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영화 중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영화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진 영화 중에는 기본적인 줄거리가 성경을 기초로 한 작품들이 여럿 있다. 직접적으로 예수님이 등장하는 영화도 간혹 있으나, 대부분 상징적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맞이해 영화 속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전하는 5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예수님의 고난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단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이하 <패션>)다. <패션>은 성경에 나타나는 주님의 고난사건을 고스란히 화면에 옮겨 담았다. 예수님의 고난이야기는 이미 전 세계인들이 알고 있기에 영화 <패션>의 목적은 영화의 줄거리 전달에 있지 않다. <패션>은 성화 속에서, 혹은 성스러운 모습으로 포장된 채 보여진 지금까지 고난의 모습을 걷어내고 사건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리얼하게 드러나는 고통당하는 주님의 모습을 통해 받는 감동은 예상보다 강력하다.
“영상이 너무 참혹하다”,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이 성경과 맞지 않다”는 등의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패션>은 주님이 고난당하셨다는 점과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데에 있어서는 최고의 영화다. 특히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는 순간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하나님의 눈물 한 방울은 지금껏 잔혹한 영상에 찌푸렸던 눈가에서 한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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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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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영상으로 인해 온가족이 함께 보기에는 다소 부적절하지만, 고난주간 특히 성금요일에 만나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문자로 접하는 주님의 고난보다 한층 더 강력한 감동을 선사한다.
<벤허>
1959년 아카데미상 11개 부분을 수상했고,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 한편인 <벤허>(Ben-Hur)에도 예수님의 고난이 등장한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꼽히는 로마 원형경기장에서의 마차경주 장면 때문에 자칫 액션 대작 영화만으로 기억되기 쉬운 <벤허>는 주님의 고난과 부활사건을 직접적으로 전하는 대표적인 기독교 영화 중 하나다.
영화 벤허에서 예수님이 등장하는 장면은 시간상으로 많지는 않다. 하지만 전체적인 줄거리의 핵심에 예수님과 벤허의 만남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 사막 가운데의 한 마을에서 벤허가 만난 예수님은 영화 후반부 결론부분에 가서 고난 받으시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벤허는 병든 가족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을 만나러 가게 되는데, 바로 그날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날이었다. 벤허는 목말라하는 예수님에게 물을 주다 채찍으로 맞는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숨을 거둘 때 가족이 앓던 문둥병이 낫는 기적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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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벤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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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노골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영화 중 가장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벤허>는 긴 상영시간과 오래된 화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명작의 힘’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혹시 자녀들이 아직 <벤허>를 보지 못했다면 이번 고난주간에는 가까운 DVD 대여점에서 깨끗한 화질로 다시 선보인 <벤허>를 감상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패션>과 <벤허>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라면 앞으로 소개하는 3편의 영화는 상징적으로 주님의 고난과 부활의 사건을 증거하고 있다.
<나니아 연대기-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The Chronicles of Narnia, 이하 <나니아>)은 등장인물 중 사자이자 지도자인 ‘아슬란’을 통해 예수님의 생애를 보여준다. 마치 복음서를 등장인물들만 다르게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나니아>는 성경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구속사를 그대로 표현한다. 유명 기독교 저자인 C.S. 루이스는 환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주님의 사역을 재현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어떤 교수의 시골 저택에서 4남매가 마법의 옷장을 통해 ‘나니아’라는 나라를 발견한다. 한때 말하는 동물, 난장이, 목신, 켄타우르스 등이 누비고 살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나라였지만, 악한 마녀 제이디스의 저주로 영원한 겨울로 지내게 된 나니아. 하지만 지도자 아슬란의 지휘 아래 하얀 마녀의 세력에 대항하게 되고, 결국 아슬란의 희생으로 인해 평화를 찾게 된다. 아슬란이 남매 중 한 아이의 생명을 대신해서 죽게 되고, 결국은 다시 살아남으로 악의 세력을 물리친다는 내용이 예수님의 이야기와 똑같이 맞아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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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니아 연대기:사자,마녀, 그리고 옷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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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의 환타지 버전’으로 볼 수 있는 <나니아>는 사자의 행동이나 전체적인 줄거리가 이미 예상되어 버리는 단점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온가족이 함께 고난주간에 관람하기에는 이 한편의 영화만한 것은 없다. 특히 어린자녀가 있는 가정에서는 <나니아>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성경인물을 비교해가며 예수님의 구속사를 설명해준다면 효과적인 성경공부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매트릭스>
SF액션의 대작 <매트릭스>(matrix) 시리즈가 성경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흔히 화려한 무협 장면과 총알을 피하는 특수효과 등 화려한 비주얼이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매트릭스>는 철저하게 예수님의 사역을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매트릭스>를 보면서 표면적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찾아내기는 쉽다. 가장 먼저 발견되는 것이 명칭에서다. 절대자란 의미를 내포하는 주인공 네오, 네오의 동료이자 연인인 ‘트리니티’, 마지막 인간들의 낙원인 ‘시온’, 그들이 악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 타고 다니는 함선의 이름은 ‘느부갓네살’호와 ‘로고스’호, 의심 많은 도마에서 이름을 딴 악역 ‘토마스 앤더슨’ 등 <매트릭스>에서는 수많은 성경적 의미를 내포한 명칭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매트릭스>는 기독교 사상을 정신적 기반으로 삼고 있는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명칭만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하기는 무리다. 그러나 시리즈 마지막인 3편에 가면 세상을 구하고 홀로 죽어가는 네오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묘사하고 있다. <매트릭스>는 동양과 서양사상, 미래와 현재, 디지털과 아날로그 요소를 혼합시켜 놓아 스토리를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은 점도 있으나 영화가 궁극적으로 전하려 했던 것은 기독교적인 복음이었다는 것을 시리즈 마지막에서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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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매트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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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는 흥행 대작이기에 화려한 액션과 특수효과 등 지금껏 나열한 영화 중 가장 재미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어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수난과 부활의 메시지를 얻기 위해서는 3편까지 모두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분들에게 추천할만하다.
<그린마일>
1935년 미국 남부의 콜드 마운틴 교도소 사형수 감방의 간수장을 지낸 폴(톰 행크스)은 어느 날 사형수 존 커피(마이클 클락 던컨)를 만난다. 어린 아이 같은 선한 눈망울에 겁을 잔뜩 집어먹은 그의 모습에 폴은 당혹감을 느낀다. 게다가 그는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신비한 초자연적 능력을 지니고 있어 폴의 오랜 지병을 씻은 듯 깨끗하게 치료해주기까지 한다. 존 커피를 전기의자로 데려가야 할 날이 다가오면서 폴은 그가 무죄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린 마일'이란 사형장으로 향하는 초록색 복도를 일컫는 용어로 영화 <그린 마일>(The Green Mile)은 한 사형수에 관한 이야기다. <그린 마일>은 앞서 언급한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적게 알려진 영화다. 톰 행크스라는 유명배우가 등장하고 <쇼생크 탈출>을 감독했던 프랭크 대러본트가 연출을 해 개봉당시 화제가 되었던 <그린 마일>은 사형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증거한다. 감독은 개봉당시 "왜 우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불행한 죽음으로 몰아갔을까?"라며 영화의 주제를 암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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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린 마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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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큰 흑인인 존 커피는 병을 치료하고,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악한 것들로 인해 대신해서 죽음을 맞이한다. 흑인 사형수가 감옥에서 겪는 일들은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동안 하신 사역과 흡사하다. 톰 행크스를 비롯해 여러 유명한 연기파 배우들이 등장하는 <그린 마일>은 보는 재미와 영화가 주는 감동, 기독교적 메시지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