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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의 수필세계
평화를 되찾아야 한다는 작가의 염원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열며
모든 수필이 지녀야 하는 공통적 요건 중에 하나가 대상을 바라보는 심미적 안목이다. 심미적 안목이란 화려하거나 현란한 언어구사와 거창한 주제와 경이로운 소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필 작품을 통해 이르는 효과에 중요한 조건이 되지만, 인간의 흥건한 정이 배어 있고, 사물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자리하며,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유발할 때, 문학적 미학은 완성된다.
수필은 어떤 문학보다 미학적 정서를 요구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수필가는 정이 풍부한 사람이라야 한다. 무심한 사물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정은 인간의 심리 중에서 가장 원시적 요소다. 그러나 그것이 물상을 사랑하는 데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객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가능한 것이다. 한국의 현대 수필은 그 명칭 자체가 ‘기행문’으로 표시가 됐을 만큼 수필과 기행문은 등식이 같은 것이었다. 세계화 선언과 함께 우리나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종종 외국으로 뻗치게 되었다. 근간에 와서는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정부 방침에 맞물려 많은 사람들이 레저 문화를 누리고 있다. 자연히 견문을 넓혀야 하는 작가들의 여행이 늘고, 그만큼 기행문도 많이 쓰여지고 있다.
김명숙은 여행을 많이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수필은 집을 벗어나야만 좋은 글감을 건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신변잡기라는 틀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기행수필의 근간은 깊은 자연관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과의 만남이고 문화와 예술의 상호 교류에 있다. 기행의 세계는 이동의 세계다. 그 이동에 따라 초점을 맞추고 서술하는 것이 기행문이기 때문에 극히 주관적인 글일 수밖에 없다. 대체적으로 작가는 금강산 교육 시찰을 통해서 자연 속에 제 나름의 자태를 뽐내며 존재를 밝히는 물상들의 모습을 보며 삶의 새로운 의미를 터득할 뿐만 아니라 북측의 실상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II. 펼치며
김명숙의 기행 수필은 한결같이 다정다감한 인정을 찾고, 그 인정으로부터 삶의 의의를 깨닫게 하는 글이라 눈길을 끈다. 기행문의 제목, ‘해맑은 미소와 통일을 생각하며’에는 ‘있어야 할 당위적 명제’가 함축되어 있다. 이 제목은 우리가 금강산 여행을 통해서 꼭 찾아야 할 잃어버린 것 두 가지가 내포되어 있다는 데서 미학적 정서를 유발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기행문의 제목만으로도 그녀가 갖고 있는 사회의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섬세한 관찰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잃어버린 아니면 동포가 일어버린 평화를 되찾아야 한다는 작가의 염원이 ‘미소’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 이 글의 강점은 작가가 금강산이 주는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은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비록 남북이 분단되어 있지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로 우리 민족의 내면에 쌓인 벽을 허물기를 기원하는 작가의 인정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정신이 드러내었다는 데 있어서 높이 평가할 만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가) 그리운 금강산, 눈물겹게 그리운 산하다. 8월 22일 오전 10시에 6대의 동부산버스에 몸을 실은 금강산 시찰단 214명은 출발하였다. (나) 설악산 금호리조트에 도착하여 선후배가 나누는 정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내일을 위해 하루를 접었다. (다) 밤새 뒤척이다 23일 새벽 4시에 기상하여 바쁘게 준비하였다. 비무장지대를 지나는 감회가 남달랐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에는 삼중 철책선이 쳐져 있었다.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누군가가 ·녹슬은 기찻길'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 발단 부분 -
누구에게나 금강산은 그리운 산이다. 작가는 그리움의 정도를 강조하기 위해 ‘눈물겹게’라는 부사를 ‘그리운’이란 형용사 앞에 덧붙여 놓았다. 처음부터 분위기를 고조하기 위한 전략이다. 기행문의 성공 여부는 글쓴이가 얼마나 사전에 철저하게 그리고 세밀하게 일정을 체크하는가 유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에 제시된 ‘8월 22일 오전 10시 6대’라는 어구와 ‘214명이라는 어구, 그리고 (다)의 ’23일 새벽 4시‘라는 어구는 작가가 기행문을 쓰기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일정을 메모해왔는가를 짐작케 해 주는 대목이다. 사실 평자도 취재기자로 따라 같지만 몇 명이 몇 대의 차로 가는지 몰랐는데, 그녀는 세세한 것까지 치밀하게 기록하는 성실함을 보여준 것이다. 비무장지대를 지나는 감회를 ’녹 슬은 기찻길‘이란 객관적 상관물로 물화하는 기법이 그녀의 언어를 부리는 솜씨가 만만찮음을 보여준다.
