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의 뜰/조혜경
11월 초순, 첫눈이었다. 가뜩이나 마음 번잡한 날, 눈 예보가 있었다. 잠시 후 하늘이 깜깜해지더니 잿빛 눈송이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늦은 점심을 준비하다 말고 의자 하나를 창가로 끌어다 붙였다. 허리춤 높이의 창틀 옆에 쪼그린 탁자는 후원을 탐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흩날리는 눈을 응시했다. 투명한 창이 집 안팎을 가르는 두어 평 공간에서 나는 상념에 젖었다.
영광을 여행하던 중, 해당화 군락을 만났었다. 법성포 유람은 뒷전, 나는 해당화가 되쏘는 햇살을 등지고 모래밭에 걸터앉았다. 짙은 향기가 철썩이는 파도를 밀어냈다. 해당화의 유혹에 이끌렸다. 날카로운 가시의 횡포를 잊게 할 만큼 붉은 꽃을 자랑하며 혼미한 향을 풍겼다. 여중 시절, 북한에서 귀순했다는 강사는 함경도 원산의 명사십리 바닷가에서 보았던 고향의 해당화를 그리워했다. 흰 모래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초록 치마를 입은 채 붉게 타던 해당화는 어머니의 품속 같은 아린 추억이었다. 그때부터 명사십리 해당화는 내 방랑의 첫 갈망이 되었다.
몇 년 전, 바닷가 화원에서 해당화를 공수해왔다. 한 평 남짓 부엌 옆 화단에 여러 가지 꽃을 함께 심었다. 그러나 해당화 가시는 제 식구 감싸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곁가지도 마구 늘려 꽃을 피웠다. 쪽창을 열면 바람이 살랑거릴 때마다 짙은 향기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짜릿한 전율과 함께 마음도 흔들렸다. 몸에도 마음에도 꽃향기가 스며들었다. 그 기세로 다른 종들은 화단에 발도 디디지 못했다. 해당화가 피는 계절이 되면 나는 꽃의 유혹에 넋을 잃었다. 찌개를 태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금방 쪄내야 하는 가지찜이 녹아 흐물거리기도 했다.
해당화가 빨간 립스틱 붉게 바른 개화기 신여성이라면, 찔레꽃은 흰 광목옷 입고 정주간에서 밥 짓던 우리네 할머니였다. 찔레꽃은 허리를 질끈 동여매고 물동이를 이고 나선 여인네를 닮았다. 휴일이면 나는 봄나물을 캐러 가는 할머니를 따라나서곤 했다. 할머니는 숙인 허리를 잠시 세우며, 찔레꽃 더미로 나를 이끌었다.
“요즘은 보릿고개 없지. 배곯을 일도 없고.”
할머니는 혼잣말처럼 우물거리며 소녀 같이 웃었다. 그리고는 손가락만 한 길이의 연둣빛 햇가지를 꺾어 껍질을 벗겼다.
상큼한 향이 내 코로 들어왔다. 젊은 날, 허기를 달래준 먹거리였다며, 할머니는 나에게도 껍질 벗긴 가지 하나를 건넸다. 심심한 액이 적셔진 찔레 가지를 질겅질겅 씹으며 나는 할머니의 눈가에 맺힌 그리움을 보았다. 더는 할머니의 비밀을 묻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을 감추려고 시선을 돌렸다. 겨울눈을 뚫고 나온 찔레순이 하늘을 향한 곧은 기상을 세우는 계절. 콧속이 혼미해지는 진한 아카시아 향기가 언덕을 덮는 봄날이었다.
너무 예뻐서 마음이 슬퍼지는 꽃. 야생화를 쫓아 산천을 헤맬 때, 가장 먼저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와 앉은 꽃이 찔레꽃이었다. 찔레는 가꾸지 않아도 산천에, 강둑에 지천으로 피어났다. 모습 또한 소박하면서도 청초하다. 수줍음을 타는 듯 다소곳하면서도 강인하다. 5월이면 앙증맞은 흰 무더기 꽃을 피웠다. 저 혼자 살지 않는다. 찔레꽃이 만개한 초여름엔 온 마을이 진한 향기에 휩싸였다. 꿈결처럼 몽롱했다. 무리 지어 핀 찔레꽃으로 칙칙한 마을이 하얀 등불을 밝힌 듯 환했다.
