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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성경 본문: 사무엘하 5장 6-9절, 마태복음 23장 37-39절
구속사적·텍스트적 배경: 자크 엘륄(Jacques Ellul)의 『도시의 의미(Sans feu ni lieu)』 제3부("예루살렘: 거룩한 도시의 환상과 타락")
학문적·구속사적 과제: 성경 전체에서 유일하게 "거룩한 성(하이르 하코데쉬)"이라 칭함 받는 도시 '예루살렘'의 본질적 이중성과 비극적 궤적을 해부한다. 본래 이방 여부스 족속의 군사 요새였던 시온 산이 다윗의 정복과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이방 바벨론의 길을 따르며 선지자들을 도륙하는 '피의 도성'으로 전락한 신학적 원인을 규명한다. 유목민의 텐트(미쉬칸) 신학과 정착된 도시 성전(베이트) 신학의 충돌을 분석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눈물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식 속에서 종교적 자기의(Self-righteousness)의 파선을 고발한다.
1. 예루살렘의 기원: 거룩함이 아닌 이방인의 산성
성경 독자들은 흔히 예루살렘이 태초부터 거룩하게 구별된 하나님의 도성이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자크 엘륄은 성경의 기록을 냉철하게 직시하라고 요구합니다.
예루살렘의 출발점 역시 가인이 세운 에녹 성이나 바벨탑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무관한 이방인의 군사 요새였습니다.
사무엘하 5장 6-7절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여부스 사람의 요새 (메추닷 치욘):
예루살렘(시온 산성)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이후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 지파들이 정복하지 못했던 천혜의 암벽 요새였습니다.
그곳의 원주민인 여부스 족속은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막아낼 수 있다"고 조롱할 만큼 철벽같은 방어력을 자랑했습니다.
즉, 예루살렘은 영적 거룩함의 장소가 아니라, 군사적 자부심과 난공불락의 자기방어 본능이 지배하던 전형적인 인간의 성채였습니다.
다윗의 정치적 선택:
다윗이 헤브론을 떠나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1차적 이유는 신학적 계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북쪽 지파(사울 가문)와 남쪽 지파(유다 가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 지대이자, 군사적으로 가장 방어하기 유리한 전략적 요충지라는 '철저한 정치·군사적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군사 요새이자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던 그 도성을 자신의 이름(쉠)을 둘 처소로 '은혜로 선택(바하르)'해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의 거룩함은 도시 자체의 본질이나 성벽의 견고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신 언약적 은혜의 덮으심(Imputation)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2. 텐트(미쉬칸)의 하나님 vs 고정된 성전(베이트)의 도시
다윗이 왕궁을 짓고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온 후, 그는 하나님을 위해 웅장한 백향목 궁궐(성전)을 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주신 반응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충격적입니다.
사무엘하 7장 5-7절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막막 안에서 다니며 행동하였나니 ... 내가 언제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장막(오헬)과 성막(미쉬칸)의 하나님:
광야 시절 하나님의 임재 처소는 이동식 '텐트(미쉬칸)'였습니다.
텐트는 고정된 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동하시면 백성들도 즉시 텐트를 걷고 따라나서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공간이나 인간의 도시 체계에 갇히지 않으시는 '자유로우시며 주권적이신 하나님'임을 선포하는 양식이었습니다.
고정된 집(베이트)을 짓겠다는 인간의 욕망:
그러나 도시는 정착을 요구합니다. 도시는 하나님을 견고한 돌과 금으로 장식된 신전에 모셔두고(베이트), 하나님을 자신들의 도시 안전을 보장하는 '수호신'으로 통제하려 합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을 가진 도시 예루살렘을 절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은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 7:4)."
엘륄은 이를 "도시가 종교를 집어삼킨 치명적 사건"으로 분석합니다.
성전의 벽돌과 금박이 화려해질수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과 공의는 사라지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우리 성전에 갇혀 계시니 우리는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종교적 자기기만과 주술적 안정감의 소굴로 변질되었습니다.
3. 예루살렘의 타락: 바벨론을 닮아간 피의 도성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았던 예루살렘은 어떻게 변해갔습니까?
