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 15개의 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년에 세 번, 즉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모였다. 이스라엘 전 지역과 전 세계 디아스포라가 성전을 향해 가는 순례자가 되었다. 그 때 부르던 노래이다. 그 마지막 시편은 3절로 되어 있는데, 성전에서 예배를 잘 마친후에 돌아가면서 부른 노래이다.
수련회를 갔을 때가 기억난다. 처음에는 갈까 말까 망설이기도 하고 마음의 갈등이 많고 간 당일날은 집에 돌아가고 싶지만 수련회가 끝날 때 쯤 되면 계속 수련회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되고 집으로 돌아오기 싫다. 수련회를 갔다 오면 그 다음은 서운한 마음이 생기고 다시 수련회를 함께 갔던 사람들이 모여서 뒤풀이를 하기도 한다. 수련회는 서로를 알게 되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는 통로였다.
세 절로 되어 있는데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1절은 성전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는 순례자들이 계속 성전에서 봉사해야 할 충성스러운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향해서 하는 말이다.
2, 3절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떠나는 순례자들을 배웅하면서 불러 주는 노래이다.
우리는 예배의 끝이 자기 자신의 마음이 안심되고 시원해지고 기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예배의 끝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끝나는 것이다. 가정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가정을 꾸리는 이유, 결혼을 하는 이유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정을 꾸리고 유지해 가면서 마지막에는 알게 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 타인인 아내와 타인인 자식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고 타인을 걱정하게 될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
예배를 드리고 난 후에 비로소 형제들에게 눈을 돌리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은혜로운 예배일 수록 자기 자신에게만 향했던 눈이 형제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1)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보라’라는 것은 감탄사이다. 제사장들은 성전 안에서, 레위인들은 성전 마당에서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불침번을 서면서 성전 안에 횟불이 꺼지지 않도록, 성전 기물들을 훔쳐가지 못하도록 지켰다.
출애굽기 27장 20-21절에서 하나님은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회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보살피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대대로 지킬 규례이니라’ 고 하셨다.
민수기 3장 6-8절은 레위 지파는 ‘아론의 직무와 온 회중의 직무를 위하여 회막에서 시무하되, 곧 회막의 모든 기구를 맡아 지키며 이스라엘 자손의 직무를 위하여 성막에서 시무할지니’ 라는 명령도 하셨다.
성막은 협소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밤새 불침번을 서던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수고는 컸을 것이다. 배도 고팠을 것이고 잠도 왔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잠시도 신경을 놓아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거룩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잘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우리가 다시 올 때가지 예배를 멈추지 말아 달라. 우리는 너만 믿고 이 성전을 떠난다.'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떠나는 순례자들에게 '너희가 어디에 가 있든지 이곳을 기억하고 이곳을 향해서 손을 들고 찬송하고 경배하라.'는 것이다.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이렇게 기도했다.
열왕기상 8장 38-39절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이다. 어떤 사람은 제사장이 되어 성소를 지키고, 어떤 사람은 레위인이 되어 성막을 지키고, 어떤 사람은 찬양대가 되어 찬양을 준비하고, 어떤 사람은 일터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주신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공동운명체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서로에게 눈을 돌리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서로에게 부탁하면서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 이것이 예배의 진정한 의미이고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