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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백파] ☆ 낙동강 1300리 종주 대장정 (52)
생명의 물길 따라 인간의 길을 생각한다!
☆ [낙동강 종주] * (남강 수계) ④ 함안(1)
2020년 11월 06일 (월요일) [독보(獨步)]▶ 백파 출행
* [합천-창녕보]→ 황강 하구→ 적포교 앞(20번 국도→ 우포늪)→ 낙서초교→ 진등산 박진고개(낙동강 조망)→ 1008번 지방도로→박진로→ 박진교(낙동강)→ 창녕 박진전투기념관(남지읍 월하리)→ 다시 박진교→ 영아지길→ 청아지→ 마분산 영아지 고개(팔각정 전망대)→ 신전리(우향)→ [남지읍 용산리 낙동강 대안(對岸)에서 남강 합류]→ 학계리→ [남지체육공원]→ 남지 인도교
*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사이] ← 서남쪽에서 ‘남강’ 합류(남덕유산, 뱀사골 발원 / 경호강-진양호 경유)
함 안(咸安)
아라가야, 천 오백년 잠에서 깨어나다
함양(咸安)은 경상남도 중앙(中央)에 위치한 사통팔달의 지리적 조건과 남고북저의 지형, 남강이 낙동강에 합류하면서 만들어낸 비옥한 평야지대를 토대로 일찍이 고대문명(古代文明)을 꽃피운 지역이다.
진주시 영역(지수면)을 지나온 남강(南江)은 강의 서북 의령에서 ‘의령천’-‘용덕천’이 유입되며, 강남에서 함안군 군북(면)에서 ‘석교천’이 유입된다. 함안군 대산(면)에서는 ‘대산천’이 흘러들고, 하류로 내려가서 의령군 지정면 두곡리에서 ‘봉곡천’과 ‘두곡천’을 받아들이고 나서, 남강은 곧 낙동강(洛東江)과 한 몸이 된다. 그러므로 함안은 남강의 하구와 건너편 창녕군 남지읍을 바라보는 낙동강에 접해 있다.
함남강수계 함안의 지형
함안군의 서쪽에서는 진주를 지나온 남강(南江)이 의령군(의령읍-용덕면-정곡면-지정면)과 경계를 이루며 흐르고, 군의 북쪽은 낙동강을 경계로 창녕군(남지읍-도천면-갈곡면-부곡면)과 마주하며 흐른다. 그 낙동강(洛東江)은 군의 북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밀양에 이른다. 남강은 함안군 서쪽의 군북면에서 법수면을 거쳐 대산면에 이르러 낙동강에 유입되는데, 낙동강은 대산면의 북쪽에서 창녕의 남지읍과 경계를 이루며 칠서면을 경유하여 칠북면 창녕·함안보-광심정으로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대산면은 서쪽의 남강, 북쪽으로 낙동강의 강안을 끼고 있는 면이다. 그리고 함안군 전체적으로 보면 군의 북서쪽은 강안이고 남동쪽은 낙남정맥으로 고도(高度)가 높아져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함안의 남쪽에는 여항산(744m)·서북산(739m)·광려산(720m)·봉화산(649m)·오봉산(525m), 동쪽에 작대산(648m)·천주산(640m)·무릉산(556m) 등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산줄기가 이어지고, 군의 서쪽에는 진주시와 경계를 이루는 방어산(530m) 등이 솟아 있으며, 군의 중앙에는 자양산(402m) 등 500m 내외의 저산성 산지가 있다. 이러한 지형은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지세인 북쪽으로는 산, 남쪽으로는 물이 흐르고 평야가 펼쳐져 있는 것과는 상반된다. 또한 물이 왕(王)이 있는 북쪽으로 향해 거슬러 흐른다 하여 예로부터 '역수(逆水)의 고장'이라고 홀대받기도 했다.
실제적으로 함안군은 지세가 낮아 낙동강과 남강의 빈번한 범람으로 오랜 세월 홍수의 피해를 겪어왔다. 홍수를 막기 위해 쌓은 둑은 군내에 24개나 되고 크고 작은 저수지도 200개가 넘는다.
함안군의 주요 하천으로는 영운천이 방어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남강에 흘러들고, 석교천(石橋川)이 오봉산 부근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 남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중앙에서는 남부의 여항산·서북산 부근에서 발원힌 검암천(儉巖川) 일명 함안천(咸安川)이 북류하며 함안면-가야읍을 경유하여 낙동강에 흘러든다. 함안천은 함안군 가야문화의 중심 하천이다. 또한 동남부에서는 광려천(匡廬川)이 광려산에서 발원하여 길게 북류하며 칠원면·칠서면에서 서류하는 칠원천·운곡천·가연천 등을 합한 뒤, 대산면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남강을 끼고 있는 군북면·법수면·대산면과 낙동강을 끼고 있는 칠서면·칠북면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넓게 펼쳐져 농경지로 이용된다.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함으로써 양대 강의 연안에는 평야가 비교적 넓게 발달되어 있다. 함안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세지만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천혜의 고장으로 평야가 넓고 비옥(肥沃)하며, 수원(水源)이 풍부하여 지금은 곡창지대로 변모했다.
