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광작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적단체가 마음껏 활개치는 대한민국
이달 20일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 결성된 지 22주년 되는 날이다. 대법원은 1997년 범민련 남측본부를 이적단체로 판시했다. 범민련은 결성 후 북한의 통일방식인 연방제 통일,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주장하며 위헌적 종북(從北)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독(獨), 위헌적 극좌세력엔 철퇴
이 단체를 비롯해 한총련,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 1990년대 이후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판결한 곳은 13개다. 이런 세력이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해치고 최종적으로는 한반도를 붉은 세습독재 정권의 수중에 넘기려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진보'와 '민주'를 자처하기까지 한다.
만약 독일이라면 이들은 어떤 제재를 받았을까. 독일은 분단국으로 우리와 비슷한 안보한경을 가졌던 데다 인권 선진국으로 알려진 나라여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일 후에도 이념갈등에 시달리지 않는 것은 옛 서독 시절 국가안보를 해치는 세력을 혹독하게 뿌리 뽑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중도좌파 정당인 사민당 출신이었다. 그는 '동방정책'을 통해 공산당과의 화해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급진 좌익 조직과 구성원에는 관용을 베풀지 않고 엄중한 철퇴를 가하는 데 앞장섰다.
1970년대 초반 서독에서도 좌익 극단 세력이 대학을 장악하고 제도권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이에 대항해 여야가 힘을 합쳤다. 브란트 연방총리는 소속 정당인 사민당은 물론 우파 정당인 기민당 기사당 소속 지방 주(州) 총리들과 손을 잡고 '극단주의자에 대한 훈령'을 채택했다. 핵심은 공공기관에서부터 위헌 세력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서독은 1986년까지 공공부분 취업 지망자 약 350만 명에 대해 헌법 충성도를 심사해 약 2250명의 취업을 금지했다. 또 헌법에 대한 충성심에 의시이 가는 약 9000명의 현직 공직자(교사 철도공무원 체신공무원 등) 중 2000명 이상을 최종 법원 판결을 거쳐 중징계했다. 이중 256명이 파면되었다. 독일연방재판소는 정부의 조처가 합헌적이라고 판시했다. 그 대표적인 판결이 '하이너 재미쉬' 사건이다.
당시 서독 정부는 '재미쉬'란 이름의 한 예비 법률가의 사법연수과정 입소를 거부했다. 대학 재학 시 약 40회에 걸쳐 불온 공산주의 학습 단체에서 학습했다는 사실이 연방법원보호청(국내 정보국으로 국내 헌법질서를 위협·파괴하는행위를 사찰한다)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재미쉬는 소송을 냈지만 연방헌법재판소는 직업의 자유(기본법 제12조 1항)보다 직업 공무원이 헌법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켜야 할 봉사의무(기본법 제33조 5항)가 더 우선한다고 판시했다. 1993년까지는 서독 및 통일 독일 377개의 반국가·이적단체를 해산시켰고 단체의 재산도 몰수했다.
국가관 확립이 통일혼란 줄여
통일 독일의 기본법(우리의 헌법)은 반국가·이적단체나 구성원에게는 기본권을 아예 박탈하는 조항(18조)까지 있다. 의사 표현의 자유는 물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이 모두 상실된다. 즉 이적단체들이 성명서를 내는 행위 자체가 안 된다. 내란죄, 간첩죄 등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된다. 독일의 위헌정당 해체명령은 우리나라처럼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른다. 그러나 정당이 아닌, 위헌단체를 해산할 권한은 연방·지방 내무부장관에게있다. 금지명령에도 불구하고 위헌단체를 유지·지원한 자는 형법(85조 결사금지위반)에 따라 처벌된다. 형법뿐 아니다. 기본법(9조 2항)에도 위헌단체는 금지된다.
옛 동독 공산당 세력이 주류인 좌파당은 연방하원에 의석을 갖고 있지만 지금도 연방헌법보호청의 사찰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는 국가원수를 모독하면 형법(90조 연방대통령 모독죄)에 따라 무사할 수가 없다. 국민이 국가관을 확실히 하는 것이야말로 통일의 혼란을 줄이는 일임을 독일은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