(마) 통일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보았던 돌산이 바로 이 구산봉이었구나! 이정표처럼 서 있는 북한의 어린 군인들, 헐벗은 야산들, 옛날 일본관사 같은 느낌을 주는 민가들,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답답한 느낌을 주었지만 들꽃들은 예쁘고 다정하였다. 온정각 휴게소는 식당, 라운지, 쇼핑 공간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진귀한 북측 상품과 휴식 시설이 대체로 잘 구비되어 있었다.
(바) 상팔담으로 가는 길은 예사롭지 않았다. 한치 앞을 보기가 힘들었고 경사가 심하여 더 힘이 들었다. 안타까워하는 나에게 오늘따라 안개가 더 심하다면서 ·동무들은 다음에 한 번 더 오시라'고 안내원 동무가 농담을 했다. 표지석 앞에서 기념 촬영하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었다. 비록 북한이지만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 땅에 남아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웠다. 하산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온천에서 노천탕을 즐겼다. 피로를 말끔히 날려 보냈다.
(사) 북녘의 들판, 마을, 학교, 외금강 자락이 꿈같이 보이는 호젓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걸었다. 저쪽 샛길에서 남자아이 셋이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눈을 크게 뜨고 마구 손을 흔들었다. 새까맣고 눈이 커다란 녀석이 씽긋 하얀 이를 보이면서 웃었다. 눈물이 찡 났다. 그 아이의 해맑은 미소가 내내 생각났다. 만나서 같이 공부도 하고 얘기도 나누고 같이 놀고 싶다. 아이들의 미소는 한 줄기 희망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 아이의 수줍어하던 해맑은 미소와 눈동자가 내 맘에 각인 되었다. ·얘야! 부디 건강하게 총명하게 잘 자라라! 빨리 좋은 세상을 만나야 한다"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왜 탈북을 했느냐'는 TV인터뷰에 ·배가 고파서…'라던 북한 소년의 눈물 고인 눈이랑 겹쳐서 떠올랐다.
- 전개 전반부-
전개부 (마), (바), (사)는 금강산 교육 시찰의 중요 일정인 상팔담으로 가는 길과 삼일포 가는 길에 대한 풍경과 감회를 적은 부분이다. (마)의 ‘이정표처럼 서 있는 북한 군인들’, ‘옛날 일본 관사 같은 느낌을 주는 민가들’이란 어구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사물에 접해서 일어나는 감정을 실감과 유리시켜 보수되어 객관화된 정서로 나타내고 있다. (바)에서는 북한 안내원이 농담을 건네는 장면을 소개함으로써 우리가 들어서 알고 있는 북측 사람들의 경직성을 무너뜨린다. (사)에서 작가는 삼일포로 가는 길에서 만난 북한 어린이들의 미소를 보고 희망을 예감하고, 익히 알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예전에 보았던 TV 인터뷰 장면을 보여주며 정서의 간접화를 꾀한다. 여기서 작가가 대조되는 두 어린이 모습을 보여주는 의도는 뭘까. 해맑은 미소와 눈동자를 가진 북한 아이와 ‘배가 고파서’ 북한을 탈출한 아이의 모습을 오버랩시키는 작가의 균형 감각은 북한 실상에 대한 독자의 객관적 접근을 요구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또는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것만으로 본질에 해당되는 실상을 섣불리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신중함은 작가의 인식 탓에 나았으리라 본다. 예문으로 전시하지는 않았지만 (사)글 다음에는 평양 모란봉 교예단 교예 공연을 관람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동 그 이상이었다’는 한마디 표현에 작가는 공연이 주는 뭉클한 감동을 잘 전달하고 있다. 교예단 공연에 대한 평가는 ‘동포애를 느끼게 하는 민간외교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말을 잃고 연신 박수만 쳤다고 적고 있다. 관현악단의 기립 인사에 남측 관람객 모두가 한 가지를 염원했고, 잔잔한 감동의 물결은 극장 안을 열기로 가득 채웠다고 적고 있다. 전개부 하단에는 마지막 코스로 올랐던 만물상을 가는 길의 풍경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 점심 메뉴는 옥류관의 평양식 냉면이었다. 맥주맛이 고소하고 우리 맥주보다는 훨씬 진했다. Y선생님이 미모의 접대원 동무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예쁜 얼굴과는 달리 손은 거의 곰발바닥처럼 크고 투박하고 거칠었다. 커다랗고 무거운 놋그릇 4개씩을 손바닥에 겹쳐 올려서 웃으면서 나르고 있는 접대원 동무들을 다시 쳐다보았다. 성형수술도 똑 같은 모양으로 단체로 한다고 했다. 쌍둥이 같이 똑같은 모습이었다. 면에 식초를 치는 것이 국물에 식초를 치는 나의 방식과는 달랐지만 김치랑 감자전도 정성을 다한 작품 같았다. 들쭉술과 기념품 몇 개를 산 우리는 온정각을 출발하여 북측 출입사무소에 도착하여 ·저리 가라우!"라고 고래고래 고함치는 검사원을 뒤로 한 채 군사분계선을 통과했다.
