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이라 하면 불교를 생각하게 되고 불교라 하면 연꽃이 떠오를 만큼 연꽃은 불교의 꽃으로 머릿속 깊이 새겨진 꽃이다. 백합이 기독교와 깊은 인연이 있는 꽃인 것처럼 연꽃은 불교와 떨어질 수 없는 꽃이 되어 있다.
① 불교를 상징하게 된 연유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게 된 연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연꽃은 불교의 사상과 일맥 상통하는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연꽃이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연꽃은 늪이나 연못의 진흙 속에서도 맑고 깨끗한 꽃을 피워낸다(處染常淨). 연은 진흙 속에 몸을 담고 있지만 더럽혀지지 않고 자신의 청정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은 본시 청정하여 비록 나쁜 환경 속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그 자성(自性)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불교의 기본교리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석존(釋尊)의 설법에는 물이 연잎에 붙지 않는 것과 같이 인간이 탐욕에 물들어서는 아니됨을 설파하고 있는데 여기에 불교와 연이 연결되는 원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 꽃이 피는 동시에 열매를 맺는다(開花卽果). 보통 식물은 꽃이 피고 난 다음에 암술과 수술이 연결이 되어야만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연은 꽃과 열매가 거의 동시에 생겨난다. 이것은 모든 중생은 태어남과 동시에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고 또 성불(成佛)할 수 있다는 사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 연꽃은 고상한 기품을 지니고 있다. 연꽃은 아름다우면서도 고결한 풍모를 지니고 있어 세속을 초월한 깨달은 경지를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곧 성인의 모습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연꽃은 불교의 교리를 함축하고 있는 꽃인 동시에 부처님의 진리를 담고 있고 부처님의 초탈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연꽃이 불교를 상징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불교의 발생과 연관된 여러 가지 설화 속에 연꽃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석가 탄생 때에 마야부인 주위에는 오색의 연꽃이 만발해 있었다고 한다. 또 부처님이 태어나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있을 때 땅에서 연꽃이 솟아 올라 태자를 떠받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연꽃이 불교의 상징으로 굳어지게 된 데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이른바 부처님의 '염화시중(拈華示衆)'의 고사라고 할 것이다.
《무문관(無門關)》이란 책에는 부처님이 그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방법으로 어느날 영산(靈山)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그들에게 꽃을 꺾어 보인다. 아무도 그 행위의 뜻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오직 가섭(迦葉)만이 부처님이 든 꽃을 보고 빙긋이 웃었다. 꽃과 웃음이 동일한 의미라는 것이다. 그때 부처님이 가섭을 향해 "네가 법이 무엇인지를 아는구나"라고 말하고 그에게 법통을 이양했다는 이야기다. 흔히 이 광경을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말한다.
② 상징의 내용
이상과 같이 연꽃이 불교와 인연이 있는 꽃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다시 여러 가지 상징성을 가진다.
먼저 연꽃은 부처를 상징한다. 또 연꽃은 오랜 수행 끝에 번뇌의 바다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른 수행자의 모습에 비유되기도 한다. 부처님은 더러운 곳에 처해 있어도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있는 청정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곧잘 연꽃에 비유했다. 보리수 아래에서 깨우쳐 부처가 된 석가모니는 인간들이 호수의 연꽃으로 보였다고 한다. 어떤 것은 진창 속에 있고 어떤 것은 진창을 헤어나려 하고 있으며 어떤 것은 간신히 머리만 물위로 내밀고 있고 어떤 것은 꽃을 피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러한 연꽃의 모습은 고해를 헤매고 있는 중생의 모습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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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 단청
(고려시대)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 연꽃은 정토에 생명을 탄생시키는 화생(化生)의 근원으로 설명되고 있다. 또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연꽃은 극락정토(極樂淨土)를 상징한다.
극락에는 칠보(七寶)로 이루어진 못이 있고, ······ 못 안에는 수레바퀴만큼이나 큰 연꽃이 있어, ······ 다섯 가지의 꽃색깔은 찬란히 빛이 나고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위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극락에는 연꽃이 만발해 있다. 그래서 연화세계나 연방(蓮邦)은 극락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불상이 연화대 위에 앉아 있는 것은 무명(無明)과 어리석음, 곧 진창 속에서 살더라도 결코 더럽혀지지 않고 청정의 세계에 있음을 상징한다. 또 관음보살이 왼손에 든 연꽃은 중생이 원래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의미한다.
