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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과 나침반〉
밤이라면 북두칠성이 보일 테고, 그것이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역할을 할 텐데 〈밤과 나침반〉이라니? 밤과 나침반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유튜브 채널 ‘하와이 대저택’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는 구독자 90만 명에 이르는 베스트 셀러 작가다. 그의 본명은 이강욱, 세상 풍파를 나름대로 겪기는 했어도 나보다는 아직 젊은 사람이라고 짐작이 된다. 그런 느낌이 든다. 저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시작했으나, 치열한 경쟁과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삶의 한계를 체험하고 인생을 건 결단으로 독서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바꿨다고 한다. ‘별이 보이지 않는 밤,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처럼, 평생에 한 번은 자신의 삶과 富에 대한 좌표를 짚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밤과 나침반〉이라는 이 책에서는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진정 지금 이 삶에 만족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삶을 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도 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배우고, 질문하고, 해본 적 없는 걸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70대에도 오히려 20대보다 더 빛나 보입니다. 뇌는 쓰면 깨어나고, 배우면 연결되고, 질문하면 확장됩니다.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깨어 있으려는 의지입니다.”이 한마디 만으로도 나는 지금이라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 속으로 들어가면 맨 첫 장이 부자라는 개념을 짚으며, 미국을 예로 들었다. 미국 전체 국민의 평균 소득은 9억 8천만 원으로, 4억도 안 되는 우리와 비교하면 미국은 정말 부자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통계에는 함정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일론 머스크, 빌 케이츠, 워런 버핏, 제프 베이조스 같은 엄청난 부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1등에서 꼴등까지 나열하고 중간을 보면 평균값이 나오는데, 그것은 약 1억 4천만 원. 집을 포함해 1억 4천만 원이면 미국에서 중산층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택을 제외한 계좌 잔고와 주식처럼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은 약 3,500만원. 이 정도면 하버드를 졸업하고, 실리콘 벨리에서 일하는 고소득층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은 아무리 수 억대 고액 연봉자라고 할지라도 실제로 부자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백만장자는 우리가 아는 그 이름들로 따로 있다는 것이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평균수명은 82.7세다. 지난 10년간 1.3세 늘었다. 이 추세라면 앞으로 60년 후에는 7.8세 늘어나 90.5세가 된다. 지금 20살인 A는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까? 24년을 잠을 자고, 27년 6월 동안은 학교와 직장에 다니고, 1년 6월은 도로 위에서 보내고, 요리하고 식사하는데 3년을 쓴다. 집안일 등 기타 잡다한 일을 하는데 또 3년을 보내고, 화장실 욕실에서 2년 3월을 보낸다. 이런 시간들을 모두 제외하면 A에게 남는 시간은 27년 정도다. 이 시간은 오직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 추세로 보면 A가 27년 중 93%인 25년을 화면 속에서 보낼 것이라고 한다. PC, 스마트폰, 넷플릭스를 포함한 OTT, AI, 게임, 가상 및 증강현실 등 다양한 화면들이 A를 붙잡아 놓을 것이다.
A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2년밖에 안 되는데, 자신을 위해 살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닐까. 우리가 항상 바쁘고 피곤해 뭔가를 할 시간이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인지 모른다. A는 20살이지만, 만약에 40세라면, 60세라면? 90살까지 산다 해도 ‘진짜’내 시간은 많지 않다. 그 최소한의 시간에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금수저인 척하는 소비게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소비 경쟁이라는 게임에는 누구도 절대 이길 수 없다. 오즘 흔하게 쓰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에서 부자가 된 사람은 모두 금수저일까? 아니다. 흙수저도 부자가 될 수 있다.
