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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님의 문화재탐사 스크랩 충북 옥천 용암사 - ?산천비보사상의 쌍탑과 마애불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83 14.08.02 12: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산천 비보사상의 쌍탑이 서 있는 옥천 용암사

*운해와 일출의 사진촬영 명소로 더 알려진 사찰*

 

 용암사 입구
왼쪽 느티나무 뒷쪽이 주차장이고 계단 직전 주황색 기둥이 보이는 곳이 요사체이다. 

산 아래쪽에서 승용차로 약 5분 정도 오르면 되는데 약간 경사가 심하다

 

일설에는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용암사(龍巖寺)라고 불렀으나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이 바위를 없애버려 그 흔적만 남아있다고 하는데 찾을 수는 없었다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바로 보인다

(지붕의 용마루 뒤쪽에 보이는 큰 바위에 마애불이 있다)

 

 

용암사는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삼청리 산 51-1, 장령산(長靈山)에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2년(541)경에 의신조사(義信祖師)가 인도에 가서 불도를 닦고 신라에 돌아와서 이곳에 용암사를 창건하고, 13년 후에 속리산 법주사(俗離山 法住寺)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신라 56대 경순왕(敬順王)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신라 천년사직의 무상함을 통탄하며 유랑하던 중 이곳에 머물러 지내다가 떠나자 후에 그를 추모하던 자가 그를 그리며 마애불(磨崖佛)을 조성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나 실제 사찰의 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없어 아쉬움을 갖게 한다.

조선시대 유명한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승람이나 여타 도서에서도 용암사에 대한 자료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사찰 내에 산재한 문화재로 판단하건데 분명 고려시대 초기에 이미 사찰이 존재했을 것이며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 뒤 명맥만을 근근이 유지해 오다가 1986년에 주지 무상이 대웅전과 산신각을 중창하고 뒤이은 주지 현관이 요사채를 중건하고 범종각을 신축하였다고 한다 .

 

 

대웅전과 관음전

뒤에 요사체처럼 보이는 건물이 관음전이다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

가운데 봉안한 불상은 목조아미타여래불(충북유형문화재 제193호)이며

아미타여래불의 왼편에는 지장보살, 오른편에는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1980년에 개봉한 아미타여래불의 복장유물에 순치(順治) 8년 신묘년에 만들어진 다라니경이 나와

불상은 조선 효종 2년(1651년)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출토된 명문에는 문경의 오정사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천불전

최근에 대웅전 뒷편 언덕에 높이 축대를 쌓고 천불전을 지었다

천불전의 좌우측면 및 배면에는 부처님의 일생을 표현한 팔상도가 그려져 있다

 

천불전에는 가운데 삼세불을 봉안하였으며 삼세불의 좌우 및 배면에 가득 소불을 배치하였다

 

 

용황전

뒷면에는 용황을 그린 탱화가 걸려 있고 전각 안에는 우물이 있다.

아마 거대한 바위 밑에서 샘물이 솟자 이를 이용하여 우물을 파고 사모지붕의 용황각을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바닷가가 아닌 곳에 용황전을 설치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우리 경주에는 외동면 입실에 있는 원원사지에 용황전이 있다

 

용왕전의 탱화

 

용왕전 옆에도 별개의 우물이 또 하나 있다

 

범종각

근래에 만들어진 범종각에는 범종만 달려 있을뿐 법고,운판, 목어는 보이지 않는다.

 

 

사역은 급한 경사면을 4개의 단으로 조성하여 건물을 배치하였는데, 사역 중심인 3번째에 대웅전이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대웅전의 북측에는 ㄱ자형 평면의 관음전, 남측에는 범종각이 있다. 4번째 단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인 천불전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뒤로는 마애불이 있고, 마애불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왼쪽 30m 지점에 산신각이 위치하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여 관음보살ㆍ지장보살의 좌상을 모시고 있는 있으며 후불탱화는 석가모니불과 보살 및 신중을 목각으로 제작하여 입체감은 있으나 각각의 상호 표현이 도식적이며 금박을 입혀 화려하지만 목각 본래의 멋을 잃어버린 것 같다

 

 

 

비보사상으로 쌓은 옥천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1338호)

 

<얼마전까지 이 탑의 이름은 '옥천용암사쌍삼층석탑'이었으나 2010년12월 문화재정의 지정명칭 변경에 의하여 '옥천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으로 변경되었다> 

 

 

앞에 보이는 지붕이 관음전 건물이며

그 뒤 축대를 쌓은 봉우리 위에 두 기의 탑이 동서로 나란히  서 있다

 

삼층석탑 두기가 대웅전 좌측 동북쪽에 언덕을 이루는 큰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이 석탑은 일반적인 가람배치와 달리 대웅전의 앞이 아니라 사방이 한 눈에 조망되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있다.