함안은 진주 등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육로를 제외하고는 양강(兩江)을 이용한 수로가 발달하였고 두 개의 봉수대(烽燧臺: 巴山, 安谷山)로 긴급통신망을 구축하였으며, 지금은 남해안고속도, 구마고속도, 국도 5호선, 지방도 1004호선, 1011호선, 1032호선, 1035호선, 1040호선, 1041호선을 비롯 경전선 철도 등 사통팔달(四通八達)의 교통망을 이루고 있다.
낙남정맥(洛南正脈)
낙남정맥은 남강과 낙동강의 남부에서 동서로 이어지는 남해의 해안산맥(海岸山脈)이다. 백두대간 지리산(영신봉-세석평전)에서 분기하여 하동-사천을 지나 고성에서 함안-마산·창원을 경유하여 김해까지 동서로 걸쳐 있다. 대체로 지세가 험준한 산지를 이루며, 산줄기 북부의 저지부와 남부의 고지로 양분되는 지형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낙남정맥, 함안의 주산 여항산을 지난다
낙남정맥(洛南正脈)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한 정맥이다. 이 정맥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끝자락 지리산(智異山)의 영신봉(靈神峰, 1,652m)에서 분기하여 산청과 하동의 경계를 이루며 하동 삼신봉(1,284m)을 경유하여 동남쪽으로 뻗어가다가, 북쪽으로 진양호-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군·사천군 사이로 이어진다. 진양호 남쪽 태봉산(190m)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는 ‘*인공유로인 가화천’을 건너 진주와 사천의 경계를 이루며 남하하다가 봉대산(409m)에서 고성군의 한복판을 경유하여 고성 대곡산(543m)에서 다시 북동쪽으로 치고 올라가 함안의 여항산(770m)에 이른다. (* ‘인공유로 가화천’은 남강댐 수위조절을 위하여, 인공적으로 낙남정맥을 절개하여 만든 하천이다.)
함안의 주산 여항산에서 광려산(720m)-무학산(761)을 경유하여 천주산(639m)까지 높이 300∼800m의 높고 낮은 산으로 연결되어 동진하면서 함안과 마산·창원의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산줄기는 천주산에서 창원의 한복판을 동서로 가로질러 청라봉(517m, 비음산)-용지봉(744m)을 경유하여 김해시로 진입하게 되는데, 김해시에서는 황새봉(393m)-금용산(376m)-신어산(631m)으로 이어져 동진하다가, 김해시 상동면 매리에서 낙동강을 만나 그 맥을 다한다. 상동면 매리의 낙동강 건너편이 양산시 물금읍, 거기에는 낙동정맥 영축산에서 분기하여 내려온 오봉산(533m)이 솟아있다. 낙남정맥의 길이는 약 200㎞이다. 이 산줄기는 전라도 지방의 호남정맥(湖南正脈)의 남쪽 산줄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과 내륙지방을 자연스럽게 분계하고 있다.
함안의 역사
함안은 분지의 작은 하천을 따라 분포한 ‘고인돌’은 청동기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함안은 삼한시대에는 변한에 속한 ‘변진안야국(弁辰安耶國)’이 세워졌으며, 주변의 크고 작은 부족국가를 통합하여, 가야시대에는 6가야의 맹주 ‘아라가야(阿羅伽倻)’가 되었다. 아라가야의 왕들은 ‘말이산(末伊山) 고분(古墳)’에 그들의 600년 흥망성쇠의 역사를 고스란히 묻어놓았고, 그로부터 금은 장식의 둥근고리 큰칼, 완벽한 모습의 말 갑옷, 제의기물로 사용된 새 모양장식의 미늘쇠, 수레바퀴모양의 토기 등탁월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는 아라가야가 한반도 남부의 중심이 되었던 고대국가였음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삼국시대에는 법흥왕 때 신라에 병합 아시량군(阿尸良郡)을 설치하고, 경덕왕 16년(757) 때는 ‘함안군(咸安郡)’으로 개칭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성종 14년(995년)에 ‘함주(咸州)’라 하고 공민왕 22년(1373년)에는 군(郡)으로 승격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연산군 11년(1506년)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근대에는 1914년 행정구역 11면으로 개칭하고 1979년 가야면을 읍(邑)으로 승격하고 2015년 1월 칠원면을 읍으로 승격하여 현재 2읍 8개면으로 구성되었다.
함안의 유물과 유적
군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보물 2, 사적·명승 2, 천연기념물 3, 중요민속자료 1), 지방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7, 기념물 10, 민속문화재 1, 무형문화재 2), 문화재자료 23점이 있다.
옛 아라가야(阿羅伽倻)의 도읍지로 알려진 함안 땅에 일찍부터 농경문화가 꽃피었다.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이 군내 전역에 산재해 있다. 함안면·칠원면·군북면 등지에 고인돌군(群)이 있으며, 가야시대의 유적으로는 가야읍의 함안 도항리고분군(사적 제84호)·함안 말산리고분군(사적 제85호) 등이 있다.
성곽으로는 아라가야의 옛 궁터로 추정되는 가야읍 광정리와 함안면 괴산리에 걸쳐 있는 함안 ‘성산산성(咸安城山山城, 사적 제67호)’, 함안면에 ‘동지산성(冬只山城)’, ‘함안읍성’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는 군북면 하림리의 ‘방어산마애불(防禦山磨崖佛, 보물 제159호)’을 비롯하여 함안면의 ‘함안대산리석불(보물 제71호)’, 군북면 사촌리의 ‘원효암칠성각(元曉庵七星閣,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칠북면 영동리 장춘사의 ‘장춘사석조여래좌상(長春寺石造如來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호)’, ‘장춘사5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8호)’, ‘장춘사대웅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호)’ 등이 있다.