부자가 되고자 노력하면 무엇을 얻을까? 돈만 얻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얻는다. 돈을 공부하는 과정에 자신도 모르게 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과거 직장인일 때, 평일에 회사에 출근하고 주말에 등산이나 하고, 쉬면서 살았다. 말 그대로 ‘별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주변을 보니 다들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구는 테슬라 주식을 샀다고 자랑했다. 그것이 10년도 전이니 만약 그 사람이 1천만 원 정도의 주식을 샀다면 지금 3억이 넘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 주식을 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동료의 말에 저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 주식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지금도 아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주식이든, 갭 투자든 정확히는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이처럼 살면 60이 되어도 삶의 수준이 똑같을 수밖에 없겠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면서 봉급표를 보고 계산해 보니 60에는 연봉이 1억쯤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물가를 감안하면 오히려 연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이 말이 정확히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힘주어 말할 수 있다고도 한다. “돈을 공부하면서 나 자신을 공부했습니다. 돈은 열매고 그 뿌리는 나 자신이었습니다. 뿌리가 건강해야 좋은 얼매를 거둔다는 사실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부자가 되는 길에 집중해야 한다. 집중하는 데서 힘이 실린다. 그것이 ‘에너지의 법칙’이다. 문제보다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문제는 불평불만을 끌고 다니지만, 해결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마음을 다시 채우는 데 ‘즉각적’도움이 된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오타니 쇼웨이는 매번 운동장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한다고 한다. 그것은 이타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기적인 자신을 위한 행동이다. 오타니는 남이 버린 쓰레기를 줍는 것은 행운을 줍는 것이라고 했다. 하루에 불평 세 마디씩을 한다고 해도 1년이면 천 마디가 넘는다. 천 번 넘게 불평한다는 것은 인생을 쓰레기로 가득 채우는 것과 같다. 불평할 일은 언제나 넘쳐난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나를 더 크고 단단하게 만드는 선택은 불평이 아니라 ‘정리‘다. 할 말을 정리하고, 감정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처럼 나의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야 말로 오늘을 사는 자세가 아닐까.
“책 한 권 읽었다고 대개 아는 체하네. 하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꿀 어떤 마인드가 생긴다면, 그 책은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 스스로 고민하고 문제를 다시 바라보고, 더 근본적인 물음과 마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새로 써 내려가길 바랍니다.”- 2025년 10월‘하와이 대저택’– 책 머리말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사용한 의식은 ‘빙산의 일각’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물 위에 떠 있는 것보다 물속에 잠긴 부분이 훨씬 큰데도 다 쓰지 못한다는 뜻이 포함되었다.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의식이고, 물속에 잠긴 것은 잠재의식이라면, 인간은 그 잠재의식을 10%도 쓰지 못한다고 한다. 다양한 능력이 있지만 습관에 빠져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 후에는 술 마시거나, 게임하고, 넷플릭스 보다 잠들고, 돈 버느라 피곤하다는 핑계로 삶을 변화시키려는 시도는 아예 하지 않거나, 못한다. 이렇게 하루하루 일상을 반복한다. 마치 냉장고 안에는 싱싱한 재료가 가득 들었음에도 컵라면을 끓여 때우는 것과 같다.
우주에서 암흑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존재를 직접 관찰할 수 없고, 중력과 팽창 같은 간접적 효과를 통해서만 추정할 뿐이다. 결국 우리가 우주에서 직접 관측할 수 있는 일반물질은 전체의 약 4.9%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 해양학자들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탐사된 바다는 전체의 20%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 80%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셈이다. 바다 생물도 200만 종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인간은 그 중 10% 남짓밖에 알지 못한다. 지구 안에 또다른 외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주파수가 맞으면 작은 힘에도 크게 증폭하는 것을 ‘공명현상’이라고 한다. 그네를 탈 때 타이밍을 맞추어 밀어주면 멀리 높이 올라가는 것이 이런 원리다. 이 사실은 물리적 세계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나 성공법칙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잘 되는 사람 옆에는 잘되는 사람이, 불평하는 사람 옆에는 불평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당신은 가까이 지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진동수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느냐가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우리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경이롭게 만들어졌다.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결혼하고 출산했을 때 당신이란 사람이 태어날 가능성은 300조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당신에게 300조 명의 형제자매가 있더라도 그들은 전부 당신과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이는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이다.” - 데일 카네기
누군가 이런 ‘데일 카네기’에게 물었다. “당신은 문학 작품을 쓰는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잖아요. 그러나 지금 대문호들마저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나요?”카네기의 대답은 그의 저서에서 들을 수 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셰익스피어에 필적하는 책을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 책이라면 쓸 수 있습니다.”
자신 안에 있는 재능이 300조 분의 1만큼이나 작았지만 ‘나만의’재능을 발휘해 그가 된 것이었다. 내 안에 잠재한 재능을 찾을 땐 최근부터 역순으로 기억을 샅샅이 뒤져서 찾는 것이 한 방법이다. 그리고 다음 3가지를 기억해 보자. 첫 번째 별것 아니지만 잘했던 것, 두 번째 잘했는지 모르겠지만 재미 있었던 것, 세 번째 무언가를 시작하면 시간이 금방 갔다고 느꼈던 것. 그리고 먼지 같은 작은 능력이라도 찾았다면 그것에 감사하고 그게 아니라면 인생의 방향과 주파수를 바꾸자.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의 성공 신화는 눈여겨볼 가치가 있다. 그것은 처음부터 글로벌 브랜드가 아니었다. 일본의 ‘오니츠카 타이어(현 아식스)’신발을 미국에 들여와 판매한 대행회사로 시작했다. 하지만 오니츠카와 계약이 만료되자 그동안 신발 판매로 쌓은 경험과 제품개발로 자신들의 브랜드를 만든 것이 곧 나이키다. 당시는 아디다스와 아식스, 즉 오니츠카 같은 쟁쟁한 거인들 사이에서 작은 신생업체에 불과했던 나이키는 10수 년 치열한 도전 끝에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했다.
