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제 : 길
제목 : 새 길을 만드시는 분(Way Maker)
성경 : 출 1:1-14
찬송 : 246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41208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출 1:1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출 1: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출 1:3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출 1:4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출 1:5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출 1: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출 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출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출 1: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출 1: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출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출 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출 1: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출 1: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네델란드령 뉴기니아에 있는 사위 부족은 적의 머리를 사냥하여 해골을 베고 자는 식인 부족이었습니다. ‘우정으로 살찌운다.’라는 말을 가치로 여기는 사위 족은 친구를 죽이고 그 살을 먹는 잘못된 가치관과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돈 리처드슨 선교사 부부는 사위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존처럼 변하지 않는 사위 족이 변화되기를 기도하던 중 사위 족에게 이상한 풍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평화의 아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족 간에 싸움이 있을 때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 ‘아기’를 교환하는 것입니다. 배신을 미덕으로 삼던 사위 부족도 아이를 평화의 상징으로 알고, 아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돈 리처드슨 선교사는 특정 지역의 풍습을 이용해 영적인 원리를 설명하는 ‘구속 유비’로 사위 족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제야 예수님이 화해의 아이로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평화를 약속하신다는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한 아이를 보내십니다. 애굽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하나님 백성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산 지 400년이 지났지만, 애굽으로 이주할 때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셨던 약속(창 15:13~14; 46:3~4)을 잊지 않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18왕조 아흐모세(Amose, BC1584~1560)는 이방 민족으로, 순수한 애굽 혈통의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권을 차지한 힉소스 왕조를 밀어내고 애굽 왕조를 세웁니다. 이들은 이방 민족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8절에 나온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은 국수주의 성향이 강한 투트모세 1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이방 민족으로 새 왕조에게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당시 18왕조는 힉소스 왕조의 재 침입을 두려워했고, 인접한 이방 민족들의 침입도 계속되어 연합군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도시 건축이나, 전시에 필요한 식량과 무기를 원활하게 공급할 목적의 ‘국고성’을 만드는데 동원됩니다. 여러 가지 농사와 벽돌 등을 만드는 고된 일을 하게 한 것은 전통적으로 목축업에 종사했던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파괴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괴롭히려고 시켰던 일이 오히려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애굽은 번성해 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생명을 단절시키는 정책을 펴게 됩니다(1:15~22).
출애굽기는 애굽 탈출과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을 다루고 있는 성경입니다. 이스라엘은 430년(12:41) 동안 애굽에서 살다 탈출하려 합니다. 애굽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길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새 길을 만들어 주십니까?
√연약한 인간을 통해(1~7절)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그의 가족들은 고센 지역으로 이주해 정착합니다.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본문은 ‘그리고’(and)로 시작합니다. 창세기와 이어진다는 뜻, 곧 창세기와 별개의 책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야곱과 함께 애굽에 정착한 70여명은 400년이 지난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70명이던 야곱의 가족은 애굽에 정착한지 430년이 지난 후에는 성인 남성만 60만 명이 넘는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합니다.
√출 12: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성경은 야곱의 첫째 부인 레아의 아들들인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을 기록한 후, 둘째 부인 라헬의 아들 베냐민 순으로 기록합니다. 이는 당시 사회 풍습에 따른 적출과 서출을 구분해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창 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하나님의 백성을 번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창 12:1~2; 26:2~5)은 아브라함 때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하나님께 받은 새 이름으로, ‘하나님과 힘을 겨루었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약속은 쌍방 간에 맺어진 약속이 아니라 크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한 일방적인 복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와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맺어진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족보를 통해 조상들을 기억나게 하시고, 약속을 성취하심과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게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셨듯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루신 약속이 있습니까?
보통 약속은 쌍방 간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약속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그들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완전하신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완전하며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줍니다. 구약시대에는 중요한 약속, 곧 언약을 맺을 때 약속을 맺는 당사자들이 동물을 둘로 쪼갰습니다. 그리고 약속한 사람들이 쪼갠 동물 사이로 손을 잡고 걸어갔습니다. 이것은 쌍방 간의 약속이 굳건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약속을 어기면 쪼갠 동물과 같이 된다는 의미로, 절대 깨어지지 않을 굳건한 약속을 할 때 이렇게 행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은 “네 민족을 하늘의 별과 같이 모래와 같이 많게 하겠다.”라는 것으로,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이 굳건하게 지켜질 수 있도록 동물 사이로 불이 지나가게 하는 횃불 약속을 하셨습니다.
