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상 ©최영숙
지난 20일 오후 2시 정왕동 옥구공원에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가졌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회를 맞은 2011년 11월 14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 중심이 된 시민 모금으로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세운 동상으로, 부부 작가(김운성, 김서경)의 작품이다.
▲ 시흥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하다 © 최영숙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해 시흥시민 1천538명, 105개 단체로부터 총 6040만 원의 성금이 모였다. 제막식에는 김윤식 시흥시장, 김영철 시흥시의회 의장, 함진규 국회의원, 도의원 및 시의원과, 이명순·정순옥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청소년 및 시민 300여명이 참석했다.
식전 행사는 남시흥청소년오케스트라 꿈의 학교의 ‘내 영혼 바람 되어’, ‘내 나라 내 겨레’ 로 시작했다. 기념식에는 경과보고, 소녀상 제막, 김윤환 시인의 자작 헌시낭독, 하중초교 김지효 학생의 꽃목걸이 헌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강민영 학생의 살풀이 공연 등이 이어졌다.
▲ 김윤식 시흥시장 인사말 하다 ©최영숙
김윤식 시흥시장은 인사말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해방된 국가 맞나하는 자문을 할 때가 많습니다. 91년부터 수요 집회는 이어지고 있고 오늘 우리가 왜 소녀상을 시흥에 모시게 되었는지 잊지 않고 새기면서 진정한 광복의 그날까지 우리 할머니들이 모든 것을 용서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픈 기억을 모두 내려놓으실 때 까지 함께 할 것이다.”고 했다.
▲ 함진규 국회의원 인사말 하다 ©최영숙
함진규 국회의원은 “오늘 오면서 아버님도 1944년 일제징용으로 나가사키에 가셔서 혹독한 고생을 하셨기에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독일과 달리 깨끗하게 인정하고 정성을 하지 않는 정치지도자들이 안타깝습니다. 위안부할머니를 기리는 이 소녀상을 보면서 학생들이 과거의 역사를 잘 이해해서 우리 국가가 1등 국가가 되기를 바랍니다.”고 했다.
▲ 정순옥 공동대표 인사말 하다 ©최영숙
정순옥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는 “여기까지 오기까지 수많은 날개 짓을 했습니다. 16일 소녀상을 모시러 왔을 때 두 가지 생각으로 가슴 아팠다. 예전에 위안부할머니들을 만나고 도우면서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울었던 기억과 오늘 소녀상을 제막함으로써 그분들과 아픔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녀상은 인권과 역사바로세우기”라고 했다.
강인주 소래고등학생 2학년 학생은“저희 세대는 평화를 누리는 학생이지만 일제강점기에 여자라는 이유로 수모를 당한 소녀상을 만드는 것이 세대를 초월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합니다. 할머니들이 죄인처럼 살지 않도록 이 소녀상이 그 관심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 한이 충분히 달래졌다고 하실 때 까지”라고 소감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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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환시인 헌시를 낭독하다 ©최영숙
김윤환 시인이 헌시를 낭독했다.
-아픔이 평화가 될 때까지
두렵고 미안했던 겨울은 지나갔지만
여전히 누이들의 가슴에
잔설은 녹지 않았고
그 눈에 눈물도 마르지 않았네
칠십여 년 전 소녀에게 내리친 날벼락은
민족의 상처, 역사의 부끄러움이었으며
영영 그칠 수 없는 비가(悲歌)가 되어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각성의 노래요, 평화의 외침이 되었네
아픔과 굴욕을 이긴
우리들의 누이, 어머니, 할머니들의
가이없는 사랑의 노래를
두고두고 함께 부르고자 하네
▲ 김지호 학생 소녀상을 안다 © 최영숙
강민영(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재학생)의 살풀이와 하중초 3학년 김지호 학생의 헌화가 이어졌다.
▲ 2016년 수요 집회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이용수(1928년), 길원옥(1928) 위안부 할머니 © 최영숙
전국 각지에 소녀상이 세워지고 있지만, 할머니들의 눈물은 마를 줄 몰랐다.