세계 1위인 스포츠 브랜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하면, 아마도 마케팅일 것이다. ‘JUST DO IT!’이는 ‘그냥, 지금할 수 있다’를 넘어서 ‘두렵지만, 그럼에도 도전하는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그냥 ‘두 잇’이었다면, 명령하는 것 같아서 부담을 느꼈을 것이고, ‘렛츠 두 잇’이라면, 너무 평범해서 임팩트가 없었을지 모른다.
사람은 하루에도 3만 5천 번 가까운 선택을 한다고 한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침에 샐러드를 먹을지, 밥을 먹을지, 어떤 옷을, 어떤 신발을 신을지, 횡단보도를 건널지, 다음 신호를 기다릴지, 커피를 마실지, 차를 마실지 모두 선택의 순간들이다. 그중에 어떤 선택은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물론 합리적으로 따져 내리는 선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즉각적 반응’을 ‘파충류 뇌의 작동’이라고 한다. 가장 원시적인 것으로 생존을 위한 빠른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것이다. 이렇게 파충류의 뇌 작동이 중요한 건 ‘지금보다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에 있다. 어떤 시작 앞에서 파충류의 뇌는 경고한다. “지금 위험하다. 하지마라”그래서 사람들은 시작을 미루고 변화를 피하며 익숙한 것을 따른다. 이것은 의지가 부족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뇌가 우리를 보호하려는 방식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파충류가 아닌 포유류로, 포유류의 뇌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한다. 예를 들어서 운전할 때 누가 갑자기 끼어들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우리의 심장은 벌써 두근거린다. 이것은 ‘사고하는 뇌’보다 ‘감정의 뇌’가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감정에 끌려다닐 수 있지만, 반대로 그 감정을 지켜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 감정에 나도 모르게 휘둘린다면 그것은 ‘지금 내 편도체가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럴 땐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며 신호를 참고해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 삶을 움직이는 존재는 편도체의 경보가 아니라, 내가 내린 결정이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뇌세포가 스무 살 무렵에 정점을 찍고, 나이 들면 세포 수가 점차 줄어든다고 믿었다. 하지만 1990년대 뇌 영상 기술이 발전하여 기존 통념은 완전히 뒤집혔다. 나이가 들어도 뇌는 여전히 새로운 회로를 짜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새 회로는 반복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경 가소성은 ‘자전거 타기’와 닮아 페달을 저어주지 않으면 넘어지는 것과 같다. 사람의 뇌에는 신경 가소성이라는 자전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쓰느냐 안 쓰느냐에 따라 다르다. 나이 많아 기억력이 떨어져 잘 안되는 게 아니라, 자주 반복하지 않아서 잘 안 되는 것이다. 매일 상상하는 사람은 매일 뇌의 회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단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으로 바꾸는 것이다.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도 많지만, 불행한 사람도 많다. 내가 어떤 필터를 끼고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경제적·재정적 관점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자각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장면을 볼 때 뇌는 단순히 하나만 보는 게 아니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매초 수백만에서 수천만 비트에 달한다. 하지만 의식이 받아들이는 건 그중의 작은 조각들 뿐이다. 뇌는 내가 가진 감정과 믿음에 맞는 부분만 확대해 받아들인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 눈에는 불행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 눈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보이는 것이다.
우리 뇌는 ‘망상 활성화 체계’라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정보를 필터링해서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신발을 사야겠다고 생각하면 신발만이 보이고, 머리를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의 헤어스타일만 보이는 것이다. 유치원에서 수십 명의 아이들이 놀고 있어도 내 아이 목소리만 선명히 들리는 것도 이 망상 활성화 체계 때문이다. ‘나는 직장인 체질이야. 평생 직장에 잘 다녀야 해. 주식이나 사업을 생각하는 것은 내 성향이 맞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가두는 완벽한 결정론자일 뿐이다.