시골집은 덩굴장미의 소곤거림으로 울타리가 넘쳤다. 동네 사람들은 골목으로 뻗친 덩굴 가시가 얼굴을 긁는다고 여간 성화가 아니었다. 전정 가위를 들고 잘라야겠다고 덤비는 이웃도 있었다. 이를 말리는 일도 6월 농부의 임무 중 하나였다. 앞마당에는 흰 겹 장미와 연한 분홍장미들, 그리고 검붉은 흑장미가 관능적인 귀태를 뽐냈다. 4만여 종에 이른다는 장미와 해당화, 찔레, 덩굴장미는 가지에 돋은 뾰족뾰족한 가시만 봐도 모두 형제자매이다. 실제 장미 품종을 만들 때 찔레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등산 길에서는 인가목과 생열귀나무를 만난다. 해당화와 닮은 이 나무들은 줄기에 촘촘히 박힌 가시가 두드러진다. 생열귀나무는 남녘에서는 보기가 어렵다지만, 인가목은 산길에서 가끔 만날 수 있다. 예로부터 민가에서는 약재로도 쓰였다고 한다. 꽃이 짙은 여름철에 꽃송이를 거두어 말린 후, 허리춤과 부채에 매달 향낭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음을 취하게 하는 향기는 삶에 지친 서민들을 위로해 주었다. 귀여운 향 주머니를 달고 낭자를 곁눈질하던 장부들을 떠올리노라면 그들이 더 정겹게 느껴졌다.
여름이 시작되는 날, 온몸을 휘감는 달콤한 향기가 흐드러진 꽃잎 사이로 번져오는 찔레 더미를 맞이하는 날은 마냥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얀 찔레꽃의 코를 쏘는 향기는 내 마음마저 더 맑게 표백해 주었다. 우리 삶이 감미로운 찔레 향으로 왔다가 인가목처럼 민간요법의 선두로 승화하면 좋겠다. 지천인 꽃 더미가 인생의 고달픔으로 쪼그라진 우리의 심장을 내일의 기대로 치료해주는 전령이길 바랐다.
내 삶의 뜰은 무엇으로 채워졌는지 돌이켜본다. 한평생을 어떻게 살고자 했던 것일까 되돌이킨다. 때론 화려한 해당화로, 아니면 소박한 찔레꽃을 피우려 했던 것일까? 가끔 산속의 인가목이나 기품있는 장미가 더 고귀해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탄생의 근원은 같더라도 모양과 색, 향이 제각각이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각자의 모양에 맞는 색과 향기, 기품을 지닐 수 있었기에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금세, 화단을 둘러싼 자갈돌이 흰 벙거지를 썼다. 앙상했던 가지에 하얀 덮개가 씌워졌다. 빨간 열매를 단 해당화 가지가 한 움큼 눈을 잡고, 창가에 앉은 나를 들여다보았다. 온천지의 나뭇가지들도 덩달아 흰 옷을 입었다. 비탈이 진 언덕에 놓인 담장 사이로 얼굴을 내민 빨간 찔레 열매도 하얀 바가지를 뒤집어썼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무게를 견디지 못한 눈 구슬 하나가 툭 떨어졌다.
첫댓글 유년 시절에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쉽게 만날 수있었던 꽃나무들 야생화 가시가 있는 꽃
글을 읽으며 유년 시절에 아름다운 글과 함께 떠 오르는군요
이곳은 건기 철이어서 비 한 바울 안 내려 풀들이 타 죽고 있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풋볼 님이 계신 곳은 또 다른 세상이네요. 한국 농촌은 2,3월, 비가 너무 자주 내려, 올 가을이 걱정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작년처럼요.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나 봅니다.
멋진 눈구경의 정원이 멋집니다. 꽃에 대한 감정표현이 아주 좋아요. 멋진 수필 감사합니다.
격려 감사해요~~ 찔레꽃, 해당화, 인가목과 생귀열 나무, 넝쿨 장미, 장미 등이 모두 한 식구이지만 그래도 토종 찔레에 더 정이 가는 것이 나도 토종이어서가 아닌가 싶어요.
집 안팎을 가르는 창가에 앉아 창밖에 얽힌 상념에 잠깁니다. 여러 가지 꽃이 피어나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온갖 꽃은 자기 개성에 따라 생각보다는 인간 정서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