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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1)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
방황하는 젊은이라면 '칠층산'으로 가라
평화신문은 2009년 새해를 맞아 한국가톨릭문인회(회장 조창환 토마스 데 아퀴노)와 공동으로 '가톨릭교회의 숨겨진 영적 보물'이라 할 고전과 문학작품을 순례하는 새 기획 '고전의 향기에 취하다'를 시작한다. 가톨릭 문인과 학자, 수도자, 성직자 기고를 통해 신자들이 가톨릭 고전의 영적 샘에서 보화를 퍼올리기를 기대한다.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은 웬만큼 독서를 하는 사람치고 안 읽은 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좋은 화제가 되겠다 싶어 몇 마디 얘기를 꺼내보면 의외로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어찌된 영문일까?
좋은 책은 한 번만 읽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닐진대 안타깝기만 하다. 두 번, 세 번, 아니 여러 번 읽을수록 좋다.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토마스의 이 책은 방황하고 고뇌하는 젊은이와 그러한 젊은이를 하느님께서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가를 참으로 감동적으로, 동시에 매우 문학적으로 저술한 명저다. 어떠한 설명도 책에 쓰인 본문을 직접 음미하는 것만 못하다. 그래서 그러한 감동적 장면을 몇 군데 뽑아서 음미해 본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뉴질랜드인이고, 어머니는 미국인이다. 부모가 모두 화가로 파리에서 만나 혼인해 토마스를 낳았는데 아버지에게서는 세상을 바로 보는 고결한 성품을, 어머니에게서는 다재다능한 성품을 물려받았다고 작가 자신은 술회한다.
토마스가 여섯 살 되던 해 어느 날 일이다.
"아버지가 편지 한 통을 나에게 주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나에게 보낸 편지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과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쓰고 있었다. 나는 집 뒤뜰에 있는 단풍나무 아래에서 그 편지를 읽고 또 읽고 결국 무슨 뜻인지 알아내고야 말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절망이 무겁게 밀려왔다. 그것은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릴 수 있는 어린 아이의 슬픔이 아니었다. 몹시 당혹하고 침통한 어른의 슬픔이었다.…"(정진석 추기경 번역 이하 같음).
이같이 어린 토마스는 일찌감치 인생, 그 사바세계의 신고를 겪는다. 그 후 토마스는 방랑벽이 있는 부친을 따라 이곳저곳을 전전했고, 동생 폴은 외가에서 자랐다. 중ㆍ고교 교육을 프랑스와 영국에서 받을 무렵 토머스 나이 16살 때 부친마저 뇌종양으로 런던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토마스는 그때 고아가 됐다.
집도 없고, 가족도 없고, 나라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친구도 없고, 하느님도 없고, 천당도 없고, 은총도 없고 하여간에 아무것도 없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1학년을 마치고 외조부의 나라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된 것을 몹시 기뻐한 토마스는 특히 활력이 넘치는 뉴욕과 컬럼비아대학을 사랑하게 된다. 영문과에서 마음에 드는 교수와 친구들에 둘러싸여 학위도 받고, 또 시와 소설 등 많은 습작을 해 장차 문사가 될 기초를 단단히 다졌다.
토마스는 개신교 집안 분위기에서 컸다. 어머니는 퀘이커 교도였다. 아버지는 종교적 성향이 매우 강한 편이었지만, 특별한 교회에 소속되지는 않았다. 이 무렵 토마스는 출세주의자였고 이따금씩 강한 종교적 충동도 느꼈으나 그래도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서도 저자 에티엔느 질송이라는 이름에 끌려 「중세철학의 정신」이란 책을 읽다가 스콜라 철학자들이 예사로 쓰는 무미건조한 용어 중의 하나인 자존성(自存性)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전혀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다.
"이 개념 덕분에 나는 가톨릭 신앙이 비과학적 시대의 애매모호하고 미신적인 유물이 결코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그런 줄로 믿어왔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가톨릭 신앙의 하느님 개념은 깊고도 간명하며 단순하고도 명확한 것이었다."
이 정의의 핵심을 가리키는 말이 라틴어로 'aseitas', 영어로도 그냥 음역하여 'aseity'다. 자존성(自存性)이다. 하느님은 "나는 있는 자이다(Ego sum qui sum)"는 말씀과 같이 그냥 있는 존재이며, 존재 자체이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연속되는 인과율에서 벗어나서 계신 분이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이 하느님 자신의 원인이라는 논리에서도 완전히 벗어나 계신 분이다. 하느님은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존재 그 자체, 존재하는 순수 현실유(現實有)다. 이런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이 계실 뿐이다. 하느님에 대한, 일반 논리를 뛰어넘는 이러한 정의(定義)는 그 자체가 완벽한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절대 논리에 깨끗이 승복하고, 무조건적으로 하느님께 모자를 벗고 귀의하는 청년 토마스는 얼마나 순수하고 선량하고 총명한가! 구질구질한데라곤 추호도 없는 토마스의 이러한 결심과 선택을 지켜보면서 거의 미학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아마 이 부분이 이 책의 숨은 (화려하게 극적이 아니기 때문에) 정점이 아닌가 싶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로 결심한 후 그는 어느 날 미사에 (영세 전이지만) 참례한다. 첫 미사를 경험하고 난 후의 심경을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다시 브로드웨이를 한가하게 걸었지만 세상에 새로 나온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행복하고 평화스러웠는지, 왜 생의 보람을 새삼 느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나는 확실히 세상에 새로 태어난 것이었다. 컬럼비아의 못 생긴 건물까지도 다르게 보였고, 폭력과 소란이 늘 판을 치던 그 거리 구석구석까지도 어디나 평화로웠다. 111번가 어둠침침한 작은 차일드 식당 밖 지저분한 생나무 울타리 뒤에 앉아 아침을 먹노라니 신선이 땅에 내려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세례를 받기로 결심을 했고, 나아가 수사 신부가 될 결심을 한다. 마침내 봉쇄수도원인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가 됐지만, 단 하나뿐인 동생 폴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하는 장면에서 이 소설은 끝난다.(전사하기 전에 폴도 세례를 받도록 토머스가 인도했다.)