이곳에는 많은 전적들이 보존되어 있는데 칠서면 무릉리의 ‘무릉잡고책판 및 수구집구봉집책판(武陵雜稿冊板─守口集龜峰集冊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72호)’, 대산면 장암리의 ‘간송문집책판 및 금라전언록책판(澗松文集冊板─金羅傳言錄冊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0호)’, 산인면 모곡리의 ‘백운래홍첩(白雲來鴻帖,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88호)’ 등이 대표적이다.
유교문화재로는 칠서면 계내리에 우리나라 서원의 창설자인 주세붕의 묘역(경상남도 기념물 제33호)이 있고, 무릉리의 ‘무산사(武山祠,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3호)’에는 ‘주세붕영정(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2호)’이 보존되어 있다. 그밖에 함안면 봉성리의 ‘함안향교(咸安鄕校,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1호)’, 칠원면 용정리의 ‘덕연서원(德淵書院,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7호)’ 등이 있다.
건축물로는 칠원면의 ‘함안무기리연당(咸安舞沂里蓮塘, 중요민속자료 제208호)’, ‘함안무기리주씨고가(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0호)’, 군북면 원북리의 ‘어계생가(漁溪生家,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칠원면 용산리에 ‘함안층의 새발자국화석(천연기념물 제222호)’, 칠북면 영동리에 ‘함안칠북면 회화나무(천연기념물 제319호)’, 법수면 대송리에 함안법수면의 ‘늪지식물(천연기념물 제346호)’ 등이 있다.
이렇게 함안은 아라가야(阿羅伽倻)의 도읍지로 일찍이 문화가 발달하여 각종 고분을 비롯한 역사적인 유물·유적 등이 산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 낙동강과 남강을 끼고 아담한 산들이 솟아 있어서 잔잔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대표적인 관광지는 대산면 서촌리의 ‘악양루’와 백사장, 군북면 월촌리 남강변에 자리한 ‘와룡정(臥龍亭)’, 칠서면 용성리의 ‘경양대(景釀臺)’, 가야읍 말산리의 ‘아라공원’ 등이 있다.
여항산(艅航山)
해발 770m에서 바라본 지리산과 남해의 푸른 물결
여항산(艅航山, 770m)은 예부터 함안의 주산(主山)이자 진산(鎭山)으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김해 분성산을 잇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 강명리 일원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일원에 분포한다. 함안의 지형적 특성인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세와 하천의 역류(逆流)는 바로 함안의 남단에 위치한 여항산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여항산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1481) 등 다수의 문헌에서 확인된다. 그 중 『함주지』 산천조(山川條)의 기록이 백아홉 글자로 비교적 상세한데, 「군성(郡城, 함안읍성)에서 서남쪽으로 15리(上里)에 위치하며, 두류산(頭流山, 지리산)에서 300리를 이어져 와 군(郡)을 진압하는 진산이다. 정상의 바위는 깎아지른 듯하고 남쪽은 낙숫물을 받는 댓돌처럼 생겼는데 그 위가 편평하여 10여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이다. 바다를 바라보면 멀리 대마도의 여러 섬들이 뚜렷하게 보이고, 산허리에는 한낮에도 신령한 퉁소 소리가 나는 듯하며 구름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가뭄이 심할 때에는 군민들이 기우(祈雨)의 깃발을 꽂고 비가 올 것인지 점을 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항산의 지명유래]▶ ‘여항’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관련한 전설로는 천지사방이 물에 다 잠겼을 때 여항산의 꼭대기만이 배 만큼 남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경상도지리지』를 비롯한 조선시대 대부분의 기록에 ‘남을 여(餘)’자에 ‘배 항(航)’자의 ‘餘航’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현재 사용하고 있는 배이름 여(艅)자에 배 항(航)자의 ‘艅航’은 문헌기록과 각종 지도로 보아 18~19세기 사이에 ‘餘→艅’로 변경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여항산의 문화유적 • 여항산성(艅航山城)]▶ 1996년 5월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에서 실시한 지표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여항산성의 존재가 알려졌으나, 아직까지 정식의 학술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산성의 축성연대와 구조 등에 관한 정확한 내용은 분명하지 않다. 여항산성은 여항산 제1봉과 제2봉에 각각 축성되어 있는 2개의 테뫼식(봉우리를 둘러쌓아 축성하는 방식) 석축산성(石築山城)으로, 해발이 높아 주변 일대를 조망하기에 특히 유리하고 남쪽의 진동만에서 함안으로 북진하는 적들에 대한 효율적인 관망과 방어가 유리하다는 점에서 군사적 기능의 산성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여항산성과 관련한 문헌기록이 전혀 없어 정확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지만, 지표조사 당시 채집된 도질토기 파편과 선문계(線文系)의 기와편으로 보아 삼국시대 말~통일신라시대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여항산의 문화유적 • 여항단(餘航壇)]▶ 안에 심한 가뭄이 들면 여항산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는 옛 기록이 여러 문헌에서 확인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1481)에는 여항산의 서북쪽에 위치한 미산봉(眉山峰)에서 기우제를 지내기 위한 사단(祠壇)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함주지(咸州誌)』(1587)에는 여항산의 정상에 있는 소위 마당바위에서 기우제의 깃발을 꽂고 비오기를 기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서북산, 함안의 낙남정맥
