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에스라」 1장부터 6장까지는 고레스 왕의 유대인 귀환령에 의해서 제1차 유대인 귀환이 있었고,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전건축을 시작했으나 주변 민족들의 방해와 고레스 왕이 해외원정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섭정을 하고 있던 그의 아들 캄비세스에 의해 고레스 칙령이 철회되었고, 성전은 기초공사만 한채 9년 넘게 방치되었다. 그러다가 다리우스 왕때 대규모 유대인 제2차 귀환이 있었고, 이때 유대총독으로서 유대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귀환했던 스룹바벨은 다리우스 왕의 강력한 후원하에 성전건축을 재개한 지 7년만에 완공하였다(BC513년12월23일). 그러나 예루살렘성벽은 무너지고 불탄채 그대로 방치되었다. 왜냐하면 고레스 왕이나 다리우스 왕이 성벽건축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 「에스라」에는 다리우스 왕때 있었던 제2차 유대인 귀환을 빼먹고, 고레스 왕때 있었던 제1차 유대인 귀환만 언급했다. 그래서 제2차 귀환자들의 성전공사를 제1차 귀환자들의 성전공사로 차용했고, 성전건축 완공의 시기와 페르시아 왕들의 연대기도 틀리게 기술하였다.
「에스라」4장6절~7절에는 다리우스 왕(BC521~486)의 아들 아하수에로 왕(BC486~466)과 그의 손자 아닥사스다 왕(BC466~424)을 다리우스 왕보다 선왕들로 언급했다. 그리고 「에스라」 7장부터 아닥사스다 왕과 에스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 손이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 정통한 학자 겸 제사장으로서, 아닥사스다 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아닥사스다 왕 제7년(BC459) 5월에 에스라는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이것이 제3차 유대인 귀환이다. 바빌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1,600Km, 약 4개월 여정길이다. 그러니까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 제7년(BC459) 1월1일에 바빌론을 출발하여,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하와 강가에 모이게 하고 3일간 금식기도를 한 후, 1월12일에 유브라데 강을 출발해, 같은 해 5월1일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그즉시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과 그의 고문관들 그리고 바빌론에 있는 유대인들이 보낸 선물들을 제사장을 겸하고 있는 재무관들에게 준 후, 예루살렘까지 안전하게 도착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속죄제물을 바쳤다. 또한 아닥사스다 왕의 서신을 코엘레수리아와 베니게의 총독들 및 왕의 대신들에게 보내어, 왕이 얼마나 에스라를 신임하고 있는지 알게 하였다.
그 후에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와서,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가나안과 그 주변의 족속들과 통혼하여 자녀들을 낳았는데, 방백과 고관일수록 더욱 그렇게 하였다고 말하니, 에스라가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아있었다.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에스라가 하나님께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때, 많은 백성들이 나와 크게 통곡하였다. 그 후 에스라는 백성들의 가족관계를 조사하여 이방인 아내들을 내쫓았는데, 그 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다. 그래서 이런 조치에 반대하는 자들도 있었다.
요세푸스는 이때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다리우스 왕이 죽자 그의 아들 아닥사스다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요세푸스 역시 연대기를 혼동하였다. 아하수에로 왕을 아닥사스다 왕(BC466~424)의 아들로 설명하며, 성경 「에스더」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과 에스더 왕비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닥사스다 왕은 부친(다리우스 왕)에게 왕위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건함과 신앙심까지 물려 받았다. 그는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부친의 선례를 따라 적절히 처리했으며, 유대인에 대해서는 특별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때의 대제사장은 예수아(Jeshua)의 아들 요아김(Joacim)이었다."
"또한 바빌론에 사는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의로운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에스라(Ezra)였다. 에스라는 그들의 대제사장이었으며,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자였으며, 아닥사스다 왕과도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에스라는 바빌론에 있는 유대인들의 일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결심하고, 수리아 총독에게 자신을 알게하는 소개장을 써달라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요청하였다. 이에 아닥사스다 왕은 매우 호의적인 내용의 신임장을 써주었다. 에스라는 왕에게서 신임장을 받고 매우 기뻐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불렀다. 그는 신임장의 내용을 바빌론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읽어 주고, 복사본을 만들어 메대에 살고 있는 자기 동족들에게도 보냈다. 메대의 유대인들은 에스라의 편지를 받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바빌론으로 왔다. 그러나 메대에 사는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남아 살았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열 지파는 유브라데 강 건너편 메대땅에서 살고 있는데, 그들 중에서 제사장들, 레위인들, 문지기들, 성전 음악가들, 그리고 성전의 종들은 에스라의 초청에 응했다."
