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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을 삶
천 영 대
성경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 7)」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 (골 3:5~10)」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엡 5:8~12)」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벧전 2:1~3)」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함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은 그의 생명을 가지고 그의 삶을 사는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들로부터 나서 그들의 생명을 가지고 그들처럼 살고 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생명에 의한 삶이다. 개는 개의 생명을 가지고 개처럼 살고, 사람은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사람처럼 산다.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들로부터 그들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들과 같은 삶을 산다. 그들이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또한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사람처럼 산다. 그런데 우리 조상 아담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후손인 우리 또한 타락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서 타락한 삶을 산다. 곧,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신 주님을 대적하는 삶, 범죄하는 삶을 살므로 멸망에 이르게 된다. 우리 또한 우리 부모로부터 받은 생명으로만 산다면 범죄하는 가운데서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멸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삶, 곧 범죄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범죄하지 않는 생명, 곧 새로운 생명을 가져야 한다. 물론, 그 생명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이다. 로마서 6장 3, 4절에서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우리가 주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낸바 되었는데 그 목적은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처럼 우리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옛 생명, 곧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타락한 생명이 아닌, 새 생명이신 주님의 생명으로 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태어나 그의 자녀가 되어야한다. 요한복음 1장 12, 13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다.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자는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했다. 이렇게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주님의 생명, 곧 새 생명을 가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새 생명을 가진 자로서 새로운 삶, 곧 주님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육신의 부모로부터 난 생명으로 옛사람의 삶을 살지 않고 새 생명을 가진 자로서 새 사람의 삶, 곧 주님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옛 사람으로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새 생명을 가진 새 사람으로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에서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창)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새로운 창조물, 곧 새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사람의 삶이 아닌 새 사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물론, 그 삶은 옛사람의 타락한 삶이 아니고 우리의 새 생명의 새로운 삶, 곧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장 4절에서는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했다. 우리가 믿고 영접한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 생명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없이 옛 사람의 삶을 살았던 데서 나와서 그리스도가 있는 새 사람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에베소서 4장 22∼29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입었으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했다.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었으므로(골 3:9,10 참조)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분리된 남남이 아니고 한 몸의 지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기 전에는 육신의 소욕을 좇아 옛 사람의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에 새 사람의 삶, 곧 새로운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것은 새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장 5∼11절에서는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 ”라고 했다.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에 분과 악의와 훼방과 입의 부끄러운 말은 버리고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므로 더 이상 옛 사람의 삶을 살지 말고 새 사람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전에는 새 생명이 없었기 때문에, 새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없었기 때문에 옛사람의 삶을 살았지만,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지금은 생명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새 사람으로서 새로운 삶, 곧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하신다. 전에는 할 수 없는 상태, 곧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주님께 속한 삶을 살라고 하지 아니 했지만(물론, 그 때에는 주님의 말씀에 관심도 갖지 않았다.), 지금은 할 수 있는 능력이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옛 사람의 삶과 다른, 새 사람의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함
전에는 그리스도가 없었기 때문에 타고난 육신을 따라 온갖 죄들을 범하는 삶, 주님을 대적하는 옛사람의 삶을 그리스도가 없었기 때문에 옛사람의 삶, 육신을 따라 사망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옛사람을 따라 육신에 속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골로새서 2장 6, 7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 행하라고 했다. 전에는 그리스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행할 수도 없었고, 그를 누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고 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안에서 행할 수 있다. 그 안에서 행함으로 그의 놀라운 풍성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육신 안에 살지 않고 주님 안에 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복된 것이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여 그 안에서 뿌리를 내렸고 지금은 세워지고 있으므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가 넘치게 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여 그의 풍성을 흡수하고 자라기 위해 이미 뿌리를 내렸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풍성을 흡수하고 누리고 자라기 위해 그 안에 뿌리를 내린 것은 주님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다. 주 예수님을 주로 받아 그 안에 뿌리를 내린 것은 이미 이뤄졌다. 그런데 세우는 것,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 자라게 하는 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위해 우리가 받아들인 주님 안에서 합당히 행해야 한다. 우리 임의로 생활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그의 역사를 따라 행해야 한다. 로마서 8장 3, 4절에서는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율법이 육신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의 아들을 육체의 모양으로 보내사 육신 안에서 죄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는데 그것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율법의 의로운 요구는 우리 육신의 힘으로 수고하고 애씀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함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받아들인 주님 안에서 그의 역사를 따름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그 영)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그 영을 좇아 행할 때에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한다고 했는 데, 이것은 우리가 주로 받아들인 주님 안에서 행할 때에 이뤄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고 주님 안에서 행할 때만, 주님의 역사를 따를 때만 이뤄진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주님 안에서 행할 수 있고, 또 마땅히 주님 안에서 행해야 한다.