서북산(739m)은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에 위치한 여항산(艅航山)에서 뻗어 내린 남릉이 여항면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여항산과 북쪽으로 줄기를 잇고 있으며 전형적인 장년 산지의 특색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인 산세는 부드러우나 봉우리가 뾰족하고 사면이 급한 편이다. 동남쪽으로는 평지산에 이어 베틀산과 산맥이 이어져 있고 북동쪽으로는 봉화산(烽火山)과 이어져 있다. 서북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학동 저수지로 유입되며 산기슭에 감재 고개가 있어 여항면과 진북면의 교통로가 되고 있다.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서북산전적비
이곳 서북산 전투는 6·25 한국전쟁 중 낙동강 방어전투가 치열했던 1950년 8월 미 제25사단 예하 제5연대 전투단이 북괴군을 격퇴하여 UN군의 총 반격작전을 가능하게 했던 격전지이며, 이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중대장 티몬스 대위 외 100여 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그 아들 미8군 사령관 리차드 티몬스 중장과 제39사단장 하재평 소장을 비롯한 장병 및 주민들이 뜻을 모아 1995년 11월 전적비를건립했다. 이국인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장렬하게 산화한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2013년 11우러 29일 이 비를 대한민국 헌충시설로 지정했다.
낙남정맥 봉화산(烽火山)
함안의 진산인 여항산 동쪽에 마주한, 봉화산(烽火山, 675.5m) 일명 파산이라고도 한다. 여항면 주동리, 내곡리 일원에 위치한 봉화산은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급하다. 꼭대기에서는 남쪽의 진동만과 대현관문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동쪽으로는 함안성 점산성(咸安城岾山城, 경상남도 기념물 180호), 북쪽으로는 아라왕궁지(阿羅王宮地)와 봉산산성(蓬山山城)이 멀리 내다보이며, 서쪽으로는 여항산이 보인다.
산 정상에 봉수대(烽燧臺)가 설치되어 있어 예로부터 봉화산이라고 불리며 이 봉수대는 조선 전기에 축조되어 후기까지 경상도 방면의 직봉2로로서 기능을 수행해 왔으며, 진해의 ‘가을포봉수’를 받아 의령의 ‘가막산봉수’에 연결되었다. 함주지에 의하면 연대(煙臺) 1, 연굴(然窟) 5, 화덕(火德) 1, 망덕(望德) 1개의 봉수시설(烽燧施設)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현재 연대1, 건물터 2곳만 확인되고 있으며, 1999년8월6일 기념물 제220호로 지정되었다.
별천계곡(別天溪谷)
여항산과 봉화산 사이의 아름답고 깊은 산곡
맑은 물줄기와 크고 작은 소(沼), 소나무 군락으로 이뤄진 별천계곡은 여항면 주동리, 군의 영산인 여항산 자락에 있다. 여항면은 골이 깊고 공기가 맑은 청정지역으로 이름이 나 있다. 별천(別天)은 여항면 주동리에 있는 주주골이라 부르는 골짜기 끝자락에 있으며, “아름다운 경치와 시원한 계곡, 이곳이 별천지로구나!” 조선시대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이 이곳의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별천지(別天地)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별천 계곡은 심심유곡의 지형 탓에 연중 맑은 물이 흐르고 크고 작은 소가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다. 가장 아름다운 곳은 「6.25격전비」가 있는 곳으로 넓고 평평한 바위가 펼쳐져 있고 바위를 따라 계곡의 찬 물이 쉼 없이 흘러 내려 크고 작은 소(沼)가 되어 만난다.
백이산(伯夷山)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이 은거하신 곳
백이산(369m)은 동쪽으로는 여항산, 서쪽으로는 방어산이 둘러 쌓여 있으며 ‘쌍안산’이라고도 한다. ―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자 생육신(生六臣)의 한사람인 조려(趙旅)선생이 세종 2년(1420년)에 낙향하여 세상을 등지고 현재 이곳 백이산 아래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어계(漁溪)라 칭하였다. 단종임금 복위 후 숙종께서 내리신 어계 선조사 제문 중에 어계선생의 절의가 고대 중국의 백이숙제와 같음을 찬양 하여 쌍안산을 백이산이라 칭하게 되었다.
백이산(伯夷山)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봉을 숙제봉(淑濟峯)이라고 하는데, 숙제봉을 부르기 이전에는 쌍봉산(雙峯山)이라 하였으며, 양봉 사이 달이 뜬다 하여 월출봉(月出峯)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방어산(防禦山)
함안과 진주시의 경계를 있는, 명당의 정기가 시작되는 곳
방어산(532m)은 함안군 군북면과 진주시 지수면을 경계 짓는 산으로 ‘웅산’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방어산은 괘방산(451m)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두 산을 함께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정상에 서면 지리산이 아득히 보이고, 동남쪽에는 여항산이 보인다. 정상에는 옛날 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며, 300근짜리 활을 쏘는 묵신우(墨神祐)라는 장군이 병자호란 때 성(城)을 쌓고 성문을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비로소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때 장군이 타던 말의 발굽 핏자국이 아직도 바위에 선연하다. 산의 7부 능선에는 보물 제159호로 지정된 높이 5m의 거대한 ‘방어산 마애불’이 있으며, 산은 높지 않으나, 군데군데 암반이 많고 능선이 제법 굴곡되어 아기자기하다.