"에스라는 포로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을 따로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하와 강가에 모이게 하고 3일간 금식을 선포하며, 그곳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동안, 적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유대인들에게 지시했다. 왜냐하면 전에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에 백성들을 호위할 기병대가 필요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에스라 일행은 3일간의 금식기도를 마치고, 아닥사스다 왕 제7년(459년) 1월12일에 유브라데강을 출발해, 같은 해 5월1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그 후 어떤 이들이 에스라에게 와서 고소하기를, 예루살렘의 일반 백성뿐 아니라 레위인들과 제사장들까지도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자와 결혼하는 등 제사장 가문의 혈통이 더럽혀지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일로 인하여 온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다시 그들에게 불행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에스라에게 도움을 간청했다. 이 말을 듣고 에스라는 애통하여 자기 옷을 찢으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수염을 헝클어뜨리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않았다. 그 이유는 백성들의 지도자들까지도 이런 불경한 죄악에 함께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고, 그가 만약 그들에게 이방 아내들과 자식들을 내어좇으라고 명령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러자 백성들은 이 난감한 사태를 실감하고 에스라와 함께 울며 애통해 하였다. 그후 에스라는 땅에서 일어나 두손을 쳐들고 기도하였다. "하나님, 이 백성들은 자기 선조들이 불경한 죄를 범하고 어떠한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이러한 가공할 죄를 또다시 저질렀습니다. 그들의 죄를 생각하면 나는 하늘을 바라볼 면목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로생활의 환란과 불행속에서도 씨와 남은 자를 건져 내시고, 바사 왕의 마음을 돌이키시어 유대 백성으로 하여금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분이시니, 부디 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그들이 비록 죽을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을 처형하지 마시고 살려 주시옵소서."
"에스라가 기도를 마친 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모여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스가냐'라는 예루살렘 지도자가 와서 에스라에게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죄를 범한 자들은 그들의 이방 아내와 자식들을 내어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들이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에스라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이방 아내와 그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을 쫓아내겠다는 맹세를 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에스라는 백성중에 2~3일 이내에 예루살렘에 모이지 아니하는 자는 국외로 추방되고 재산은 몰수될것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9월20일에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장로들과 함께 성전 뜰에 앉아 있었는데, 추위로 인해 몹시 고통을 겪었다. 에스라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죄를 책망하고,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이방 아내를 쫓아내면 그들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권면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숫자가 워낙 많았고, 추운 겨울인 탓에 이러한 일을 불과 하루 이틀내에 해결할수는 없었다. 그래서 에스라는 각 지역의 지도자들에게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람들을 조사하게 하여, 특정한 날을 정해서 장로들을 모시고 그들이 원하는 장소에 모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에스라의 지시대로 그들은 10월1일부터 11월1일까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사람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많은 후손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인간의 정에 연연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더 소중하게 여겨서, 이방 여인들과 그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을 과감하게 내어쫓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숫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에스라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죄를 범한 사람들을 정결케 하여, 그 후에도 그들의 정결한 상태가 유지되도록 하였다."
"유대 백성들은 7월에 장막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어 성전 동문 가까이에 있는 뜰에 올라가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을 읽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에스라는 백성들 가운데 서서 이른 새벽부터 정오까지 율법서를 읽어 주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 율법을 듣고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하면 의로와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고, 또한 지난 날에 이 율법을 지켰더라면 그런 고통스런 재난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에스라는 백성들을 책망하며, 오늘은 장막절이니 울지말라고 하고, 명절날에 슬퍼하며 우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에스라는 또한 그들에게 지난 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반성하는 것은,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안전대 역할을 해줄 것이니, 이제 그만 슬퍼하고 장막절을 기쁘고 즐겁게 지내라고 권면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에스라의 권면대로 8일간의 장막절을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지킨 후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개혁조치를 실행한 에스라에게 감사의 표현을 한 후,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에스라는 이같이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살다가 늙어 세상을 떠났고, 그의 시신은 성대한 장례식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장사되었다. 이 무렵 대제사장 요아김(Joacim)이 죽고, 그의 아들 엘리아십(Eliasib)이 대제사장직을 계승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