▲ 2014년1월 28일 황금자 위안부 할머니 장례식 © 최영숙
할머니들은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한 채 한 분씩 세상을 떠나셨다. 온갖 궂은일을 하시며 모으신 전 재산을 학생들을 위해 기부하시고 세상을 떠나신 황금자 할머니, 당신은 방에 불을 지피지 않아서 구청직원들이 몰래 몰래 보일러를 돌려야 했다고 한다. 봄이 오면 지천에 피는 꽃들을 그렇게 좋아하셨던 할머님은 봄이 오기 전에 떠나셨다.
우리는 꽃다운 청춘에 혹독한 겨울을 만나 지금까지 봄을 맞지 못하는 할머니들을 보고 있다.
▲ 풍선을 날리다 © 최영숙
시흥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은 풍선 날리기로 마쳤다.
▲ 옥구공원에 소녀상 세워지다 ©최영숙
평화의 소녀상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빈 의자 - 억울하게 세상을 먼저 떠나가신 할머니들의 빈자리를 쓸쓸하게 표현한 것이며 소녀상 조각 옆의 빈 의자에 나란히 앉아 그 당시 소녀의 심정을 생각해보고 현재 할머님들 외침을 함께 느껴 볼 수 있게 하고자 했습니다.
2. 할머님의 그림자 - 그 사람(소녀)의 그림자(할머니)인데 소녀와 할머니는 다른 사람일까요? 사과와 반성 한 번 없이 지내온 시절, 할머니들의 원망과 한이 어린 시간의 그림자로 표현하였습니다.
3. 할머니의 그림자 속의 하얀나비 - 부디 나비로라도 환생하셔서 원하시던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할머니 그림자 가운데 하얀나비를 새깁니다.
4. 뜯겨진 머리카락 - 당시 조선소녀들은 댕기머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고초를 겪은 소녀들의 거칠게 뜯겨져 잘려진 모습을 형상화하였습니다.
5. 어깨 위의 작은 새 - 산 사람과 돌아가신 사람을 영적으로 연결해주는 영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과 마음만은 연결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6. 소녀의 꼬옥 쥔 손 - 일본 정부는 사과는커녕 소녀상 설치를 반대하였고 오히려 한국 정부를 압박하여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여, 다소곳하게 포갠 손이 저절로 힘이 들어가 점점 주먹을 꼭 쥐었으며 이것은 남은 우리들의 약속과 다짐이기도 합니다.
7. 땅에 닫지 못한 맨발의 발꿈치 -소녀의 발은 맨발, 자신이 지은 죄가 아닌데 할머님들은 죄지은 마음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온전하게 발에 땅을 붙이지 못한 채 발뒤꿈치를 든 모습으로 내 나라의 불편함을 표현했습니다.
▲ 살풀이를 하다 © 최영숙
가장 마음에 아프게 다가온 부분은 땅에 닿지 못한 맨발의 발꿈치였다. 1992년 1월 234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집회로 시작된 수요 집회가 올해로 24년째이다. 그 당시에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하면 지나는 시민도 "위안부를 한 당신들은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고 소리치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당했던 우리의 소녀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받았을 2중의 고통을 알 듯했다. 전국 각지에 소녀상이 세워지고 할머니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그간 할머니들이 수요일 마다 생각만으로도 그 진저리쳐졌을 세월을 말한 용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들의 눈물방울이 바윗돌을 뚫은 것이다. 그분들이 진정한 시대의 영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영웅은 시대가 저지르는 부당함을 타파하고 공감을 이끌고 응축된 힘을 결집하기 때문이다. 철저히 일본에 의해 밟혀졌음에도 그 깊은 고통 속에서 스스로 연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할머니들의 발끝도 못 미친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연로하신 할머니들이 그 덥던 여름과 추운 겨울 수요 집회에 안 나오셔도 되도록 마음의 한을 풀 수 있는 조치가 하루 빨리 이뤄지기를 바랬다. 할머니들이 기다리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첫댓글 소녀상에 여러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지난 광복절, 안산 상록수역 광장에도 소녀상이 건립되었습니다.
많은 것들을 빚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맨발이 유독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소녀의 꼭 쥔 두 손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