1948년 이 책이 출판된 이래 이 책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됐다. 가히 몇십 년 동안 꾸준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책은 20세기에 쓰인 「고백록」(아우구스티노 성인의)이라는 평을 듣는다. 매우 타당한 비교다. 토마스 머튼의 문체는 간결하고 뜻이 분명하면서도 그 뜻이 또 깊다. 가히 이상적 문체라 할 수 있으며, 꼭 수도자가 지향할 법한 문체다. 나는 머튼의 글을 읽을 때 머튼의 지성이 어딘지 모르게 T. S. 엘리어트의 지성과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토마스의 이 책은 소설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전기적(傳記的)이고, 전기라 하기에는 너무도 재미가 있어 소설적이다. 전편을 통해서 방황하는 인간의 고뇌와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가 절묘하게 부각돼 있다.
토마스 머튼은
1915년 1월 31일 프랑스 남쪽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과 청년시절의 처음을 프랑스와 영국에서 보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1년을 수학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얻었다. 그리고 보나벤투라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이 무렵 이미 재능 많고 총명한 그는 문사로서 장래 성공할 것을 보증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신론자에 기울기도 했고, 삶의 쾌락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삶의 덧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수사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1938년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1941년에 미국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입회했고, 1949년 사제품을 받았다. 1968년 12월 10일 그는 태국에서 감전사로 별세했다. 시와 소설, 수상집 등 5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 중 일부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번역이 나왔으며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1940), 「명상의 근원(Seeds of Contemplation)」(1949), 「침묵의 삶(The Silent Life)」(1957), 「삶과 거룩함(Life and Holiness)」(1963), 「트라피스트 수도 생활(Cistercian Life)」(1974), 「사랑과 삶(Love and Living)」(1979) 등이다.
[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2) 월터 J. 취제크의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
가톨릭 소재의 문학작품들
신앙을 제재로 한 문학작품은, 우리가 볼 수 없고 감각하기 어려운 절대자의 존재, 그 섭리의 실체를 우리의 가시적 반경 내에 형상화함으로써 신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이로 하여금 현실적으로 느끼며 구체적으로 깨닫게 하는 데에 기여한다.
소설 장르에서 가톨릭 쪽의 경우, 신부를 주인공으로 삼아 교의를 구현하려는 열의를 통해 일반인의 폭넓은 관심을 얻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널리 알려진 장편 몇 편이 그 예증이 된다.
베르나노스의 「어떤 시골신부의 일기」는 작은 마을에 부임해 타성에 젖고 교활함에 길들여진 인성의 벽 앞에서 무기력한 초상으로 주저앉는 앙브리꾸르 본당신부의 모습을 조명한다. 그레엄 그린의 「권력과 영광」은 좌파 혁명이 돌발하자 일시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나약한 위상으로 하루의 연명에 급급하는 위스키 신부를 그린다.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는 영국 해외 선교단의 일원으로 중국에 파견돼 모진 시련을 겪고 초라한 외양으로 귀국한 치점 신부의 행로를 펼쳐 보인다.
이들 작품은 외관상 한결같이 패배자의 기록이라 할 만하고, 경우에 따라선 반교회적으로 오해될 만큼 사제의 그늘진 면과 교회의 일그러진 모서리, 이런 이야기 방식에 용해된 '이해하기 어려운 하느님의 뜻'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행간에 가려진, 밑바닥에 흐르는 속내에 있어선 하느님의 사랑, 그 현존하심,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승리와 가톨리시즘의 본질을 구현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러시아에서..." 작품은
한데 월터 J. 취제크의 「러시아에서 그분과 함께(With God In Russia)」(전 2권)는 소설과 유사한 화제를 담고 있지만 논픽션[手記]이므로 그 낱낱 장면은 모두 사실(fact)에 입각한다. 허구와 달리 이는 진상(reality)을 서술한다. 화자(話者)는 스탈린 강권 통치 아래 현세의 아수라도(阿修羅道)라 할 강제 노동수용소 진창구렁 속에서 살아 돌아왔다. 모두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까?"하고 묻게 마련이고, 그때마다 그는 "하느님의 섭리겠지요"하고 서슴없이 대답하는 문맥 속에서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주님을 섬기면'이라는 성경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수기는 상식을 초월하는 놀라운 기록이다. 적어도 20세기에 있어 가톨릭교회의 개가로 손꼽을 만한 귀중한 성과라 하겠다.
미국 국적인 저자 취제크 신부는 신학생 시절 예수회에 입회, 로마 유학 중에 무신론이 팽배한 소련 선교를 위한 바티칸 정책에 따라 일단 폴란드로 간다. 한데 곧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그가 사목하는 곳이 나치 독일 점령지가 되기에 이르렀고, 그 위기의 와중에 본래 목표대로 소련에 잠입하는데 성공한다. 신분을 속인 채 전쟁 물자의 보고라 할 우랄산맥 지대 노동자 모집에 자원해 간 것이다.
그는 이때부터 비밀경찰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우랄에서 1년여에 걸쳐 신앙의 불씨를 일구던 중 체포당해 모스크바 정치범형무소 루비안카에서 오랜 심문과 취조를 받고는 예정된 코스대로 시베리아 강제노동에 수용되는 신세가 됐다. 그것도 최악이라 할, 북극에 가까운 혹독한 추위가 정신과 육체를 할퀴는 두딘카와 노릴스크로 말이다.
