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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2월 8일 토요일
[(녹)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성 예로니모 에밀리아니 또는
[백]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 동정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말라며, 이것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이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신다(복음).
제1독서
<위대한 목자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3,15-17.20-21
형제 여러분,
15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16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17 지도자들의 말을 따르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하느님께 셈을 해 드려야 하는 이들로서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탄식하는 일 없이
기쁘게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탄식은 여러분에게 손해가 됩니다.
20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21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0-34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도들이 자기 사명을 수행하고 나서 예수님께 돌아와 “자신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마르 6,30)을 보고하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한적한 곳으로 가서 음식을 먹고 쉬도록 배려하시는 오늘 복음의 이야기는 따스하고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열심히 일한 뒤 형제들끼리 보내는 오붓한 휴가는 어떤 것에도 방해를 받고 싶지 않은 소중한 순간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군중을 피하여 외딴곳으로 떠나지만 군중은 더 긴 육로를 통해서도 지름길인 뱃길보다 먼저 도착해서 그들을 기다립니다. 예수님 일행을 따라잡으려고 많은 군중이 호수 주변의 길을 빠르게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 봅시다. 그만큼 그들의 갈망은 절박하였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은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그런 군중을 보신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마르 6,34)라고 전합니다. ‘측은히 여기다’로도 옮기는 그리스 말의 이 낱말은 본래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곳으로 이해되던 창자가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애타다, 애달다’와 비슷한 이 표현은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요 예수 성심의 사랑을 잘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은 계획대로 쉬게 하시고 당신 혼자 군중을 상대하신 듯합니다. 돌보아 줄 이 없는 군중을 보시고 창자가 움직일 만큼 연민이 끓어오르신 예수님께서는 식사와 휴식 그리고 제자들과 보내는 오붓한 시간 등 당신의 모든 계획과 필요를 잊으시고 군중의 필요에 몰두하십니다. 자기 사정을 잊고 상대의 사정에 부응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지름길입니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진정한 쉼은 주님 현존 안에 머물 때 가능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아무리 나이를 먹어가도, 또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되는 부분이 제게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적절한 균형 감각입니다.
기도와 일 사이의 균형, 일과 쉼의 안배, 말과 침묵의 균형, 밀고 당길 줄 아는 능력...그러다보니 언제나 막판 몰아치기의 전문가, 언행 불일치의 대표주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은 참으로 눈여겨볼 만 합니다.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셨습니다. 그래서 분주히 움직이셨습니다.
이 고을, 저 고을 옮겨 다니셨습니다. 몰려드는 군중의 필요성을 원없이 충족시켜주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뿐만 아니라 제자들까지 상습 피로에 시달렸고, 이러다 과로사하겠다는 위기감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이 이랬습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
세상 살이에 지친 우리들, ‘나와 다른 그’로 인해 지친 우리에게도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 한 가지는, 아무리 하루온종일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드러누워 뒹굴거리고 있어도, 더 피곤한건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참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는 쉼터 같은 존재, 선물 같은 존재와 시간을 보내야 될 것입니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존재, 더불어 보내는 시간이 힐링이 되는 그런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야말로 참 휴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편안한 대상이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 나약한 인간들인지라 언제나 한결같지는 않습니다. 환대 받던 존재에서 환멸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란 순식간입니다. 그래서 관계 안에서 더 많은 배려와 예의, 친절과 존중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결국 진정한 휴식, 참된 쉼, 깊은 마음의 평화를 주시는 분은 인간 존재가 아니라 주님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궁극적, 최종적으로 나아가 머물 곳은 주님 면전 임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주님, 그분 앞에 편안히 앉는 것이 참된 휴식입니다. 그분과 눈을 마주치고, 그분 앞에 머무는 것이 참된 쉼입니다. 그분께 내 모든 상처 보여드리고 맡겨드리는 것이, 참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비결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습니다. 원효대사가 당나라로 유학하러 가기 위해 길을 떠나던 중, 밤이 되어, 한 동굴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한밤중에 갈증을 느낀 원효대사는 옆에 있던 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마십니다. 물은 상쾌하고 갈증을 해소해 주었기에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어 주변을 보니, 자신이 물을 마신 것은 실제로 해골 속에 고여 있던 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는 극도의 혐오감과 구토를 느낍니다. 원효대사는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습니다. 자신이 밤에는 해골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물이 상쾌하고 만족스럽게 느껴졌지만, 낮에 해골임을 알자 혐오스럽게 느껴졌다는 점에서, 현상의 아름다움과 추함, 좋음과 나쁨은 외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즉,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다"라는 ‘일체유심조’의 깊은 진리를 체험적으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유명한 명제를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말을 통해 생각하는 마음(정신)을 존재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는 감각이나 외부 세계가 의심스러울지라도,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나'는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데카르트는 세계를 이해하려면 생각하는 주체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불교는 모든 세계가 마음의 투영이라고 보았습니다. 이 둘 다 마음(정신)을 경험과 존재의 본질로 삼습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라는 사유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존재를 확인했다면, 불교는 "일체유심조"를 통해 세계 자체가 마음의 작용임을 드러냅니다. 데카르트는 자아의 확실성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고, 불교는 자아를 초월하여 마음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일이 많았던 날이 있었습니다. 성당 컴퓨터를 새로 설치하는데 문을 열어 주면 좋겠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제가 워낙 일찍 일어나니 그런 부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성당에 관리인이 없고, 이른 시간이라서 기꺼이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봉사하려는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사제관 난방에 필요한 ‘필터’를 갈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기다렸습니다. 필터는 6개월에 한 번은 갈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맙게도 형제님이 필터를 갈아주었습니다. 93세 어르신을 위한 병자성사가 있었습니다. 건강하셨던 어르신인데 이제는 거동이 불편해서 요양병원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부주임 신부님이 성지순례 가서 토요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청년들과 만날 기회가 적었는데 토요일에 있는 청년 미사를 봉헌하니 청년들을 만나서 좋았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나니, 구역모임이 있었습니다. 지난 송년, 구역 장기 자랑에서 1등 한 구역이 뒤풀이한다고 모였습니다. 덕분에 저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말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일이 많다고 짜증 내면, 아침부터 문 열어 달라는 부탁에 짜증을 내면 하루가 길고 힘들었을 겁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요, 하느님의 뜻으로 여겨집니다.