두 탑은 전체적으로 같은 형태이지만 바깥쪽(동탑)의 탑에 비해 안쪽(서탑)의 탑은 약간 홀쭉한 편이고 상륜부가 조금씩 다르다. 이 두기의 탑은 국가지정 보물 제1338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천불전 앞에서 본 모양으로 왼쪽이 서탑이고 오른쪽이 동탑이다

 

 

 

탑의 뒷쪽에서 본 모양으로 왼쪽이 동탑, 오른쪽이 서탑이며

가운데 바로 보이는 건물이 범종루이며 오른쪽 지붕만 보이는 건물이 대웅전, 그리고 그 뒤쪽이 천불전이다

(이 위치가 용암사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이라 생각된다)

 

 

 

 고려 중기 양식을 보이는 이 탑은

일반적인 가람배치와는 달리 대웅전 앞이 아니라 사찰 구역의 북쪽 낮은 봉우리에 서 있는데,

이 때문에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각 부분의 양식과 석재 결구 방법이 매우 간략화 되어 있고

삼층의 탑신이 비율체감이 둔하여 날씬한 멋이 없고 밋밋하다

 

 동서탑의 기단부이다

대체적으로 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탑은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하고 있어 별도의 기단이 없으나

이 동서탑은 이층 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다

 

 

 

 

 

 

용암사 동 서 삼층석탑의 동탑

 

높이가 4.3m인 동탑은 서탑에 비해 조금 큰 편이나 형태와 모양은 거의 같다. 바위의 평편한 부분에 2층의 기단을 쌓았고, 1층의 탑신이 다른 층에 비해 크다.

지붕돌 각 모서리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으며, 다른 탑과 달리 상륜부의 노반, 복발, 보주가 모두 한 돌로 이루어진 특징이 있다.

 

 

동탑의 상륜부

한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동탑의 기단부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의 서탑

이층과 삼층 탑신이 결실되어 신재로 보충되었다

 

서탑의 상륜부

 

서탑의 기단부

 

이 동 서 삼층석탑은 현재까지 확인된 산천비보사상에 따라 건립된 석탑 중 유일하게 쌍탑이며 자연암반 위에 탑을 건립하면 그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연 암반위에 2층 기단으로 건립한 점과, 산천비보사상에 의해 건립된 다른 탑이 대개  높이가 2~3m 인데 비해 이 쌍팁은 동탑이 4.3m 서탑이 4.1m로 탑의 높이가 높은 것이 특징이며  조사결과 두 탑은 정확히 동.서방향을 유지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이 석탑은 양식적인 면보다는 건립의 목적과 위치의 선정에 있어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 학술적 가치와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하겠다.  

 

※ 산천비보사상이란, 탑이나 건물을 건립해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의미로 용암사가 위치한 지형상의 약점을 보충해주고 있다

산천비보사상으로 지어진 탑의 시초는 통일신라때 만들어진 경주 남산용장사곡삼층석탑 (보물 제186호)으로서 이 후 고려 초기에 들어와 이러한 형식의 탑이 많이 건립되었다.

이 탑과 가까운 곳에는 영동군 영국사의 '망탑봉삼층석탑'이  비보사상으로 건립된 탑이다

 

 

 

용암사 마애불

 

 

계단길을 따라 올라서면 보이는 모습

 

 

반대쪽에서 본 모습

 

 

붉은 빛깔을 띠는 것은 암벽 자체의 색이 아니라 칠을 한 것이라 한다

 

 

 

 

 

 

용암사 마당에서 대웅전 뒷쪽으로 하늘을 우러러야 볼 수 있는 곳에 마애불이 있다.

 

천불전  옆으로 난 숲 속 계단을 따라 약 5분간  오르면 앞이 확트인 곳에 절벽같은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 벽 속에서 인자한 여래불이 바위문을 열고 나와 미소로 반긴다

아름다운 연화대좌를 타고 속세로 강림하는 듯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만 같은 용암사 마애불(龍岩寺磨崖佛)은 볼수록 여백의 미가 돋보여 마치 동양화를 보는 듯 공간감이 살아있어 아름답다.