루비안카의 취조라 하면, 스탈린의 제거 대상이 된 볼셰비키의 혁혁한 노병들이 온갖 회유와 고문을 견뎌내다 종내엔 굴복하여 반국가 스파이라는 죄목에 사인을 한 후 처형장 이슬로 사라져 간 곳이다. 노릴스크는 형기를 마치고 풀려나는 게 기적이란 소문이 파다한 소련의 악명 높은 강제 노동수용소이다. 취제크 신부는 '바티칸 스파이'란 낙인이 찍혀 이런 험지에서 15년 형을 치르고, 석방 후에도 이른바 '제한 자유인'으로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귀환했다.
이런 행형 제도는 서방세계에선 얼마나 낯선가? 도스토예프스키에 의해 제정러시아 시대 시베리아 유형지 실상이 장편 「죽음의 집의 기록」을 통해서, 그리고 소비에트 치하에선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수용소 군도」에 의해서 그곳의 반인륜적이며 잔혹한 노동 실태가 만천하에 알려지게 됐다. 자국민의 픽션을 빌은 폭로에다 명예롭게도 외국 가톨릭 신부에 의한 논픽션이 가세한 셈이다.
취제크 신부는 불행 중 다행으로 몇 가지 의지할 것을 갖추고 있었다. 폴란드 이민 2세라는 점, 타고난 강건한 체력과 그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후천적 성향,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지켜주는 하느님 손길을 믿고 그분의 의중에 여일하게 감사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는 어떤 극난의 처지에 있을 때에도 기도에 소홀하지 않았고, 그 기도의 힘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임을 잊지 않았다. 이 글은 그에 대한 반영에 다름 아니다.
노릴스크 수용소의 벽돌공장에서 수인들이 처우 개선이라는 요구사항을 내걸고 사보타지(태업)를 해서 경비대와 대치하며 죽음의 항거를 할 때였다. 그는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견디기 어려운 자기 연민과 고독감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 절체절명의 찰나에 솟구쳤던 생각을 그는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 나는 마음속으로 반문했다. "정말 하느님도 너를 잊으셨다고 생각하는가?… 바로 그 순간 나는 하느님 뜻을 완전히 믿는다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심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확고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20세기 가톨릭교회의 개가
이 수기가 20세기에 있어 가톨릭교회의 개가라는 긍지는 도처의 국면들이 보증한다. 첫째, 세계가 공산주의 블록으로 인해 반분돼 냉전시대에 접어들자 보편교회인 가톨릭은 종교의 싹이 잘린 그 블록, 특히 종주국인 소련에 복음을 비춰야 한다는 사명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역대 교황은 얼마나 노심초사했으며, 전 세계 가톨릭 공동체는 러시아를 위해 얼마나 많이 기도 지향을 두고 적극적으로 기도 캠페인을 펼쳐왔던가?
둘째, 이 사명에 따라 다수 성직자가 그곳 수용소에서 선교에 매진하며 모진 고초와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취제크 신부는 그 일원으로, 주로 폴란드인과 독일인, 리투아니아인 등을 대상으로 한 라틴 전례는 물론, 잠입하기 전에 교육받은 동방 전례로 정교회 신앙에 목마른 러시아인을 비롯한 슬라브 민족에게 미사를 드리는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이럴진대 이 책이 동토에도 하느님 빛이 면면히 비쳐졌다는 확고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밖에도 이 수기 자체의 문학적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편견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 힘찬 메시지, 그리고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진정성이야말로 이 논픽션의 문학적 요체다. 이 진정성은, 기차간에서 호송장교가 떨어뜨려 의자 밑으로 굴러들어간 빵조각을 호송병 몰래, 애면글면 애타게 손에 넣어 목구멍으로 꿀컥 삼키는, 굶주린 짐승의 경계에서 충분히 일별된다. 이 경우, 비루함도 한낱 인간적 슬픔으로 카타르시스가 되기에 한껏 순연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폴란드계로 190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출생했다. 신학교에 재학 중 예수회에 입회한 뒤 1934년에 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에 유학, 이태 후에 사제품을 받고는 러시아 선교를 목적으로 폴란드에 건너갔다.
1940년 봄, 위장 이주노동자로 소련 잠입에 성공했으나 곧 체포당해 장기 취조를 받고 15년간 노동형 언도를 받았다. 부틸카 수용소에 수감생활을 하다가 시베리아 강제 노동수용소로 이감됐다. 노동 조건이 가장 험난한 곳에서 극한의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내며 석탄 수송과 탄광, 구리공장, 각종 노동현장 등을 전전하다 마침내 형기를 끝내고 '제한 자유인'으로 노릴스크와 아바칸에서 거주하며 선교활동을 수행했다.
러시아에 체류한 지 23년 만에, 미국과 소련 간에 각각 2명씩 인적 교환이 성립되어 1963년 귀환했으며 1984년 선종했다.
[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3)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시련의 밭에서 핀 양심과 사랑의 꽃, 주님 은총 햇살 가득
"이 세상에 빈부 격차가 남아있고, 가난 때문에 사람들이 삶의 밑바닥에서 허덕이고, 굶주림으로 여자들이 몸을 팔고, 빛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어린 아이들이 위축돼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한, 이 소설은 오래도록 살아 있을 것이다."
문호 빅토르 위고는 총 10권에 이르는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서문을 통해 빈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오랜 생각을 털어놓는다. 이 빈부격차 문제는 이후 20, 21세기를 관통하는 전 세계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그래선지 일찍부터 「장 발장」 또는 「레 미제라블」이라는 표제로 국내에 소개돼 많은 이들에게 읽혔다.
