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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쇠퇴기, 개혁주의의 불가능한 열망
코로나 전파와 치사율 감소를 위한 인명구조 안전조치가 이윤 창출 면에서 볼 때 수용력을 넘어 지나치게 지속되었다고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 체제가 이미 결론지은 한편, 정치인들은 값비싼 개혁방안을 담은 프로그램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이들 안전조치가 하나씩 폐지되는 와중에도, 다수의 노동계급은 대유행의 굵직한 파장을 겪으며 끊임없이 노동한다. 상공회의소가 지휘하는 뻔뻔한 자본가계급은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더뎌지자, 노동계급의 혜택 제공에 대비를 위한 사회적 지출을 증대시키는 대신 임대료와 실업급여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해제했다. 노동조합 역시 자본가계급을 대신하여 매각 혹은 노동자 측과 협상하는 역할을 지속해왔으며, 조합원들에게 원치 않는 양보를 강요함으로써 노동계급 투쟁의 상승기류를 조정해왔다. 노동계급 투쟁에 활력소가 되는 주된 요구에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임금인상과 주당 노동 시간 단축이라는 계층형 임금체계(tiered wage system)의 폐지를 포함한다. 노동조합은 자본가를 대신해 노동자들에게 계층형 임금체계를 강요했으며, 또한 인플레이션이 노동자들의 소비력을 감소시킨 것에 대하여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또한 인력 부족으로 끊임없이 야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에서 이들의 요구는 노동조합이 지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대신 그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인상률에서 임금인상 및 초과근무, 아니면 주당 7일 노동이라는 최후통첩을 내렸다. 이는 2021년 가을에서 겨울까지 켈로그 노동자들의 파업 일화이지만, 이미 오래전 일이다.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국가의 오랜 수레바퀴이며, 심지어 그들은 노동자들이 투표소로 오게끔 하는 데 “능력 감소” 속에서조차 지속될 것이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수십여 년간의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서민들의 골칫거리를 관리하는데 무능해지고, 가치 있는 개혁을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는 자기 계급의 타협적 가치를 보는 선견지명이 있는 정치인, 더욱 엄격한 계급지배를 옹호하는 자들과는 대립하는 정치인들의 열망에도 그러하다. 그들은 현실이 안정되면서 자유주의의 미덕과 강점을 강조하는 한편, 개혁이라는 달콤하고 값싼 것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는 “문화전쟁”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정 짓는 것에 반대하는 이들은 미국의 막대한 군(軍) 예산을 증거로 이용하는데, 가치 있는 개혁을 이끄는데 올바른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폐기물 생산과 군대는 자본가계급에 따라 다르게 여겨진다. 즉, a) 그것은 국가 자본의 국외 이윤을 증대시킨다는 것, b) 국가적 폐기물 양산은 생산의 합리화를 돕는다는 것, 그리고 c) 국가는 수요를 창출하며 다른 자본주의 형태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과 같이 부르주아계급이 역사적으로 강했던 국가들이 특히 그러하다. 노동자들은 체불 임금을 되찾을 수 없지만, 자본가들의 이윤 손실에 있어서는 가능하다. 죽을 각오로 임하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위기에 대한 비용을 내게 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그들로부터 악랄한 공격을 받아 왔다. 물가 상승에도 임금은 그대로인데 노동시간은 늘어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의 적자에 대해 국가지출을 1조 달러까지 줄이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자본주의는 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회 체제이다.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노동자들의 반(反)체제적 투쟁을 없애고자 나설 것이다. 이 지도자들은 ‘자본주의가 노동력을 착취하고 노동계급을 억압하는데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위장할 것이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국가, 인종, 성적 억압과 같은 부분적 억압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 이것들은 자본주의의 지속에 부차적이다. 그들은 전(全) 자본주의 체제가 의존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해결할 수 없다. 이러한 억압은 임금과 노동, 잉여가치의 생산에 근거한다. 이들 민주적인 지도자들은 민주주의, 자유, 혹은 인권을 위한 싸움에 관해 횡설수설할 테지만, 노동계급이 정치권력 행사로부터 소외되어있다는 점은 자본주의 체제의 조건이다. 머지않아 이들 잠재적인 민주적 대표자들은 민주주의의 덕목을 거창한 말들로 그럴싸하게 포장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의 계급 억압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것이다. 