 

마애불이 붉은 빛을 띠고 있지만 바위의 본래의 빛깔은 아니다. 누군가 빨간색 물감을 칠한 것으로 이 마애불은 눈은 뜬 듯, 감은 듯, 작고 눈 꼬리가 길며, 굳게 다문 입이 전체적으로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고,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어서 안정감이 돋보인다.

 

시무외인

 

여원인

 

 

 

마애불은 수인(手印)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흔히 시무외인과 여원인이 합쳐져 한 상에 두 동작을 함께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들 동작이 동시에 이루어진 모습을 일컬어 ‘시무외,여원인’이라 부른다.

 

시무외인은 “모든 중생에게 두려움을 없애주고 평정을 주는 힘을 가진다”는 의미이고, 여원인은 왼손을 아래로 내려 시무외인과 같이 손바닥을 내보이는 자세로 “중생의 어떠한 소원이라도 들어주는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이다.

이 마애불은 “소원을 들어주는 부처”라고 이름 나 있어 각 처에서 많은 불자들이 찾아와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부처님이 서 계시는 대좌를

설명문에는 연화(연꽃)대좌라고 하나 내 눈에는 운문(구름)대좌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위치한 곳으로 보아도 연꽃보다는 구름 위에 서 계시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마애불 앞에서 내려다 본 전경

(이 날은 안개가 많이 끼어 멀리 뒷산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여명과 일출의 운해는 용암사 절경 중의 절경이다. 따라서 일출과 운해를 찍기 위해 새벽에 이 곳을 찾는  사진 작가들이 대단히 많다.

 

용암사에서 내려다 본 운무

<위의 사진은 다음블로그:푸른 초원 http://blog.daum.net/keum501/7813219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이 곳에서의 촬영포인트

 

관음전 우측으로 보면 등산길이 하나 보이고 10m 정도 오르면 쌍삼층석탑이 나타난다

이 곳을 뒤로 하고 산행을 시작하여 약 5분 정도 등반을 하다보면 좌측으로 마애불바위 위쪽이 보이는 데 이곳은 촬영금지 구역이며 대단히 위험한 곳이므로 이 곳을 지나 계속 진직하여 5~10분정도 오르면 우측으로 첫 번째 바위가 있는 포인트가 나오는 데 그 곳이 운해를 가장 잘 볼 수 곳 중 하나이고 세 사람 정도가 설 수 있다 ,

그 포인트에서 위로 10~20분 더 오르면 다시 바위 포인트가 나오는 데 이 곳은 약6~10명 정도 촬영할 수 있다.

10월 중순이 넘어서면 해 방향이 맞지 않은 데 이 때는 이 포인트를 통과 계속 정상까지 올라가면 삼갈래길인데 우측으로 이동 하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그 곳에서 촬영을 하기도 한다.

 

체력이 약해 올라가기 어려운 분들은 대웅전 좌측에서 촬영을 해도 되고 계단을 약 5분간 더 올라 마애불 앞에서 촬영을 해도 된다

 

  

사찰 바로 입구에 들어서면 화엄경의 한 귀절이 방문객을 맞는다

 

 

영동 옥청의 답사지

 

옥천. 영동 답사 자료집 

옥천. 영동답사자료.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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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 해체 수리

문화재청과 옥천군은 보물 제1338호 '옥천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을 해체해 수리한다고 29일 밝혔다.

두 개의 삼층석탑은 2012년 시행한 구조안전진단 결과, 석탑 하부 지반 암반층 불균형으로 인해 동탑은 동쪽으로 87㎜, 서탑은 동쪽으로 196㎜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문화재청은 구조안전진단과 정밀실측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동·서 삼층석탑 전체를 해체 후 지반을 보강해 바로잡고, 서탑은 변형된 2, 3층 탑신석을 기존 석탑과 같은 재질의 화강암 석재로 교체할 계획이다.

용암사는 신라 진흥왕 13년(552) 때 의신(義信)이 세운 사찰로 두 석탑은 일반적인 가람배치와 달리 대웅전의 앞이 아니라 사방이 한 눈에 조망되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있다. 동탑은 높이가 약 4.3m, 서탑은 약 4.1m로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이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으로 이뤄진 고려 시대 때의 석탑이다. 당시 성행했던 산천비보(山川裨補)사상에 의해 건립된 현존하는 석탑 중 유일한 쌍탑이라는 점에서 학술 가치가 높다. 산천비보란 탑이나 건물을 건립해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2년에 보물로 지정됐다.

*********************************************************************<201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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