쌉싸래한 감동을 주는 이 소설은 1862년 발표되자마자 전 세계로 번역돼 많은 독자를 확보했고, 성경의 뒤를 이었다고 할 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이 듬뿍 담긴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그 체취를 세밀하고도 밀도있게 묘사했다. 악에서 벗어나 자비로운 마음으로 선량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의 이면을 추적하는 심리 묘사는 마치 탐정소설과도 같은 묘미도 있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제나 수도자들의 삶 또한 읽은 이들로 하여금 끝모를 감동과 함께 심신의 정화를 불러 일으킨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중 대표주자인 위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레 미제라블」은 밑바닥 인생에서 허덕이는 비참한 서민들의 이야기다. 표제 그대로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허기진 가족과 어린 조카들을 보다 못한 한 청년이 가게에서 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간 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하는데서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장 발장으로, 전과자에 더할 나위 없이 냉랭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하룻밤 쉴 곳조차 없이 방황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치고 마음까지 거칠어진 그는 마지막으로 성당을 찾아가 하룻밤을 청한다. 미리엘 신부 사제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온 그는 앞길이 막막해 사제관에서 나올 때 은촛대 두 개를 훔친다. 때마침 성당 앞을 지나던 경찰이 그를 수상히 여겨 사제관으로 데려 간다. 미리엘 신부는 간밤에 잠을 자고 간 나그네가 촛대를 들고 경찰과 같이 온 정황을 눈치챈 뒤 웃으며 "왜 그것만 가지고 갔느냐? 여기 두 개도 내가 가져가라고 했으니 이것도 가지고 가라"며 나머지도 그에게 내어준다.
뜻밖에 온정어린 신부의 말에 장 발장은 그 순간 오래동안 잊었던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는 미리엘 신부의 따뜻한 온정에 돌연 한줄기 빛이 자기 머리 위에 비치는 것을 느낀다. 그 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속죄의 은총이 온몸으로 가득히 번지며 새롭게 태어난다. 그 순간 그는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고 180도로 전환시켜 주는 것은 법이 아니라 사랑과 관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수십 년 뒤 장 발장은 어느 해변 산업도시 공장 지대에서 이름을 마드랫으로 바꿔 일을 하며 성공한다. 성실과 정직으로 마침내 그는 공장 하나를 자영하기에 이르렀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일을 하고 종업원들에게 자비와 선한 마음으로 대하니 공장은 날로 번성하여 부를 누렸다. 장 발장은 그 부를 약자와 빈곤한 서민들을 위해 베풀었고, 자연스럽게 그는 그 일대 주민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시장으로 선출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장 발장을 시기심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며 감시하는 자가 나타난다. 쟈발이라는 경시관이었다. 정체불명 나그네의 출세에 의구심을 가진 그는 장 발장의 본색을 찾고자 혈안이 된다. 그 때 그의 공장에 환티눈이라는 여자가 일을 구하러 온다. 과거 매춘부였던 그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아이 하나를 데리고 나와 숨어다니다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를 안 쟈발 경시관은 그녀를 체포해 법원에 넘긴다.
장 발장은 법원에 출두해 환티눈을 변호해 구해내고 병든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켜 준다. 이에 쟈발 경시관은 분에 못이겨 마드랫의 원래의 이름이 장 발장이라는 것과 전과자라는 사실까지 알아내고, 법원에 고발한다. 때마침 한 절도범이 잡혀왔는데, 그의 이름이 장 발장으로 '동명이인'이었다. 장 발장에게는 뜻밖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였다. 사실을 이대로 묵인하면 자신은 영원히 원래 신분을 속인 채 살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 발장의 양심에 미리엘 신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대신해 남을 희생시킬 수 없었던 장 발장은 고민 끝에 명예도, 부도 다 버리고 법정에 나가 자신이 19년 옥살이한 한 전과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시장직에서 물러난다. 다시 전과를 속인 죄목으로 구속된 그는 옥살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장 발장은 병원에 입원해 자기를 기다릴 환티눈이 가엾어 탈옥을 해 병원을 찾아간다. 한 수녀의 헌신적 간호를 받고 있던 환티눈은 자신의 어린 딸 고제트를 부탁하며 숨을 거둔다. 탈옥죄로 다시 체포된 그는 감옥으로 이송돼 옥살이를 한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환티눈이 부탁한 어린 딸이 걱정이 된 그는 재차 탈옥해 고제트를 찾아간다. 8살 고제트는 어른들의 학대와 혹사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에 장 발장은 고제트를 데리고 수도원으로 피신한다. 10년 세월이 지나자 장 발장은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아 고제트를 데리고 나온다.
장 발장의 사랑과 훈육으로 아름답게 성장한 고제트는 사회 개혁을 주장하면서 왕당에 도전하는 공화주의자 청년 마류스와 사랑에 빠진다. 장 발장은 사랑하는 고제트가 개혁의 소용돌이에 말려드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사랑하는 고제트를 위해 참아야 했다. 그런데 마류스가 시위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고 체포 직전에 이른다.
장 발장은 또 다시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기회에 봉착한다. 결국 그는 부상한 마류스를 등에 지고 파리 하수구로 피신해 허리까지 차오르는 하수구 물 속으로 들어가 왕당의 추격을 벗어나 고제트와 마류스를 혼인시킨다.
그리고서 장 발장은 두 사람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그의 고백을 듣고 놀란 마류스는 그간 자신을 돌봐준 어르신이 오래 전 탈옥한 수배자라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해 고제트를 데리고 장 발장 곁을 떠나버린다. 그들이 떠난 후 장 발장은 외롭고 심신이 쇠잔할 때로 쇠잔해져 몸져 눕고 만다.
한편 마류스는 장 발장의 진솔한 고백에 실망하고 떠난 것을 후회하고 다시 장 발장 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노쇠하고 병든 그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빈다. 하지만 장 발장은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며 산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자신은 하느님 은총으로 행복했다고 털어놓으며 마류스 부부를 기도로 축복하고 눈을 감는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숨진 장 발장의 온화한 얼굴 위로 미리엘 신부의 은촛대가 찬란하게 비친다.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는
1802년 2월 프랑스 브장송에서 태어나 시와 희곡, 소설 등을 다작했다. 나폴레옹 휘하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로 파리에서 살며 많은 작품을 썼다.