구약의 예언자들은 예루살렘이 이방의 저주받은 도시들(소돔, 고모라, 바벨론, 니느웨)보다 더 사악하게 타락했다고 일제히 통곡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고발 (사 1:21)]
"신실하던 도성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정의가 거기에 충만하였고 공의가 그 가운데에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인자들뿐이로다"
[에스겔 선지자의 고발 (겔 16:48)]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은 ... 너와 네 딸들의 행위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정의(미쉬파트)와 공의(체다카)의 실종: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착취하고, 뇌물을 사랑하며, 사치와 부를 축적했습니다.
살인자들의 도시:
그들의 죄악을 고발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성전 뜰에서 돌로 치고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이사야는 톱으로 켬을 당했고,
예레미야는 진흙 구덩이에 던져졌으며,
스가랴는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살해당했습니다.
선택받은 도시 예루살렘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도성이 아니라, '종교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지자들의 피를 마시는 가장 잔혹한 권세'로 전락했습니다.
그 결과 주전 586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두셨던 그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군대를 불러들여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도록 철저히 불태우셨습니다.
4. 마태복음 23장: 거룩한 도성을 향한 예수님의 통곡
역사는 흘러 로마 제국 치하의 1세기, 헤롯 대왕이 46년에 걸쳐 웅장하게 증축한 거대한 성전과 백색 대리석 성벽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성전과 도시의 외형은 역사상 가장 화려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과 도시를 마주하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반응은 감탄이 아니었습니다. 피눈물 나는 절규였습니다.
마태복음 23장 37-38절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이루살렘 이루살렘):
주님은 도시의 이름을 두 번 반복하여 부르시며 통곡하셨습니다(눅 19:41에서는 도시를 보시고 우셨습니다: 에클라우센).
예루살렘의 이름의 본래 뜻은 '평화의 기초(이르 샬롬)'였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의 도시는 참된 평화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를 영접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선지자들을 죽이는 자 (헤 아포크테이누사 투스 프로페타스):
예루살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외형은 종교적 경건으로 분칠되어 있었지만, 그 내면은 하나님의 계시를 끝없이 거부하고 의인들을 학살하는 살인자 가인의 영을 그대로 품고 있었습니다.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아피에타이 휘민 호 오이코스 휘몬 에레모스):
예수님은 성전을 더 이상 "내 아버지의 집(오이코스 투 파트로스 무)"이라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단지 탐욕과 권력에 눈먼 인간들의 건물인 "너희 집(호 오이코스 휘몬)"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영광(쉐키나)이 완전히 떠나 황폐한 폐허가 될 것이라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불과 며칠 뒤, 예루살렘의 종교 권력과 군중들은 로마 총독 빌라도와 결탁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외치며 하나님의 아들을 사형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도시의 최고 절정이었던 예루살렘은 마침내 '하나님을 살해(Deicide)하는 도시'로 자신의 비극적 역사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강의 요약 및 신학적 결론]
『도시의 의미』 제3강은 종교적 외피를 쓴 도시의 가장 깊은 위선과 자기기만을 폭로합니다.
첫째, 예루살렘은 본래 거룩한 땅이 아니라 이방 여부스 족속의 군사 요새였으며,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일방적인 은혜의 선택으로 성별된 도성이었습니다.
둘째, 광야 텐트(미쉬칸)의 자유로우신 하나님을 성전(베이트)이라는 고정된 도시 건축물에 가두려 했던 인간의 시도는,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기보다 하나님을 도시의 수호신으로 조작하려는 종교적 변질을 낳았습니다.
셋째, 역사 속 예루살렘은 바벨론보다 더 악하게 타락하여 공의를 버리고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며, 마침내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문 밖으로 내쫓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완전한 심판(황폐함)을 자초했습니다.
그러므로 제3강의 결론은 오늘날 제도화된 종교와 도시적 경건에 안주하는 우리를 향해 준엄한 영적 경고를 던집니다.
거대한 예배당, 화려한 종교적 시스템, 그리고 세속적 권력과 결탁한 종교적 기득권을 하나님의 임재와 혼동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거대한 도시의 마천루나 웅장한 건축물 안에도 갇히지 않으십니다.
마음의 중심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버리고 가난한 이웃을 억압하며 자기 의의 성벽을 쌓아 올린다면, 그 어떤 화려한 종교의 도성이라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는 황폐한 폐허가 될 뿐입니다.
거룩함의 껍데기를 벗어던지십시오. 화려한 성전의 돌벽 뒤에 숨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발가벗겨진 심령으로 서서 통회하는 상한 심령의 제사를 드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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