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깨달음에 대하여 들을 기회를 갖는 사람은 1천명중 1명
영적 깨달음을 삶의 가치로 삼는 사람은 1만명중 1명
이 사람은 영적 깨달음을 삶의 가치로 삼는다!!
개관 : 선형적 이원성의 초월
서론
인류 대부분에게
의식수준 200으로의 이행이 큰 장애인 반면,
선형적 마음의 지배를 초월하는 의식수준 500에 이르는 일은
상대적으로 흔치 않고(세계 인구의 4%),
540수준인 무조건적 사랑으로의 의식진화는
더욱 드물다(0.4%).
의식수준 200이하에서 앎은
부정적 감정에 지배되지만
200과 400사이에서 감정은
점차 긍정적이 된다.
그 다음 400에서는 논리와 이성이
감정보다 우세해진다.
의식수준 500에서
또 하나의 큰 패러다임 도약이 있는데,
이는
감정에 물든
개념적이고 선형적인 내용으로부터
비선형적 맥락의 우세로 가는 것이다.
의식수준 500이상의
보다 강력한 장들은
의미, 의의, 가치의 우선순위을
다시 설정한다.
이동은
세계가
객관적으로 여기는 것으로부터
앎 경험의 지배적 성질로서
경험적 주관성을 향해 일어난다.
이행은
중요성의 초점을
'관찰대상의 묘사적 성질로부터
관찰자의 미묘한 성질로 바꾸는 일'의 하나이다.
이러한
주관성은
기쁨, 만족, 의의, 우선되는 유용성의 견지에서
관찰대상을 재맥락화한다.
그러한 전환은
장기적 목표는 물론
결정과 선택에 심원한 영향을 미치는데,
장기적 목표는
관계, 직업선택,
삶의 무수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패러다임의 전환.
중요한 것은
500수준은
사랑이라는 주관적 조건이
이제 의미있을 뿐 아니라,
느낌과 감정만이 아닌
지도적 원리로서
지배적이 되었음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사랑 에너지는
관심이나 동기의 귀결로서
초점이 맞춰진 것일수도 있지만
자기이익이라는
속박과 제한에서
떨어져 나왔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랑은
봉사하지만
에고는
이득을 구하여
봉사받고자 한다.
사랑에 있어서
주는 것의 장기적 만족과 기쁨은
이득에서 취하는
덧없고 단기적인 에고만족을 대체한다.
사랑 에너지는
독특한 무시간성을 띠며,
이는
미묘하고도 논리적으로 묘사하기 어려운
잠재성을 충족시킨다.
사랑은
점차로 영성을 띠게 되면서
신성과의 정렬로서 출현하는데,
신성은
사랑의 궁극적 근원이자 영토이다.
그로인해
사랑은
성스럽고 신성한 것으로 비치게 되고
또한 헌신, 종교적 믿음,
신비적 앎의 실체로 보이게 된다.
의식수준 500으로부터
아름다움, 평화, 내적 고요의 매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위대한 스승들의 영적 원리가
사람의 생활양식속으로 편입되고
결국에는 지배적이 된다.
갈등이 일어나는데,
이는 용서하고 사랑하며
연민을 가질 것인지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그러한 것을 잘 이행하고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리하여
행위들의 선형적 특수성과 내용은
맥락의 전체적 장의 힘에
지배당하게 된다.
결국에는
생명자체의 신성이
저절로 드러나게 되고
모든 생명은 가치있는 것이 된다.
그러한 패러다임 발전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지각과 정신화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본질의 식별로의 전환이다.
이 이행은
고전적으로
붓디체의 제삼의 눈의 개안으로 명명된 것의 귀결이자
그것과 일치하는데,
제삼의 눈의 개안은
영시의 출현을 나타낸다.
지각이
선형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영시는
전체적 장을 반영하는
내적실상을 식별하는 능력을 나타낸다.
보통의 삶에서
영시에 가장 가까운 경험적 상대물로
흔히 언급되는 것은 '직관'인데,
이것은
직관이
선형적, 논리적 처리의 귀결이
아님을 암시한다.
에테르적, 영적 에너지체들은
의식수준의 발전과 더불어
점진적으로 동반 출현하며,
낮은 멘탈체에서
높은 멘탈체로
그 다음 원인체,
그리고 점진적으로 붓디체, 그리스도체, 아트마체로 나아간다.
각각의 에너지체 내에서
에너지 집중은
차크라계와 유사하다.
가장 높은 수준들에서
에너지체는
그리스도 의식과 상호관련되고
마침내는
아트마체의 정수리 차크라에서
참나로 타고난
신성과의 동일시를 매개로
깨달음이라는 신성한 의식의
무제한적 지배와 상호관련된다.
이 의식수준에 이르러서야
초월적 신과
내재적 신은
그속에서 모든 존재/앎/창조가 일어나는
전체적 단일성으로 인지되고
또한
그 속에서
주관성과 의식이 일어나는
앎으로서 인지된다.
의식의 측정된 수준
각각의 우세한 의식수준의 에너지는
영적의지에 의해 설정되고,
영적의지에 의해
정렬이 일어난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같이
그것은
선박의 나침반을 설정하는 일에 비견할만 한데,
나침반의 설정에 따라
운명(미래)이 두드러지게 되며
저변의 의도로 말미암아
현재의 결정에 영향을 준다.