어릴 적부터 문학에 심취한 그는 1817년 15살 때 아카데미 프랑세스 콩쿠르에 입상, 자신의 재능을 드러냈다. 이후 여러 권 시집과 환상소설, 희곡 등을 발표하며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초기엔 가톨릭적 색채가 농후했으나 훗날엔 점차 자유주의적 경향이 현저했다. 프랑스 의회 상원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문학 외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고,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항거하다가 영국으로 추방당해 19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이 시기 「레 미제라블」을 비롯해 「노틀담 파리」, 「바다의 노동자」, 「웃는 남자」(이상 소설), 「징벌」, 「명상시집」, 「세기의 전설」(이상 시집) 「성주」(희곡)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1870년 나폴레옹 3세가 보불전쟁으로 몰락하자 다시 파리로 돌아와 1885년 5월 22일 향년 83살로 타계할 때까지 프랑스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고, 사후 프랑스의 위대한 문인들과 함께 팡테옹에 묻힌 그의 작품에는 인류의 진보에 대한 낙관적 신뢰와 이상주의적 사회 건설에 대한 불 같은 정열이 깔려있다. 1985년 위고 서거 100주기를 맞아 파리 시민들이 "빅토르 위고는 우리 가슴에 아직도 살아있다"는 글귀를 가슴에 써 붙이고 행진을 벌이며 대대적 행사를 벌였을 만큼 위고는 존경을 받고 있다.
[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4) 엔도 슈사쿠의 "침묵"
불러도 대답없는 주님, 눈물 흘리고 계셨네
고백하면, 나는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내게 종교를 물으면 나는 종교주의자가 아닙니다, 라고 대꾸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지구상에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는 그 어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된 모든 독선과 야만, 종교가 야기한 모든 갈등과 적대감에 대체로 아전인수하는 종교인들의 모습에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현대 종교가 외적 성장에 치우쳐 지나치게 화려해지고 타성적이 돼 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교회에 나가던 동안 나는 제자리걸음이었다. 내 믿음을 믿지 못했다. 순정하지 않았고, 다분히 기계적이었다. 습관적 출석과 입에 밴 기도문 암송으로 외형상 착실하게 종교적 행위를 했을 뿐이었다. 물론 내 영혼이 허약한 탓이었다.
다시 조심스럽게 고백하면, 교회에 나가지 않는 동안 나는 오히려 더 꾸준히, 더 집중적으로 성경을 읽었다.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이는 듯했다. 회의하고 투정하고 고꾸라지고 일어나면서, 말씀 안에 모든 대답이 다 들어 있음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여전히 교회에 나가지는 않으면서, 비록 종교주의자는 아니지만 믿음은 가지고 있다고, 하느님은 존재한다고 떠듬거릴 수 있게 됐다.그러나 완전한 승복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내 믿음에 대해 내놓고 말하기가 불편하다. 지구촌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악몽 같은 현실을 떠올리면 더더욱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총칼을 앞세운 군인들에 의해 제 땅 제 집에서 쫓겨나는 난민들, 핍박받는 하층민들,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맨발로 쓰레기더미를 뒤져야 하는 어린아이들……. 이 불공평하고 절망적인 세계를 납득할 수 없어서다.
하느님의 손이 절대적으로 절실한 이 순간에도 어떻게 아무런 메시지가 없을 수 있는가? 도대체 왜 이런 세상을 내버려 두시는가?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다시 찾아 읽게 된 것도 어쩌면 그 질문과 새롭게 맞닥뜨리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엔도 슈사쿠의 1966년 작 소설 「침묵」은 17세기 일본 규슈 나가사키 지방의 가톨릭 박해 상황을 배경으로, 배교를 강요당하는 포르투칼 신부 페레이라와 로돌리코의 내밀한 고뇌와 번민을 다룬 소설이다.
스승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 소문을 확인하고자 일본으로 밀항한 로돌리코 신부 일행은 교활하고 비굴한 인물 기치지로와 피할 수 없는 악연으로 얽힌다. 동료 신부 가르페가 순교한 뒤,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기듯이 기치지로 또한 로돌리코를 팔아넘기지만, 그러면서도 끝까지 그의 주변을 맴돌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던 로돌리코를 후미에(성화판을 발로 밟음으로써 배교를 증명하는 행위)로 이끈 건 옥사 너머로 들려오던 코 고는 소리의 진실이었다.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 직전에 들었던 소리이기도 했다.
"나도 저 소리를 들었다.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의 신음소리를 말이다."
그 말이 그치자 다시금 코 고는 소리가 높게 낮게 귀에 들려 왔다. 아니, 그것은 이미 코 고는 소리가 아니고,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린 사람들의 지쳐 떨어진 숨이 끊길 듯 끊길 듯한 신음소리라는 것이 신부에게도 지금은 뚜렷이 느껴졌다'(195쪽).
결국 로돌리코 신부 또한 '자기 생애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 온 것,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 온 것,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과 꿈으로 가득 차 있는' 성화판에 발을 올리고 만다.
'발에 둔중한 아픔을 느꼈다.(……) 이 발의 아픔. 이때 밟아도 좋다고 목판 속의 그분은 신부를 향해 말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은 바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너희들의 아픔을 나눠 갖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다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닭이 먼 곳에서 울었다'(201쪽).
소설은 배교자 바오로, 오카다 산우에몬이 된 로돌리코가 고백성사를 애원하는 기치지로의 청을 들어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경멸하고 저주했던 기치지로야말로 나약한 인간의 표상이며, 그조차 용서하고 품는 것이 예수의 사랑임을 깨달으면서.