국가는 이러한 개혁에 어떠한 비용도 들이지 않으며, 상대적으로 더욱 지배적인 자본가계급은 이 개혁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상류층 부르주아들은 절대적 잉여가치 착취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받아들일 수 없는 인종 정책을 시행한다거나 또는 계급 활동을 막기 위해 노동력을 분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덜 받을 수 있다. 노동조합에 의한 자본가계급을 대표하는 특정 경제적 요구는 이 자본가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들은 또한 반(反)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혹은 외국인혐오증 법률 제정에 더 개방적일지 모른다. 이들 중 어떤 이들은 노골적인 견제와 공개적 억압이 그 가치보다 더욱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쉽사리 깨닫는다. 이러한 권리는 무효화 할 수 있는 것이며, 노동계급이 끊임없이 개혁을 위한 투쟁에 발을 빼도록 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위해 물을 길어 나르도록 할 것이다. 노동계급이 조직력을 강화하고 그들의 계급의식을 신장시킬 가능성을 열어주는 그들의 영역에서 투쟁하는 것 대신 말이다.
매 선거 주기 동안, 국가의 자본가 관리자들은 의료 개혁에 적용되는 공약을 걸 것이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지출을 절대로 삭감하지 않겠다는 공약, 심지어는 주로 보험이 없는 노동자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국민건강보험 프로그램을 시행하겠다는 공약이 가장 흔하다. 공공의료 지출을 직접적으로 반대한다거나, 국민건강보험의 시행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에 인기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급의 평화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혁 가능성에 대한 환상 역시 여러 좌파와 진보당의 유권자기반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자본가의 “해악 줄이기” 논리는 좌파 진영의 근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의 이윤으로 관리될 수 있다는 신념이 그 중심에 있다.
노동계급에 이익이 될 만한 개혁을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정치인들이 유지함으로써,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체제에 악용되는 것을 상당히 방지할 수 있기는 하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식의 발전을 저해하며, 잠재된 혁명적 파열을 방해한다. 그 대신 자본가계급의 영역에서 작동하는 제도적 정당과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에 관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계급 활동의 잠재성이 국가 자본을 안전하고 굳건한 길로 향하도록 한다.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것에서 사실상 배제된 노동계급은 선거주의에 휘말린다. 각 당의 권력은 국가관리를 위해 경쟁한다. 또한, 자본주의의 축적이 차질 없이 진행되는 것을 공고히 한다. 이들 정당은 노동자의 표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계급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프로그램은 개혁을 위한 양보를 제안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그들이 ‘여러분의’ 표를 얻고 나면, ‘여러분의’ 대표자가 된 후의 정치적 협의에서 노동계급의 역할은 즉시 폐기되어 버린다.
다음으로는 ‘뉴딜’의 일부로서 합법화된, 국가보안기구 일부로 국가에 통합된 노동조합들이 있다. 노동자들은 파업의 불법화를 대가로 실업보험과 쥐꼬리만큼의 임금인상을 받았는데, 그나마 임금인상은 임금 정체 및 (임금) 삭감으로 점차 대체되었다. 한편 노동조합의 관료들은 국가 직책을 받으면서도, 회비를 걷어 들임으로써 봉급을 두둑하게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조합주의 조직의 일부로서 국가에 통합되기 이전에도 그들은 결코 혁명적인 조직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입에 정치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영원한 대중조직이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들의 기능은 언제나 노동력의 판매를 협상하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적인 안녕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계급투쟁을 진일보하도록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 영역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자본 영역은 이윤율이 감소하기 시작하자 노동조합을 배척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노동조합에 있어서 노동자의 활동은 비밀투표에 참석하는 것, ‘민주당’에서의 선거 활동, 납세의무에 제한된다. 결국, 그들은 노동력 판매 협상을 누가 관리하도록 할지 결정하는 것에 관계될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부활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므로, [노동조합]은 경제가 무너질 때까지, 죽어가는 자본주의의 사회‧정치적 고통이 끝날 때까지 존속해야 할 운명이다. 그들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공격이 제국주의 국가를 무너뜨릴 때야 비로소 패배할 것이다.1)”
