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는 누구인가?
루카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저술한, 신약에서 유일한 복음사가입니다. 신약의 거의 1/4에 가까운 분량의 내용을 두 권에 담아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 발전상을 전해줍니다. 특히 머리말(1,1-4)에서 복음서를 어떻게 집필할 것인지에 대한 기획을 밝히면서 복음서와 사도행전 두 권의 집필을 시작합니다.
루카는?
외교인 곧 유다인이 아닌 다른 민족에 대한 배려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이로써 루카가 몸담고 있었던 공동체 안에는 외교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음이 확실시 됩니다. 마르코와 한 장면을 비교해 봅니다.
마르 2,3-4: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지붕에 나무막대기나 나뭇가지를 깔아놓아 손쉽게 벗길 수 있었던 유다인들의 집 구조를 반영해줍니다], 중풍병자가 누워있는 들것을 달아내려 보냈다.”
루카 5,19: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를 안으로 들일 길이 없어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내고[기와지붕은 로마식이나 그리스식 지붕을 가리킵니다], 평상에 누인 그 환자를 예수님 앞 한가운데로 내려 보냈다.”
루카복음서의 특성은?
루카복음서의 신학적 특성과 의미를 몇 가지만 짚어봅니다.
1) 예수님의 출발지와 목적지가 분명합니다.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을 도성으로 정하여 그곳에서 다스렸습니다. 다윗 가문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 또한 조상 다윗처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어 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완성하셨음을 루카는 분명히 밝혀줍니다.
2) 다른 어느 복음사가보다도 루카는 도성 예루살렘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13,22.33; 17,11; 18,31; 19,11).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류구원 위업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십니다(9,51-19,28).
3) 루카는 구약 시대(성부), 예수님 시대(성자), 교회의 시대(성령)를 선명히 구분해줍니다(16,16). 사도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복음을 선포합니다(24,47-48). 이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힘으로 진행됩니다(24,49).
4)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은 인류구원이 이미 ‘오늘’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루카는 구원의 현재성을 강조합니다. 주요 장면을 봅니다.
ㄱ.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2,11)
ㄴ. “오늘 이 성경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
ㄷ.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두려움에 차서 ‘우리가 오늘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5,26)
ㄹ.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9)
ㅁ.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23,43)
이는 아직 완성된 구원의 모습은 아니지만 ‘오늘’ 여기에서 이미 하느님 구원의 손길을 깊이 체험할 수 있음을 뜻하는 구절들입니다. 루카복음서에 나오는 ‘오늘’은 단지 이 세상에서 흘러가는 어제 오늘 내일의 영역에 속한 개념이 아닙니다. 이 ‘오늘’은 이 세상 시간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구원된 날’을, 이미 앞당겨 체험하는 ‘천상의 오늘’을 의미합니다.
5) 약하고 병든 이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그리고 죄인을 찾아 나서시는 하느님 모습을 루카에서 가장 자주 또 깊이 만나게 됩니다. 루카복음서 안에서 예수님은 자비와 사랑 가득한 분으로 용서와 치유의 하느님을 뵙게 해줍니다. 우리 각자가 먼저 ‘오늘’ 그분을 맛보고 만나려 노력하고 또 그렇게 체험하도록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이를 그분께 인도할 수 있기를 루카는 바라면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술하고 있습니다(6,12; 9,1-2).
6) 하느님 나라가 어디 있는지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내줍니다. 그 두 장면을 봅니다.
ㄱ.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쫒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11,20; 병행구 마태 12,28)
ㄴ.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17,21)
루카는 예수님의 등장과 더불어 이미 하느님 나라가 이미 이 세상 한 가운데 와 있음을 선포합니다.
루카에게 예루살렘은?
루카는 사뭇 예루살렘을 강조합니다. 그곳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류구원사건이 완성된 곳, 곧 파스카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십니다.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루카 24,49)
루카복음서를 전반부로 볼 때 사도행전은 그 책의 후반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작품 루카복음서에서 예루살렘이 예수님 활동의 목적지였다면, 두 번째 작품 사도행전에서는 예루살렘이 제자들 복음 선포의 출발점이 됩니다. 다음 구절에서 이 점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 예수님의 지상생애 목적지였던 예루살렘으로부터 출발하여 세상 끝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파하게 됩니다.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사도 28,30-31) 당시 루카가 생각하던 세상은 로마제국이었으므로 수도 로마가 바로 세상 끝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반면 마르코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복음선포의 꽃을 피우시던 갈릴래아를 강조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마리아 막달레나 일행에게 갈릴래아로 가서 그분을 만나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마르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