'성직자들은 이 모독적인 행위를 몹시 책할 테지만, 나는 그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코 그분을 배반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226-227쪽).
교회법으로 보자면, 페레이라와 로돌리코의 후미에는 배교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 종교적 불명예는 예수 사랑이라는 통찰에서 행해진 것이다. 그것은 처절하고도 숭고한 자기희생, 또 다른 의미의 순교다. 스스로 아름답고 자랑스럽고자 하는 순교는 종교적 명예심에 붙들린 제스처에 불과하다.
-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성화 '후미에(ふみえ, 踏み繪)'. 에도(江戶) 막부는 1628~1858년 해마다 나가사키 주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나 성모를 그린 성화나 목판, 동판 등을 밟고 지나가도록 함으로써 가톨릭 신자들을 색출하려고 했다. 이같은 절차를 '후미에'라고 불렀고, 때론 그림 자체를 후미에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하느님은 이 참혹한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
「침묵」에서도 되풀이하는 이 질문은 우리가 크고 작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부당한 폭력 앞에 정의가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할 때마다, 또는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이나 가난으로 비참함을 느낄 때마다 하늘에다 종주먹을 들이대듯 던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가슴이 먹먹할 때, 그 먹먹한 가슴을 손바닥으로 짓누른 채 차오르는 설움을 토해낼 때, 모멸감과 무력감에 치를 떨 때에야 비로소 다급하고도 간절하게 하느님을 찾지 않는가.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 앞에 현현하지도, 직접 나서서 어떤 대답을 들려주지도 않는다. 신의 자비로 고통을 면할 방법은 없다. 고통은 오롯이 내 몫이다. 껴안아 내 뜨거움으로 녹여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답이나 해결책을 듣지 못할 때 버릇처럼 하느님이 침묵한다고 절규한다. 그러는 동안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페레이라와 로돌리코가 배교 직전에 깨닫게 된 것처럼, 침묵하고 계시는 게 아니라 함께 괴로워하고 계시는가?…라고.
정녕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라면, 고통의 눈물은 닦아주시리라.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비로소 평화를 허락하시리라.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엔도 슈사쿠는 가톨릭 신자였던 이모의 영향으로 열두 살 때 세례를 받았다. 1943년 게이오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50년 프랑스 리옹대학으로 건너가 현대 가톨릭문학을 공부하던 중 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2년 반만에 귀국해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종교와 인간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는 묵직한 주제의 작품들을 많이 발표한 걸로 알려졌으나, 의외로 밝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일상적 이야기들을 써내려간 산문으로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가톨릭문학과 순수문학을 잘 아우른 격조 있는 작품들로 양쪽에서 모두 성공적 평가를 받은 행복한 작가이기도 하다.
대표작으로는 종교적 색채가 짙은 소설 「침묵」 「바다와 독약」 「그리스도의 탄생」 등이 있으며, 이 외에도 「백인」 「여자의 일생」 「지금은 사랑할 때」 등 작품을 남겼다. 신쵸샤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으며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여러 번 거론됐다.
[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5) 카를로 카레토의 "주여,왜?"
"너희들이 선택한 고통 통해 구원으로 가기 때문이지"
근년 들어 봄은 내게 점점 잔인한 계절이 되어가는 듯하다. 만물의 기운이 새롭게 솟아나는 이 때, 어째서 나는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되는 걸까? 그 까닭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봄의 밝은 기운과 대비되는 내 안의 어떤 어둠이 자괴감의 그림자로 인해 더욱 짙어지기 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해마다 더 일찍, 그리고 더 빈번하게 덮치는 황사바람 속이라고는 해도 명랑한 봄새들의 지저귐에도 다투어 피어나는 봄꽃들의 향기에도 예전처럼 가슴이 설레지 않는 나의 상태는 확실히 이상하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의 들판은 저 먼 고비사막 언저리의 불모지처럼 메마르고 삭막해져 봄이 와도 새싹 한 톨 틔워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온종일 무기력과 공허의 먼지바람에 시달리다보면 어떤 때는 잠자리에 들어서 이대로 영원히 아침이 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취침기도를 대신하기도 한다. 이러한 봄앓이를 올해는 유난히 심하게 겪고 있던 차 나는 무슨 은총의 작용에선지 놀라운 책 한 권을 만나게 됐다.
이탈리아 영성가, 고통을 이야기하다
이탈리아 영성가 카를로 카레토(예수의 작은형제회) 수사의 저서 「주여, 왜?」는 책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고통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인간 삶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고통에 대한 순차적이고 직접적인 해부를 통해 우리에게 근원적 문제 해결의 차원을 열어 보인다.
인간이란 생명체는 끊임없이 고통을 느끼며 우는 존재다. 그러다가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어 시시때때로 저항도 하는 존재다. 내가 왜 이렇게 울어야 하지? 내가 뭘 잘못했어? 왜 하필 나야? 내가 왜? 카를로 카레토는 이 책에서 죄 없다고 믿어지는 자기 자신 혹은 이웃이 고통 받아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우리 보통 인간들의 가슴에 맺힌 통렬한 의문들을 하느님께 대신 물어준다. 주여, 왜? 그리고 친절한 담임선생님처럼 자신이 이미 거쳐 온 답풀이 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여준다.
카를로 카레토는 가장 회의적인 사람조차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고통의 비밀을 헤쳐 보인다. 오랜 관상생활과 기도 속에서 자신이 깨닫게 된 하느님의 뜻하시는 바를, 그는 이 책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친숙한 성경 내용을 인용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써서 단순명징하게 펼쳐 보인다.
