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불과 아미타불이 보살피는 마을”
〈22〉 ‘미아리’ 이름의 유래
불교계는 도로명주소가 마뜩치 않다. 도로명주소란 기존의 읍면(邑面)과 동리(洞里) 대신 말 그대로 도로를 중심으로 주소를 개편하는 정책으로 2014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가령 서울 마포구의 ‘공덕2동’이 ‘마포대로 7길’로 바뀌는 식이다. 문제는 역사와 전통이 서린 옛 이름이 사라지게 되면서 불거졌다.
가장 큰 피해자는 불교였다. 수백 개에 달하는 불교 관련 지명이 몰살될 위기에 처한 탓이다. 예고기간이었던 2011년부터 종단과 재야가 합심해 우려와 폐지의 입장을 표명해 왔다. 일각에선 ‘정부 차원에서 자행되는 또 하나의 교묘한 훼불’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형국이다.
박호석 전 농협대 교수가 지은 <불교에서 유래한 상용어 지명사전(불광출판사)>에는 그가 4년간 방방곡곡을 누비며 조사한 행정구역명의 불교적 배경이 녹아 있다. 예컨대 전통문화의 거리로 유명한 서울 인사동의 연원은 그곳에 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흥복사(興福寺)라는 대찰이 있었고 조선 세조가 <원각경>을 봉안하면서 사찰의 이름도 ‘원각사(圓覺寺)’로 변경했다. 이후 한성의 행정구역이던 ‘관인방(寬仁妨)’과 원각사에서 유래한 ‘대사동(大寺洞)’이란 이름을 합해 ‘인사동(仁寺洞)’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전국 불교관련 지명 550여 개에 달해
도로명주소로 사라질 ‘위험’…기억해야
한편 인사동은 그야말로 빙산에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점집이 즐비한 미아리엔 과거에 미아사란 절이 있었다. 미륵불의 ‘미(彌)’와 아미타불의 ‘아(阿)’를 따서 지은 명칭이다. 또한 미아사 부근의 마을은 불당(佛堂)골이라 불렀다.
‘청량리’도 신라 말에 창건된 청량사(淸凉寺)가 어원이며, 성동구 도선동엔 풍수지리학의 시조인 도선(道詵)대사의 향기가 서려 있다. 불광(佛光)동은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비추는 고장이며, 은평구 신사(新寺)동은 ‘새로운 절’이라는 의미다. 종로구 연지동(蓮池洞), 동작구 사당동(舍堂洞), 강동구 암사동(岩寺洞) 역시 불교적이다.
서울의 바깥에도 부지기수다. 동국대 불교병원이 위치한 경기 고양시 식사(食寺)동엔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에게 몰래 밥을 지어 바쳤다는 고사가 서려 있다. 성남시 야탑(野塔)동도 탑이 많아서 비롯된 명칭이다.
연꽃의 다른 이름인 부용(芙蓉)에서 따온 충북 청원군 부용면, 부산 서구 부용동, 경기 양평 영서면 부용리 등도 눈에 띈다. 한걸음 나아가선 극락을 가리키는 안양시의 안양(安養)과 크게 중생을 제도한다는 거제도의 거제(巨濟) 또한 부처님의 덕화가 서린 곳이다.
이와 함께 인천광역시 강화군 도장리(道場里), 옹진군 연화리(蓮花里),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法洞) 내탑동(內塔洞) 대사동(大寺洞), 광주광역시 서구 염주동(念珠洞), 경기도 가평군 미사리(彌沙里)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大慈洞), 이천시 노탑리(老塔里), 충남 논산시 이사리(梨寺里), 충북 수안보면 사문리(寺門里), 전북 군산시 회현면 고사리(古寺里), 전남 영광군 법성면(法聖面), 경남 산청군 남사리(南寺里), 하동군 탑리(塔里) 등을 꼽을 수 있다.
더불어 시골길을 다니다보면 무량(無量), 무진(無盡), 문수(文殊), 미륵(彌勒), 백련(白蓮), 법곡(法谷), 법성(法性), 불당, 불암(佛庵), 사곡(寺谷), 사촌(寺村) 등등 사찰을 포함해 불교의 교리와 상징에서 이름을 차용한 고을은 심심찮게 발견된다.
전국의 불교 관련 지명은 550여 개로 알려져 있다. 도로명주소로 인해 ‘추억’을 잃어버릴 마을은 130여 개에 이른다는 전언이다. 오래된 동네들의 정다운 이름들은 불교에서 파생된 어휘와 마찬가지로 한국불교 1700년이 단순한 숫자가 아님을 말해준다. 어떤 식으로든 기억돼야 할 일이다.
[불교신문311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