방어산 정상은 큰 바위로 되어 있어 장군대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곳에서 50m 아래에 마당바위, 200m 아래에는 흔들바위가 있다. 흔들바위는 높이 8m, 폭6.5m의 ‘끄덕바위’라고도 부르며, 기울어진 쪽으로 부자(富者)가 난다는 전설이 있다. 방어산 능선 서쪽이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이 김해 허씨와 능성 구씨가 누대에 걸쳐 번성한 부자마을이다. 그리고 방어산 동쪽은 함안군 군북면으로 함안 조씨 조홍제 생가 등 부자마을이 있다.
검암산(儉岩山)
검암산(216.7m)은 함안 가야읍 검암리에 있는 산으로 둘레길처럼 걷기 편안한 산길이다. 검암마을은 가야읍의 관문으로 고려시대부터 불려왔다. 검암은 한자만 세 번 변했다. 처음에는 ‘黔岩山’(검암산)이라 했으며 ‘鈐岩山’(검암산)으로 바뀌고, 지금은 ‘儉岩山’(검암산)으로 쓰고 있다.
상검마을 모퉁이 650살 먹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쇠지팡이에 온몸을 기대고 서있다. 입곡천 절벽 위 ‘동산정(東山亭)’은 세조 때 경상우도 처치사와 병조판서를 지낸 이호성이 창건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 동지산 서쪽 기슭에 있는 정자이다. 조선 중종 때 거제 지방에서 수군만호(水軍萬戶)를 지낸 이희조(李希祖)가 중수하였다.
상검마을에서 시작되는 큰길은 입곡천을 끼고, 대사 마을까지 이어지는 함안천 생태공원 일주도로다. 절벽 아래 나무다리는 그저 서있기만 해도 그림이다. 이곳은 배롱나무 군락지다. 여름날 꽃이 피면 그 선홍빛 꽃무리가 절정을 이룬다. 배롱나무 백일홍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절조를 상징하는 꽃이어서 지금도 서원이나 정자의 주위에 백일홍이 많다.
충순당 이령, 황곡서원
검암산 임도 개울 길 따라 올라가면 산문(山門)이 나온다. ‘충순당’으로 들어가는 강도문(講道門)이다. 이령(1541∼1592년) 선생은 중종 36년(1541) 함안 검암리에서 태어났다. 10살 때 벽에다 충순당(忠順堂)이라고 쓴 일이 있는데, 그것이 호(號)가 되었다. 부친이 사망하자 13살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고, 모친이 사망했을 때도 3년간 시묘했다고 한다.
충순당(忠順堂)은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 당시 평민을 주축으로 한 의병을 이끌고 직접 진두지휘하다 전사한 이령(1541∼1592년)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후손들이 건립한 것으로 충의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 유적이다.
산문 가까이 고택 한 채 쓰러질 듯 적막하다. 검계정이다. 1633년(인조11) 황곡서원이 세워지기 전, 검계(여항천) 검암정사(儉岩精舍)에서 선비들이 학문을 연구한 곳이다.
함안 성산산성
성산산성(城山山城)은 해발 139.4m의 조남산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이다. 북쪽에는 평야가 위치하며 멀리 낙동강이 바라다 보인다. 서북쪽에는 아라가야 산성인 봉산산성(蓬山山城)과 함께 아라가야 고분인 도항리·말산리 고분군이 내려다보인다. 동북쪽으로는 문암산성(門巖山城)과 동지산성(冬只山城), 동남쪽으로는 성참산성(城站山城) 등이 둘러싸고 있다.
1998~2008년에 여러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결과, 성벽 및 성벽 단면, 문터, 건물터, 배수로 등의 모습과 구조가 확인되었다. 특히 저수시설 등에 대한 발굴조사에서는 많은 신라 목간들이 출토되어, 축조 시기와 역역 동원체제 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사적 67호.
함안 신암서원
신암서원(新岩書院)은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있었던 서원이다. 1780년(정조 4)에 취우정(聚友亭) 안관(安灌)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역의 유림들이 뜻을 모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안관 선생은 1519년 중종 때 일어난 기묘사화 이후 세거지였던 시흥(지금의 금천구)의 백사동을 떠나 함안군 가야읍에 정주하였으며 이후 나라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나아가지 않고 후진 교육에 전념했다.
1784년(정조 8)에 승원(昇院)하였다. 1823년(순조 23)에 강당을 이건하고 1850년(철종 1)에 두 번째 중건을 행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한동안 복원하지 못하였으나, 1990년 3월 향내 유림의 지원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1992년 10월에 착공하여 1993년10월 23일에 준공하였다. 다음은 함안 신암서원(新巖書院)의 주련(柱聯)의 내용이다.
匡廬聳翠太淸中 광려용취태청중 광려산은 푸르게 하늘 가운데 솟아있고
日上扶桑滄海闊 일상부상창해활 태양이 떠오르는 너른 동해는 툭 트였네.