이 훌륭한 모범해답서를 얼마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 안의 어둠은 조금씩 엷어지는 듯 했다. 카를로 카레토는 이렇게 선언한다. '고통은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왜?"라고 물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고통들에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그분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고통의 무거운 외투 속으로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 어둠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 천명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은 하느님 나라의 <되어가고 있는 실재>이며 하느님과 우리들 자신은 하느님 나라의 실현자들인 것입니다.'
나는 뭔가 강력한 빛이 견고한 내 어둠의 벽을 뚫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세상이 다 귀찮아 방기했던 일들과 사람들이 하나 둘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집안을 청소하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수첩에 할 일을 메모하고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나 막상 외출을 하자 곳곳에서 환호를 지르며 피어나는 봄꽃들의 덧없는 위세에 또 금방 기가 질려 어둠의 처소로 되돌아가기 위해 허둥대는 내 영혼은 그리 쉽게 구원받을 기색이 아니었다.
인간 역사를 이뤄 온 사람들의 전체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제각각일 고통의 모습 중에 내가 요즈음 겪고 있는 고통은 어느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나는 몸이 여기저기 좀 부실한 데가 있긴 해도 큰 병을 앓고 있지 않다. 나는 부자도 아니지만 그리 궁핍하지도 않다. 지금은 다들 돌아가셨지만 자애로운 부모 밑에서 정다운 형제들과 함께 자라났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25년째 큰 갈등 없이 잘 살고 있으며, 슬하에 밝고 건강한 자식도 두고 있다. 나는 큰돈은 못 벌지만 사람들이 존중해 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해 왔다. 나는……. 이렇게 열거하다 보니 더더욱 나란 사람은 고통을 운운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침몰하여 다시는 재기할 수 없을 것처럼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걸까?
고통에 대한 값진 깨달음
나는 이 물음을 「주여, 왜?」의 제8장이 놀랍도록 또렷하게 다루고 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 감격했다. '사랑,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 장은 온통 사랑이신 하느님이 인간의 고통을 방치하는 그 모순을 정면으로 다룬다. 시편 137편의 구절 '네 어린 것들을 잡아다가 바위에 메어치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를 인용하며, 하느님이 역설적 방법을 쓰는 이유를 설명한다. 지상에서는 우리의 나약함으로 인해 이른바 '반대되는 것들의 종합'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진리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그런 후 카를로 카레토는 자신의 깨달음을 선물로 내어놓는다. '고통과 눈물은 하느님이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불러들이고 선택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그리고 제10장에 가서는 구약의 야곱 이야기를 인용하며 또 다른 깨달음을 보너스로 전해준다. '우리에게 내일을 향해 움직이게 하는 데 고통보다 더욱 효과적인 박차는 없습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걷어차신 이유입니다.'
고통은 나의 성장에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며 내가 궁극적 미래, 즉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 더없이 값진 전략이라 것. 그 고통을 불러들이고 선택하는 주체가 하느님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 이 두 가지 얘기는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게 외적으로 고통이 충분치 않을 경우 내적으로 그것을 불러들여서라도 고통과 함께 살아나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나의 구원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이야기? 그렇다면 나의 이 봄앓이도 무의미한 좌절이 아닐뿐더러 영적으로 해이해졌던 안이한 삶에 찾아든 '야곱의 엉덩이뼈 차기'와 같은 은총의 발길질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 카를로 카레토 수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이 '주여, 왜?'하고 함께 물어주셔서 저는 '왜, 주님인가?'를 새롭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당신의 이 훌륭한 저서가 많은 이들에게 각자 나름대로 안고 사는 어쩌지 못할 고통에 대한 값진 깨달음의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카를로 카레토(Carlo Carretto, 1910~1988) 수사는
1910년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 피에몬테 태생으로, 연구와 교직생활을 거쳐 1952년 이탈리아 가톨릭액션협회장으로 활동했다. 1954년 샤를르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1858~1916)의 영성을 사는 '예수의 작은 형제회(Little Brothers of Jesus)'에 입회, 10년간 사하라 사막에서 관상생활을 했다. 1964년 이탈리아로 돌아와 아시시에 기도 및 묵상 센터를 설립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영성가이자 저술가로 활동하다가 1988년 78살로 선종했다. 저서로는 「가시나무 덤불이 타는 곳」 「복되다 믿으신 분」 「아버지 나를 당신께 맡기나이다」 「도시의 광야」 「사막에서의 편지」 「오시는 주님」 「나와 함께 광야로 가자」 등이 있다.
[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6) 조르쥬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은총인걸요"
프랑스 가톨릭 작가 조르쥬 베르나노스는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소년 시절을 아르또아 지방 한 시골 마을에서 보냈다. 그 마을은 숲이 우거지고 맑은 냇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비롯해 주로 수도회 학교들을 택해 공부했다. 이같은 성장과정 때문인지 그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어린이 심성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이상주의에 투철했다. 그러나 그의 이상주의는 온건한 경건성 자체라기보다 타락한 현대세계를 그리스도교가 구원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에 비판을 가하는 첨단적 지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탁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인간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생각이다.
베르나노스는 대학에서 원래 법학과 문학 두 과정을 전공했는데 1926년에 소설 「악마의 태양 아래서」를 발표해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이 1936년에 발표한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이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쌩 봐스뜨 언덕 아래에 있는 조그만 시골 마을 본당 신부가 일기체로 써 나간 것이 이 소설이다. 일기체이니만큼 묵상과 잠언 성향이 군데군데 보이지만 스토리 자체는 일상 현실의 구체성들을 섬세하게 그려놓고 있다.
특히 이 소설 문체는 신선한 감수성을 구사하고 있다.