매일 강론을 준비하는 것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거라 생각하니 감사할 일입니다. 성당의 문을 여는 것도 제게 열쇠가 있기 때문이니 감사할 일입니다.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의 어머니는 비가 오면 짚신 장수 아들을 걱정했습니다. 짚신이 팔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날이 맑으면 우산장수 아들을 걱정했습니다. 우산이 팔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비가와도 좋습니다. 우산장수 아들이 우산을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이 맑아도 좋습니다. 짚신장수 아들이 짚신을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뀌는 겁니다. 동양의 현인 장자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들보나 기둥 재목은 성벽을 무너뜨리는 데는 유용하지만 구멍을 막는 데에는 소용없다. 그것은 쓰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리마는 하루를 달릴 수 있지만 쥐를 잡는 데에는 고양이만 못하다. 그것은 재주가 다르기 때문이다. 올빼미는 밤에는 벼룩을 잡고 터럭 끝도 볼 수 있지만 낮에 나와서는 눈을 뜨고도 큰 산조차 보지 못한다. 그것은 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제게는 큰 울림을 주었던 말입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쓰임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재주가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본성이 있습니다. 그 쓰임과, 재주, 본성이 다를 뿐입니다. 남과 비교해서 교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과 비교해서 아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많은 분이 세례를 받았지만, 신앙인이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평화와 참된 행복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귀소본능의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는 루가복음 15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회개라고 부릅니다. 아버지는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렸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외딴곳에서>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외딴곳에서
좀 쉬다
참 좋다
외딴곳에서
벗을 만나다
더욱 좋다
외딴곳에서
벗과 하나되다
너무나 좋다
오늘의 성인
성 예로니모 에밀리아니(Jerome Emiliani)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연도 : 1486-1537년
같은이름 : 에밀리아노, 에밀리아누스, 예로니무스, 제로니모, 제롬, 지롤라모, 히에로니모, 히에로니무스
1486년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 태생인 성 히에로니무스 에밀리아니(Hieronymus Aemiliani, 또는 예로니모)는 젊어서 군인이 되어 트레비소(Treviso)의 카스텔누오보(Castelnuovo)에 주둔하는 베네치아 공화국 군대에서 근무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1511년에 지휘관이 되었지만 캉브레(Cambrai) 동맹군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 감옥생활은 그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회개하도록 하였다. 그 후 기적적으로 지하 감옥을 탈출한 그는 곧 트레비소의 마돈나 그란데(Madonna Grande) 성지를 순례하였다.
1518년 사제 서품을 받고 고향인 베네치아에 부임한 성 히에로니무스는 페스트가 만연하고 또 기근의 희생자들이 날로 늘어가는 불행한 사태가 발발했을 때, 특별히 고아들을 돌보기로 맹세하고 브레시아(Brescia), 베르가모(Bergamo) 그리고 코모(Como)에 고아원을 세우는 한편 베로나(Verona)에는 병원을 지었고, 참회하는 거리의 여성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여러 가지 사회활동에 혼신의 힘을 다 바쳤다. 1534년 그는 다른 두 사제와 함께 후에 '소마스카의 성직 수도회'로 변경된 '가난한 자들을 위한 봉사자회'를 설립하였다. 이 수도회 이름은 그들이 첫 수도원을 세운 도시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수도회의 주요 목표는 고아들을 돌보고 어린이들과 사제들을 교육하는데 있었다.