巴江洛水共朝宗 파강낙수공조종 샛강 과 낙동강은 함께 바다로 흘러들고
夷岑屹屹與雲齊 이잠흘흘여운제 백이산(伯夷山)이 높고 높아 구름과 더불어 가지런하네
滿山薇蕨涵春雨 만산미궐함춘우 온 산에 가득한 고사리와 고비는 봄비를 머금고서
來濕庭前草色萋 래습정전초색처 정원에 풀은 비가 촉촉이 적셨네
揷天巴岳碧於藍 삽천파악벽어람 파산은 하늘높이 솟아 쪽빛보다 푸르고
地靈自是生人傑 지령자시생인걸 신령스러운 땅의 영험은 뛰어난 인재가 나올 것이네
— 파강(巴江)은 여항산에서 읍내로 흘러내리는 시내의 옛 이름이다.
고려동 유적지(高麗洞遺跡地)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번지에 있는 고려동유적지는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킨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모은(茅隱) 이오(李午) 선생이 거처를 정한 곳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이오(李午) 선생은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李午)는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高麗洞壑'(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그는 아들에게도 조선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과 자기는 죽은 뒤라도 자신의 신주(神主)를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그의 유언을 받든 후손들은 19대 600여 년에 이르는 동안 이 곳을 떠나지 않았고, 이에 고려동(高麗洞)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
현재 마을 안에는 고려동학비(高麗洞壑碑), 고려동담장, 고려종택, 고려전답, 자미단(紫薇壇), 자미정(紫薇亭), 율간정(栗澗亭), 복정(鰒亭)등이 있다. 후손들이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 보다는 자녀의 교육에 전념함으로써 학덕과 절의로 이름 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이곳을 1983년 8월 2일 기념물 제5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불상
모두 4구(軀)의 불상이 남아 있어서 하나의 석불군(石佛群)을 이루고 있다. ‘한절’ 즉 대사(大寺)라 전해지고 있는 이 사지(寺址)는 함안면 대산리 1139번지 내 위치한다. 모두 4구(軀)의 불상이 남아 있어서 하나의 석불군(石佛群)을 이루고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완전한 상(像)은 2구의 보살입상(菩薩立像)인데, 형식이나 양식이 흡사하여 입불상의 좌우협시(左雨脇侍)로 조성되었음이 분명하다.
두 보살상은 타원형의 부드러운 얼굴이나 아담한 체구, 그리고 8각과 원형의 2단 대좌 등에서 통일신라 초기양식의 전통을 계승한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원통형의 높은 관(冠)이나 작달막한 체구, 기하학적인 의문(依紋), 한복식 옷 등의 표현은 고려의 지방양식 석보살상(石菩薩像)임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입불상은 머리가 없지만 양감(量感)이 풍부하고 세련미가 있는 조각으로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며, 파괴가 극심한 머리없는 좌불상은 온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의 석질과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불상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71호로 지정되었다.
함안 방어산 마애약사여래삼존입상
방어산마애불 삼존상은 암면을 깍아 새긴 마애약사불상과 그 협시보살상이다.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산131번지 내 위치한 방어산 마애불삼존상(磨崖佛三尊像)은 암면을 깍아 새긴 마애약사불상(磨崖藥士佛像)과 그 협시보살상(脇侍菩薩像)인데, 신라 애장왕 2년(801)에 만들어진 신라 하대의 가장 저명한 마애불이다.
이 불상은 8세기의 이상적 사실주의 경향의 불상들과는 다소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거구의 불상이지만 장부(丈夫)의 당당한 체구가 아닌 현실적인 장대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특징은 정적(靜的)이며 침울하기까지 한 얼굴, 탄력감이 줄어진 신체 각부, 그저 둥글기만 한 어깨, 밋밋한 가슴과 배 등에서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광보살(日光菩薩)의 강렬한 인상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의 온화하고 우아한 얼굴 등에서 이상적인 양식이 다소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8세기의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던 이상적 사실주의 양식에서 한층 해이되고 한층 활력이 줄어진 현실적 사실주의 양식으로 이행되어 가던 변모과정을 잘 보여주는 801년의 연대를 가진 중요한 마애불상으로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함안9경(咸安九景)
[제1경] 말이산고분군(末伊山古墳群)
함안 ‘말이산고분군’은 찬란했던 아라가야의 도읍 가야읍 도항리, 말이산(末伊山) 구릉일대에 조성되어 있다. 말이산은 ‘머리산’의 소리[音]를 빌어 한자로 표기한 것[音借]으로 ‘왕(왕족)의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해발 60m 안팎의 작은 봉우리들이 2km에 걸쳐 있는 주능선 위에 지름 40.2m의 가야 최대 고분 등 대형봉분이 줄을 지어있다. 서쪽으로 뻗은 가지능선까지 아름다운 경관이 이어진다.
대표적인 출토 유물로는 불꽃무늬토기, 수레바퀴모양토기, 배모양토기, 집모양토기 등 독특한 양식의 토기(土器)들과 쌍용문, 둥근고리큰칼, 투구, 갑옷, 말갑옷, 새모양장식 미늘쇠 등 다양한 철기(鐵器) 등 가야를 대표하는 유물이 출토된 곳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신라, 백제, 대가야 등과 함께 한반도 남부에서 번성했던 ‘철의 왕국’으로 불린다.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야생화와 들풀을 관찰할 수 있으며, 별자리 덮개돌 발견 이후 별을 관찰하는 행사도 수시로 열린다.