(자) 체험과 감동으로 버무려진 유익한 여행이었다. 금강산에 드리워진 김일성 일가의 예찬 글에서 이는 찬바람에 가슴이 아프다. 아직도 야만사회에나 있을 법한 1인 숭배의 독재 세습정권의 구호를 봐야 한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해맑은 미소의 아이들과 한창 젊음을 구가하며 꿈꾸어야 할 젊은이들이 그 지경에 놓여있다니…. 씽긋 웃던 녀석과 희망을 얘기하며 공부하고 싶다. 원활한 일정을 위해 수고해 주신 부산교총 관계자들 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전개 후반부 및 결말부 -
(아) 인용 예문에서 다시 한 번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을 확인할 수 있다. 맥주 맛에 대한 품평에 이어 미모의 접대원을 세심한 관찰한 결과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예쁜 얼굴과는 달리 손의 거의 곰발바닥처럼 크고 투박하고 거칠었다’는 묘사 또한 북한의 실상을 직접 전달하기보다는 독자로 하여금 연상과 상상력을 통해 이해하도록 하려는 작가의 배려라 하겠다. 문학적 기법을 통해서 미적 정서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높게 평가되지 않을 수 없다. 돌아오는 길에 북측 출입사무소에 들렀는데, 여기서 또 한 번 작가의 예리한 시야에 포착된 북한 검사원의 모습은 묘한 북한의 실상을 유추케 한다.
결말부는 전체적 느낌을 후기 형식에 의존해 적었다. 작가는 ‘금강산에 드리워진 김일성 일가를 예찬하는 글에서 이는 찬바람에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 민족의 명산이 정치적인 도구로 훼손되고 있는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교사로서의 희망도 피력했다. ‘씽긋 웃던 녀석과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는 표현에 통일의 염원을 담아두었다. 일련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 전달 방식을 통해 자신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연상과 상상을 통해 독자의 뇌리와 가슴 속으로 들여놓고자 한다. 이번 기행문이지만 정서적 감흥을 배가하기 위해서 작가가 문학적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III. 닫으며
김명숙의 기행문이 성공적으로 쓰여진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김명숙의 금강산 여행은 기행문을 쓰기 위한 여행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여행 전에 어떤 테마를 설정하고, 어떤 시각과 관점에서, 어떤 곳을 볼 것인가 하는 것을 미리 구상하고 떠났던 것이다. 김명숙만의 예리한 관찰력도 좋은 기행문을 쓰게 하는 데 한 몫을 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개성적 문장이 빛을 발하면서 생동감을 주고 있다. 작가 자신의 느낌과 사물에 대한 해석, 인생의 총체적 경험의 산물로써 얻어지는 정감, 그리고 발견의 세계가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당겼다고 하겠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예리한 눈을 갖고 있기에, 그녀의 글은 손맛과 눈맛이 두루 느껴진다. 독자에게 신선한 충동이 되려면, 기행수필이 여행의 추억, 견문과 해방감, 동경과 사색의 기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문예적 감흥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글의 강점은 문학의 맛을 느끼게 하는 기행문이라는 데 있다. 현재 그녀가 위치하고 있는 곳은 교육의 현장이다. 그녀는 조그마한 학교, 아담한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이다. 유별나게 정도 많아 인간적 향내가 짙은 여인이다. 인간적인 정이야말로 수필적 자질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보여주는 이 수필이 수필가로서의 성장을 가늠할 수 있는 표징이 된다고 한다면, 지나친 나의 속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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