(오노라토 데이먼)
심지어 자신을 “혁명적”, “평조합원” 혹은 “풀뿌리”라고 일컫는 노동조합조차 자본주의 내에서는 노동력 판매와 협상이라는 똑같은 기능을 한다. 일종의 노동조합을 주장하는 조직들은 다음과 같은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개혁주의적 목표를 품은 거대조직이 되느냐, 정치조직이 되느냐. 생디칼리스트 조직은 자본의 좌파 진영에 있는 또 다른 개혁주의의 수레바퀴이다. 생디칼리스트 조직의 명목은 기껏해야 계급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조합으로 엮는 것이다. 그들 역시 다른 노동조합을 통제하는 자본주의의 동일한 구조적 강박의 압력에 굴복해야만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회원 이탈에 직면해야만 한다. 또한, 그들은 그들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비슷한 관료적 구조를 채택해야 한다. 그들이 자본주의를 인정해야 할 때, 혹은 자본가가 상점의 처분 혹은 배송에 직면해야 할 때 말이다. 노동자 분열을 자본가의 노동 분업이 낳은 범주에서 극복하려는 그들의 철저히 양심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정치적 조직과 함께하는 정치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노동조합은 매우 본능적으로 그러한 분열을 드러내며, 그들의 협상 상대는 자본가와 연결되어 있다.
“결국, 기타 아나키스트와 생디칼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심지어 노동조합의 조합원 상당수조차 코뮤니스트 당이 개혁보다 혁명을 우선시한다는 이유로, 코뮤니스트 당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2)
(헤르만 호르터)
자본가계급이 노동자 해방을 시작하기에 유리한 이유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노동계급 대부분이 혁명적 상황 이외의 곳에서는 계급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노동자들 대부분은 임금노동과 자본 없이 생산을 조직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자본주의에서는 임금노동 없이 자신들의 욕구를 지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생활 기준을 향상해 줄 가치 있는 개혁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노동계급의 잠재적인 에너지 대부분이 선거에 이용되는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2020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와 그의 사이비 혁명적-개혁 플랫폼(임금체계 폐지의 대안인 아메리칸 잡스, ‘모두를 위한 의료서비스’ 전망이 포함된다)에 2019년 중반까지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캠페인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또한, 이들 봉사자 덕택으로 수천 가지의 행사가 개최되었으며, 그의 행사에 모금된 액수는 2020년 2월에만 4천 600만 달러였다.3)
노동자의 참여는 민주주의 체제의 투표제도 속에서 시작하고 끝나 버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언, 집회 및 결사, 언론의 자유 등과 같은 권리에 대해 고려한다면, 만약 이러한 권리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반(反)하지 않고 체제를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국가에 의한 간섭은 없을 것이다. 어떠한 반대더라도 즉시, 개혁주의로서 자본주의의 토양에 양분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는 것이다. 이것을 요구하는 계급, 혹은 그 외의 계급은 민주주의 체제에 가장 깊이 개입되어있는 이들이다. 명목상 이른바 중산층 또는 중산계급으로 불리며, 주로 소부르주아 및 부르주아계급을 구성하는 이들이다. 이들 계급 일부는 경영이나 학계에 연루되어 있다. 그들은 신분 상승하지 못해 낙담한 이들이기 때문에, 더 잘 작동하는 체제를 원한다. 아니면 어떤 일부의 계급에서는 계급 및 구조적 모순이 극복될 수 있으며, 계급사회에서 대중을 위해 향상된 생활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제2 인터내셔널과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노동운동 속에서 노동자조직의 계급적 성격을 변화시켰던 바로 그 기회주의적 개혁방식을 따라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자본의 좌파와 자본가계급의 여타 진보적 기능으로 구성된 이러한 약속과 포부들은 이윤율이 감소하는 현실에 맞추어 상실되고, 자본은 노동계급에 더욱 공격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해결 불가능한 모순의 결과이다. 사회 체제가 지속해서 존속하려면 "시민사회 안에 있지만, 시민사회는 아닌" 어떤 계급인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율을 높여야 한다.