[제2경] 악양루(岳陽樓), 악양의 꽃길과 노을
함안군(咸安郡)은 북쪽으로 군북면, 법수면, 대산면이 남강(南江)에 접해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여름철 큰물이 나면 남강이 자주 범람하여 둑방을 만드는 데 힘을 기울여왔다. 함안군 법수면에는 전국에서 가장 긴 악양의 둑방 길이 남강 변에 조성되어 있다. 둑방길 강변에는 울창한 갯버들 숲과 둑길을 따라 5월의 빨간 꽃양귀비와 9월의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둔치에 핀 구절초가 보는 사람의 감성을 한껏 끌어올린다. 새벽녘에는 신비로운 물안개가 피어나고, 해질녘에는 ‘악양루(岳陽樓)’와 ‘악양생태공원’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장관을 이룬다.
‘악양루(岳陽樓)’는 낙남정맥 여항산-봉화산-광려산에서 발원하여 함안면과 가야읍을 경유하여 내려온 함안천(咸安川)이 남강에 유입되는 하구, 전망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악양마을 북쪽 절벽에 있는 정자다. 조선 철종 8년(1857)에 세운 것이라 한다. 남강(南江)과 드넓은 들판과 법수면(法守面) 제방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악양루는 한국전쟁 이후에 복원하였으며 1963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의 명승지 ‘악양(岳陽)’에서 따온 것이다. 옛날에는 ‘倚斗軒’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청남 오재봉이 쓴 ‘岳陽樓’ 현판이 걸려있다. 문화재자료 190호이다.
국민가요 「처녀뱃사공」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인 윤부길은 함안군 가야장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향하다가, 악양나루에서, 군에 입대한 오빠 박기중(6·25때 전사)을 대신해 박말순·정숙 두 처녀가 남강의 강바람에 치마를 휘날리며 교대로 노을 저어 길손을 건네주는 두 처녀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군에 가서 소식이 끊긴 오빠를 애타게 기다리는 23세 처녀의 애절함을 ‘낙동강 강바람에~’ 노랫말로 갈무리했다. 이후 1959년 악양나루의 아름다운 모습과 처녀뱃사공을 잊지못한 윤부길 씨가 한복남 씨에게 의뢰해 탄생한 것인데, 1959년 당시 가수 황정자가 노래를 불러 국민가요가 된「처녀뱃사공」이다. 윤부길은 가수 윤항기와 윤복희의 아버지이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 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 헤야 데 헤야 노를 저어라 /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 군인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 헤야 데 헤야 노를 저어라 / 삿대를 저어라
낙동강 강바람이 앞가슴을 헤치면 / 고요한 처녀 가슴 물결이 이네
오라비 제대하면 시집보내마 / 어머님 그 말씀에 수줍어 질 때
에 헤야 데 헤야 노를 저어라 / 삿대를 저어라
[제3경] ‘입곡군립공원’, ‘입곡저수지’의 단풍
함안군 산인면(山仁面) 입곡리 검암천 중류에 위치한,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입곡저수지를 중심으로 한 군립공원이다.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저수지(貯水池)를 중심으로 협곡을 이루고 있는 입곡군립공원은 수려한 자연풍광과 형형색색의 바위, 기암절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저수지 중앙을 가로지르는 길이 112m, 폭 1.5m 출렁다리가 시설되어 있고 저수지 주변을 일주하는 산책로는 최고의 힐링 코스이다. 사계절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날 붉게 물든 단풍과 저수지의 은빛 물결은 한 폭의 그림 같다.
[제4경] 무진정(無盡亭)의 사계(四季)
정자의 경치는 다함이 없고 즐거움 또한 다함이 없다
무진정(無盡亭)은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547번지에 있는 정자(亭子)이다.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예상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조삼(趙參) 선생이 명종 22년(1567년)에 지은 정자로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이라 하였다. 울창한 고목 속에서 낙화놀이가 열리는 연못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곳이다.
주세붕(周世鵬) 선생의 기문에 “천명(天命)을 알고 용퇴할 수 있었기에 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 정자의 경치와 선생의 즐거움이 무진(無盡)할 것이다.”는 구절에 있어서 청풍명월(淸風明月)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끝없음을 이름으로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맑은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고 밝은 달이 먼저 이르며, 반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온갖 경치가 모두 모였으니 진실로 주물주의 ‘무진정(無盡亭)’이라 하겠다”는 구절에서 엿볼 수 있듯이 사계절 아름다운 경치가 이어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말이산고분군과 함께 웨딩촬영지로도 유명하다. (☞ 경남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
무진정(無盡亭) 조삼(趙參)은 1473년(성종 4년)에 태어나시어 성종 20년(1489)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의 부사와 목사를 역임하시고, 내직으로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겸 춘추관(春秋館) 편수관(編修官)을 지냈다.