뇌는 변화를 좋아한다. 신경 가소성 때문에 뇌는 나이 들어도 얼마든지 새로운 연결을 만들 수가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충족적 예언’처럼 ‘된다’라고 믿으면 정말 그렇게 될 수가 있다.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뇌는 그에 맞춰 회로를 새롭게 짜고, 현실을 바꾸게 된다.
《생각의 연금술》저자 ‘제임스 알렌’은 벽돌 하나는 작고 평범해 보이지만, 수백 개가 모이면 벽이 되고, 집이 된다고 했다. 오늘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 것, 한 페이지 책을 읽은 것, 운동화를 신고 10분을 달린 것, 이런 사소한 일들이 쌓이는 것에서 성공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시작은 오늘 하루, 하나의 사소한 일을 해내는 것에서부터 위대한 일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가십이 있다. 다섯 살부터 70대까지 “지금 뭐가 가장 후회되나요?”하고 물었더니, 다섯 살은 “오늘 놀이터에 갔는데, 또 가고 싶어요”라고 답해 질문을 정확히(후회의 개념) 이해하지 못한 답변을 했고, 20대는 “기회를 놓친 것이 후회된다.”고 했으며, 30대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했고, 40대는 “어릴 적 꿈을 따라가지 않은 게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 50대는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온 게 제일 후회된다.”고 했고, 60대는 “너무 많은 것들을 두려워했던 게 후회된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럼 70대는?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고 했다고 한다. 말기암 환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대부분이 “원하던 것을 하지 못했던 게 가장 후회스럽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 모두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부, 성장, 변화’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위해 철학서나 자기계발서를 읽는다. 이것들은 얼핏 보면 오늘보다 더 나은 삶을 이끌어 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자세기 들여다보면 그 말들이 오히려 나를 얽매고 있는 무형의 족쇄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계발을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여긴다. 마치 그것을 해내야만 투자할 수 있고, 창업할 수 있고, 커리어를 바꾸거나, 부를 좇을 자격이 생긴다고 믿는다.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계발을 거쳐야만 한다는 선결 조건처럼 굳어진 생각이다. 그 생각에 갇히는 첫 번째 프레임인 것이다. 이런 생각은 ‘자기 계발’을 수단이 아닌, 허들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줄 작은 선물 하나를 고를 때도 꽤 깊이 고민한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거의 질문도, 고민도 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무엇이 필요하지?”“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이런 질문 앞에서는 번번히 말문이 막힌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한 번도 자신에게 말을 걸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나한테 무슨 말을 해? 나는 그냥 나잖아.”이런 생각 때문에 그렇다. 늘 외부로부터 무언가 받아들이고, 자극에 반응하고 그 기준에 맞춰 움직여 왔다. 그러는 사이 우리 내부는 공백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주변의 기대를 보고 들으며 ‘저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라는 생각뿐이었다. 그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을 자신의 욕망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우리는 늘 말한다. ‘뭘 좀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공부도, 운동도, 투자도 ‘요즘 정신이 없어서’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험을 앞두거나, 마감을 앞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끝내기 위해 잠깐의 휴식도 마다하고 밤새워 한 적이 있다. 또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바빠도 병원부터 가기 위해 시간을 만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정말 중요하고 절실한 일 앞에서는 누구나 시간은 ‘만들 수’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나는 지금 황제지만, 그보다 먼저 인간이다.”우리는 지금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바쁘지만, 그보다 먼저 나답게 살아야 한다.”라고.
내가 직접 운전 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고 생각하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22개 터널을 지나야 한다. (KTX로는 84개, 터널 길이만 149.8㎞로 거의 1/3이다) 삶의 여정에도 터널이 있다. 그 속은 빛도 없고 소리도 둔탁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입구가 있고 출구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극복의 문제가 아니라, 통과의 문제다. 극복은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는 무거움이 있지만, 통과는 이 길을 지나면 된다는 확신이 있다. 터널 안에서 우리가 할 일은 아무리 많은 일이 생기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생기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생각되더라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출구를 찾아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고통이 나를 어떻게 성장시킬 수 있는가?”라고 끊임없이 자문하고, 아무리 힘든 일을 겪을 때도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마지막에 옮겨올 것은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한 말이다. “책은 보물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려주는 지도와 같습니다. 지도는 실제로 탐험을 떠날 때 의미가 있습니다. 보물은 아직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바꾸는 건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니까요. 책은 책장 안에 머물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정돈된 서가에 꽂히기 위해, 인증샷 배경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책이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면, 삶의 언저리에 머물다 문득 고개를 든 가능성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잠재력, 망설임 속에 서성이는 결단력, 한때는 좋았으나 잊힌 꿈, 그 모든 것을 다시 꺼내기 위해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