“자본은 흡혈귀와 같은 죽은 노동이며, 살아 움직이는 노동을 흡혈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다. 살면 살수록 자본은 그것을 빨아먹는다.”4)
(칼 맑스, 「자본」, 제1권, 제10장)
전후 축적 사이클 종식의 결과로, 이윤의 부족을 가져온 조건에 해당하는 사적 소유를 위한 일련의 정책이 바로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다. 노동계급 중 가장 취약한 계급을 보조해 줄 사회적 비용을 위해 국가는 세율을 삭감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결국, 국가는 증가한 지출분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부채에 더욱더 심각하게 의존하게 되는 한편, 이 모든 것은 잉여가치에 대한 상향 재분배 및 빈약한 수익률 강화를 위해 행해지는 것이다. 또한, 수익성 위기는 전망 있는 투자를 재구성하고, 대도시에는 더욱 이윤이 높은 전망 있는 투자를 재구성하기 위해 국가가 이전의 신성한 소를 거스르고, 경제의 최고점을 포기하도록 했다. 대도시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저렴한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도 이용했다. 값싼 상품을 수입하고, 착취한 절대적 잉여가치의 비율 증가는 대도시의 정체된 임금을 상쇄하는 것에 이용되었다. 정부는 이미 급상승 중인 지출 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자본가의 이윤 감소를 낮추지도 않을 것인데, 이는 국가 자체의 소비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국가들은 적자지출에 더욱 의존하곤 했으며, 급상승하는 지출 비용에 자금을 대기 위해 조세를 미루곤 했다. 적자지출에 대한 국가 의존의 주요 영향은, 국가지출 비용이 막대한 비율로 증가하여 부채 상환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착취율을 증가시키지 않고 더욱더 많은 화폐를 유통함으로써 동시에 인플레이션 증가를 초래했다. 이 모든 것은 2021년 5월 당시의 직관에 반하는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회계연도 2022년 미국의 국방예산은 전년도 대비 100억 달러 증가했다.5) 대중 소비를 위한 모든 생산과는 별개로 자본주의 국가들은 무기 생산을 선호하는데, 무기는 생산도 소비의 수단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폐기물 생산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쇠퇴기가 시작된 이래, 국가가 초래한 폐기물 생산의 지출 비용이 계속 증가해왔다. 그들의 목적은 다른 무엇보다도 생산을 합리화하는 것이며, 국가 자본의 훨씬 더 많은 부분을 활용하는 것이기에 무기 생산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생산물에 대한 비생산적 지출 비율 및 이윤 창출을 위한 지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확대되었던 전쟁 시기에도, 국가는 활성화된 국가 자본 대부분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노동계급 전체를 고용상태로 유지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미국의 베트남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0년에는 미국 국가 자본의 약 80%가 활용되었고, 600만의 실업자가 공식 기록으로 남았다. 자본의 구조조정에도 기타 모든 비생산적 지출 비용과 마찬가지로 특히 무기 생산의 경우 고용안정 및 안정적 사회 유지를 위해 이용된 사례로 남았다.6)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 예산은 공공사업 혹은 사회적 행동을 위한 매우 조잡한 대체물이 되었다. 또한, 스스로 정부 적자를 양산하여 경제 전체를 지탱했다.”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군국주의에 경제적 정치적 투자를 한다.7)
순전히 경제적 경쟁력을 뒷받침한다는 이유로, 경제의 최고점이라 일컬어지는 곳에서 생산의 합리화에 있어서 무기를 선호한다. 국가는 제국주의적 목적을 관철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안전성에 위협이 되는 자본가와 노동계급을 억압해야 한다. 그렇기에 국가는 무기가 있어야 한다. 제국주의의 목표는 국가협정, 외교적 협력, 또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위기에 대한 극대화된 표현을 선호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는 경쟁국으로서 경쟁국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무기 생산은 시장성 상품 생산에 개입된 사적 자본형성에 반하여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유도한 무기 생산은 이들 상품에 대한 시장의 수요를 감소시키지 않는다. 자본가계급은 특히 폐기물 생산의 한 형태로서 무기 생산을 지원하는데, 이는 생산능력 활용에 대한 유지 및 고용 수치 증가 모두를 위해 국가개입이 확대될 때 강화된다. 이때, 자본 축적을 급격히 감소시키지 않고, 국가의 소비력을 신장시키는 지속적인 자본형성이 있게 된다. 전자의 조건 아래에서는 구조적 모순을 강제적으로 완화 시킬 필요가 있는데, 제국주의적 목표를 실행함으로써 결국 주요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개입 및 다양한 강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후자의 경우는 자본가들이 군비 지출에 대해 호들갑을 떨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역할은 국제적 시장과 국가 자본의 이윤을 유지하는 능력에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국가는 버터가 아닌 무기를 선호한다. 다른 지출 비용보다 무기 생산비용을.