바다에 이는
삼각파도와 같은
감정의 주기적 오르내림은
오직 교정을 요구할뿐이고
침로가 영향받았거나
변경되었음을 뜻하는데,
교정은
오직 의지에 의해서만
성취된다.
예기치 못한 어려움의 시기가 있는데,
그것은 퇴보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사실 그저 어떤 경향이 인지되어
처리되기 위해
표면으로 올라왔음을 의미할 뿐이다.
비슷한 시기가 정신분석이나 내면의 심층분석과 같은 일체의 내적 드러냄의 과정에서 자기에 대한 그 어떤 조사의 귀결로도 일어날 수 있는데, 예를들면 12단계 프로그램의 네번째 단계(내면의 도덕적 재고조사를 하는)가 그런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에
필수적인 자기성찰에서 일어나는
자기 정직성은
용기뿐 아니라
자기심판을 포기하고
신에게 내맡기려는 자발성을 요구한다.
전시대를 관통하는
일반적 인간 경험에 따르면
참되고 깊이 있는
내적 자기정직성은
오직 '신의 도움'으로만 가능했다.
이는 이해할 만 한데,
왜냐하면 에고 혼자서는
삶의 지배적 동력인 그 자신의 사망과 소멸에
별로 협력할 것같지 않기 때문이다.
초기에 영적 작업은
감정성 및
지각의 위치성의 초월과 관련되는데,
이러한 것은
일차적으로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되지만
보다 높은 수준에서 한계는
맥락과 패러다임속에 있다.
맥락과 패러다임의 한계는
묘사해 놓으며
추상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운용상으로
한층 높은 앎에 대한 방해물이다.
그래서 한계는 전반적인 속박의 장에 속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앎에서 나오지만 학문적으로는 마치 신학, 형이상학, 인식론, 존재론의 영역들에 속하고 또한 존재/있음의 본성자체에 대한 식별의 영역에 속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주관적 앎의 패러다임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흔히 '무의식적 추정'인데,
이에 대해서는
개념화하거나
묘사해볼 수 조차 없는 것이
보통이다.
무의식적 추정은
덧없고, 형언할 수없는 수준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데,
그것은 또한
의식의 한 반영으로
존재의 기본적인 경험적 성질들에 대해
일차적으로 근본적이다.
의문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존재 혹은 있음을 각성하기라도 할 수 있는
능력의 근원에 관한 것이다.
그러한 성질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무언의 패러다임 추정에 의해
덧씌워진 것인가?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어떤 성질로 인해
추상적인 것이
식별가능하게라도 되는가?
그리고
그러한 인식자체는
보다 높은 수준의
추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다시 말하거니와
이러한 의문은
지성에게
학문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경험에 따르면
그것은 선험적이며
의식수준들의 빛으로서
심원한 변형력을 가진다.
가장 높은 수준에서
이러한 의문은
신성이라는 태양빛을 감추는
마지막 구름을 나타낸다.
의식수준 600이
고전적으로
빛비춤/깨달음으로 지칭되는
상태들의 개시를 공식적으로 가리키는 반면
참나각성은
700대 의식수준의 특징이다.
800대 중반에는
우회되어야 할
공void이라는 환상의 장애가 있고,
그 다음
맥락이 가진 한계들의
실제적 죽음과 더불어
완전한 깨달음이라는 장려함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글로리아 인 엑스첼시오 데오(Gloria in Excelsis Deo. 저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 이며 그것은 위대한 화신들의 약속을 실현한다.
첫댓글 의식수준 200이하에서 앎은 부정적 감정에 지배되지만 200과 400사이에서 감정은 점차 긍정적이 된다. 그 다음 400에서는 논리와 이성이 감정보다 우세해진다. 의식수준 500에서 또 하나의 큰 패러다임 도약이 있는데, 이는 감정에 물든 개념적이고 선형적인 내용으로부터 비선형적 맥락의 우세로 가는 것이다. 의식수준 500이상의 보다 강력한 장들은 의미, 의의, 가치의 우선순위을 다시 설정한다.
의식수준 600이 고전적으로 빛비춤/깨달음으로 지칭되는 상태들의 개시를 공식적으로 가리키는 반면 참나각성은 700대 의식수준의 특징이다. 800대 중반에는 우회되어야 할 공void이라는 환상의 장애가 있고, 그 다음 맥락이 가진 한계들의 실제적 죽음과 더불어 완전한 깨달음이라는 장려함이 나온다
의미, 의의, 가치의 우선순위을 다시 설정하고,
아름다움,
평화,
내적 고요의 매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군요.........
하여간,
고요함에서 오는 기쁨을 능가할 만한 기쁨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_()_
의식수준 500으로부터 아름다움, 평화, 내적 고요의 매력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위대한 스승들의 영적 원리가 사람의 생활양식속으로 편입되고 결국에는 지배적이 된다. 갈등이 일어나는데, 이는 용서하고 사랑하며 연민을 가질 것인지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그러한 것을 잘 이행하고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