그는 병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다가 결국 페스트에 감염되어 1537년 2월 8일 소마스카(Somascha)에서 운명하였다. 그가 사망한 후인 1540년 6월 4일에 그가 설립한 성직 수도회는 교황 바오로 3세(Paulus III)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1747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67년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하여 고아들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그리고 교황 비오 11세(Pius XI)는 1928년 3월 14일에 성 히에로니무스를 버림받은 청소년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Josephine Bakhita)
신분 : 수녀
활동연도 : 1869-1947년
같은이름 : 요셉피나, 조세피나, 조세핀
성녀 요세피나 바키타(Josephina Bakhita)는 1869년 아프리카 수단(Sudan)의 다르푸르(Darfur)에서 부유한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9살쯤 아랍 노예상인에게 납치되어 고통스런 청소년기를 보냈다. ‘바키타’라는 이름도 노예상인들이 지어준 것으로 ‘행운’이란 뜻이다. 이름과는 달리 그녀는 수단 중부 엘오베이드(El Obeid)와 현 수도(首都)인 카르툼(Khartoum)의 노예시장에서 팔리고 또 팔리는 신세가 되어 모진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1883년 이탈리아 공사(公使) 칼리스토 레냐니(Callisto Legnani)에게 팔리면서 그녀의 운명도 바뀌게 되었다. 처음으로 욕설이나 매질이 아닌 인간적인 대접을 받은 그녀는 그 후 공사의 친구인 아우구스토 미치엘리(Augusto Michieli) 가족에게 보내졌고, 1885년 미치엘리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로 가서 그 가족의 유모로서 일하게 되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그 나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미치엘리가 근무지를 옮기면서 자신의 큰딸과 유모인 성녀 바키타를 베네치아(Venezia)에 있는 카노사의 성녀 막달레나 수녀원에 맡겼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세상의 참된 주인이신 하느님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녀는 교리를 배워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1890년 1월 9일 세례를 받으면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의 상징으로 요세피나라는 세례명을 정했다. 그리고 1893년 카노사의 성녀 막달레나 수녀원에 입회하여 3년 뒤인 1896년 12월 8일 첫 서원을 했다. 그 후 남은 50년의 생애를 이탈리아 북부 비첸차(Vicenza)에 있는 시호(Schio)라는 곳에서 카노사(Canossa)의 수녀로서 또 하느님의 겸손한 딸로서 살았다.
그녀는 온화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고, 어떠한 천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행하며,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는데 온힘을 다 쏟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작은 흑인 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말년에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녀는 1947년 2월 8일 선종하였다. 그녀가 선종하자 그녀의 덕행을 기억하는 수많은 추모객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그녀의 겸손과 높은 덕행으로 인해 선종 12년 후부터 시복시성 절차가 시작되었고, 197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 역시 그녀의 영웅적인 덕행을 인정했다.
그녀는 1992년 5월 17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10월 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성인품을 받았다. 그녀에 대한 아프리카 교회의 현양 열기와 사랑은 매우 특별하다. 그래서 그녀는 ‘아프리카의 꽃’으로 불리고 있으며 수단의 수호성녀로서 존경받고 있다.
성 요한 (John)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마타(Matha
활동연도: +1213년
같은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현 프랑스 남동부 프로방스(Provence)의 포콩(Faucon) 출신인 성 요한(Joannes)은 젊어서 엑스(Aix)로 가서 무술과 말 타기 등을 배웠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자선활동과 기도에 있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파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첫 미사 때에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고 모슬렘들로부터 노예를 해방시키는 일에 헌신하기 시작하던 중 거룩한 은수자인 발루아(Valois)의 성 펠릭스(Felix, 11월 20일)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와 함께 지냈다.
그래서 이 두 성인은 노예 해방을 위한 수도회 설립을 계획하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의 인가를 받았다.
이때 성 요한이 초대총장으로 뽑혔다.
이것이 `삼위일체 수도회`의 시작이었다.
이 수도회는 1201년에 186명의 그리스도인 포로를 석방하고, 다음 해에는 요한 혼자서 110명을 해방시키는 등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성 요한에 대한 공경은 1655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와 169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2세(Innocentius XII)에 의해 승인되었다.
성 스테파노 (Stephen)
활동년도 : 1046-1124년
신분 : 설립자,수도원장
지역 : 뮈레(Muret)
같은 이름 : 스더, 스테파누스, 스테판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티에르 자작의 아들로서 부친을 따라 이탈리아로 갔다가 수도자의 꿈을 실현시켰다.
그는 칼라브리아(Calabria)에 널리 알려진 몇몇 수도자들의 표양을 따르는 공동체를 프랑스에 세울 허가를 교황청으로부터 받았다.
그래서 그는 1110년경 리모주(Limoges) 교외의 뮈레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그랑몽(Grandmont) 수도회로도 알려졌다. 그는 회칙을 쓰지 않고 다만 이렇게 말했을 따름이다.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회칙은 없다." 그는 절대 청빈과 무소유를 강조했고, 모든 수도자가 은둔소 밖을 나다닐 수 없으며, 평수사들이 수도원 관리를 전적으로 맡게 하였다.
영국의 헨리 2세 왕은 그랑몽회의 최고 후원자였다.
그는 1189년 헨리 2세 왕의 소망대로 교황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