앞면 3칸 · 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1976년 12월 20일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제5경] 연꽃테마파크의 아라홍련(阿羅紅蓮)
함안군 가야읍 가야리, 아라가야 왕궁지(王宮址) 앞에 조성된 ‘연꽃테마파크’는 700년 전 고려시대 연꽃인 ‘아라홍련(阿羅紅蓮)’과 경복궁 연못에 복원되어 우리나라 최고의 자생 연꽃임이 입증된 ‘법수홍련(法守紅蓮)’ 등 50여종의 다양한 연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함안의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 11선’에도 선정되었으며, 휴식 공간도 잘 갖춰져 있다.
‘아라홍련(阿羅紅蓮)’은 2009년 5월 함안의 성산산성(城山山城)에서 발굴된 연씨를 발아시킨 연꽃이다. 고려시대 불화[撑畵]에 그려진 꽃과 동일하고, 유전자검사에서 700년 전 고려시대 말기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함안박물관에 원형이 보존되어 있으며 성산산성에 복원할 예정이다.
[제6경] 낙동강 ‘강나루생태공원’의 ‘청보리’
함안군 칠서면(漆西面) 이룡리 일원 낙동강(洛東江)을 끼고 광활하게 펼쳐진 ‘함안강나루생태공원’은 2012년 6월 ‘4대강 정비 사업’과 연계하여 낙동강 제18공구 내 수변공간을 활용하여 조성되었다. 봄이 되면 42만㎡에 걸쳐 ‘청보리’가 펼쳐진다. 거기에는 작약집단지도 있다. 함안군 칠서면과 칠북면은 남지에서 밀양으로 흐르는 낙동강 수계에 있는 면이다.
특히 ‘강나루오토캠핑장’은 강나루생태공원 내에 위치한 오토캠핑장은 풍요로운 여가생활을 위해 함안군에서 조성한 공공 야영장이다. 캠핑장 외에도 산책로, 자전거 도로, 축구장, 농구장, 인라인 스케이트장 등 체육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 경남 함안군 칠서면 이룡리)
[제7경] 장춘사(長春寺)의 산사풍경
함안군 칠북면(漆北面) 영동리에 위치한 장춘사(長春寺)는 무릉산의 골짜기를 품고 있는 고즈넉한 전통사찰이다. 832년(흥덕왕 7년)에 무량국사가 처음 세웠다고 전해지며, 작은 규모지만 오랜 세월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인근 산세와 어우러진 풍광은 과히 일품이다.
장춘사에는 대웅전, 석조여래좌상, 석조석가여래삼존좌상, 오층석탑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1979년 신축되었으며, 약사전에 모신 ‘장춘사석조여래좌상’은 지방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8경] 합강정(合江亭)과 반구정(伴鷗亭)의 해돋이
낙동강 경치 좋은 절벽 위에 합강정
조선시대 인조 때 지어진 합강정(合江亭)은 함안군 대산면(代山面) 장암리, 낙동강 강변 중에서 최고 절경으로 일컬어지는 용화산(龍華山) 기슭 절벽에 자리 잡고 있다.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合流)하는 곳에서 1km 떨어진 위치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 용화산(龍華山) 기슭의 강변에 있는 정자이다. 함안 조씨 조임도(趙任道)가 은거, 수학한 곳으로 처음에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으나 여기가 남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이므로 합강정(合江亭)이라는 이름의 편액을 정자에 걸게 되었다 한다.
조임도(趙任道)는 선산의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제자로 학문에 전념하여 인조반정 후 학행이 뛰어난 선비로 천거되어 한때 공조좌랑(工曹佐郞)이 되었고 인조·효종 때에는 대군의 사부로서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고 이 곳에 은거하여 여생을 보냈다. 합강정(合江亭)은 1633년(인조 11)에 건립한 기와집인데, 1941년에 중수하였으며 1980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해발이 낮은 합강정은 낙동강 물속에서 해가 떠오르는 명장면을 감상할 수 있으며, 1907년 이곳에서 출발한 뱃놀이(용화산하동범)가 유명하다.
함안군 대산면(代山面) 낙동강변에 위치한 반구정(伴鷗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두암(斗巖) 조방(趙垹) 선생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느티나무 고목(古木) 아래에서 남지철교와 들판을 바라보는 풍경이 일품이며, 특히 ‘남방바람꽃’이 피는 봄이 되면 전국에서 사진작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마을 안쪽 경사가 심한 임도를 걸어서 올라가다 보면 반구정이 보인다.
[제9경] ‘대평늪’의 늪지식물
함안군 법수면 대송리에 위치한 ‘대평늪’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자연생태환경이 아주 잘 보존된 곳이다. 물의 깊이는 1.5~2m이다. 요즘 늪지와 늪지식물들은 날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데, 법수면의 대평늪은 일찍이 ‘광주 안씨(廣州安氏)’가 정착해 살면서 후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도로 풍수지리에 근거하여 늪지대를 보존해온 덕에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늪지식물을 보존하기 위하여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 346호)로 지정된 유일한 곳으로 늪지식물 연구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늪지를 보호해온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대평늪에는 자라풀, 물옥잠, 마름, 부들, 가시연꽃, 털개구리미나리 등의 다양한 늪지 및 수생식물이 있으며, 백로, 흰뺨검둥오리 등도. 간간히 도래하는 곳이다. 늪 주의를 한 바퀴 돌면서 여유 있게 탐방할 수 있다. … ♣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