√창 15: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창 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구원을 약속하셨고 영원한 동행과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큰 민족을 이루었는지 5번 반복하며 강조합니다. 출애굽 당시 장정만 60만(12장)이라고 했으니 여자와 아이까지 보수적으로 잡아도 200만 명은 된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의 위골된 환도 뼈에서 나온 70명이 세월이 지난 200만이 넘은 대 민족을 이뤘습니다. 위골된 환도 뼈, 곧 연약한 인간에게서 한 민족이 나왔다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먹을 것이 없어 애굽에 갔는데, 그곳에서 하나님은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이제 성취된 것입니다(창 12:2). 하나님은 실수가 잦았던 아브라함, 소심했던 이삭, 위골된 환도 뼈를 가진 야곱, 버림받았던 요셉을 통해 언약을 이루시고, 이스라엘을 대 민족으로 만드셨습니다. 놀라운 새 길을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인간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믿습니까?
√괴로웠던 일을 통해(8~14절)
√출 1: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8절부터 요셉을 모르는 바로가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애굽의 새 왕으로 등극한 바로는 오래전(힉소스 왕조로 추정됨) 요셉을 통해 애굽뿐만 아니라 근동 전 지역에 구원의 역사를 베푸신 여호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이것은 신학적 문제로 확대됩니다.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 바로와 애굽 인들이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알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특히 모세와 바로가 충돌하는 7~11장에 이 이슈가 강조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려움과 위협을 느낍니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을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출 1: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바로의 눈에는 하나님이 주신 복마저 두려움과 위협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이차적인 왜곡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어서 바로는 그의 백성에게 “이스라엘에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라는 말과 함께 해서는 안 될 결정을 내립니다.
√출 1: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여기에 ‘두렵건대’(펜)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혹시라도 전쟁이 발발해 이스라엘과 대적이 손을 잡는 상황을 미연에 막아보려는 의도가 반영된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 제안 자체는 국내 사안들을 잘 운영하여 내실을 다지고 국외 세력들을 포섭 및 견제하는 것보다 더 지혜로운 처사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출애굽기 내레이터는 이 대목에서부터 바로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역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 위에 감독을 세우고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는 방법을 동원해 그들을 통제하려는 결정을 내립니다.
√출 1: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즉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고 유린하여 바로 자신을 위한 국고성인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합니다. 이것은 분명 지혜로운 결정도 탁원한 정치력을 토대로 한 복안도 아닌 그저 폭력적이며 반인륜적인 인종 말살의 정책의 일환에 불과합니다.
√출 1: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출 1: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출 1: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상황은 바로가 기대한 바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바로의 학대가 더하면 더할수록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하고 퍼져 나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의 폭거와 학정이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을 불러오는 동기와 촉매제로 작용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바로를 위시한 애굽 인들은 역으로 근심에 빠집니다. 13~14절에서 바로와 애굽 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는 바로와 자신들의 결정이(10절) 얼마나 다른 방향으로 실행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악에 악을 더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라고 번역된 13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본문은 ‘폭압을 동원하여...노역을 시켰다.’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인생 자체를 “쓰디쓰게 만들었다”. 더구나 14절 한 절에만 ‘노역하다’라는 뜻의 동사 ‘아바드’가 한 차례, 그리고 명사형 ‘아보다’가 세 차례나 사용되었다는 점을 눈여겨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힘들고 어렵게 삶을 이어 갔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여러분!
내가 겪는 고통과 어려움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고통과 어려움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하나님에 대해 둔감해졌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한결 같이 이스라엘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새 길을 만드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약속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생활하다가 나오게 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이처럼 하나님은 큰 그림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탄식과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은 때가 되었을 때에 아브라함과 하셨던 약속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안에 있으면서도 현재의 고통과 어려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약 1:2-4). 현재 어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삶을 돌아보고 묵상하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이루시고 성취하십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출애굽기는 ‘엑소더스’로 ‘벗어나다’의 ‘엑스’와 ‘길’이라는 ‘호도스’의 합성어입니다. 즉 엑소더스는 ‘길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고통과 죄와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새 길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새 길을 만들어 우리를 인도하시는 ‘Way Maker’이십니다. 새길을 만드시는 하나님만 따르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