"허파 가득히 집어삼켜 배에까지 내려가는 그런 가느다란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쌩 봐스뜨 언덕에서 보니 십일월 보기 흉한 하늘 밑에서 동네가 별안간 몹시 찍어 눌리고 비참한 것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본당이 있는 마을의 이러한 장면 묘사는 또 3㎞ 떨어진 다른 본당에서 삼종을 치는 종소리가 들려오는 때가 있다고 서술하기도 한다. 이처럼 감각적이고도 근육질적 공간 묘사 안에서 본당 신부와 신자들의 일상 삶이 다양하게 전개된다.
본당 신부로서 총괄하는 관점에서 보면 현대 사회 사람들에게 문제점이 많이 있다. 그 첫째는 사람들이 대체로 권태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 권태는 교회 공동체에도 마찬가지로 있다는 것이다.
이 권태는 사람들이 자신의 실체를 인식하는 것 마저 피하는 현상이다. 말하자면 비본질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속에서 사람들은 겉으로는 별 이상이 없어 보여도 내면적으로는 방탕과 교만에 차 있으며, 이러한 세태는 어린이들의 순진성에도 나쁜 영향을 준다는 문제가 있다.
백작 부인과 그 가문의 어린 딸을 비롯해 신자들은 신부를 괴롭히는 세력이 돼 있다. 의사 델방드는 신부에게 들이댄다. "그리스도교가 시작된 지 2000년이 지났어도 누추한 가난뱅이 환자들을 의사에게 떠넘기는 것은 당신네들이 그리스도를 배반했기 때문이오."
올리뷔에도 신부에게 들이댄다. "국가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교회는 국가를 지배한다고?" 허울 좋은 명분으로 국가별 권력에 결탁한 교회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해체시켰다는 것이다. 신앙인들은 속화되고 파문을 당하고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그것이 잔 다르크의 경우이다. 교회에 의해 잔 다르크가 화형을 당했고 교회에 의해 뒷날 다시 성녀가 된 이 무원칙의 문제다. 교회가 사람들을 국가에 넘겨주었다. 국가는 사람들에게 무기와 의복과 음식을 주고 사람들의 양심을 차지해 버렸다. 신학자들도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신부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부정할 것은 부정한다. 그러면서 인간 본질의 내면을 지적한다. 하느님 안에서 초자연적 인식을 갖는 것, 이것이 신앙이다. 믿지 않게 되는 것은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기를 원치 않게 된 것이다. 우리 진리가 우리에게 흥미를 일으키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내세에서도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인가.
그래도 본당 신부에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한 어린이가 나를 고독에서 끌어낸 것 같습니다. 신부님은 어린이입니다. 하느님이 신부님을 영원히 그대로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한다. "내가 죽을 때엔 신부님 외에는 부르지 않겠습니다."
신부는 자신에게 시달림을 주는 사람들과 오래 고투했다. 그러나 결과는 승리였다. 그러나 신부는 이 승리도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만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은총'에 대한 인식은 다른 사람들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끝에서 한 사람이 병자성사를 줄 신부가 채 도착하지 않은 순간에도 "아무려면 어떤가? 모두가 은총인걸"하고 낮은 소리로 말한다.
결론은 '은총'으로 맺지만 베르나노스는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서 많은 갈등을 이야기한다. 현대인들의 권태, 자신과 진리에 대한 무관심, 방탕, 국가 권력의 횡포, 황금만능주의 등에 대해 다 알았고 다 대응해 생각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 소설부문 대상을 수여하면서 다음과 같이 수상 이유를 밝혔다. "이 소설은 20세기의 모든 문학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한 1급 소설로 평가될 수 있다. 작품 구성에 대해서도 다른 일반적 언급을 가할 여지가 없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이후에 베르나노스는 1948년에 희곡 작품으로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를 발표했다. 인간 죽음에 대한 묵상이 주제이다. 베르나노스는 인류 역사 안에 의롭지 않은 세력의 도전이 늘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그래도 선의가 끝내 승리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러나 그 승리 과정은 죽음에 대한 공포, 남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영성에서 얻는 보람을 마음에 새겨 나아갔다.
이것은 인간 정신의 폭넓고 긴 역정이며, 끝없는 이상주의자의 현실이다. 그리하여 베르나노스는 유럽의 비정신화와 그리스도인들의 변질을 비판하며 한때 브라질에 이주해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러나 생애의 마지막 날은 고국 프랑스에서 맞이했다.
조르쥬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 1888~1948)는?
1888년 2월 20일 프랑스 파리 태생으로, 파리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법학, 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왕당파 주간지 「노르망디 전위대」 주필을 거쳐 1차 세계대전에 지원병으로 참전했다가 전상을 입는다. 제대한 뒤 보험회사 세일즈맨으로 일하면서 첫 작품으로 희곡을 썼다가 잃었고, 두 번째 작품으로 1919년부터 7년간에 걸쳐 대표작 중 하나인 「악마의 태양 아래서」를 발표하며 필명을 얻는다.
이후 「사기」(1927년), 「환희」(1929년, 페미나 문학상 수상작), 「한 범죄」(1933년)를 발표했고, 1936년에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발표하면서 "20세기 전 문학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의 하나로 간주될 것"(피에르 보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로 꼽혔다.
베르나노스는 주로 악의 실존인 사탄과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자리한 거룩함과의 싸움을 주제로 한 작품을 발표했다. 이밖에도 「무셋드 후일담」(1937년), 「달빛 어린 공동묘지」(1938년), 「진리의 스캔들」(1939년), 「영국인들에게 부치는 글」(1942년), 「윈씨」(1943년), 「영혼들의 십자가의 길」(1942~1945년),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1947~1948년) 등을 남겼다. 「악마의 태양 아래서」,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등은 뒷날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자신의 묘비명을 쓴 작가로도 유명한 그는 "마지막 심판 날, 천사들께서는 나팔을 아주 크게 불어주시기 바랍니다. 이곳에 묻힌 자는 가는귀를 먹었습니다"라는 비명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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