주님 안에서 빛이 됨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다수가 자신들이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해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 보려고 하는 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결코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어두움이기 때문에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여전히 어두움이다. 우리 주님 자신이 빛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빛이 되려고 하는 일을 멈추고 빛이신 주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는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라고 했고, 또 그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요한복음 12장 46절에서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세상에 왔는데 그 목적은 믿는 자들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빛이시다. 그러므로 그 빛이신 주님 안에서 빛의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에베소서 5장 8∼14절에서는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기 전, 주님 안에 있지 아니할 때는 어두움이었지만, 이제는 빛이신 주님 안에서 빛이라고 했다. 주님 안에서 빛이 된 우리는 빛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빛일 뿐만 아니라, 빛의 자녀라고 했다. 주님이 빛이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인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답게 살아야 한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기 때문에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해야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불순종하는 가운데서 죄를 범하는 자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빛이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처럼,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빛이 아닌 어두움인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고 주님 안에서 빛이 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자녀로서 빛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2장 36절에서는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고 했다. 우리는 빛이신 주님을 믿고 빛의 아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의 아들답게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는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다. 주님을 믿는 우리는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한다고 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빛이기 때문에, 빛의 자녀이기 때문에 빛의 자녀들처럼 살라고 했다. 또, 주님에 의해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그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했다. 주님 안에서 빛이기 때문에 더 이상 옛 사람의 생활인 어두움의 삶을 살지 말고, 새 사람의 삶인 빛의 삶을 살라고 했다.
젖을 사모함으로 자람
우리는 주님께서 이루시고 말씀하시는 것을 마땅히 믿고 행해야 한다. 주님께서 행하라고 한 것은 잘못된 것도 아니고, 또 우리가 행하기에 어려운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 이루시고, 우리에게 행하라고 한 것은 합당한 것이기에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여 행할 때에 주님의 뜻이 이뤄지게 되고 우리에게도 유익이 되고, 복이 된다. 베드로전서 2장 1∼3절에서는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다.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한 것은 거듭났기 때문에 자라기 위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이 내용 앞에 있는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자라기 위해, 먼저 성장을 방해하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했다. 그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은 계속해서 자라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 모든 소극적인 것들, 죄악된 것들을 버리고 대신에 생명의 양식이 되는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고, 먹으라고 했다. 이렇게 신령한 말씀의 젖을 먹음으로 자라서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의 형상에 이르기까지 자라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람을 볼 때도 결혼을 한지 오래 지났지만 아기가 태어나지 아니하면 부모를 위시해서 주위에 있는 자들이 안타까워하고 염려를 하는데, 그러던 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모두가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런데 이렇게 기쁨 가운데 태어난 아기가 계속해서 자라나지 않고 어린 아기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아기가 난 기쁨은 다 사라지고 대신에 근심과 걱정과 염려가 함께 하게 된다.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젖을 먹고 계속해서 자라나야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도 주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을 계속해서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기 위해(물론, 이것은 영의 구원이 아니다. 영의 구원은 주님을 믿고 영접한 즉시로 받았다.) 신령한 말씀을 계속해서 먹어라고 하셨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생명을 얻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이 자람으로 더 풍성히 얻게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 생명, 주님께서 주신 생명을 그의 수준에 이르기 까지 자라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사야 55장 1절에서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께로 와서 그 주님을 값을 지불함이 없이 생명수와 포도주와 젖으로 먹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 자신이 생명의 떡과 생명수로서 그를 먹는 자는 주리지 아니하며, 또한 그를 믿고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는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라고 했다. 또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명이며, 영이라고 했다. 우리 주님과 그의 말씀이 그 영으로서 생명을 주신다고 했다. 이렇게 생명이신 주님과 그의 말씀을 계속해서 사모하고 먹음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19절에서는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고 했다. 주님의 몸은 하나님이 자라게 함으로 자란다고 했다. 생명이신 주님께서 계속해서 생명을 공급하심으로 자라고 자라서 주님과 같이 되게 하신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를 믿고 거듭난 생명이 계속해서 자라나도록 그가 이루신 것과 또 지금 이루시고 있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것을 믿고 따르게 하심으로 그에게 까지 자라나 그와 같이 되게 하신다. 주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생명 주는 영이 되셔서 그의 몸의 지체들에게 그 생명을 주시고, 또 계속해서 공급하신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통해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하셨으므로 새 사람의 삶을 살라고 하셨고, 또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안에서 행하라고 하셨다. 또, 주님 안에서 빛이 되었기 때문에 빛의 삶, 곧 빛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라고 했고, 주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그 말씀을 사모하여 먹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날 것을 말씀하셨다. 주님의 이러한 명령은 강압적으로 하신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삶, 새로운 삶, 변화된 삶을 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