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 외 2편
천양희
달이 팽나무에 걸렸다
어머니 가슴에
내가 걸렸다
내 그리운 산(山) 번지
따오기 날아가고
세상의 모든 딸들 못 본 척
어머니 검게 탄 속으로 흘러갔다
달아 달아
가슴 닳아
만월의 채 반도 못 산
달무리진 어머니
목표
구두닦이에게는 절대 광이 목표이고
성악가에게는 절대 음이 목표이다
소리꾼에게는 절창이 목표이고
시인에게는 절대시가 목표이다
절대광 절대음 절창 절대시
절대란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자신을 절딴 내는 것
누구나의 목표는
아무나 모르고
자기만의 목표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내 주관을 쓰기 위해
목표에 기댄다
목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니까
그러니 목표여
열심히 내 손을 잡아다오
내가 너를 붙잡고 일어서겠다
마지막 잎새
비바람 칠 때마다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하던 그가
눈앞에 없는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보이는 것들을 보면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어깨 위에 얹힌 빗방울보다
눈물방울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빗줄기가 정처 없이
낮은 데로 뛰어내린다 행자(行者)처럼
낙하(落下)란
착륙이 아니라 추락일 것인데
낙하산을 탄 것도 아닌데
배고픈 거미처럼
허공에다 줄을 댄 것일까
바닥은 낙하를 위해 태어난다는 말이
오늘은 옳았다
바닥처럼 서러워서 나는 운다
울어야 하기에 우는 것이 나의 전부이므로
얼마 동안
죽음보다 슬픈 시간이 갔다
처음인 듯 돌아보니
자신의 쓸모를 쓸데없이 버린
그는 나의
마지막 잎새였다
천양희 (千良姬 )
1942년 부산 출신.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에 '정원 한때' 등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지독히 다행한』.
육필시집 『벌새가 사는 법』.
산문집 『시의 숲을 거닐다』, 『직소포에 들다』,
『내일을 사는 마음에게』,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등.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공초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만해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