색이 없었다. 우선은 젖이 없으니
무엇을 먹일 것인가가 급선무로 그것만 걱정하고 있었다.
엄마는 즉시 미음을 끓여 먹이며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업둥이의 이름은 봉래라고 지어졌다. 이승원이 며칠을 끙끙거리며 지은 이름이었다.
가족들은 봉래를 무척 예뻐했다. 특히 동생 현순이가 좋아라 하는 것을
현지는 멀찍이서 지켜볼 뿐이었다.
이승원은 밖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현지는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엄마는 봉래를 돌보느라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산모처럼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는데도 봉래를 잠시도 손에서 놓는 법이 없었다.
현지는 다시 공주로 돌아왔다. 방학이 되면 집에 가고,
개학하면 다시 공주로 오는 생활의 연속에서 잠시 집안일을 잊는 때도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승원의 한약방은 날로 번창하여 다행히 학비 걱정도 없었으니
학업에 열중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엄마 주위를 맴돌았다.
이렇게 본인의 의사 없이 일방적으로 맡겨져도 괜찮은 것인가.
그 아이를 기르면서 엄마는 정작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조상의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친구의 말과 같이 그 아이가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온 아이라면
그 배신감은 감당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엄마는 이런 저런 내색 없이 아이를 기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승원은 국가에서 시행하는 한의사 자격 기능고시에 응시해서 합격했다.
이제 명실공히 국가가 인정하는 한의사가 되어 완전한 사회인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간판도 한약방에서 한의원으로 바꿔 달고 본격적으로 의료사업에 전념했다.
인심이란 역시 묘한 것이어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발길을 끊 다가도
별 도움을 원치 않을 때에 사람들이 찾아왔다. 멀리 지내던 친 인척은 물론
고향사람들까지 찾아와 집안은 늘 북새통이 었다 그 시중을 드느라 엄마의 고생만 늘었다.
이제 가난하지도 않은데 엄마는 왜 고생을 자청하는 것일까.
어머니의 옷은 늘 한결 같았다. 아버지가 입다 버린 헌 와이셔츠에
목을 둥글게 도려내고 소매를 자른 뒤 반소매로 만들어 입었다.
치마는 흔한 포플린을 시장에서 떠다가 일하기 불편하지 않도록 짤막하게 마름질을 해서
고무줄을 꿰어 입는 것이다. 마치 펄벅의 『대지』에 나오는 왕릉의 부인과 같았다.
왕릉은 부인 덕택에 돈을 많이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면을 바꿔 첩을 두기에 이른다.
현지는 글을 읽으며 얼마나 분개했는지 모른다.
과연 이승원도 차츰 외도를 시작하고 있었다. 형편이 풀리고 신분이 보장되자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속담처럼 결국 그 길에 발을 들여 놓았던 것이다.
엄마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말없이 집안일을 해나갈 뿐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순교자와도 같았다. 현지는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엄마도 불쌍하다 못해 미울 지경이었다.
사범학교에 들어와 현지의 변화된 모습은 여러 가지였지만 그 중에도
가장 큰 것은 이제 아버지가 아닌 엄마를 위해 기도한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를 위한 기도는 이제 다 이루어진 셈이다. 그래서 엄마를 위해 기도해야만 했다.
현지는 미워하는 아버지에게 학비를 타서 써야 하는데 대해 비굴함을 느꼈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졸업하여 직장을 잡을 때까지만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 무렵 외사촌 성구오빠가 김상태를 데리고 장항 현지네 집에 자주 왔다.
그에 대해 부모님이 호의적이라는 점을 감지하게 되었다.
성구 오빠는 김상태가 가난한 집안의 육 남매 중 맏이며 심성이 곱고
학업 성적도 뛰어나다고 했다. 하지만 집안이 워낙 어려워서
대학 진학은 어려울 것이라고 묻지도 않는 말을 전했다.
실은 가난에 쪼들리는 농가에서 아들을 고등학교에 보내는 일도 어렵다.
대학을 못 보낸다 해도 고등학교를 나온 아들에 대한 기대가 만만치 않을 때였다
현지는 그런 김상태에 대해 가난하게 사는가 보다 하고 생각할 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겨울 어느 날 학교에 가니 담임선생이 교무실로 오라는 호출이 있었다.
교무실에 가보니 담임은 낯선 편지 한 통을 내밀면서 김상태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현지는 당황했지만 외사촌 오빠의 친구 되는 사람이라고 사실대로 대답했다 -다음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