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육체 중심의 생활 (철학 이기상교수 p196-1968)
지금 우리 사회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는 건강이다. 젊음, 십대, 청춘 이러한 것들이 모든 사람이 동경하는 가치가 되었다. 예전에는 노인 중심의 사회였으므로 원로들을 존중하였으나, 지금은 젊음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될 가치가 되어버렸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육질 좋은 것’과 ‘때깔 좋은 것’이다.
베버와 니체와 후쿠야마의 ‘최후의 인간’에서 말하는 인간문명 발달 마지막 단계에서의 관심사는 오로지 건강뿐이다.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은 대개 건강과 육체에 대해서 생각한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전부 잃는 것이다.” 육체적인 삶에 대한 관심은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은 식(食)과 색(色, Sex)으로 이어진다. 육체적인 삶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이 먹는 것과 성(性)이기 때문이다.
서구사회를 지탱하는 인권이라는 문제는 인간의 육체와 뗄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의 서양은,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생각한 동양과는 달리 정신과 육체를 엄격히 구별하여 인간의 육체를 무시하였다. “인간은 육체를 가졌지만 육체를 안 가진 듯이 살고, 육체를 억누르고, 감정을 억누르며 천사처럼 살아라!”, 즉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천사가 되어라!” 이것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서양의 통속적인 그리스도교 윤리였다. 지금부터 백 여 년 전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인간의 조상은 원숭이라고 선언한 이후부터 비로소 서양에서 육체 중심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서구사회를 지탱하던 이성적인 것, 도덕적인 것, 영원한 것을 추구하던 정신적 삶의 가치는 뒤켠으로 물러나고, 점차 육체가 중심이 되는 가치관이 대두 되었다.
‘삶’, ‘살아감’, ‘살아남음’, ‘오래 삶’, ‘잘 삶’, ‘탈없이 삶’, ‘병없이 삶, ‘재미있게 삶’, ‘행복하게 삶’, ‘의미있게 삶. 우리 주변에서 관심과 화제가 되는 것은 온통 살아가는 문제이다. ‘생존’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생활’, 즉 여유 있는 생활, 문화적 생활이 문제가 된다. 잘 살고 편하게 사는 것, 이제 살아남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어떻게 즐기며 사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건강과 먹는 것과 성(Sex)으로 자연스럽게 옮겨 간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이 먹거리 문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건강 식품에 유난히 관심이 많고, 먹는 즐거움을 위하여 온갖 희귀한 생물들을 다 죽이고 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은 “식사(食事)는 장사(葬事)다”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식사가 다른 생명체에게는 장례식이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다석 선생은 “나는 하루에 한 번만 생명체를 죽인다. 그 다음은 내가 내 몸을 먹는다”라고 하면서 일일일식(一日一食)을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내 몸을 받아 먹어라”고 하신 말씀을 다석 선생은 이렇게 이해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식사(食事)는 장사(葬事)다” 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하며 가능하면 다른 생명체를 죽이지 않을 때 생명, 즉 살림에 대한 해결책이 쉽게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내돈 주고 먹고 싶은 것 사 먹는데 무슨 간섭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결국 제 목숨 하나 연장하자고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죽임의 생활이 될 것이다. 이렇게 육질 좋고 때깔 좋은 것에만 관심을 두고 건강과 먹거리와 섹스에 정신이 쏠려 있던 사람들이 지금 곤란에 처해 있다. 눈부신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유전자 조작을 하고 복제소도 만들었는데, 새롭게 만든 이러한 것들이 건강에 좋지 않고 기형아 출산 등의 우려까지 있다고 하니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법을 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고 있다.
이제 먹거리가 죽[死]거리가 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육체적인 삶, 편한 삶, 때깔 좋은 삶, 즐거운 삶의 종말은 ‘최후의 인간’, ‘기계화된 화석의 인간’이다. 서양의 육체 중심적 삶의 태도와 방식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하나의 삶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그러한 삶의 밑바탕에는 인간 중심적인 삶의 태도가 놓여 있다.
* 가장 위대한 선수 (따뜻한편지 2293)
1912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제5회 올림픽 육상경기에서는 핀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요. 이 가운데 홀로 빛난 ‘짐 도프’라는 미국 선수가 있었습니다. 도프는 10종 경기와 지금은 없어진 5종 경기에서 두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특히 10종 경기에서 그가 세운 기록은 1932년 LA 올림픽 때까지 20년간 깨지지 않았을 정도로 탁월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육상선수에게 생명줄과 같은 신발에 문제가 생겨, 한쪽 신발을 더 큰 신발을 신고 출전해야 하는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고민하던 짐 도프는 신발이 헐거운 쪽 발에 양말을 여러 겹 겹쳐 신고 출전했음에도 그날 두 개의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하지만, 잠시 프로야구 선수로 활동한 경력이 올림픽 이후 밝혀지면서 프로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당시 규칙 때문에 금메달을 박탈당합니다.
금메달은 잃었지만, 도프의 질주는 계속됐습니다. 메달 박탈 파문이 발생한 지 몇 달 뒤, 그는 메이저리그(ML) 뉴욕 자이언츠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습니다.
도프는 1913~1919까지 7시즌 동안 평균 타율 2할 5푼을 기록했으며, 1917년 시즌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월드시리즈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도프가 야구보다 더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미식축구였습니다.
그는 만능선수로 하프백, 키커, 수비수까지 어느 포지션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1912년에는 '전미 대학 미식축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 대회에서 도프가 기록한 터치다운은 무려 25개나 되었습니다.
이후 도프는 1920년 NFL(미 프로 풋볼 리그)의 초대 회장 자리에도 올랐습니다.
하지만, 짐 도프가 평생의 숙원이던 것은 올림픽 금메달 반환이었습니다. 이 두 개의 금메달은 그가 사망하고 30년이 지나 유족들과 미국 상원의원들의 청원에 따라 IOC가 마침내 도프의 복권을 결의해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도프는 미국 육상경기 명예의 전당, 올림픽 명예의 전당, 프로 미식축구 명예의 전당에 모두 올라와 있습니다. ‘땡벌’이라고 불리는 ‘땅벌’은 덩치에 비해 작은 날개를 가지고 있어 공기역학적으로 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땅벌은 신기하게도 잘 날아다닙니다. 자신의 한계를 날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정한 한계는 없습니다. 한계라고 믿는 자기 자신과 사람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힘들다고 아니면 늦었다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않는 한 이루어질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최고가 되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하세요.
이것이 바로 현재 제가 사는 방식이랍니다.
– 오프라 윈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