연꽃은 절을 상징하기도 한다. 연경(蓮境)이나 연사(蓮舍)는 사원을 말한다. 또 연꽃은 고승을 상징하는 경우도 있다. 신라의 고승 연회(緣會)는 영취산에 숨어 살면서 언제나 법화경을 읽고 보현보살의 관행법(觀行法)을 닦았는데 뜰의 못에는 연꽃 두세 송이가 사시사철 시들지 않았다고 한다.
연꽃에는 또 각 부분마다 불교의 원리를 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활짝 핀 연꽃잎은 우주 그 자체를 상징하고 줄기는 우주의 축을 의미한다. 연밥에는 9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는 9품(九品)을 말하며 3개의 연뿌리는 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를 뜻한다. 연꽃의 씨는 천 년이 지나도 심으면 꽃을 피운다 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상징한다. 또 꽃이 피면서 열매가 생기는 것은 인과(因果)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연꽃의 생김새를 축을 중심으로 방사되는 바퀴살에 비겨 윤회(輪廻)의 가르침을 암시하는 것으로 연꽃은 윤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③ 상징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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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상
오대산 상원사
이상과 같은 연유로 부처님의 세계를 나타낼 때에는 연꽃이 그 상징물로 사용되고 있다.
우선 법당에 들어서서 전후좌우를 살펴보면 눈이 가는 곳마다 연꽃을 볼 수 있다. 부처님은 활짝 핀 연화좌 위에 앉아 계신다. 그 기단이나 양면 벽화, 천장 등에도 연꽃 그림이나 연꽃 무늬가 보인다. 건물 바깥으로 나와도 가는 곳마다 연꽃을 만난다. 건물의 지붕을 덮은 기와에서부터 천장의 단청, 벽체, 문살에까지 연꽃 무늬를 볼 수 있고 종이나 북, 석탑, 석등, 기타 사찰 주변의 석조물 등 손 닿는 대로 연꽃 무늬를 볼 수 있다. 등을 만들 경우에도 주로 연꽃 모양의 등을 만들었다.
또 절에는 구품연지(九品蓮池)가 있는 곳이 있다. 경주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 앞에는 지금은 메워져 없지만 원래 큰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익산 미륵사지의 연지, 정림사지의 동서연지 등도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연지는 연꽃을 키우는 연못으로 여기서의 연꽃은 불교의 연화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연지는 초기에는 돌로 축조한 조그마한 석련지(石蓮池)를 법당 전면에 배치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범주사의 석련지, 공주박물관과 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연지가 그것이다. 그후 이 석련지는 수조(水槽) 등을 거쳐 차츰 실제로 연지를 파고 원지를 조성하는 식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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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주사 석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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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구룡신지(九龍神地)
그러면 이러한 구품연지는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까? 불교경원의 하나인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따르면 인간이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되면 평생 지은 업의 깊고 얕음에 다라 각기 아홉 가지의 차등이 있는 연대에 앉게 된다고 한다. 즉 정토에 새로이 태어나는 자는 그 성격이나 행위의 차이에 따라 그가 받는 과보(果報)에도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먼저 상·중·하의 삼생(三生)으로 나누고 다시 각각 삼품(三品)으로 나눈 아홉 가지 단계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극락세계의 상징인 구품연지를 사찰 내에 배치하는 것은 극락정토의 성중(聖衆)들이 연지를 둘러앉아 설법을 듣는 연화회의 모습을 나타내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 밖에도 불교와 관련된 사물에는 연(蓮)의 글자를 넣어 만든 말이 많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화엄경(華嚴經)》 등 경전의 제목은 연꽃과 관련되어 있다. 스님이 입는 가사를 연화의(蓮花衣)라 하고 두 손의 열 손가락을 세워 손가락과 손가락을 함께 합치는 최초의 합장행법을 연화합장이라 한다. 또 극락정토의 대중들이 연화지(蓮花池)에 모여 법을 듣는 것을 연화회(蓮花會)라 했는데 오늘날에도 법회의식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이와 같이 연꽃은 가히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