“무기 생산(및 그에 수반하는 모든 것)은 시장에서 ‘궁극적’ 상품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정부는 민간자원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그것을 차입하고, 민간기업의 무기 생산을 유도한다. 비록 정부가 지불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생산비용 및 이윤은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기부―세금이나 대출 방식, 후자는 납세 지연을 함축할 뿐이다.―로 지불하는 것이다. 무기 생산자의 관점이 아닌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무기 경제는 성장을 통해 ‘궁극적’ 상품의 증가 부분을 시장에서 제거하여 결과적으로 (이윤) 생산투자를 감소시킨다. 자본의 축적 대신에 국가부채의 축적이 발생한다.”8)
(폴 매틱)
폐기물 생산은 이윤율에 상응하여 자본형성 비율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 한계를 드러낸다. 그것들은 국민소득을 공제한다. 폐기물 생산은 자본화된다거나 자본의 확충 혹은 소비에 사용될 수 없다. 무기 비용 지출 증가는 자본 축적의 비용이기에 또한 생활 수준을 저해한다. 개혁에 더욱 개방적인 미국의 정치인 일부에서는 아직도 “뉴딜” 정책을 민주주의 체제 역사상 최고의 승리로 여긴다. 1933년 ‘뉴딜’의 조건은 산업 활동 증대였다. 정부는 또한 주로 금융회사에 일련의 신생 지출 비용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정책을 사용했다. 노동계급 다수에게 호소하고, 정부를 강화하는데, 효과적인 자유주의 문구에 매료되었다. 당시 이것은 필수적이었다. ‘뉴딜’에 반대하는 자본가계급, 말하자면 투자은행가들 일부의 반대 때문이다. “잊힌 이들”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를 지지했던 산업가들로 밝혀졌다. 또한, 더 높은 상품 가격을 원한 농업기업들, 광산회사들, 상당한 양의 수익을 잃고 그들의 자본이 대규모로 평가 절하된 부실 철도회사, 금주령이 종식되기를 바랐던 주류생산업체로 밝혀졌다. 1937년 즈음, 산업 활동의 감소로 인해 반대 경향이 시작되었다. 임금향상과 생활 수준 개선을 요구했던 ‘뉴딜’ 정책은 상대적인 잉여가치율을 높이고, 지배적 임금을 삭감하기 위해 새로운 과학기술을 시행함으로써, 이제는 착취율을 증대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폐기된 구호가 다시금 힘을 얻게 되었다. 더는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정책이 아닌, 즉 이윤증대를 위한 생산성 향상, 노동 강화, 임금 삭감의 방식으로 물가를 낮추는 정책이었다.”9)
(폴 매틱)
일시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전후 사회적 국가의 작동을 위한 전제조건은, 제국주의 전쟁에 미국이 참여하는 것이었다. 결과로 자본의 가치는 국제적으로 그 수치가 50%까지 하락했으며, 1973년까지 주기적으로 가장 장기간인 호황이 열렸다.
자본주의적 의료 개혁은 비용 절감 조치에 불과한 경향이 있다. 즉, 사회화된 의학의 이상향은 자본가계급이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시장의 의무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심지어 “사회주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물론, 이른바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로 불리면서도 자본 축적의 필요만을 충족시켰을 뿐이다. 이것은 개별적 기업의 노동력 유지비용을 줄였으며, 질병으로 야기된 이윤-재생산 붕괴를 제한했다. 또한, 이 모든 것은 노동계급의 건강에 관련하여, 모든 자본가계급의 주된 관심 속에 있다는 것이다. 복지개혁이 처음으로 시행된 데에는 항상 그만한 현실적인 경제적 이유가 있었는데, 계급조정에 대한 그들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다. 자본가계급은 이러한 개혁을 가로막고, 그들의 적용 범위 혹은, 실질 자금을 줄이는 것에 관련된 노동계급에 반대되는 직접적 공격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인플레이션을 보기로 들면, 영국의 경우 자본가 정치인들의 일부 약속에도, 공공의료 지출은 최근 들어 감소했다. 영국의 공공재정을 구제하기 위한 IMF의 대출 규제와 별개로, 국가는 대(對)의료 지출을 삭감해야 했다. 약 50년간 국가는 NHS(국민보건서비스)의 병원 수용력을 50%가량 축소 시켰다.10) 이른바 사회적 국가의 기원은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노동자들의 급진화에 자극받은 부르주아지는 국가 경제의 고점적 지위에 대한 사법적 지위를 변화시켰으며, 자본을 능수능란하게 제공했던 NHS와 같은 포괄적인 의료보험 프로그램의 전신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여러 주에서 국립의료보험서비스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적 투표 기계 및 사회주의에 대한 민주적 노동운동의 정의에 부합했다. 이는 노동계급의 관심을 혁명적 정치조직 형성으로부터 돌리기 위해 사용되어왔다. 대신 노동자들은 올바른 정치인에게 투표하도록 설득당하고, 그러면 그들은 그렇게만 한다. 이것은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뒷걸음질 치게 하고, 노동계급이 조직력을 키우는 것을 가로막는다.
단 하나의 국민건강보험제도도 갖추고 있지 않은 미국에는 전통적으로 올바른 정치인을 뽑으면 ‘국민건강보험’이 시행될 것이라고 믿는 일그러진 환상이 존재한다. 이는 체제를 위한 유권자 기반 유지와 노동자 오남용 제한에 있어서 훌륭하다. 전반적으로, 어떤 국가에서든 정치인들 대부분은 공공보건 지출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계급-평화유지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건, 교육, 사회보험에 대한 공공지출 삭감은 은밀함과 기만을 통해 이루어진다.
노동계급에 유리한 지출 비용을 늘릴 힘은 높은 이윤율에 입각한다. 그래야만 국가는 그러한 전망을 위해 잉여가치를 재분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공공의료보험 개혁이 가장 시급했던 시기―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공격받았을 때조차 마찬가지였다. 그 대신 국가는 노동자들이 폐망해가는 위기의 자본주의에 비용을 대기 위해 일터로 내몰고, 실업보험을 해지해 간다. 민관협력관계를 빠르게 구축할 수 있었던 대유행 초기, 국가는 내수경제가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실제로 그렇게 했다. 2020년 2월 말까지, 주 대부분에서 시장 활동이 이미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11) 국가의 역할은 공공 소비를 위해 생산을 늘리는 것(축적에 더욱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전쟁 당시와 유사했다)이었다. 수십 년간 과거의 연구를 이용한 코로나-19 백신뿐만 아니라, 명목상 개인용 보호장비(PPE), 의약품, 수십 년간의 감소를 상쇄하기 위한 병원 수용력 확대가 그것이다. 어떤 국가들은 PPE 혹은 제조에 필요한 재료를 사재기했다. 이는 특정한 상품 가격 및 입찰 전쟁을 야기했다.12) 이는 체제에 위협이 있을 때 국가가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된다. 국가와 자본의 이해관계가 얽힌 것이다. 국가는 전 세계에 충분할 만큼 백신을 풍부하게 생산하는 한편, 대부분은 그것에 대한 접근이 부족하다. 이는 최소한의 차질로 경제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백신 및 다른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의 치열함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과학을 따르라!”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행동에서 그들은 임대료를 모으고, 그들의 영향력을 퍼뜨리기 위해 그들의 국민적 챔피언(제약 회사)의 능력을 옹호한다. 부분적 전면적 봉쇄조치, 중소기업으로의 소비 활동 촉진, 경제활동 활성화를 위한 외출과 같은 이들 계획 속에서 보이는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건전성에 대한 국가의 우려는 또 다른 모순이다. 일부 자본가가 그러한 것들을 이윤 창출에 있어 과도한 간섭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현재의 코로나-19 안전조치는 철회되거나 완전히 폐지되었다. 국가는 또한 잉여가치 전체 양의 확대를 증대시키기 위해 특정 산업에서는 최저 연령을 낮추어 노동법 규제를 완화했다. 잉여가치는 노동계급을 위해 더 많은 사회적 지원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이윤을 촉진하기 위해 상향 분배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여건을 완화하고자 하는 일부 자본가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단지 이윤 창출을 위해 국민적 결속과 안전을 걱정하는 것일 뿐이다. 보험 접근성의 부족, 공공보건에 대한 정부의 지출감소는 빈곤을 의미한다. 노동자들에게 대유행의 결과는 현실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상황 때문에 노동자들은 질병으로 인한 죽음과 타락, 실업으로 인한 파멸에 직면한다. 선거 주기마다 어떤 자본가가 그들을 통치할 것인지 만을 그저 투표하도록 노동자들을 끌어들인다. 그 대신, 노동자들은 체제에 이용당해야 하고, 이러저러한 국가의 조치를 단순하게 지지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을 쇠퇴기 자본주의의 위기와 연관 짓는 혁명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한 조직만이 PPE, 더 나은 임금, 위험수당 또는 폐업 후 실업급여 수령과 같은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우리 계급 지형에 가져올 수 있다.
- B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옮긴이 ㅣ 지나
<주>
1. 「보르디가: 신화를 넘어」 중 66쪽 “조합의 질문에 대하여”(오노라토 데이먼 & 아마데오 보르디가), 런던 ≪프로메테우스출판≫. leftcom.org
2. 헤르만 호르터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 조직』 중 “코뮤니스트 정치조직”, 베를린 [KAPD]. marxists.org
3. 〔뉴욕타임즈〕 ‘셰인 골드마커’의 기사 〈베르니 샌더스, 2월, 4,600달러 모금으로 2020년의 기록을 세우다.〉 nytimes.com
4. 칼 맑스 『자본』 제1권, 제10장 “노동일” 중 제1편 “노동일의 한계들” marxists.org
5. 국방부 ‘회계연도 2022년 국방예산 발표’ defense.gov
6. 폴 매틱 『미국의 인도차이나 전쟁』-제3호- 19~26쪽 (1971), ≪뿌리와가지≫ marxists.org & ‘폴 매틱’의 〔맑스 인터넷 아카이브〕 기고 “미국의 인도차이나 전쟁”.
7. G. 콜코 『세기의 전쟁』 중 “1914년 이후의 정치, 분쟁, 사회과학”(475쪽), 뉴욕≪뉴프레스≫(1994)
8. ‘폴 매틱’의 기사 회고 〈국제적 사회주의-무기와 자본〉 연재 –제34호- #1. marxists.org (1968, 가을)
9. ‘폴 매틱’ 『루즈벨트의 새로운 “뉴딜”』 -제5호-, -제5권-, 10쪽 ≪프로레타리아 전망≫. marxists.org (1939, 11월)
10. ‘시바 아난다치바, 레오 유뱅크, 헬렌 맥케나, 제임스 톰신, 데보라 워드’의 논문 “NHS 병원의 병상 수 : 과거, 사전설정, 미래”. kingsfund.org.uk
11. 그러나 캘리포니아주의 비상사태 이전인 2월 말, 시장은 이미 10% 하락했다. 미국은 3월 13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D. J. 트럼프-COVID-19 발생으로 ‘국가비상사태’ 선포, 백악관(2020, 3월 13일).
12. ‘에스테스, C’의 기사 “국가는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투를 위한 의료 장비를 얻기 위한 입찰 전쟁을 강요당하고 있다.”(2020, 3월 28일). forbes.com // ICT 북미 지부 저널-1919년, 세 번째 기사. (mcmxix.org)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